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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성경:66요한계시록11:02
 

계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세상에 어떤 게 옳다 하는 것을 바로 보여 주는 이 빛은 없어져 버리고 그저 형식 교회만 있어서 이것을 성전 밖마당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전 밖마당은 측량치 말아라, 마흔 두 달 동안 이방 사람들에게 짓밟힌 이용물이 되어지게 된다 했습니다.

교회라는 것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빛이 없어지고 하나님과 연결 끊어진 교회로 세상에 머물게 되면 세상이 저희 것이라고 대단히 좋아합니다. 마치 어떤 여인이 자기 남편을 버리고 간부로 더불어 서로 화친하니까 그 간부가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세상 것이 아니니까 세상이 항상 시기하고 미워하고 대적하는 것인데 교회가 세상 것이 되면 아주 세상이 세상에 있는 세상 사람보다 더 좋아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야고보서 4장에는 보면 음행하는 여인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호세아서에는 보면은 네가 본남편 냅두고 간부로 더불어 지금 네가 간교한 그런 음행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기독교가 세상 이용물 앞잡이가 되면 세상에게 가장 사랑을 받고 존귀를 받는 것입니다.

왜정 말년에도 신사참배를 반대한 사람들은 옥에 갇혔고, 또 특수한 사람들은 옥에 갇히지 않고 그들과 항상 늘 대항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못 하게 하니까 가두지 못하고 대항한 사람들 있었고, 교회로서 일본 정권으로 더불어 하나가 된 그런 사람들은 일본 정권에서 굉장히 대우를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게 미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하거든 너희들보다 나를 먼저 미워한다는 것을 알아라.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보다도 나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하는 그 표현이다 너희들이 세상에 속해 있으면 세상이 저희 것으로 알고 사랑하겠지마는 너희들이 세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처음 사랑을 버리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고 세상에서 촛대의 본분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 약4:4 :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 요15:18-19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

(88053010)


'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아라 말은 상관하지 말라 말입니다. 그것도 성전입니다.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택한 자면 구원은 다 얻습니다. 구원은 얻어 하늘나라는 가지만 짓밟히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한다는 말은 신약 시대에 많은 교회들이 있으나 성전 밖마당에 있는 것과 같이 그런 껍데기 외식 신자 그런 자들을 말합니다. 마흔 두 달 동안이라 말은 신약 시대 전부를 말합니다. 마흔 두 달이면 삼 년 반입니다.

세상 지식을 제 위에 뒤집어쓰고 세상 지식 밑에서 세상 지식을 따라서 움직이면 세상에게 밟힌 자 아닙니까? 또, 세상이 범죄하게 할 때에 범죄 하면 세상에게 짓밟힌 것 아닙니까? 하나님 의를 팔라고 할 때에 팔아 버리면 세상에게 짓밟힌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살라 했는데 예수님의 구속을 벗어라 할 때에 홀딱 벗었으면 그 사람은 세상에게 짓밟힌 자 아닙니까? 그렇다고 이것이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기는 하늘나라로 갑니다. 가지만 그의 심신 기능은 다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서 쓸 심신의 기능은 없습니다.

(88031520)


'성전 밖 마당은'
'성전 겉 마당'은 하늘나라에 가야 그저 걸거치기나 하고 짐 덩이나 되지 하늘나라에 필요 없는 그런 인물들을 말합니다.

(88040851)


'성전 밖 마당'
성전 밖 마당인 이 많은 양을 세상에게 내줘 세상에게 짓밟히고 세상에게 이용당하는 자가 되도록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 같이 예수의 이름을 믿고 부르지만 실은 성전 밖 마당인 이 많은 양은 세상의 앞잡이요 세상의 종이요 다 이리떼입니다. 그러면, 자기 외에는 다 이리입니다.

* 마10:16 : 이리

(88041550)


'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마흔 두 달 동안'은 신약 시대 전부를 말합니다.

