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58:13
'성일'
성일이라 하면 모든 날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날로 구별을 해 주신 날이라는 말입니다. 성일이라, 거룩한 날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모든 날 중에 별한 날로 구별한 구별해서 우리에게 주신 날이라 하는 말인데 이 성일은 두 종류의 날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일차 창조에 것들을 새롭게 하고 강하게 하고 보존되게 하고 또 저희들에게 필요한 은혜로 구비켜서 시켜 주시는 날로 정하신 것이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차로 지으신 모든 것이 안식일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지음을 받지 아니한 것만 못할 수 있는 그런 귀중한 날입니다. 지음을 받아서 있기는 됐지만 그것이 안식일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지 안했으면 좋을뻔 했다 오히려 생겨진 것이 불행스럽다 하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되어지는 것인데 다만 안식일을 정해 주셔서 안식일을 잘 지키는 그 자들에게는 있는 것이 복 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안식일은 쭉 아벨의 그 자손의 계통으로 내려오는 인류들에게는 안식이 절단돼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계통이 내려오면서 점점 타락한 계통들에게는 안식일이 없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 이스라엘 외에 이방인들에게는 이 안식일을 보존함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에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유대인들 외에 이방인은 참 안 난 것이 본인에게는 좋습니다. 나 봤자 *살아 봤자* 그것이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가게 됐으니까 생기지 안한 것이 낫습니다. 만물 중에 인간이 제일 불쌍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안식일을 잘 지킨 그런 민족 민족에게는 영원한 구원을 그때도 이루어 가진 그것이 예수님이 대던 성인들이 일어났고 또 그 들은 하나니님을 섬기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그 휘장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러기에 이방인들과 이스라엘이 쭉 다른 종교로 구별되어서 내려 왔습니다. 이것이 성일중에 하나요. 하나님이 구별하신 날 중에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주일입니다.
주일은 일차장초의 것이 원죄와 본죄로 영원 히 멸망하게 된 것을 이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 지은 값을 대신 받으시고 또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대신 감당하시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대신 화평을 이루신 이 구속으로 첫째 창조함을 받은 데 속한 것이 원죄 본죄로 영원 멸망하게 된 여기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된 이것이 이차창조입니다. 이차 창조는 영원히 변동이 없는 이런 구속적 창조입니다.
이래 가지고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받는 것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목적 안에서 목적되어 있던 자가 하나님의 예정적으로 대속을 받기로 예정이 되고 대속받기로 *창조가* 되고 창조 나기 전부터 우리 구원 이 시작된 것입니다.
에베소 1장 디모데전서 2장에 보면은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나기 전부터 우리의 구원이 시작됐습니다. 구속받은 자로 창조되고 또 때가 되면 성령으로 중생 시켜서 이 구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들이 임에 입은 자들이 날마다 그 자체가 아 새로워지고 점점 강하게 자라는 이 은혜가 또 구속받은 자에게 영원히 필요한 모든 축복을 구비하는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다시 하루를 정했다 이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다시 하루를 정한 날이 있으니 그 날이 곧 주일입니다. 이제 이 날이 주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별해 놓으신 성일은 두 종류의 날이 있으니 하나는 안식일이요 하나는 주일입니다. 안식일은 일차 창조의 것들을 자체 온전과 그에게 있어야 된 필요한 모든 복을 구비하기 위해서 주신 날이 안식일이요 하나는 주일입니다. 안식일은 일차 창조의 것들을 자체 온전한 그에게 있어야 된 필요한 모든 복을 구비하기 위해서 주신 날이 안식이요 이차 창조로 영원 영생의 구속적 창조 이 창조를 받은 자들에게 자체가 점점 온전해지고 강해지고 또 자체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모든 축복을 구비해 주시는 것과 두 가지를 주시기 위해서 날을 할 정한 것이 있으니 그 날이 곧 주일입니다.
