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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 성경:65유다서01:11
 

유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여기 화 있는 사람 몇 사람을 말했습니다. 가인이 왜 멸망받았는가? 시기하다가 멸망받았습니다. 가인이 시기하다가 멸망받았습니다. 저 잘 되는 거는 좋아하고 남 잘 되는 거는 싫어하고, 시기라는 것은 좋은 줄 옳은 줄 알면서 부러우면 애만 쓰면 될 터인데 부러워하면서 그를 훼방하고 삣고 깎는 그런 것이 다 시기 죄입니다. 가인은 시기하다가 망했고, 발람은 돈을 탐하다가 망했고, 직장 따라서 돌아다니는 그거 다 발람의 가는 길이요 롯의 가는 길입니다.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고라는 자기 중심으로 사람을 자기 편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에 방해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고라라는 사람을 하나 대표로 세웠습니다. 고라는 그짓 하다가 땅이 입을 벌려서 고라와 가족과 속한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산 채로 산 매장을 당해 죽었습니다.

(8607185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은 행하였으며'
가인의 길을 행했다 그 가인은 자기 길을 걸어간 가인의 길을 대표적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사람입니까? 그 내나 본능적으로 믿은 사람이라 그 말입니다. 본능적으로 믿는 사람 그러면 가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섬기지만서도 제 마음대로 섬겼습니다. 그 사람이 제 마음대로 섬겼는데 보니까 하나님 앞에 제사 지낼 때에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사 농작물을 가지고 섬겼지요. 아벨은 목축을 하니까 짐승 잡아서 섬겼고 이러니까 다 자기 산업에서 산출된걸 가지고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가인은 농자를 짓기 때문에 농작물로 섬겼고 아벨을 양치기 때문에 양 가지고 섬겼으니까 다 자기 기업을 가지고 섬겼으니까 같은 사람이 아니겠소? 아벨은 하나님이 그 선조 들에게 말한 양의 껍질을 잡아 가지고서 가죽옷을 입혀 주시면서 여인의 후손 배의 후손이 적이 될 것을 말한. . .

그러면 짐승으로 여인의 후손으로 대속될 것을 말씀하신 그 계시의 지식을 받아 가지고 양을 잡아서 섬겼습니다. 계시의 지식을 받아 가지고. 그러나, 가인은 게시의 지식을 다 같이 받았는데 계시의 지식을 버리고 자기 농작물에 그만 농작물화 되어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다 말이요. 환경에 피동되어 하나님을 섬겼고 아벨은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를 안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가인에게서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의 그 환경에 피동되서 하나님을 섬기느냐? 환경에 피동되지 안하고 하나님의 그 계시에 피동되서 하나님의 명령에 피동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느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을 행하였으며'
그 사람이면 그 일하고 그 사람이면 그 일하고 그 사람이면 그 일하고 그 사람이면 그 말하고 그 사람이면... 항상 그깁니다. 이거 뭐 모처럼 하는 게 아니라 내나 그 사람이 그 쭉 다해요 그러니까 볼 줄 아는 사람은 어디 봐도 나타난다 그겁니다. 지금 우리가 자기가 무슨 공직을 이래할 때에 공직생활을 하는데도 가인도 될 수 있고 아벨도 될 수 있습니다.