마흔두 달 동안이면 얼마입니까? 삼 년 반입니까? 삼 년 반은 그것은 신약 시대를 가리켜 말합니다. 구약 시대 신약 시대 해서 칠 년으로 이래 계산해 가지고 이 말씀했는데 삼 년 반이라 그말은 신약 시대 내내 주님 재림 때까지 그거는 버려둡니다. 성전 밭마당은 하나님이 취급하지를 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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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깨달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지마는 성령 세례는 받지를 못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면 권능도 얻지 못하고 예수님의 증인은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크게 말하면 계시록에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마흔 두 달 동안을 이방인에게 내어 줘라 이랬습니다. 측량하지 말라는 거는 그까짓 거는 뭐 이런가 저런가 재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살펴볼 필요가 없고 관리할 필요도 없고 고만, 하는 대로 방임해서 냅둬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방에게 내어 주라는 말은 이방 사람들에게 짓밟혀서, 이방 사람들에게 짓밟혀 이방 사람들의 것이 되도록 냅둬라 그말입니다.

이방이라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이방이요 곧 세상이 이방인데 이방에게 내어 주라 말은 세상 것이 되도록, 세상에게 지배를 받도록 냅둬라 그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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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그 속에 하나님 모시지 안하고 악령과 악성을 모셔 가지고서 그놈이 만날 일 년 내내 주관하고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도 주관하지를 못하고 있는 그 사람 그거 순 이름만 예수 믿는 것이지 전부 안 믿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성령이 어떻게 취급해? 왜 취급 못 합니까? 왜 주님이 왜 취급을 못 하십니까? 미워서 못 하십니까 사랑으로서 못 하십니까? 사랑함으로 못 하십니다. 사랑하면 왜 취급하지 사랑하면 취급을 못 해? 깜깜 어두운데 빛이 들어가면 그 어두움은 녹아버리고 맙니다.

이래 가지고서 너무 하나님과 거리 멀고 이라고 거기서 조그마치라도 하나 붙들어야 차차 차차 살려 나가지 이거는 완전히 생명이 없이 완전히, 영만 중생됐지 심신이라 하는 건 완전히 죽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들어가면 그만 죽어버리기 때문에 들어가지를 못해. 이러기 때문에 문을 두드립니다. 문을 두드리는 건 거기에서 양심이 나와 가지고서 연결을 하도록 할라고서 하는 것이오.

이러니까 미워서, 미워서 하나님이 접선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접선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내가 사자를 보낼 터이니까 내 사자하고 같이 가나안을 가거라” 그렇게 말했어.

모세가 있다가서 주님이 같이 하시지 안하면 안 된다고서 이렇게 부르짖고 이라니까 “내가 같이 갈 수 없다. 왜? 나는 죄인을 용납지 안하고 죄인을 멸하는 내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과 같이 가면 너희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목이 곧은 백성이라 나한테 멸망받을 짓만 자꾸 하고 있으니 내가 가면 너희들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직접 내가 가는 것만 못하지마는 직접 내가 가지 못하고 내 심부름꾼 사자를 보낼 터이니까 그 사자하고 같이 가거라. 너희를 도중에서 전멸할까 싶어서 내가 가지는 못하겠다. 너희들은 목이 곧은 자들이기 때문에 전멸당할 수 있는 그런 행위를 많이 하고 있으니 내가 너하고 같이 가면 뭐 결국이 빤한데 전멸할 것뿐이지 너희들을 구원하지는 못하고 도리어 전멸할 터이기 때문에 나는 가지 못하니 사자를 보낼 터이니까 사자하고 같이 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안 그랄 터이니까 같이 가자 할 때에 하나님이 “그러면 같이 가자” 하고서 같이 갔습니다.