(79122150)
'만일 안식일에'
그런데, 이사야 58장에 있는 이 말씀에 '만일 안식일에' 우리는 '만일 주일에' 해야 .됩니다'. '주일에', 이 안식이라 말은 이것은 무슨 말을 이래 안식이라고 하는고 하 영원히 인간의 안락처에 들어가는 준비의 날이라는 뜻인데 이 안식이라는 것이 그만 구약에 안식일이라고 자꾸 이름이 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안식일이라 하면 다른 사람이 착각할 것이기 때문에 주일이라 이래 하지 주일이라 말이나 안식일이라 말이나 꼭 같습니다. 안식을 준비하는 것,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 4장엔 그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안식은, 그날은 폐해졌고 '다음 안식할 날이 다시 하루가 오나니 이제 그날을 받거든, 그러면, 지금은 새 안식일이오. 지금은 새 안식일이요, 그날은 묵은 안식일인데 . 새 안식일을 이것을 우리들에게 더 알리기 위해서 . 안식일이라 하면 자꾸 모르고 구약 안식일 그걸 끌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주의 날이라 이래, 성경에 주의 날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발을 금하여'
발을 금한다 말은, 네 발을 금 한다 말은 우리가 가고 싶은 데 가지 말자 그말입니다. 그만 쉽게 말해서 자기 가고 싶은데,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것이 아니면 저 가고 싶은 데는 가지 말라 그말입니다. 제 가고 싶은 데는 가지 말아라.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무슨 오락은 춤 추는 것도 오락이겠고 또 테레비 보는 그런 것도 오락이겠고 이런 저런 무슨 장기나 바둑이나 뭐 이런 것 두는 것도 오락이겠고 어짜든지 자기 오락, 그런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이러니까, 여기에서 주일날 이 테레비 보는 것은 보지 안하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이거 안 봐야 됩니다. 주일날 테레비를 안 봐야 됩니다. 그리고 테레비를 평소에 보는 거는 뭐 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테레비 그것이 하나 세상을 그렇게 묘사해서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볼 필요가 있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만 벌써 거게 매력을 가지고서 자꾸 재미를 붙여 가지고 거게 끌리기 시작하면 그거는 벌써 음행의 포도주에 지금 취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테레비 안 봐야 되겠고. 그날은 무슨 자기 어떤 어떤 오락이든지 하지 안해야 되겠고, 와? 오락할 여가가 없소.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이 주일을 일컬어' 요 말이 중요합니다. '주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그러면 주일이 우리에게는 즐거운 날이 돼야 될 터인데 주일날이 즐거운 날이 되지 아니하고 주일날이 우리에게는 고통의 날이 되기 쉽습니다. 이것도 우리에게는 그저 자꾸 회개를 해야 되지. 일하는 사람은 일할 욕심에서 '또 주일 닥쳤다. 또 주일 닥쳤다.' 장사하는 사람은 '허, 뭐 장사 문 열자 또 주일 닥치자 언제 장사 할 여가가 있나?' 이래서 이날을 즐거운 날로 영접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다른 사람은, '목사는 뭐 그거 모르니까 그렇다.' 목사는 안 그런 줄 압니까? 목사는 주일날을 즐거운 날로 영접 다 하는 줄 압니까? 아니오. 즐거운 날로 영접 안했다고 회개를 합니다. 왜? 또 그랍니다. '아이구, 또 내일이 주일이구나. 내일이 주일이구나.' 이라면 이거 설교는 이거 자꾸 안 나오지 이러니까 등에 콩이 튑니다. '내일은 또 주일이라' 이래 가지고서 즐거운 날로 맞이한다는 이게 참 얼마나 어려운지.
