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노아 때도 사람의 수가 지금이나 거의 같지 않나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근 이천 년 동안 사람들이 자유로 얼마든지 생육하고 번성해서 마구 퍼져서 나간 때니까 상당한 숫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숫자 가운데에 하나님의 후사가 된 사람들은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내가 올 때도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고,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했는데 이것은 당신의 명령을 다 순종하는 자를 보겠느냐는 말입니다. 순종을 억 만 분 지 일 하는 사람, 백분지 일 한 사람, 십 분 지 일 한 사람, 이렇게 순종한 사람은 많이 있지만 순종함 없는 것이 없는, 다 순종한 사람을 보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래서 '이기기를 다투는데 이긴 자는 하나뿐 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주장에서 경주를 하는데 이긴 자는 하나뿐입니다. 일등 이등 삼 등 사 등 오등 상을 받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정말로 이긴 사람 하나뿐입니다. 왜냐하면 이등은 한 사람을 못 이겼다는 말입니다. 삼 등은 두 사람을 못 이겼다 말이요 사 등은 세 사람을 못 이겼다 말이요 일등은 다 이겼다 말입니다.
* 눅17:26 :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 고전9:25 :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88040740)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신앙주의는 모든 피조물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것은 신앙주의로 믿는 사람을 보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숫자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88040260)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중풍병에 들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믿든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네가 어떻게 믿었든지 믿은 그 표가 곧 믿은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그 즉시로 백부장이 믿을 때에 그 중풍병자가 즉시 나았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니까 '죽은 지가 나흘이라 벌써 썩어서 내음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놔 봤자 뭐 소용이 있습니까?' 할 때 '내 말이 네가 믿어라 하지 않느냐?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을 네가 볼 수 있으리라.' 할 때에 마르다가 믿으니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막9:23에서도 '어떻게 주님이 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습니까?' 할 때에 '네가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8장 8절 이하에는 보면 이렇게 하나님은 신실한 약속을 하셨지마는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면서 탄식을 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이하에는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누구든지 믿으면 그대로 다 구원되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계약은 누구든지 믿으면 믿은 그대로 됩니다. 암만 자기가 알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 믿음에 하나가 빠지면 헛일입니다. 이 기록된 대로 자기가 알고 요대로 하면 된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할 때에 온전한 믿음이 되어서 모든 계약대로 하나님은 이루어 주실 수가 있고 우리는 계약대로 이루어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교는 참 능치 못함이 없는 지극히 크신 능력이 내재해 있고 또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 이렇게 계약을 해 놓은 것인데 악령의 유혹으로 인해서 말로는 아는 척하고 지식하고 또 그리 된다고 인정은 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나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아주 희귀합니다.
* 마8:13 :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 요11:40 :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 막9:23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롬1:16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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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지식의 병을 고치고 지혜의 병을 고쳐서 나는 날마다 연습하고 길들인 것이 이제는 신구약 성경 말씀은 나에게 하나의 이 상식이요 이 하나님의 산지식을 직접 연결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 모든 공작이요 준비에 필요한 모든 방편들이요 지혜들이니까 이제 여기에서 현실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알라고 하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지식을 주시는가 무슨 지혜를 주시는가? 이러기 때문에, 너희가 총독과 감사와 공회에 잡힐 때에 너희들이 잡혀 끌려가는 것은 전도하기 어려운 그 자리에 전도하라고 보내는 것인 것을 네가 알아라(마10:18)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이오.
그러면 거기에 가서 뭐라고 말하랍니까? 말은 네가 할 것이 아니라 말 할 이가 따로 있으니 말하시는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에게 말하게 하는 고대로 말하라 했습니다(마10:20) 그대로 말하라. 평소에 그분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하는 것을 평소에 연습해서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은 더우기 과도기에 어떻게 그분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그분이 지식하라는 대로 지식하고 그분이 동하라는 대로 동하고 정하라는 대로 어떻게 정할 수 있겠습니까? 평소에 능숙한 것도 과도기를 만나면 떨리고 실수하기 쉬운데 평소에 안 되는 것이 그때에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그 말씀하신 그 말씀이 과연 오늘 우리들에게 해당된 말씀인 것입니다(눅18:8).
