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입장과 처지는 전부가 다 환난을 자취하는 그런 생활입니다. 우리 앞에는 환난이 없는 길도 있고 또 환난이 되는 길도 있어서 크게 말하면 두 종류의 길로 갈라져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환난을 피해서 평안을 취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평안을 피해서 환난을 스스로 취해 가지고 걸어가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모든 걸음을 미련한 걸음이라 어리석은 걸음이라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안 믿는 가정에 믿는 사람이 하나 생기면 그 사람은, 믿기 전에는 어쨌든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환난을 피하고 평안을 취해서 가는 것이 온 가족들의 생활관인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시작하고 교회 다니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변해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환난을 피하고 평안을 취해서 가는 것이 정당한 일인데 예수 믿고 나더니 거꾸로 번연히 평안한 길이 있는데 평안을 버리고 환난으로 뿍뿍 들어가서 걸어가니까 온 가족들이 마음에 불안을 가집니다.
불안을 가지고 그리 말라고 개유를 하다가 안 되면 가정에서 핍박도 하고 뭐 손 위에 사람이 있으면 형도 주고 여러 가지로 합니다. 이래도 어리석게 미련한 길을 뿍뿍 걸어가게 되는 것이 기독자의 생애 법칙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과거 믿지 않을 때에는 어쨌든지 자기 편리하도록 자기 좋도록 자기에게 아무 거리낌이 없도록 이렇게 이것을 중심을 해서 모두 비판하고 평가해서 취사 선택을 했는데, 잡을 거는 잡고 놓을 거는 놓고 이렇게 걸어갔었는데 이제는 중심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자기 편리하고 좋게 하는 그 생활이 멸망할 생활인 것을 깨닫고 자기를 구속하신 이 하나님 좋게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이 길을 걸어가려고 목적을 하고 이것이 자기가 마땅히 걸어가야 될 자기 본분이요 자기 길인 줄 알고 이 길을 걸어가려고 중심이 이제 바꿔져 버렸고,
또, 그 방편이 과거에는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이제까지 역사에 사람들이 살아나온 그 방편과 또 그 통계를 다 맞춰 가지고 그 중에 제일 유리한 그런 방편을 취해서 갔는데 이제는 이제까지 온 세상이 취하고 있는 이 방편대로 가지 않고 자기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주신 그 법칙을 맞춰서 살아가려고 하니까 이것도 세상 법칙에 마찰이 됩니다. 세상 법칙에 마찰되고 또, 자기 중심으로 살던 것이 이제는 대속하신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하니까 또 그 생애가 마찰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믿는 사람이 환난을 자취한 십자가의 걸음을 걷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 걸음을 자취한다 말은 스스로 자기가 취한다는 말입니다. 자취해 걸어가지 않고 이 걸음을 피하는 그런 걸음은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고행주의는 아니지마는 어쨌든지 평안하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안일주의, 그저 편히 살라고 하는 그것이 기독자의 큰 병이요, 그게 약점입니다. 그 병을 안 고치면 그 병으로 죽습니다. 안일주의로 평안하게 살려는 그것이 기독자의 신앙 인격에 제일 중한 병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는 자기가 걸어갈 고난의 걸음을 걷는 것이 십자가인데, 십자가의 원수는 자기가 걸어갈 고난의 걸음을 걷지 아니하고 평안을 취해서 나아가는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걸어가는 그 걸음의 마침은 멸망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고난은 왜 당하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함으로, 피조물 중심 인간 중심, 민족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국가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문화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가정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요 자기 중심도 피조물 중심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온 세상인데 이런 세상에, 지옥을 향해서 흘러 내려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중심의 이 생명을 향하여 올라가는, 생명을 향하여서 거스려 올라가는 생활이기 때문에 세상과는 필연적으로 마찰이 오는 것입니다. 사망을 향해서 내려가는 피조물 중심의 생애가 홍수처럼 살수로 내려가고 있는 여기서 하나님 중심의 영생하는 걸음을 걸어가려 하니까 자연히 역류로 거슬려 올라가니까 마찰이 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고난을 자취해서 가는 이 생활이 내게는 고난도 되고 기쁨도 됩니다. 고난도 되고 기쁨도 됩니다. 고난은 누가 고난을 당하는가? 내가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려 하니까 내가 고통을 당합니다. 고통을 당하는데 고통당하는 그 나, 고통을 당하는 나 그 나는 어째야 됩니까? 그 고통을 면하도록 해야 됩니까 고통당하는 그놈을 고통을 많이 당하도록 해서 그 고통당하는 그놈을 죽여 버려야 됩니까? 고통을 심히 당하면 그놈이 빼빼 말라 가지고 마지막에 죽어 버립니다. 죽여야 됩니다.