이걸 회개를 하고, 이래 쭉 생각해 보면 '아, 이 주일날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안했으면 어찌 됐겠느냐? 이 주일날 우리가 만반의 모든 구원이 다 여기서 나오는데 주일을 안 줬으면 어찌 되겠느냐? 이 주일을 즐거운 날로 맞이하지 안하는 이게 참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진노를 쌓는 일이다.' 여러 가지로 이래 좀 새김질을 하고 나면 회개가 되고서 '주일날 이 참 좋아. 주일 참 감사하다. 이 주일을 주시고, 다른 데는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데, 주일 지키기 위해서 생명 내놓고 이라는데 우리는 자유로 지키게 되니까 얼마나 기쁘냐?' 이거 목사들도 시험에 든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깜빡하면 주일날을 즐거운 날로 이렇게 맞이 못 하기 쉽습니다. 아이들도 그래요. 아이들도 주일날을 즐거운 날로 이렇게 맞이 못 하는 학생들 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요런 것도 우리가, 자. 주일날은 발을 금해서 우리 가고 싶은데 가지 말자, 요거 하나. 우리 가고 싶은 데 가지 말자. 또 우리 즐거운, 그만 오락에 취미가 붙어 가지고서 그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구원 주님의 대속과 부활이 연합되는 이 참 진진한 이것을 잊어 버리고 그만 그 오락에 꼬박 넘어간다 말이오. 그만 거기 넘어가니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무슨 연합해야 된다는 그 마음은 다 도망가고 없어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오락을 행치 안하도록, 또 '즐거운 날이라' 온 식구들이 다 주일날을 즐거운 날로 이래 여길 수 있는 즐거운 날로 주일날을 맞이할 수 있는 이 가족이 됐으면 참 행복됩니다. '아이구, 아이구, 내일이 주일이지요. 또 아내도 '여보, 내일이 주일이지요?' 이제 또 남편도 '아, 내일이 주일이제?' 이렇게 참 주일을 즐거운 날로 맞이한다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렇게 되는데 에는 그렇게 많은 새김질을 하고 자기가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안하면, 자꾸 이래 연구하면 주일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왔으며, 이날은 무얼 하며 무슨 수입이 있으며, 이날이 아니면 어찌 되며, 이날에 뭐 하느냐? 이것을 자꾸 깨닫게 되면 '아. 이날은 참 감사한 날이요, 주님이 주일을 주시지 안했으면, 주님이 나 위해서 다시 부활해 주지 안했으면 우리가 영생을 어찌 얻습니까 새 생명을 어찌 얻습니까?' 이러니까, 생각하면 좋아서 뛰고 굴릴 만한 날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 주일을 즐거운 날로 맞이하지 못하기 쉽다 그말이오.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아, 이날은 참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다, 이날이 없었으면 우리는 뭐 아무리 여러 천날 만날을 가져도 그날이 다 죽은 날이요, 이 주일이 안 끼어 있으면 이거 그만 날은 다 죽었습니다. 날이 다 죽었소. 우리가 암만 있어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뭐 백 년. 이백 년, 그때 과거에는 뭐 구백 육십 세까지 살았지만 천 년을 살아도 아무 소용 없어. 주일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존귀한 날이라' 이날은 참 존귀한 날이라. 이.것을 존귀한 날로 우리가 깨닫기까지 생각하면 나오는데, 자꾸 샘을 파면 물이 나옵니다. 땅을 파면 물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 마음 속에 생각하고 생각하면 이 '즐거운 날이라 또 존귀한 날이라.' '이를 존귀히 여기고' 이러니까, 주일을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 아니하며' 이제 제 길로 행치 않는다 그 말은 제 생각대로 하지 아니하고 제 재미대로 제 취미대로 제 마음대로 하지 안하고 이 법칙에 매이자 그말이오.