(85050720) 9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대해서도 예언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그들이 다 외식하다가 멸망받은 거와같이 이 신약 교회도 외식으로 멸망받는 것을 가리켜서 내가 올 때에 참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86062902) 5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면, 양심의 신앙이 그 중에 제일 희망이 있습니다. 양심의 신앙이 제일 희망이 있지만 양심의 신앙이 희망 있다고 해 가지고 양심 신앙 그거 가지고 되느냐? 내가 양심 신앙생활에서 영감 신앙에 나아가지 못하면 그거나 물욕 생활이나 꼭 같은 것이지 뭐 하나도 나을 게 없습니다. 다만 자격은 있는데 이 자격 가지고 지금 이 자격을 활용해 가지고 향상을 해야 돼. 승격을 해야 돼. 합격이 되야 돼. 그게 뭐냐 하면 그것이 곧 신앙 영감 생활입니다.
신앙 영감 생활에 나아가면 이제 거게는 자기가 완전히 부인됐고 하나님이 자기를 주장했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도 주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시고 나는 하나님에게 복종되는 자가 됐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이 예수님의 피를 바로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내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 나는 내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 주의 종이라, 나는 주님의 성전이라. 주님의 지체라. 주님의 몸이라 주님의 상대자라, 주님의 나라라. 백성이라. 주님의 제사장 이라 주님의 선지자라, 주님의 왕이라. 주님의 영광 위해 사는 주님의 영광이라. 주님의 형상이라. 자꾸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자기는 완전 죽어버렸어. 자기는 아무것도 없어. 자기는 죽어 버렸습니다.
자기는 죽어 버렸는데 뭐이 죽었습니까? 옛사람이 죽었고, 새사람은 뭐입니까? 하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은 자기이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 완전히 됐으니까 하나님은 완전히 자기 하나님이 돼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공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에는 신앙 양심 생활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은 뭐 몇 십 년 믿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 소용없어.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했고, 신앙 양심 생활이 되지 안할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같이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하는 말이 자꾸 틀리요. 이렇게 말했는데 또 달라. 그렇기 때문에. 자기 지도자가 말할 때에 지도자가 말하는 것을 반대했는데 반대했는데 이번에 잘 됐거든. 지도자가 말하는 것을 그걸 가만히 오래 있다 보니까 고대로 딱 들어 맞았다 말이오. 이러면 그때는 안 맞지만 나중에 가 보면 그대로 맞아졌다 하는 그것이 이제 지도자의 권위입니다.
(85061340) 9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 하신 대로
지금은 전부 다 인화가 됐지 신화는 없게 됐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과 화친으로 예수님이 대속해서 결합된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한 이 결합을
양보하지 안하고 이 결합을 보수할라고 하는 데에는
앞으로 공산주의의 박해보다도, 이방인의 박해보다도 기독자 안에 박해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과거에도 보면 거룩과 진실을 가진 도인들과 외식하는 자들이 있어서
반드시 외식하는 기독자에게 박해를 당했지 뭐 세상에게 박해당한 일 은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루살렘 밖에서는 의인들이 죽임을 당한 일이 없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84070320) 3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이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그것은 소망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도 없는 사람이요, 그러면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부자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부자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실력 있는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구비한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 가운데에 제일 영육이 행복되고 금생 내세가 전부가 행복되어서 존귀한 사람이 누굽니까? 제일 존귀하고, 행복스럽고, 모든 것이 풍부하고, 풍성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자기에게는 뭐 여게가 좀 근지럽다 하는 그런 것도 없이 전부가 다 온전하고 깨끗해서 행복스러울 사람이 누굽니까? 이 사람이 누굽니까? 이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이 사람이 이 과부의 호소와 같은 이 호소를 가진 자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에 대한 비유를 주님이 하신 이 비유를 듣고 ‘하나님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불의한 법관과 과부와의 그 사이 요량하면 천천만 배도 더 된다. 천천만 배도 더 존귀하다. 이러니까 내가 이 과부와 같이 계속 내 소원을 호소한다면, 과부의 성공한 천천만 배도 더 성공하고 더 소원을 달성할 수 있다.
