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우리 믿은 사람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는 쉬지 말고 항상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믿는 사람들인데 우리는 기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그런 이유가 자기가 참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니까 자기밖에 있는 대외 문제가 많이 닥치고, 자기 몸밖에 있는 모든 이런 문제 저런 문제가 많이 닥치고, 또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그 연약성과 또 진실치 못한 허무성 이런 것을 인해서 기쁘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근심은 또 믿는 사람에게 없는 건 아닙니다.
이 근심을 가리켜서 하늘에 속한 근심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을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이 근심을 안 가질 수 없지만 하늘에 속한 이 근심도 껍데기요 하늘에 속한 이 근심을 가졌을 때에는 가진 근심보다도 더 큰 위로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근심을 가졌지만 깊은 속에서는 근심보다 더 큰 기쁨이 오니까 그 근심을 다 녹이고도 남음이 있는 그 기쁨으로 기쁘게 되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의 정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하늘에 속한 근심을 가지지 못하고 이 근심을 안 가지려고 그저, 하나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려고 하니까 내 몸 밖에서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있으니까 그만 양보 양보해 가지고 그렇게 타협적으로 나가는 그런 썩은 생활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생활입니다. 또 자기 안에, 대내에 마찰되는 그런 것도 그만 그 전투 없이 버리면 마찰 없습니다. 그저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그렇게 살면서 자기 속에 이 욕심 이놈이 주장할 때는 그놈 따라 살고 저 욕심이 원할 때는 그놈 따라 살고, 이 성질이 원할 때는 거기에 따라 살고 저 성질이 원할 때는 거기에 따라 살고 자기 속에 있는 적 그놈하고 싸우지 않고 그놈 하자 하는 대로 거기에 따라서 살면 또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싸우는 대내전과 자기 밖에서 싸우는 대외전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근심과 고통이 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세가 곤고해진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가까운 근심을 버리고 나니까 먼데 있는 근심이 온 사람입니다. 그것이 언제든지 마귀란 놈이 우리를 꾀는 방편입니다. 마귀가 인도하는 것은 항상 기쁘고 평안하고 무사주의인데, 차차 차차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서 자기가 잘못 저질러 놓은 일이 이제 일어나고, 또 그래도 자존심은 제가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멸시 천대받는 그 가련한 신세가 돼지고 하니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내전이나 대외전에서 양보를 말고 믿음 지키려고 하면 여러 가지 마찰이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음을 지켜서 그 전쟁을 하면, 하나씩 자꾸 승리해서 승리의 기쁨이 오고 또 형통의 기쁨이 옵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은 이 전투를 버리지 않을 때에 기쁨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너희들은 항상 기뻐하라' 하는 이 전투를 양보하지 않고 자기가 싸울 싸움을 싸워서 믿음을 지킬 때 그때는 참 당장에는 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지만 그 결과가 아주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벧전1:6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하는 것이 그것이 믿는 사람의 걸음인 것입니다.
* 고후6:10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 빌4:4 :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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