자기가 완전히 성전 밖마당이 돼 가지고서 제맘대로 죄 짓고 뭐, ‘이게 죄냐 죄 아니냐?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느냐 노여워 안 하시느냐? 하나님에게 거리낌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나님을 그까짓 거 똥덩이같이 생각하고 이런 길가에 있는 돌자갈만치도 생각지 안하고 아주 헌신짝으로 여기는 그자에게 하나님이 가면은 완전히 전멸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어 그 사람은 성전 밖마당으로, 취급하지 안한다 그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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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두 달'
1. 과거파 학자들의 의견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타락이 67년 봄으로 70년 가을까지를 가리킨 것이라고 합니다. 이 해설은 믿을 수 없으니 문자대로 성전 밖마당이라면 현재 성전, 지성소 있던 그 자리까지 밟히고 있으니 잘못된 해석이고, 상징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말함이니 밖마당이 되는 교회가 유대인 뿐으로 볼 수 없으니 또 잘못입니다.

2. 교회사학파에서는 '마흔 두 달'을 1260년(하루를 1년으로 계산함)이라 하여 그 기간은 왈도파의 진리 운동의 시작(주후1170년)부터 계산한 1260년간이라고 하고 이 파의 혹자는 루터 종교 개혁 후(주후1517년)부터 계산한 1260년이라고 합니다. 이 학설대로 하면 주님의 재림 날짜가 명확히 계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를 마치는 날이 곧 주님의 재림하시는 날이므로 그날과 그 시를 아는 셈이 되니 받기 어렵습니다.

3. 말단 과학자들은 후에 유대인들이 독립한 후 오래지 못하여 다시 이방인의 점령 하에 들어갈 기간을 가리킨 것이라고 말합니다.

4. 어떤 학자들은 이 시기가 단9:25-27의 '70주간' 예언에 있는 말주(末週)의 전반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단9:25-27의 '70주간'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의 뜻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곧 아닥사스다왕이 유다인더러 '예루살렘을 중건하라'고 발령한 때(주전 445년 3월 14일, 느 2:5-8)부터 메시야왕 곧 예수님께서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하신 때(주후 32년 4월 6일)까지가 일곱 이레와 62이레의 반수 곧 483년이 됩니다. 이렇게 483년 되는 때에 기름부음 받은 자(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매 유대 왕통은 완전히 끊기고 적기독국 왕의 백성, 곧 로마 사람들이 유대에 와서 예루살렘을 훼파하매 유대는 황폐한 나라로 오랫동안 있을 것입니다. 그 뒤에 세계의 종말기 제 '70이레'인 7년 시기가 올 터인데 그때에 적기독이 유대인들로 더불어 언약을 맺고 있다가 그 7년의 절반에 이르러 그가 유대인들의 종교를 핍박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또 그 자신이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에 기초하여 계11:2의 마흔 두 달(1260일, 계 11:3->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계12:14)은 세상의 끝에 있을 7년 시기의 전반기(3년반)일 것이라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단8:27에 '한 이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단9:29에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란 말은 적기독이 날개를 펴듯이 세력을 신장함인데 이것은 로마가 예루살렘을 훼파한 전쟁이 3년간(주후 67년 봄부터 70년 가을까지)이 걸린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5. 단9:27의 7년 시기 성격을 보건대 그 전 3년 반은 적기독이 본격적으로 활동하지는 않는 시대인 듯 하고 그 후 3년 반은 그가 최후적인 발악을 하는 시대인 듯 하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계11:2의 '마흔 두 달'이란 것은 다니엘 9장 27절의 7년 시기의 전반부인데 그것의 숫자적 의미보다 영적 의미에 따라 (신약시대 적기독이 최후적 발악 전(前) 시대)를 가리킨 듯 하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레다너스는 십일 십이 십삼의 세 장을 가리켜 동일한 일에 대한 각기 특색있는 기록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 장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로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 있는 교회의 분투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제 11장의 요지는 교회가 세상에게 복음을 전함이고(3절), 제 12장은 교회가 수난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명하여 이것을 용(사탄)이라 하고, 13장도 역시 그 동일한 사건의 원인의 일면을 지적하여 짐승(이 세상 정치)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3장의 사건만은 시간적으로 보아 두 예언자의 활동이 필할 때(전 3년 반 끝난 다음)에 후종한 것이 명백하다(계 11:3,7,13 참조). 다시 말하면 11장의 요지와 12장의 그것이 동일한 사건일 수 있으나 13장의 것은 시간 위치로 보아서 확실히 그 이후의 것입니다.