또 말씀하시기를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갚아 주시리라 이래 말씀했으니 주님이 속히 갚아 주실 것이다.’ 하고 이 사실을 믿고 요렇게 호소하는 요 사람이 기독자로서 제일 구비하고 행복스러운 사람이 되겠는데, 왜? 그렇게 호소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시니까 모든 것이 구비하고 완전한 자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도 어누리도 안 하고 거게서 과장도 안 했고 거짓말도 없고 요렇게 정확하게 요렇게 말씀하시지마는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을 내가 보겠느냐?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면서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이 오실 때에 말이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울수록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세상에서 이렇게 하나님과 택한 자들의 이 사이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 기도는, 이것은 한 마디도 빠짐이 없이 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시고 들어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이렇게 듣기를 원하시고 또 들어서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이 하나님이신데 이 불의한 재판관과 이 과부와 그 사이를 보라. 그 사이에도 열심히 쉬지 않는 호소가 이렇게 능력 있어 해결했거든 하물며 못 견디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온갖 이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기로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성도들이 호소할 때에 얼마나 그것이 속히 이루어지고 빨리 해결이 되겠느냐? 그러나 내가 올 때에 세상에서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을 내가 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탄식했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을 요새 늘 자꾸 이 말씀만 자꾸 읽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하신 이말씀을, 불의한 법관과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애낌이 없이 주시고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전체를 움직이시는 이 하나님 아버지와 불의한 법관과 한번 비교를 해 봅시다. 불의한 법관과 아버지와 얼마나 다릅니까? 또 그 과부와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입은 우리 성도들과 비교할 때에 얼마나 다릅니까? 그러면 처음에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그 관계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와의 그 관계가 어떻게 다릅니까, 얼마나 다릅니까? 뭐 하늘과 땅 같은 그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차이가 있는데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사이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부르짖는 그 호소가 이렇게 능력이 있어서 목적 달성을 했거든 하물며 성도와 하나님 아버지 그 사이에 쉬지 않는 그 호소하는 기도라면 그 기도의 힘이 얼마나 있으며 그 기도가 얼마나 달성되고 속히 달성이 되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워지면 점점 믿는 사람은 많지마는 정말로 믿는 사람은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보겠느냐” 아주 희귀한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많지마는 정말로 믿는 사람은 희귀하게 된다.
이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노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 그러나 껍데기는 하나님 믿는 것 같고 하나님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거 같지마는 알맹이는 순종하지를 안해. 순종하는 사람은 노아의 여덟 식구밖에는 없었습니다.
다 하나님 믿는다고 해도 그저 유전으로, 습관이 있어서, 하나의 버릇으로, 하나의 형식으로, 하나의 습성으로 이렇게 하고 있지 정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약속을 ‘이는 틀림 없다. 이대로 된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이 말씀을 요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은 내가 보겠느냐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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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이 오실 때에 기독교가 땅 위에 짓밟히고 만다는 것을 말씀하신 줄 압니다.
주님, 주님 오실 때에 믿는 자는 해와같이 빛나고 별과같이 빛날 것을 말씀하셨고,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점령한다고 말씀하였사오니, 주님 말씀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고 요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실히 믿는 우리 남권찰들이 되게 하사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죄와 사망과 모든 실패와 모든 멸시와 천대를 다 이기고, 믿음으로써, 모든 행복되고 존귀되고 평안되고 생명되는 것을 믿음 하나로 얻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851201040)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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