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 하면'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마. 이거, 요거 하나 지켜 보면 참 지키기 힘들어요. 지키고 보면 그만 주일을 범했어. 허 참 이 목사가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더 많이 그럴 거라. 이거 하다 보면 그만 사사로운 말 해 버렸어요. 쑥 나와 버렸다 말이요, 그만 이 사사로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구원에 관한 말이 아닌 말은 사사로운 말입니다. 구원에 관한 말이 아닌 말은 사사로운 말이오. 오늘은 이 주일날 주일에 대해서 설교했으니까 이 주일에 대해서 잠자기 전까지는 자꾸 이런 주일에 대한 것을 또 생각하고 얘기하고 생각하고 얘기해야 할 터인데 이거 아닌 다른 말을 옆에서 말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한마디 거들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사사로운 말을 해 버렸다 말이오. 이래서, '이거 주일을 지키는 데에는 어떤 게 좋으냐?' 그래서. 그만 주일을 지키는 데에는 딱 오후 예배 보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하고 와서 저 어디 산에 가서든지 어디 가서든지. 그만 하다 안 되면 누워 자 버리든지, 그만 이거 좀 사사로운 말도 안 하고 이래 할라 하면, 그라면 송장같이 누워 자 버리든지 그리 안하면 딴데가서 자꾸 이 주일에 참 마땅히 생각하고 묵상할 것만 묵상하고 노력할 것만 노력하고 이래 하든지 이거 주일 하루를 이사야 58장 13절 이하에 있는 요 말씀대로 지킬라고 해 보니까 참 힘이 들어요. 이래 지키면, 지킬라고 하니까 힘이 드는 것만치, 힘이 드는 것만치 그 힘든 것이 나중에는 기쁨으로 변화가 돼 버립니다. 힘든 것이 기쁨으로 변해져 버립니다.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요 어기지 안하고 요대로 주일을 지킬라고 애를 써서 요러니까. 애를 쓰니, 뭐 그 애를 써 보면 알아요. 애를 써 보면 사탄이 그놈이 얼마나 날랜지 압니다. 애를 써 보면 요 틈을 타서 딴게 쏙 들어오고 조 생각이 들어오고 요 생각이 들어오고 또 요 사람이 요 말 하고 조 사람이 조 말 하고 자꾸 뭐 쉬지 안하고 칼을 가지고서 자꾸 물리쳐도 뭐 어떻게 들어오는지. 그저 이 한 주일 하는데도 처음에는 들어오는 거, 그 성신의 검에. 하나님의 말씀에게 무쩔러 죽는 것이 여러 수만 명도 될 것이고 수억억도 더 될 거라. 요게 들어오고 조게 들어오고, 이런데 다 이렇게 쳐서 이러나 그것이 언간히 정복이 되면 그런 것이 들어오는 것이 진압이 됐으니까 그렇게 자꾸 쉽게는 안 들어오고 이라다가 갑자기 고런 틈을 타 가지고 싹 들어와 버립니다.
이것을 못 들어오구로 방비하고 이렇게 하다가 보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와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즐거움. 이러니까, 우리가 이 참 진짜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예수 믿는 사람이 우울하고 번민하고 어깨가 축 쳐져 가지고서 그렇게 못 하는 거, 이거, 바로 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충만케 하려 함이 이게 하나님의 약속인데, 이거 아, 되는 건 그렇다 그말이오. 오늘도 우리가 주일을 지금 벌써 거의 반 날은 지내고 온날이 다 지내가는데, 남은 때라도 요 말씀대로 지켜 보자 고 하면 원수가 뭐인지 알아. '아, 나를 미혹시킨 사람은 저 사람이로구나.' '나를 미혹시킨 거는 조거로구나' 그리 안하면 몰라요. 미혹시킨 거는 모르고 미혹시켜서 내가 미혹받았으니 나도 멸망받고 그 사람도 멸망 받고 미혹시킬 때 미혹인 줄 알고 미혹을 안 받을라고 거게 딱 방비해서, 미혹을 안 받을라고 딱 방비해서 고걸 잘 대항해서 싸우지 안하면, 싸운다는 것은 그저 속으로, 이 싸움은 혈육 싸움이 아니고 고 미혹 받지 않을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단단히 이를 갈아 불이고 요렇게 애를 쓰고 이라면 나는 미혹 안 받았으니까 나도 살고 그 마귀에게 이용물이 돼 가지고 날 미혹할라 하다가 미혹 못한 그 사람도 그만 삽니다. 나도 살고 그 사람도 사요. 마귀 그놈은 '에이 그놈 독한 놈이다' 하고서 그만 도망을 쳐 버린다 그거요.