십자가의 걸음을 걸으니까 고통하는 사람도 있는 동시에 기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된 영생하는 사람이니, 진리와 하나된 사람이요 성령과 하나된 사람이요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준 이 대속의 공로와 하나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만주의 주에게 속해서 만주로 더불어 주노릇할 것이고 만왕으로 더불어 왕노릇할 완전자입니다. 이 자는 속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이러니까, 우리 걸음이 하나는 고통을 당하고 하나는 기쁘고 즐거워하는 걸음이 우리 걸음입니다. 이래서,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으면 옛사람은 좋아서 기뻐서 즐거워하지마는 속사람은 골케골케 말라서 죽을 지경입니다. 또 십자가의 걸음을 걸으면 속사람은 이제 생기를 얻어 힘있게 강건하게 자라지마는 옛사람 그놈은 골케골케 해 가지고 죽습니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우리 믿는 사람이 환난을 자취하는 이 걸음 걸어가는 것이 정상이요, 또 그 환난은 스스로 자취한 환난인데 이 환난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은 마귀도 이겼고 죄도 이겼고 사망도 이겼고 전부 다 이겼어. 마귀도 이겼고 사망도 이겼고 죄도 이겼습니다. 이래서, 마귀는 점령을 해서 부리는 종으로 만들어 버렸고 사망은 완전히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워 버렸고 죄도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워 버려서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는 그 말씀은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세상을 이겼기 때문에 너희들도 나를 따라서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라 그렇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너희들이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는 이 말을 너희들에게 말해 주는 것은 내 안에서 너희들이 평안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 생활이 첫째는 환난을 자취하는 십자가의 걸음을 걸을 것이고, 둘째는 담대함을 발견할 것입니다. 어떻게 담대함을 발견합니까? 나 아닌 나, 나를 죽인 원수인 나, 거짓 나, 그놈이 나를 주장하고 있는 그놈이 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중생돼서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 완전자로 살아난 내가 있으니까 둘을 발견해서 한 놈은 죽고 하나는 점점 장성해 갑니다. 요것을 발견하면 담대해집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믿는 사람이 첫째는 십자가의 길을 버리고 우선 평안을 취하는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걸으면 뭐 두말 할 것 없이 멸망입니다. 거기는 평안이 없습니다.
산에 가서 무슨 잉어를 잡으며 산에 가서 무슨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자가 하나님의 법도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하나님이야 노여워하든지 섭섭해하든지 저 좋도록 하는 그 걸음에는 공중에서 물고기 잡으려 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는 기독자의 평안이 없습니다. 못 잡아도 물에 가야 물고기 잡고 산에 가야 들짐승을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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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이 환난의 길을 취하느냐 평안의 길을 취하느냐 이 둘인데, 하나님이야 어찌 됐든지 저 좋도록, 하나님의 법도야 어찌 됐든지 세상 법을 맞춰서 가는 거기는, 그것이 환난을 피해서 평안을 걸어가는 안일주의, 평안한 평안을 위주로 하는 안일주의로 살아가는 건데 그 걸음에는 절대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새사람이냐 옛사람이냐 그 둘을 발견할 줄 알아야 되고, 또 십자가인 생명의 길을 발견할 줄 알아야 되고, 안일주의의 길 사망의 길을 발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 두 길과 두 자기를 발견한 사람에게 비로소 평안이 있지 그 외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88051831)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요16:33의 '너희들이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하는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담대하는 것은, 옛사람이 자기 주격이 되었을 때에는 환난을 당할 때에 고통과 공포와 비겁에 싸이게 되고, 새사람으로 바꾸어졌을 때에는 그것이 좋고 나쁘지 않다 그말입니다. 왜? 그 모든 환난은 옛사람 죽이는 환난이요 옛사람 꺾는 환난이요 옛사람이 다 없어지는 그 환난이기 때문에 새사람은 춤추고 좋아하는 것이라 말입니다.