이명식 목사는 바벨론 포로 시부터 대환난 때까지를 마흔 두 달이라고 했다. 크레다너스의 견해가 지당하다. 3일 반(계 11:11), 마흔 두 달(계 11:2), 1260일(계 11:3) 세 때 반(계 12:14, 단 7:25) 이 수들은 다 같은 것들을 여러가지로 표시한 것뿐이요, 단9:24에 70이레와 25절 62이레와 7절 한 이레 2이레의 절반, 단12:11의 1920일은 3년 반에 한 달이 더한 것이요, 단 12:12에 1223일은 3년 반에 두 달 반을 더한 것이니 이 숫자적으로 표시한 그 중심의 뜻은 날짜대로 계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12:25-27에 있는 숫자가 주전 445년 3월 14일 아닥사스다 왕의 유대 중건의 허락일로부터 주후 323년 4월 6일 예수님의 나귀 타고 입성하신 날까지 합계 483년의 그 계수가 꼭 들어맞았다고 학자들이 말할지라도 이 해석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날과 그시를 계산하는 것이 잘못'

이유는 마 24:35-36까지에 주의 말씀 이행이 천지는 변하여도 불변적으로 다 이루리라,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한 이 시일은 모두가 재림의 시일로 선입적 관념을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주님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하나 하나에 대하여 그 시, 그 시의 징조는 짐작할 수 있으되 그 시일은 아버지만 아신다는 말입니다. 또 행1:6-8에 제자들이 묻기를 '이스라엘 나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라고 물을 때 주님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와 기간은 아버지 권세에 두었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성령의 권능을 얻어 땅 끝까지 증인되리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때라고 함은 한가지 한가지 사건의 때요 재림까지 기간을 말씀함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벌써 예수님의 초림하심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의 그 묻는 중심은 재림이나 천년왕국이나 무궁세계의 때를 물은 것인지 확실히 모르는 일이나 그 시 그들의 사상이나 또 주님께 받은 복음대로 생각하면 천년왕국과 무궁세계는 죽은 성도의 부활 입고 있을 것은 요11:24을 보아 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부활이 하나도 없는 그 장면에서 천년왕국이나 무궁세계의 회복을 물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다만 지상구원의 천국 곧 재세에 이스라엘 나라 건설이 이 때이라고 물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물론 순(純)복음으로 교회천국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세상 정치와 겸한 신정국가 비슷한 그런 나라를 동경한 것도 섞여 있었던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정확무오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와 기간은 아버지의 권한이니 복음이나 전하라고 하신 것을 보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복음의 구속완성이니 지금 회복되고 있는 중입니다.

'때는 구속 완성의 기간'

그러므로 이 때와 기한은 구속완성의 기한과 때니 위치적으로 종말적 시간 끝 재림의 때만을 말함이 아니고 때도 회복하나 하나의 때를 가리킴이 분명하고 또 기한이라고 하는 말은 더욱이 종말 그 안에 총건설의 시간이 그 기간을 포함하고 하고야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곧, 구속의 종말 시간을 아버지만 아시고 사람도 천사도 아들도 알 수 없다 함이 아니고 복음 성취의 한가지 한가지에 대한 그 시일과 복음의 완성 시일을 아는 것은 아버지만 주권하시고 허락지 아니하신 것을 똑똑히 말함입니다. 이는 딤후4:2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하였고 눅17:8에 '속히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갈6:9에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신 이 성구들은 전도에도 기도에도 선행에도 그 성과를 보는 때는 반드시 있는 것이나 시일만은 성도는 모르고 아버지의 권한에만 맡기워진 것이니 이루어지기까지 계속하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그날과 그 시(마 24:31) 때와 기한(행 1:7)이라는 성구를 주님의 재림의 때로만 해석하여 재림의 시일은 계수하여 안다고 하는 그 학설을 이단으로 정죄함이 거의 공통되어 있으나 복음 섭리에 사건사건의 시일에 대하여는 인간이 알 수 있다는 그 설을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시간을 알면 맡기는 시간은 숫자적으로도 자연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계11:2, 3에 기록된 날 수를 예루살렘 멸망 3년이니 왈드파 진리운동 시작이니 루터의 개혁운동 시작이니 하는 숫자 풀어 시일을 정하는 이런 해석들은 비성경적이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모든 숫자를 알 수 있는 중심은 하나님의 완전수 7'