공직 생활에서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서 공직 생활하는 사람있고 공직에게 피동되어서 그 신앙생활하는 사람 있으니까 하나는 가인 되고 하나는 아벨 됩니다.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이 발람이 발락이 사람들을 보내가지고 그렇게 할 때에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저거를 축복해 달라' 고 그런 요청으로 청했는데 그것이 틀린 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발람이 벌써 그 일 나기 전에 벌써 알았습니다. 또 발락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찬성하지시 안 하시고, 그걸 멸하신다는 그것도 알았습니다. 알았는데 자기가 그 신앙양심으로 알았고 영감으로 알기는 알았지마는 눈에 보이는 돈과 권세 그것이 자기를 미혹시켜 그래 끌려서. . .
이 발람이 그 때에 안 것은 이성으로 몰랐을지 몰라도 양심으로 알았습니다. 또 영감으로 의례히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아는 것이 말이요 옳다 그르다 아는 것이 본능적으로 아는 게 있겠고, 그거는 따라가야 됩니까 안 따라가야 됩니까? 본능적으로 아는 것은 안 따라가고 거부해야 됩니다. 저가 죽을 만큼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은 화가 나 가지고 그만 뭐 내가 죽어도 한 번 해본다 이래도 그게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은 해서 안됩니다. 본능보다 그 위에는 이성으로 아는 게 있다 그 말입니다. 본능대로 알면은 멸망받고 이성대로 알면은 땅의 것을 위주로 하게 되고 이성위에 진리대로 하게 되면 땅에서 지혜 있는 걸음을 걸을 수가 있고 진리대로 걸으면 그러나 완전 아닙니다. 또 영감으로 알게 할 때에 영감으로 아는 대로했으면 생명과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일 알기 쉬운 것이 바로 알든지 삐뚤게 알았든지 제일 자기가 거기 대해서 판정되어서 알기 쉬운 것이 무엇으로 아는 것이 제일 쉽습니까?  본능으로 아는 게 제일 쉽습니다. 그놈은 원수라 말이요 본능으로 아는 그대로 주장하면 그 통에 사람이 다 망합니다. 망하는 것은 본능으로 아는 그놈 때문에 주장하기 때문에 망해. 그놈대로 하면 안되고 그보다 좀 신사적이요 좀 슬기롭게 아는 것은 뭘로 가지고 압니까? 이성비판. 자기에게 있는 이성비판 그것을 이치를 따져 가지고 이와 같이 하는데 그 이치를 따지되 그 이성이라 하는 것은 자기를 위주로 중심해 가지고 이치를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또 좁다 그겁니다.

그러면 이성도 지식의 지배를 받지요. 그런데 그거보다 양심으로 아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그거는 이성이 아는 거보다 더 탁월해서 훨씬 범위가 넓고 그러는데 아는데는 왜 양심으로 아는 것은 어렵습니까? 자기를 떠나야 되기 때문에 양심으로 알기 어려워 자기를 떠나야 되기 때문에 자기에게 무슨 자기를 사정두고 자기 두고 자기를 본위 두면 양심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마음입니까? 양심 아닌 마음이 본능적 사람 양심이 아닌 사람은 그것이 내나 그 원죄요 악심입니다. 악심은 자기 중심이고 양심은 판사가 모든 죄수를 갖다 놓고서 판단할 때에 하후 하박하면 그 옳은 판사가 아닙니다. 그러면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그 세계 다 놔두고 하나님의 신적요소를 다 내비두고 이적요소만 있는 데에는 최고의 재판관이 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양심으로 아는 것은 알기 어려운 것이 왜 알기 어려우냐 그것은 자기를 떠나야 되기 때문에. 자기를 떠나야 모든 것을 공평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떠나기가 쉽습니다. 때문에 양심이 다 못된다 그 말입니다.  

자기를 사정두지 않고 자기나 다른 사람이나 상관없이 뭐 다 공평되게 이라면 양심이 되겠는데 자기에게 사정을 둔다면 그 마음은 양심입니까? 뭐입니까? 악심입니다.

그래서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봅니다. 정결한 마음은 무슨 마음을 말하지요?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성을 잃으면 완전히 짐승노릇 합니다. 또 이성만 가지고 양심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은 사기꾼 되요. 사기 협작꾼 됩니다. 이제 이성에서 장성해서 양심으로 하면은 그러면 그 사람은 도덕가 됩니다.  신앙 양심은 하면은 그 사람은 성도가 됩니다. 영감으로 하면 그 사람이 의인이요 완전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 그러면 발람은 이 사람이 그리 가면 안된다는 걸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무엇이 알았습니까? 이성이 알고 양심에는 아직까지 나가지 못했습니다. 왜 못나갔습니까? 자기를 돌보지 안하고 자기를 부인치 못했기 때문에 양심의 것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양심의 것을 듣는다고 해 가지고서 됩니까? 옳은 길 걸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양심보다 강한 자가 있기 때문에 안된다 말이요 양심에서 인도함을 받고 영감의 인도함을 받아 가지는 것이 기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영감의 인도를 받으면 진리와 영감은 전지자요, 전능자요, 완전자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아무도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아 생활이 저 안에 지금 들어 있는데 껍데기만 가지고 지금 신앙 생활한다고 하니까 너무 감감합니다. 믿는 사람은 영감으로 살아야 되는 건데 전부 본능으로 사요 본능으로 사는 사람은 일반인들이 볼때에 "답답하다 꽉 막혀서, 그 사람은 참 상대 못하겠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보다 좀 낫다고 해도 보니까 이성적인 사람이지 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성적인 사람이고 양심적인 사람은 아니라 그 말은 무슨 말이지요? 자기를 초월 못했다 자기에게 사정두는 것을 떠나지 못했다. 자기에게 사정두고서...

