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이 종이라고 하는 것은 값에 팔린 자라. 값에 팔린 자라. 또 자유 없는 자라. 값으로 산 그 이의 주권에 속한 자라.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라 하는 뜻을 여기에서 말합니다. 우리를 종으로 산 대가는 세가지 형벌을 대신하심으로 인해서 죽으신 그것이 종으로 산 댓가입니다. 또 우리에게 세 가지 구원을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죽음으로 이루어 놓은 그 구원으로 우리를 산 그 구원에 팔린 대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형벌의 댓가를 내시고 우리를 그 형벌에서 건져냈기 때문에 그 값에 팔린 우리들이고 또 이 세가지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생명을 다 해서 이 구원을 설정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그 대가가 우리를 종으로 산 댓가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종으로 사신 댓가는 당신이 죽음으로 대신 형을 받아 가지고 우리를 그 형에서 구출해서 사신 그 대가에 우리가 팔렸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모든 것을 다 희생을 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없던 구원을 주신 그 구원에 우리가 팔린 종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가지 형을 받으신 것은
1. 외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그 형이요
2. 인간이 자율과 주관대로 하는 그 형입니다.
선악과 먹는 것은
1. 말씀을 어기는 형이요
2. 자기네들 주장대로 한 것은 불의의 불법의 형입니다.
3. 하나님과 불목된 그 형은?
있는 전부가 다 망해야 되고 또 죽음에 대한 그런 완전한 그 멸망과 죽음이 그 댓가가 되기 때문에 그 대가를 주님께서 내신 그것이 종으로 산 댓가입니다.
또 세가지 구원을 입힌 것은
1. 우리에게 죄없는 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그것도 주님이 참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무죄자로 세웠고
2. 또 의로운 자로 세우셨습니다. 의로운 자는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그것이 의입니다.
3. 또 하나님과 화친을 이루어서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는 이 화친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화친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두 세력을 인하여 죽으셨습니다.
1. 하나님의 법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죄의 세력을 이기시고 거기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고
2.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 그 요구에 만족을 이루시기 위해서 전부를 다 희생하여 죽으심으로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이 우리가 종에 팔린 대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전, 우리의 주인이 이 대가를 가지고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를 종으로 삼아 가지고.... 그 분이 요구하시는 그 순종은 어떤 순종이며 그 분이 우리에게 시키신 일은 무슨 일이겠는가?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1. 그 분이 대형한 성격을 봐도 다시는 우리에게 형의 재료를 우리가 마련치 않는 그것이 우리의 상전된 그 분의 요구인 것입니다.
2. 또 자율대로 살지 않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 상전의 의무입니다.
'자율대로 살지 말아라. 죽기까지 했으니까 자율대로 하지 말아라' '그러면 어떤 피조물의 그것이라도 피조물대로 피동되지 말아라 피조물의 자율대로 피조물로 인해서 움직이지 말아라' 그것을 그 분이 원하는 것입니다.
3.'다시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지 말아라' 하는 것이 그 분의 소원입니다.
또 종으로 삼은 그 분이 이제 원하는 것 소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고 적극적으로 지금 우리를 종으로....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무엇을 시키실 것이며 그 주인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 것인가?
시키시는 것은 이제 말한 셋의 적극성의 것입니다.
1. 죄가 없는 자 되는 것
2. 또 하나님에게만 이제는 피동되는 것
3. 하나님과 동행자 되는 것
이것이 우리를 산 값이며 그 분의 소원이 이것입니다. 소원이기 때문에, 종으로 된 우리들은 우리에게 그 분이 요구하시는 것이 이것이요 시키시는 것이 이것이며 우리가 그 분을 대접하는 것이 또 이것입니다.
1. 그러기에 우리가 죄를 대할 때에 그 죄에게 이끌리지 않는 것이 그를 대접하는 것이요 죄를 용납지 않는 것이 그를 대접하는 것이요 죄를 용납지 않는 것이 대접하는 것입니다.
2. 자율대로 살지 않고, 피조물에 피동되지 않는 것이 그 분에게 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므로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종의 본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3. 이제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동행하는 이것이 종의 직책을 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종이라고 하는 종은 저 팔레스틴 그 지역에서는 종의 종류가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1.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종
2. 말은 못하지만 움직이기는 움직이는 종
3. 말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종 세가지 종이 있는데
그 세가지 다 주인이 그 어떻게 처분해도 이의를 달고, 권리를 들고 달아봤자 소용이 없는 절대 그 주인이 그 종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팔레스타인 종의 법도라고 그렇게 합니다.
1. 움직이지 못하고 말 못하는 종은 농구나, 공구나 그런 도구. 농구나 공구나 그런 것은 뭐 주인이 내버릴라치면 내버리고 부수라면 부수고
2. 움직이고 말 못하는 종은 자기 농장에 매어 놓은 소 그런 것은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 살아 있지마는 제게 하나도 주권이 없고 주인에게 주권이 있는 종입니다. 그래 움직이는 종
3. 사람종. 그 사람이 성경에도 보면 종은 참 완전히 주인의 소유물 각 물질과 꼭같이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은
1. 그의 것이 됐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요
2. 내가 어떤 값에 팔려서 그의 것이 됐는가 아는 그것이 종이 알아야 될 일이요
3. 주인이 나에게 지금 무엇을 요구하시며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가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신실하고 진실한 종이 됩니다.