우리가 하나 기억할 것은 상술한 바와 같은 날수, 년수, 일수, 또 때에 대한 수로 표현한 그 계시의 중심은, 하나님은 7을 완전수로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완전수인 그 7수를 근거로 둔 숫자들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한 사건에 대한 완전기간을 7로 정하였으면 그 반되는 것은 3년 반 혹은 3일 반 혹은 세 때 반이라고 표시하였고 반이 넘으면 단12:11-12과 같이 7년의 반이 되는 3년 반이 조금 넘은 한 달 혹은 두 달 반 더 있는 것으로 표시하였고 완전수인 7에 조금 모자라는 때는 62이레니 그렇게 말하였고 하나님의 정한 수의 전부의 기간은 70이레(단9:24)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한 7수인 완전 기간은 그 사건 사건에 대하여 각이(各異)하니 하나님의 수, 곧 당신만 아는 수이니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다만 7수를 중심 단위로 하여 표시한 일에 대하여 그 정확한 숫자는 도무지 사람이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어떤 일에 대한 정한 기간의 숫자가 얼마인지 모르나 거저 총수를 7로 셈하여 혹은 반 넘어 혹은 전부 혹은 전부가 좀 못됨으로 짐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큰 자비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어느 시에 믿을 것과 어느 시에 시험에 들 것과 어느 시에 승리할 것과 어느 시에 죽을 것들의 시일을 모르게 감춘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큰 선물입니다. 이 시일을 모름으로 회개와 선을 쌓는 일에 있어 크게 도움이 됩니다. 알게 하신 것도 사랑인 동시에 모르게 하는 것도 같은 사랑입니다. 알려 주신 것을 앎으로 유익된 것같이 모르게 해 주신 것은 또 모른 것만큼 유익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한 사건 한 사건에 대한 징조는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것을 허락하셨으나 그 정확한 시일은 아버지의 주권에만 가지시고 감추신 것이 성경적이며 또 실지 우리의 신앙 경험도 그러하다. 과거사는 인간이 억지로 숫자에 맞추어 놓는 일이 많으나 미래적으로는 종전에 이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 실패하였습니다. 실지에 있어 그것이 요행 맞았다 할지라도 성경적은 아닙니다. 또 안 것이 모른 것만큼 유익이 없다. 간단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 징조적인 늙음으로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이나 중병으로 혹은 환난으로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을 짐작은 할지라도 그 시일은 모르나니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있는 그 일자를 해석함에 있어 장단의 짐작은 한다 할지라도 정확한 시일을 말하는 해석은 용납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570300)