자기나 다른 사람이나 공평된 판사가 돼 가지고서 이걸 자타에 상관없이 판정하는 그것이 내게 속한 양심이지만 그 양심이 나나, 다른 사람이나 그것을 공평되게 판단하는 것이 양심이요 인간끼리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인간위에 창조주 조물주와 연결시켜 가지고서 바로 판단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 사람 마음을 뭐라고 말하지요? 신앙 양심이라 신앙양심은? 진리지식에 따라서 피동되는 판단을 가지는 사람을 가리켜서 신앙 양심의 사람이라 불교 양심가가 있습니다. 또 살인 강도들에게 양심이 있습니까? 공산주의 양심가가 있습니다. 또 살인 강도들에게 양심이 있습니까? 살인 강도도 저거 법칙을 지키는 그것이 양심이라 말이요. 그러니까 이제 본능에서 이성으로 올라가 이 성에서 양심으로 올라가 양심에서 진리로 올라가 진리에서 영감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매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기를 내 말에 거하면 네가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그거는 자체 변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는 대로 실행하게 됩니다. 그 말입니다. 그라면 좀 쉬었다 합시다 조금 쉬어가지고 지금 인자 열 한 시가 조금 넘었네 조금 쉬어 가지고 좀 더하고.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갔으며'
발람이 자기가 양심에까지 가지 안하고 이성으로 이성 비판에서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았는데 그 이성 비판에서 자기가 양심 비판으로 나아갔으면 그 시험에 들지 안했을 터인데 그만 이성 비판이 자기의 본능에게 져버렸습니다.

'오늘밤에 여기에서 그대로 머물러 봐라 하나님의 무슨 뜻을 생각해 보자' 하는 그것이 하나님께 대해서는 시험하는 죄가 된 것입니다. 시험하는 죄. 우리가 참 양심으로 아는 것은 더 세밀하게 좀 고급이지만 이성 비판으로 아는 것은 뚜렷한 일입니다. 영감으로 아는 것이 양심으로 앎에 나갔으면 더 똑똑한 것이요. 양심으로 아는 것이 이성 비판이 알았으면 그거는 뚜렷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의 그 본능에게 그만 이성이 이기야 할 터인데 이성이 본능에게 저 버리고 본능적인 사람이 돼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해서 보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고자 보자" 하고서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가라고 하지 않느냐.'하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런 일을 발람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발람은 점점 아래로 타락하는 그런 길을 걸어 가지고 그날 밤에 그 사람들을 자게 한 것이요 자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물으니까 하나님께서 '가지 말아라.' 고 이렇게 말씀을 하실 때에 자기는 '가지 않겠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호도 어기지 안하고 그렇게 한다.' 고 자기는 장담을 하고 그렇게 하기는 했지마는 발람이 자기 안에 있는 본능 그걸 원수인 줄 모르고 본능을 죽이지 못하고 그랬기 때문에 그 다음에 두 번째 왔을 때에는 또 그렇게 '오늘밤에 유숙하라.' 하는 그것을 할 때에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시험했고 두 번째 그렇게 할 때에는 본능이 이성을 이겨 가지고 그래 한 것인데 발람은 거기에 두 번째 유숙해서 머물 때에 하나님께서 '가라 네가 가 가지고 하되 이리 이리 하고 이스라엘 저주는 하지 말아라 .'하면서 가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발람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자기에게 복종을 시킨 것입니까? 그 두 중에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자기에게 복종시켰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자기에게 복종을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되 네가 이스라엘 저주하지는 말아라. 그렇게 그 발람에게 말을 해서 보낸 것은? 하나님이 발람을 구원 하실려고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나님 당신은 하시지마는서도 발람으로 말하면 그 때에 버림을 받은 것입니까? 네 버림을 받았습니다. 발람은 그 때에 벌림을 받았고 또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자유성을 줬기 때문에 바람이 자유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큰 손해갈 것을 아시지민 그것을 강조하지 아니하시고 그저 그렇게 말하고 보냈습니다.