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땅의 높은 곳에 올린다 그말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주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땅의 높은 곳에 올린다 그 말은 이 세상에서 높여 준다 그말이오. 이 세상에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안 하고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높여서 축복을 해 주신다 그말이오. 축복 받을 수밖에 없지요. 왜? 아, 주일 하루 지키는데, 주일 하루 지켜서 그날에 엿새 동안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주일날 얻기 때문에, 주일날, 주일날 얻어 가지고서 지키기 때문에 주일날 실패하면 다 실패요. 이레 가운데에 주일날 실패하면 이레는 다 실패입니다. 그러기에, 그전에는 OOO.목사님이 늘 내가 오층에서 들으면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 무슨 날입니까?' 학생들이 '주일날입니다.' 또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이 무슨 시간입니까?' '예배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랬는데 요새는 그 연습 안 시키니까 아마 좀 어두워져 가는 것 같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야곱의 업으로 기른다 그 말은 열 두 지파, 가나안 열 두 지파가 가서 이 지파에게는 이 지역을 줬고 저 지파에게는 저 지역을 줘서 요렇게 열 두 지파에게 지경을 갈라 가지고서 그 지대를 나눠 줬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모형이라 그말이오.
하늘나라에 가서 이 면에서 이면에 활동할 사람 저 면에 활동할 사람 각각 다 분야가 각각 달라 가지고서 그러기 때문에, 요 사람은 요런 형편 조런 처지에서 고게 만들어지고 조 사람은 조런 처지에서 만들어지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분담된 그 구원이 각각 따로 있기 때문에 이제 이 세상에서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듭니다.
나기 전부터도 요 사람은 감정이 예민하게 요 사람은 미련하게 요 사람은 혈기 있게 요 사람은 실수 잘하게 고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고 가운데서 울며 불면서 노력해 가지고서 만들어지는 그게 뭐이냐 하면 하늘나라의 그 사람에게 분담된 그 구원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야곱의 업이라 말은 야곱의 열 두 지파가 각각 이와 같이 있는 거 모양으로 열 두 지파 열 두 사도, 이렇게 반열이 있는데, 네 반열, 네 반열 네 소속 네 구원 그것을 잘 이루게 해 주시겠다, '야곱의 업으로 기른다.' 네게 분담된 네 구원, 네 길을 잘 가게 해 주고 이 세상 모든 것도 다 높여 주시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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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러면, 주일날은 어떤 은혜를 받느냐? 주일날은 일이고, 다른 데 생각하고, 다른 뭐 “사사로운 말 하지 말고 오락을 취하지 말라” 말은 다른 생각이나, 다른 말이나, 다른 뜻이나, 다른 마음이나 그런 것을 가질 날이 아니고, 다른 무슨 생각이나 취미나, 취미가 있으면 그 마음이 거기 갔습니까 안 갔습니까? 또 소원이 딴데 있으면은 자기 마음과 모든 감정이 갔습니까 안 갔습니까? 거기 갔다 말이오. 거기 간 것은 옛날은 다 죽여 버렸다 말이오.
오늘은 지금 그게 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죽이지 안하고 두나 뭐이 죽습니까? 뭣이 죽지요? 주일날 이렇게 이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모든 은혜와 능력을 받는 날인데 그 은혜와 능력을 받지 못하면은 뭣이 죽습니까? 일주일 동안, 엿새 동안 자기 생활하는 데에서 심신의 기능이 현실에 현실에 살아나지 못하고 다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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