'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외식적인 신앙, 혹은 명목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가리킴이니 양의 피로만 제사하고 참 하나님의 어린양인 그리스도의 대속을 힘입지 못한 구약적 교우, 또 구약 율법에서만 머물고 율법 속에 있는 복음을 믿지 못한 교우들, 오늘 종교 의식만 믿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망(信望)하지 아니하는 자들, 하나님을 상식적(常識的) 존재로 말하면서 실제로는 대우하지 아니하며 모든 생활에 산 자와 관계를 가진 거와 같은 관계를 가지지 아니하는 신자 또는 생존하신 동행의 인격자로 믿으나 제일 경외의 하나님으로 제일 신망애하는 하나님으로 관계를 맺지 아니하는 자, 이들이 성전 밖마당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하나님이 간섭도 양육도 하지 아니하실 뿐 도외(道外)의 것으로 유기하여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원리를 말함이니 전체적으로 이와 같은 신자도 있나니, 이는 미중생자의 부분입니다.
원리적인 힘이나 지혜나 생애나 할 것 없이 그 전부는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부분 이미 또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것으로 취급당하지 못하는 구원 외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쓰시는 것도 아니니 그 자신에게 있어 유해무득의 것입니다. 불같은 시험 오면 다 타고 또 키 바람에 날려갈 것들이요, 또 모래 위에 지은 집들이요, 주여 주여 하나 쫓겨날 부분들입니다. 마 5:22에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은 의의 양을 말함이 아니고 질을 말함이니 곧 본절과 같은 의미의 뜻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헌부대와 헌옷'이라고 비유하심도 본절의 성질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요소와 방법은 진실로만 삼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의 순종 같은 순종이 하나님의 노를 초래하는 것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삼상 13:23) 이러므로 성전 밖마당이 되는 부분은 범죄해도 하나님의 징계도 간섭도 없나니 이러한 자와 부분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고 징계 없는 버린 자의 입장인 줄 알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히 12:8) 그러므로 우리는 단체나 개인에 있어 양도 보려니와 질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많은 선한 일에 하나님 긍정(肯定)한 의는 추호도 끼이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선행은 외식이어서 역대 순교자의 박해의 죄들이 여기서 발생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이것은 역사적으로는 유대인이 그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 뒤에 이방인들이 그 땅을 주관하게 될 것을 가르침인데 곧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눅 11:24) 그들이 복음을 배척하므로 죄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계시도 이것으로서 마침이 아니고 계시된 그때로부터 종말적인 예언으로서는 말세에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교회, 곧 하나님의 뜻에 합한 교회는 양의 비례로 '밖마당'에 비하여 지극히 적은 부분의 것이 참되고 그 외 많은 교회는 교회같이 보이나 실상은 적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진리를 순종치 아니하는 자이므로 하나님이 버린 세상 세계에게 짓밟혀 속화될 것을 가르침입니다.

노아의 배는 물위에 떠 구원이 되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홍수에 침몰되어 죽음같이 오는 참 교회는 세상 세력을 발아래 밟고 극세(克世) 정세(征世)의 승리적의 권위로 구원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린 가시적 교회는 하나님의 능은 없고 세상적 능(能)만 가져 세상적 성공은 가지지만 진리와 의는 다 세상 세력에게 빼앗김으로 멸망을 저축하여 가는 것을 말함입니다. 그러므로 말세가 되어 갈수록 참 교회가 적고 거짓 교회가 많으니 범죄할 때에 하나님의 징계와 간섭이 있는 교회와 교인은 적고 타세와 각양 범죄 행위에도 무징계의 교인과 세적인 성공의 그 생애를 부러워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하는 교회인 줄로 아는 큰 유혹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미혹에 많이 침몰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교회가 아니라 유기(遺棄)하신 것임으로 세상 세력에게 짓밟히는 것임을 예언하여 세적(世的) 성공의 유혹을 배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마흔 두 달은 3년 반이요, 7년의 반수이니 이는 구약과 신약의 총 구원 시기를 7년으로 셈하고 반인 마흔 두 달은 신약 시기를 상징함입니다. '이방인이 짓밟으리라' 함은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요일 5:4-5) 세상 권세에 이용물이 되어 세상의 사다리와 같고 참 성도를 박해하여 오는 적그리스도를 위한 다리와 같이 이용될 것을 보겠느냐 하신 그대로 말세가 될수록 가시적 교회는 늘어가고 참 그리스도의 피에 팔리워진 것으로 사는 참 교회가 적을 것을 말함과 같습니다.  ('마흔 두 달'에 대한 상세한 해설은 11장 머리말의 제 7절을 참고할 것.)

(570300)


'성전 밖 마당'
성전 바깥마당은 허무한 교회, 허무한 신자, 타락한 신자, 천국에 가도 행위 구원은 하나도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해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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