그 때 그 발람이 가다가 그 나귀에게도 그렇게 징계를 받았고 그 권면을 받았고 또 제가 환상 가운데에서도 봤고 이랬는데 나중에 가 가지고 제사드릴 때에는 아주 강하게 굳세게 그렇게 해서 참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발락을 저주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그런 일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결론은 발람이 그 이스라엘에게 저 혼자 말로써 발락에게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을 수 있는 그런 하나의 복술을 줬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스라엘도 거기에 대한 상당한 그 해를 받았고 발람 자신도 또 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자유성이나 또 권위나 그런 것을 강제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발람이 그러면 그 때에 두 번째 가서 거기에서 그래 가지고서 가 가지고는 '내가 하나님을 어기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내가 어길 수가 있나, 나는 죽어도 안 어긴다.' 이렇게 말을 하고 그 사람이 굳세게 나갔는데 나중에 발람은 결과적으로 자기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치는, 선지자 노릇을 하지 못했고 선지의 직책을 가지고서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살리는 일 하지 못하고 죽이는 일 했습니다.

그러면 발람 속에 발람이 무엇으로 인해서 그렇게 됐습니까? 발람이 자기 속에 이 본능으로 더불어 싸워야 되는 본능을 적으로 삼아야 대내전을 하지를 안해 가지고 결국은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이 큰 소리를 하고 이렇게 하기는 했지마는서도 자기 속에 적이 있는...

자기가 자기로 더불어 싸우는 그 싸움을 자기는 중대한 줄 모르고 그것을 무시하고서 그저 대외적으로만 이렇게 날뛰는 사람입니다. 대외적으로 이렇게 선포하고 한다 이랬지 자기 속에 이성 비판이 있었는데 이성 비판이 있는 그 이성 비판이 그것을 누구에게 고해야 되느냐 하면은 양심 비판에 고해야 되고 양심 비판은 진리에 고해야 되고 진리는 영감에게 고해서 자꾸 상관으로 올라가야 될 터인데 이성 비판한 그것이 거꾸로 내려가 가지고서 본능의 그 비판으로 타락해 내려갔습니다.

본능의 비판으로 타락해 내려가 가지고 머물게 했고 또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니까 그 때는 아주 이성 비판과 의지가 강하게 해가지고서 '나는 못가겠다, 안간다.' 이렇게 했어도 자기가 그 사람들 떠나고 난 다음에는 섭섭하게 은연중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와 가지고 또 말하니까 '오늘 밤에도 머물러 보라.' 하는 그 작용이 전부 무슨 작용인고 하니? 본능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가라.' 이러니까 가라 할 때에 그 때에 이성이 동행하지 안했습니다. 이성이 동행하지 안하고 본능만 동행했습니다. 본능만 동행했기 때문에 나귀가 경계하는 말 할 때에 순전히 행동한 것이 그것이 전부 발람의 본능이 행동했지 이성을 완전히 저버리고 본능적인 발람이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가서 발락을 만나 제단을 쌓을 그 때는 이성이 그 제단을 쌓은 기 아니고 본능이 쌓습니다.  그 비판이 쌓은 게 아니라 내나 본능이 그 제단을 쌓아 가지고서 일곱 제단 다 그래 강하게 주장한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이성 비판에서 한 것이 아니고 본능 제가 그대로 했습니다. 그대로 하다가 제사를 끝나고 나니까 '이제 너는 네 대로 가라' 이렇게 했는데 그 다음에 본능이 다시 발람을 붙들고서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는 그런 일을 하면은 이스라엘이 망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을 그래 했기 때문에 발람이 처음에 들었을 때에 깨닫게 한 것은 이성이 깨닫게 했고 양심 생활은 안했고 이성이 깨닫게 했고 이성 깨닫게 한 것이 본능 깨달음으로 이제 저락해서 내려갔고 본능이 들어서 '가지 말라.' 한다 하니까 가지 말라 큰 장담한 게 내나 본능이 한 것이라 순전히 무슨 이거냐 비판이 없이 자기들은 그대로 본능 그대로 말을 했고 또 가 가지고 거기에서 계명 지킨 것도 시킨대로 한 그것도 본능 그대로 했으니까 본능 그게 자기 원수인 줄을 몰랐기 때문에 결국은 본능이 마지막에는 발람을 거머쥐고 이렇게 저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발람의 본능을 잡고 꼼짝 못하게 이러니까 그 본능이 이렇게 했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다 할 일 하고 나서 본능 오니까 그 발람의 본능이 이스라엘에게 올무를 내주고 그래 가지고 이스라엘도 죽고 자기도 망쳐지고 말았습니다.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갔으며'
이 말씀은? 자기가 삯을 위하는 권세나, 지위나, 삯을 위하는 그것이 뭐입니까? 그게 본능입니다. 그게 본능입니다.  이러니까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가는 것은 본능대로 가는 길이라 그렇게 우리가 결론을 지으면 안됩니다.