담대하라는 것은 깨달으면 담대해집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는 것은 주님이 어떤 자를 싸움의 대상으로 싸워 가지고 싸웠으며 어떤 방편을 가지고 싸웠는가? 주님이 싸움의 대적을 삼은 그 대적이 우리 대적이요 그 방편이 우리 방편입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10:26)
인간들은 지금 좋아서 감추고 나빠서 감추고 또 좋아서 숨기고 나빠서 숨기고 별 게 다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불로 태워서 없애지만 인간의 행위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그대로 다 나타내 놓는다 이랬습니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했습니다. 하나도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암만 숨겨봤자 그게 다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요거는 요래 숨겨 놨으니까 안심이고 저거는 저래 감추어 놨으니까 안심이지만 감추지도 못하고 숨기지도 못합니다. 전부 다 드러납니다.
경제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한 거 그거 다 드러납니다. 안 드러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다 드러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마10:26 :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1)
* 벧후3:10 :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2)
(88051940)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처음에 인류를 지으실 때에 이렇게 이런 지위를 맡길려고 지으셨는데 인류가 그만 뱀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이 지 위를 뱀에게 뺏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뱀의 것이 됐습니다. 그 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그 말은 세상 임금은 누구를 말한 것인가? 세상 임금을 말씀하신 것은 곧 뱀 사탄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사탄이 빼앗았기 때문에.
이랬는데, 첫째 아담이 빼앗긴 것을 둘째 아담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도전하셔 가지고 뱀을 이겼습니다. 이제 뱀이 예수님에게 뺏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말씀했고, 십자가의 대속으로써, 그들은 예수님을 요 세 가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할려고 애를 써도 예수님께서 고 세 가지 믿음을 끝까지 요동치 안하고 지킴으로써, 계속 지켰는데 그들이 그만 죽여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지킨 것을 지킨 그대로 죽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리했고 그들은 범하도록 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패전했습니다.
(85062040) 9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면 시험하는 자는 누군가? 시험하는 자는 죄, 사망, 마귀, 이 세상 넷이 들어서 시험을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이 넷을 이겨 버렸습니다. 이 넷을 이겼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들이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랬습니다. 세상을 이겼다 말은 악령과 죄와 사망과 세상을 다 통틀어 말해서 이겼다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험받는 것은 현실에서 이 다섯 가지를 내가 가지고 다섯 가지로 살아. 다섯 가지로 사는 생활을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할라고 방해하는 자들이 넷 세력이 들어서 방해를 합니다. 넷 세력이면 세상이 들어서 이 다섯 가지로 살지 못하게 하고, 마귀가 들어서 살지 못하게 하고, 죄가 들어서 살지 못하게 하고, 사망이 들어서 살지 못하게 할 때에 우리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다섯 가지로 살던 것이 그것으로 인해서 중단을 당하든지 다섯 가지를 그만 내가 배반해 버리든지 하면은 나는 그 네 가지에게 진 사람이 되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다섯 가지로 사는 것을 그 넷이 달라들어도 내가 지지 안하고 다섯 가지로 사는 생활을 계속해서 살게 되면은 나는 이 다섯 가지 생활로서 나는 사는 사람으로서 승리했고 나를 살지 못하게 했던 그 네 가지는 졌기 때문에 내 종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을 점령하는 방법이 이 방법 가지고 점령하고, 마귀를 점령하는 방법이 이 방법 가지고 점령하고, 죄와 사망을 점령하는 방법이 이 방법 가지고 점령합니다. 예수님은 사망을 내가 이겼다, 사망이 다 내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그걸 이겼기 때문에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 너희 것이라” 그 말은 우리들이 이기면 다 사망도 내 것이 되고 생명도 내 것이 되고 그게 다 내 자유 자재로 내 소유가 된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86091733) 5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지금 세상은 예수님이 이긴 세상입니다. 이긴 세상이니까 이 세상은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 복종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조절하시는 대로 조정을 받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살이를 할 때에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이 세상살이를 영감대로 진리대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대로 이 세상살이를 할려고 하고 있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 죄와 사망과 마귀는 우리들을 이 세상살이 할 때에 저희 시키는 대로 세상살이를 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마귀에게 완전히 점령돼서 마귀의 군병이 다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점령한 악령 악성 악습 이것들과 이것들의 것이 되어 있는 이 세상과 우리는 싸우는 싸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살이라는 것은 내 세상은 어떤 게 내 세상인고 하니 내 현실이 내 세상입니다. 내 현실만 내 세상이지 내가 그만 현실에서 끝나버리면 세상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또 현실 밖에 것은 암만 있어도 내게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이 현실을 닥칠 때에 이 현실을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대로 이 세상살이를 할라 하고 현실 생활을 할라 하고 사망 죄 마귀 이놈은 이 현실을 제 법칙대로 살라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8710110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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