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5:1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장막은 주님의 보호를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입니까'하는 말씀은 '보호해 주시는 주님과 동행할 자 누구입니까'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나를 보호해 주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지, 나를 떠나 계시는지, 이것을 구별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보호해 주시는 보호의 주님이 저 사람에게도 함께 하시는지, 저 사람을 떠나 계시는지, 이것을 구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든지, 또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든지, 또 다른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든지, 보호하시는 주님이 어느 사람의 편이 되실는지, 이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또 자기 혼자 있을지라도 보호해 주시는 주님이 자기편이 되어 있는지 그렇지 아니하신지 이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자기가 처하여 있는 입장, 현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실 수 있는 입장이요, 현실인지, 지금 이 시간이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실 수 있는 시간인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실 수 있는 일인지, 이것을 구별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불의를 행할 때에는 자기가 하나님편에서 떠나는 때요, 하나님도 자기를 떠나시는 때인 것입니다. 자기가 불의를 행하면 자기만 하나님편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자기를 떠나시기 때문에 배나 그 사이가 멀어지고,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는 자의 편이 되시고, 또 선을 행하는 지도 하나님편에 서서 있지마는 하나님의 동정과 긍휼은 선행하는 자를 떠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때에 하나님의 동정과 긍휼이 떠나시는가? 선을 행하되, 지나치게 행할 때요, 또 자기 선행의 만점을 보고 교만할 때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동정과 긍휼은 선을 행하는 자를 떠나 마귀 편에 선 사람에게 가는 수가 있습니다. 선을 행하되 지나치게 행하고 자기가 선을 행한 것의 만점을 보고 교만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편에 서 있는 입장에만 있지, 하나님의 긍휼과 동정은 입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비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에게 자비한 마음, 겸손한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이것을 찾아서 없으면 없다고 하는 이것이 겸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을 행한 자가 하나님편에 서서, 하나님의 긍휼과 동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고 하니, 선을 행하고도 항상 부족하여 겸손해야 하고, 또 악한 입장에 있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겸손과 동정이 없으면, 선을 행하여 하나님편에 섰을 지라도 하나님의 긍휼과 동정은 입지 못합니다. 그래서 약 2:13절에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주의 성산은 주님의 주시는 성결을 말합니다. 성결의 주님이 주시는 성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입니까' 하는 말씀은 '성결케 하시는 주님과 동행할 자가 누구입니까'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나를 성결케 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지 나를 떠나 계시는지 이것을 구별하라는' 말씀이요 또 성결케 하시는 주님이 저 사람에게도 함께 하시는지 저 사람을 떠나 계시는지 이것을 구별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은 성결케 하시는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지 자기를 떠나 계시는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이 장소에서는 이 일에서는, 성결케 하시는 주님이 누구와 같이 해주실는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성결케 주시는 주님과 함께 있는 입장에 처하여 있는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혼자 있을 지라도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지 이 장소에서는 어떠하며 저 사건에서는 어떠한지 이것을 살펴야 합니다.
다윗은 보호의 주님이 성결케 하시는 주님이 다윗 자기 편이 되어서 함께 하시는 것이 소원이 되어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이여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입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과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과 대적이 되어서 기가 막히는 꼴을 많이 보았고 또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 자기 편이 되시고 자기가 하나님의 편이 되니까 문제되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이 버리실 때에는 보든 사람들이 버리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히는 것도 체험하고 경험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가는 곳마다 원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보호의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기가 막히는 꼴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 성결면에서 사울왕은 사사건건 범죄했으나 다윗은 성결하게 되는 축복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가 누구이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보호의 주님이 성결의 주님이 누구편이신지 시간적으로 장소적으로 서건적으로 이것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야 주님의 편이 될 수 있는지 자유로이 갈 수 있을 때에 주님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주해공과)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ㄴ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주의 장막은 특별히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입니까'하신 이 말씀은 '주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보호해 주시는 주님의 편에 선 사람이 누구입니까 보호의 주님이 자기편에 서서 계시는 이런 입장을 가진 자가 누구입니까'하는 말씀입니다.
주의 성산은 주님의 주시는 성결을 말하는데 '주의 성산에 거할 자가 누구입니까'하신 이 말씀은 '주님의 주시는 성결을 받아서 성결하게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라고 부른 것은 주의 장막과 성산에 거하는 것이 벌써 불변적으로 그 방편이 선포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거할 수가 있다'고 하신 그 계약을 선포해 놓으셨는데, 이것을 전제로 하고서 여호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에게 하는 말인데 자기를 다짐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것을 한 번 더 느끼면서 자기가 이 하나님을 떠날까 하여 단속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약을 변개하실까 해서 하나님을 단속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계약을 떠났을 때에 어떻게 불행스러웠던 것이 자기에게 강하게 자극이 되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가 하나님의 계약을 떠나지 아니하도록 자기를 단속하고 또 하나님의 계약을 심히 사모하면서 '여호와'라고 부른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자기가 한 번 경험한 것을 이렇게 심각하게 써먹은 것입니다. 자기가 계약을 떠나서 징계받은 일은 심각하게 써먹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서 살 자가 누구오며 하나님의 주시는 성결을 받아 그 성결에서 살 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64060810)
'주의 장막'
신령한 교회, 주의 영교의 골방, 하나님 능력의 보호 안, 천년왕국 시대 그리스도 안에서 왕0*
가견 교회 출입자 중 불가견 교회 들어가는 자 극히 적고, 영의 교회 출입하는 자 많으나 상주자 극히 적습니다. 상주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의 성산'
⑴ 그리스도인으로 걸어가는 미사에 성결의 정절 생활 말씀함이니 고독, 파란, 역경이 많고 평신(平信)의 재미는 하나도 없는 길. 어린 양과 14만4천인 새노래만 있음.
⑵ 하나님의 요구와 만족에 도달이 성산이니 범사에 시작하는 자 많으나 하나님 요구에 만족을 주시기까지 참고 이기는 자 극히 드뭅니다, 탑중지동(塔中止同) 최후 5분간 혹 최후 하나, 둘 못하여 실패하니 원통합니다.
(5601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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