그러기에, 발람의 교훈에서는 본능이 이성에게 상고해 가지고 이성의 판단을 받고 또 이성이 양심의 판단을 받고 자꾸 높은 데에다가 고해 가지고서 점점 그게 영감까지 이래 올라갔으면 되는 건데 그렇지 안하고 이 본능 이것이 늘 주장을 해 가지고 본능이 하나님 계명 지키고 본능이 하나님에게 뭐 문답하고 도무지 이성을 쓰지 안하고 본능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 망하고 다른 사람 망하고 자기 직책을 인해서 영광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직책을 인해서 큰 화를 마련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발람은 삯을 위해서 어그러진 길로 갔다 하는 이 교훈은 발람은 본능으로 가다가 망했다 그위에 말하기를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그 아는 것으로 멸망하느니라' 그래 놓고 그 사람이 화 있다 했는데 그 다음에 처음에 말한 게 누구를 말했습니까? 가인을 말했는데 가인도 이 사람이 무엇으로 살았습니까? 가인도 본능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가인도 본능으로 사니까 처음에는 본능이 주장하니까 처음에는 예수 믿는 생활하는 척하고 이랬지마는 결국은 본능 그 놈이니까 본능 그 놈 소원대로 주장하고 마니까 마지막에는 멸망을 받고 맙니다. 가인도 본능 또 바람도 본능 그랬습니다.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고라의 패역 그것은 그 고라가 옳은 것을 안 사람이요 아주 모세 밑에 그 부하 중에는 아주 명철하고 뛰어난 사람입니다. 고라라는 사람이, 이래서 무엇을 판단하는 그것도 잘 알고 이성 비판도 잘하고 이래 모든 것이 능숙한 사람인데 그러나 그 사람이 자기를 통한 선이라야 알아주지 자기 것이 아니면 안 알아주고 무슨 중심입니까? 자기 중심  그게 뭐입니까? 그게 악심입니다.

내나 악심 악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도모하는 것이 번연히 모세 자리에 앉혀 놓으면 인간적으로는 모세가 할 그런 일을 대리 할만한 사람입니다.  넉넉히 대리할 만한 사람이지마는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안한 그것이 문제지 인적 요소로는 모세를 대리할 만한 그만한 요소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이 일해야 되지 하나님이 일하지 안하고 인간끼리는 일 할 수 없다" 는 그걸 모르고 인간이 하면 된다는 그걸 가졌기 때문에 그것도 여전히 인본이요 그래가지고 거기에서 반대 운동을 한 그것이 내나 본능 운동입니다. 고라는 옳은 것을 알았지만 그 사람은 고급이라서 옳은 것이라도 제가 한 것이라야 좋지 하지 안한 것은 안됐다 이기요. 그러기 때문에 이 고라는 하나님의 일종의 그 시기심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이성도 능하고 모든 것이 진리 지식도 능하고 다 능한 사람이었지만 그 이성 비판을 가지지 안한 사람이입니다. 또 자기 본능이 적이라는 것을 몰랐어. 그러기 때문에 위에 말한 대로 전부 이 이성 없는 본능으로 멸망받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인도 이성 비판을 하려고 해보지 안하고 그만 본능 하는 대로 하다가 망했고 그 고라도 이성 비판 이보다 본능이 강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본능으로 망했고 고라도 껍데기로 이성 비판 그런 것..

처음에 선입 진리 지식 다 있었지만 그 사람도 본능이 강해서 주장되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단자들은 어떤 게 이단자냐 하면은 이단자 되는 것이 다 본능이 주장을 하면은 고만 이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단자 되는 요소는 어떤 게 이단자 되는 요소인고 하니? 자기 인기 끌라 하는 그것이 이단자 되는 제일 요소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본능 중에는 최고의 사령 장관이라 그 말입니다. 본능 중에는 최고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그것입니다. 자기 인기를 끌라 하는 그것, 그러기 때문에 설교를 하면서도 인기 설교하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기 설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뒤에 가서 이단자가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이단자로 내던져 버리면 이단자 됩니다.