그 분에게 종이 되고.... 그 종의 대가가 각각 다릅니다. 몇 해로 정한 종도 있고 또 일생을 그 정한 종도 있고 또 생명까지 다 바친 종도 있고 이랬는데 우리는 '이 값에 팔리고 산 너희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종의 사명을 있는 것 다 해서
감당을 하여야 할. . . .
그런 아주 큰 값에 팔린. . . .
절대 자유라는 것이 없는. . . .
우리가 주님의 종인 것입니다.
종에 대해서 우리는 늘 명상을 해야 되겠습니다.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꼭 같은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요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요 같은 사람들이요 이제 우리 사람은 계급이 없고 꼭 같은 동등 가치와 권리가 위치를 가진 그것인데 이제 제가 제 가치를 마련합니다. 제가 제 가치를 마련하는 것이지 근본 가치는 꼭 같은 형제들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
곧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중생은 우리가 모르게 중생되고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 믿기 시작한 것을 가르쳐 부르심을 입었다 그렇게 표현합니다.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밖에 있는 사랑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사랑은 그리스도와 이질을 그 멸망시키는 것이 이 사랑이요 또 대립되는 것이 이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 데에는 밖에 있는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을 우리가 입고 또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이 사랑을 입을 수 있고 하나님 밖에 나가면 마치 노아 때에 그 홍수 때에 방주 안에 있어야 하나님의 혜택을 입지 방주 밖에는 혜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만 혜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아버지의 안,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 안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무엇을 전제로 두고 하느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두고 말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아니면 이거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도 되지 못하고 그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못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은 그 대속 안에서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대속 안에서 사랑받는 이 사랑은 대속 밖에 가면 화가 됩니다. 대속 밖에 것은 죽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대속 안에 것은 살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만 사랑이라면 다 구별하지 않고 그러는데 새술은 새부대에 넣고 헌 술을 새부대에 넣으면 안됩니다.
새술을 헌부대에 넣으면 그 새술은 헌부대를 찢어지게 하는 것이 새술의 성격이고 새부대에 넣으면 잘 보관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부 깨끗,온전,거룩, 참됨 거기에만 하나님의 은혜를 복되고 유익되지 그 밖에 모든 죄악된 데에는 그 소멸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그 소멸해 버립니다.
'부르심을 입은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사랑을 얻는다 이 사랑을 얻는다 그 말은 곧 예수님의 이 대속을 점점 입어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점점 입어 또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이루어 지요. 예수님의 대속을 점점 입고 예수님이 대속으로 인해서 입는 것이 또 뭡니까?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입는 것은 영감과 진리입니다. 영감과 진리입니다. 그러면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충만해진다 그 말이요.
'사랑을 얻고'
사랑 얻는 것은 사죄를 얻는다 그 말이요 칭의를 얻는다 그 말이요 화친을 얻는다 그 말이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얻는 것은 하나님에게 얻어서 하나님으로 부요해진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 말로 하니까 알아듣기 쉽도록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 하노라'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 우리를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로 인해서 지키심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키시는 것이 우리가 좋아서 지키고 나쁘다고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키시는 원인이 우리 때문에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지키심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신다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그리스도의 이 직책대로의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목적하신 그 목적을 위해서 지키신다 그 말이요 그 목적을 위해서 지키십니다. 그러기에 혹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 지키는 줄로 또 자기를 인해서 지키시는 줄로, 그러면 지키심이 우리에게 피동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뭐 어떻다고 해 가지고서 우리로 인해서 지키심이 시발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요 또 우리를 위하여 지키는 것도 아니라 그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의 이 구속을 위해서 우리를 지키시고 또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우리에게 입히기 위해서 지키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지키신 것이지 내가 뭐 곱다고 잘 지켜주고 찌그러지고 잘못 지켜주고 내가 잘한다고 잘 지켜주고 못한다고 안 지켜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심은 꼭 같습니다.
그 지키시는 원인이 어떤 피조물이 되지도 안하고 우리의 행위의 선악과는 그기 원인도 되지 안하고 또 어떤 피조물 위해 지키는 것도 아니고 완전자 당신의 그 완전 그를 위해서 지키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키심이 변동될 수가 없습니다. 또 그 완전 그를 인해 지키기 때문에 그 완전이 변해집니까? 변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변해지지 않기 때문에 택한 자들이 이래 사는 데에 그 원치 안하는 그런 일도 원함이 되고 이렇게 모두 다 하는 그것이 만일 사랑하는 자가 잘못하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는 것이 그것이 사랑이라 그말입니다.
어떤때는 부모가 자식을 회초리로 매로 올때도 있고 칭찬으로 올때도 있고 또 좋은 의복을 입히는 것으로 올때도 있고 옷을 벌거벗겨서 추운데 쫓아내는 것도 그런 것도 있고 나를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이 변동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합당하게 오기 때문에 당신이 성을 내야 사랑이 되는. . . .
사랑이 성낼 때도 있고 기뻐할 때도 있고 이래하는 것이 그 사랑 자체가 변하지 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우리의 변질로 거기에 그 감염되거나 피동되어 그런 것이 아닌. . .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주해공과)
'지키심'
그러니까 우리가 원인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뭐가 있으면 제가 원인자처럼 제 변동에 따라서 하나님이 이리 저리 변동되는 줄로 알고 그렇게 오인합니다.
(강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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