이단자라는 것은 처음에는 자기가 이단과 진리를 알지마는 자기 속에 자기를 위주로 하는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이라는 그 놈이 강해있기 때문에 어느 한계를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로마인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저를 버려 어두운데 내어 던져 버려서 그 자기 욕심대로 방탕한 사람이 되어지게] 만들어 버리니까 어두워지니까 정식 이단자가 될 때에는 자기가 틀린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이단자가 아니고 그 사람은 무엇이 그렇게 하고 있는고 하니 본능이 그리하고 있고 내가 그 본능이 시기심이라는 기 그리하고 있고 인기 중심이라는 기 그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있지마는 나중에는 하나님이 버려 버리면 옳은 것을 모릅니다. 옳은 것을 모르고 틀린 것을 옳다고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교인들 그 사람이 마지막에는 이단자들인데 그들이 처음에는 옳고 그른 것을 이렇게 알았지만 자꾸 자기네들 중심으로 인기 중심 대우 중심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 주는 그 중심으로 이렇게 나가서 그게 자꾸 쌓여서 켜지다 보니까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는 벌써 그 때에는 벌써 그 때에 장성해서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옳다고 인정을 못했습니다.

옳다고 인정 못한 것은 그들이 몰라서 인정을 못했습니까? 자기들에게 있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것, 인기가 끌리고 있는 것, 인기가 끌리고 있는 것, 인정받고 있는 것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대항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지위, 인기 그걸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대항했는데 그 뒤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확실히 알았는데 왜 그들이 또 군대들을 시켜서 돈을 뇌물로 주면서 시체를 도둑했다 그렇게 말은 하고서 그렇게 했습니까? 그 때는 뭣 때문에 그랬습니까? 그때는 생명이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생명이 아까워서.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는 지금 생명이 아까워서 그렇게 한 것, 또 인기 아까워서 그렇게 한 것 그기 후회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후회되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이기 때문에 한 그것은 후회가 됐겠소? 안됐겠소? 그 때 후회 됐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치 않고는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관 그 놈을 원수인 줄 알고 싸워야 이겨야지 원수인 줄 알고 싸우지 안 하면 헛일이라 이 주관이라 하는 그놈이 굉장한 껍데기를 입고 모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몇 가지 그 새 옷을 입고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자기 본능 가인도 본능으로 말미암아 망했고 발람도 본능으로 망했고 또 고라도 본능으로 망했고 이런데 이 사람이 본능이 원수라는 것을 전연히 인정하지 못하고 본능하고 싸우는 그런 싸움이 없었기 때문에 다 망했습니다. 위에 죽 이래 내려 나오면은 이단자 이게 이단자인데 여기 유다서를 기록해 주신 것은 '단번에 주신 도리를 위해서 힘써 싸워라' 현실에 지면은 다시 안됩니다. 현실뿐입니다. 현실로 다 지나가 버립니다.

이런데 현실을 놓치면 다시는 못하는데 현실을 그것을 참 값있게 이용을 하도록 이렇게 못하는 그것이 어떤 자가 들어와 가지고서 그런 운동하고 있습니까? 가만히 들어온 자가 와서 그러고 있다 가만히 들어온 자는 불택자요? 택한 자요? 택한자가 들어와서 그라는데 그 불택자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서 하는 자들도 있고 불택자에게 이렇게 교회 와 가지고서 나는 이래 예수 믿는다 나는 이래 예수 믿어도 잘 되는 것 봐라. 그 사람들은 세상 분깃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잘 됩니다.  

이런데 그 사람들이 택한 자인 줄 알고 그 사람들의 불택자 생활을 본받아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이 택한 자들은 하늘에 기업이 있고 그 사람들은 불택자들이기 때문에 땅의 것이 기업이기 때문에 그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데 이 다른 것을 모르고 그 사람들을 본받아서 하는 것을 본문에 어디에 말해 놨습니까? 네? 택자들이 불택자들에게 미혹 받은 것 어디 말해 놨지요?

8절에 말해 놨습니다.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이 꿈꾼다는 것은? 생명은 붙어 있지마는 서도 죽은 자와 꼭 같다 그 말이요. 영감과 진리로 살아나기는 살아났지마는 영감과 진리로 중생되지 않은 불신자와 꼭 같다 그 말이요. 꿈꾸니까. [꿈꾸는 사람들도 그와 같이 이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라 하니까 이거는 택자입니까? 불택자입니까? 이 택자라 말이요.  이사람들도 [그와 같이] 하는 그는 누구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불택자와 택자는 다른데 이제 택자들이 이 불택자 생활도 구별하지 못하고 그들은 땅에 분깃을 받았고 우리는 하늘에 분깃을 받았는데 이걸 구별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구별하지 못하고 살다가 멸망 받았는데 구별하지 못하고 살다가 멸망받은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다가 멸망 받았습니까? 본능으로 살다가 멸망 받습니다. 그래 본능이 원수라 이 때문에 설교를 해도 본능이 하고 여러 가지 '자 가인 말했지' 가인은 하나님 섬기는 것 아니요? 또 발람은 선지자 아니요? 또 고라는 사람을 인도하는 이 인도자들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 가지 종류의 생활이 우리 신앙 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본능으로 하느냐? 본능이 이성에게 가 가지고 물어서 이성이 상관이기 때문에 이성에게 고해 가지고서 이성의 지도를 받느냐? 이성 상관은 뭐 입니까? 양심, 양심에게 고해서 지도를 받느냐? 양심 상관은 뭐입니까? 진리, 진리 상관은 뭐입니까? 영감 뭐 거기까지 올라갔으면 그만 그 지도만 받으면 문제가 없는데 자꾸 그라는 통에 그 탈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 첫 시간에 우리가 성경 말씀 본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무엇을 가지라고 했습니까? 거룩, 이 거룩이 없으면 사람은 그만 헛일입니다.

거룩이 없는 사람.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교인이하나 그 사람이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아주 뭐 좀 유력한 사람이고 그 사람에게 소속한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 누가 말하더라? 이춘영 장로님이 말하던가? 누가 말하는데 그 사람이 고려 신학교 가니까 00신한교 교수가 말하기를 요새는 옳으니, 그르니, '그런 것을 너무 구별하면 교회가 잘 안됩니다.' 그래 말하더라고. 그가 여 좀 있다가 갔으니까 그 말 듣고서 "아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어떻게 교인들이 그 회개를 하면서 바른 길 걸어갈 수 가 있습니까?" "그래도 그렇다" 고 요새는 그기 신사다 요새는 옳은 기 옳다, 아닌 기 아니다. 그 소리 하면은 고만 좁은 사람이고, 미개인이고, 못난 사람이고, 이러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옳다 그르다' 이걸 구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쁘다" 기뻐하신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자기 안에 그 거룩이 있어야 되겠고 자기 밖에 대외를 당할 때에 거룩이 있어야 되지 거룩 없으면 죽어 버립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둔해도 말이요 둔해도 이기 보니까 무슨 구별 없이 막 잘합니다. 닥치면 휘덕휘덕 암만 잘해도 이거 구별이 없으면 희망이 없소. 그게 못나고 등신이라도 뭐이 깜짝하니 구별이 있어 가지고 '이기 이러냐 저러냐' 그 본능대로 하지 안하고 이성으로 구별하고 또 이성으로 구별하다가는 자기가 양심으로 구별해 보고 도 양심으로 구별하다가 이 성경 진리로 구별하고 그러고 나니 다음에 어찌 됐던 간에 무엇인가 그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해 주는 위에 상관에 나를 탁월한 그런 어떤 지혜가 나를 구별해 주기를 바라는 그걸 기다리는 것이 영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영감은 거룩을 찾을라 하는 사람에게 영감이 와서 영감 시켜 주지 거룩을 찾고 난 다음에 거룩해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해 달고 난 다음에는 그런 것을 이길라 할 때에 성령이 와서 도와주고 옳은 것을 행할 라고 할 때에 도와주시지 그거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 생명 없는 사람이라. 물 없는 구름이라 그 다음에 보면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그러면 여러분 이걸 알면은 우리 진영에서도 지금 나간 사람들이 몇 사람 있지 않습니까? 나간 사람이 몇 사람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이 성경을 환하게 알기 때문에 환하게 알고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한 마디라도 말하면 그 사람을 살릴 수가 있지 마는 서도 그걸 모르고 이걸 근본적으로 구별이 없어서 확실히 구별을 못하고 말면 헛일이라 그 말이요. 구별을 똑똑히 하고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안팎에 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보는 눈도 있고 다른 사람 보는 눈도 있고 과거 보는 눈도 있고 미래보는 눈도 있고 그것이 있어야 되지 그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번에 이기 유다서를 좀 다할까 했는데 이제 뭐 요만침 했으니까 그 다음에는 다 알아질 것입니다. 네 이라면 거의 다 알아지는데 또 이것만 알면은 요래만 배워도 요것만 똑똑히 여러분들이 통달하면은 성경에 대한 해석이 거의 다 되요. 잣대로 재면 되지 않습니까. 잣대로 가지고 어쩌든지 그 잣대로 자꾸 재면 뭐이 나온다 그기요.


(기도)
주께서 환상보다, 형식 계시보다 더 확실한 문서 계시가 있고 문서 계시 안에 내재하시는 영감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오니 이대로 행하는 자는 결단코 실족하지 아니하고 어두움이 그를 해할 수가 없는 줄을 압니다. 그러나 저들이 깨어 있지 안하고 자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진리 활동이 성령 활동이 없이 순전히 불신자와 같이 살기 때문에 다 도적 맞고 실패하는 줄 압니다. 저희들 안에 큰 적이 들어 있어 가인도 그런 참 패망의 조상이 되었고 발람도 불쌍하고 가련한 자타를 해치는 그런 선지자 되었고 고라도 이 구원 운동을 하는 자 중에 자기 주관을 버리지 안하기 때문에 그는 더군다나 더 비참한 일을 했는데 결국은 남 망하고 자기 망하는 이런 길을 우리들이 걷기 쉽사오니 자기 안에 대내전과 대외전을 하되 대내전부터 먼저하고 대외전을 해서 언제든지 이 싸움에 익숙한 자들 허리에 다 칼을 차고 있는 자들이 어두움에 해할 자들이 올 때에 이것을 이 칼로 다 무찔러 다 치고 이길 수 있는 자들로서 만들어내 주시옵소서 이럴 때에는 한 사람이 그 무수한 것을 다 당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을 압니다.  소수지마는 저희들이 참 이 세상 지식으로 단장하지 못하고 까딱하면 단장하는 그것이 오히려 천국에 가는데 거리낌이 되는 그 부요가 되지마는 서도진리와 영감으로 충성으로 단장한 것은 아무도 해할 자가 없는 줄로 압니다.  진실한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 말씀을 이렇게 성경 공부하면서 영감에서 "아 내 본능은 내 원수다, 이젠 본능을 나는 원수로 삼아 가지고서 여생을 살겠다." 그 자기의 본능이 강할수록 이 본능 그 놈을 잡으면 고기 많습니다. 본능 강한 사람이 그 본능 그걸 잡으면 고기가 많아요 또 세상 지식이 이기 참 본능 뭉텅이인데 세상 지식이 그기 본능 뭉텅이요 세상 지식이 아주 모든 사람들의 본능이 주 모아 가지고서 된 것이 지식인데 그 본능 뭉텅이인데 본능 그 놈을 많은 지식을 잡아 놓으면 아주 고기가 흐뭇하이 참 먹을 기 있고 아주 쓸끼 있고 뭐 수많은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본능 그것을 고만 그것은 잡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주해공과)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법도대로 섬기지 아니하고 제 법도대로 섬긴것 이런 것은 그 하나님의 율법으로 가지고 판단하면 잘압니다. 대개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교파라든지, 개인이라든지, 단체라든지 그것을 환하게 알수 있습니다. 가인의 길은 자기 법칙대로 하나님 섬기는 것 자기 위주에 것으로 (다 저주) 하나님도 사람도 다 자기 것으로 되어지도록 자기 생애를 사는것 이것이 세상이 볼 때는 똑똑한 사람이요 잘난 사람입니다.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삯을 위하여' 하신 것은 삯을 위한 것이지 삯을 위했다는 그 전체 교훈의 뜻은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는 것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 영광이나 소유나 뜻이나 그것보다도 자기에 영광이나 자기에 소유와 자기에 뜻 이것을 하나님과 자기를 바꾸지 않는 이것이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려진 길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자기를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고라의 패역도 내적은 하나님과 복음과 모든 사람을 자기를 위해서 이용을 하는 자기 위주요 자기 중심이나 외부적은 세상 부귀 영화를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좋게 여겨서 끌려가는 방편을 섰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꼭같이 이 고라도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고 자기가 주인이요 하나님 위함이 아니요 자기 위함이요 하나님 유익 아닌 자기 유익입니다. 꼭 같은 길을 걸었는데 외모를 이렇게 가졌습니다. 지도자로서 자기가 그 지위를 떠나서 지도자 되기 위해서 모든 조직과 질서를 파괴시키면서 하나님이 세워 놓은 그 기관을 훼방하고 업수이 여기고 자기에게로 모든 사람이 돌아오도록 하는 그런 방편을 쓰는 것이 고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 일만 생각해서 모세를 바라보고 지도를 받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조직해서 일 하시는 하나님의 일 이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어쩌든지 모세를 헐어야 자기에게 주도권에 인기가 될 것이니까 이것이 고라가 멸망받을 자인데 지옥갈 자인데 구원얻을 자들이 이런 암초에 걸려서 절단납니다. 멸망 받을자 많다 하는 이것을 말씀했습니다.

(78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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