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사전
                                                                                                           목록
말씀  
 

이번에는 우리가 고치는 사람이 됩시다. ‘무엇인가 이번에는 고쳐서 변화돼 가지고 가자’하는 것을 단단히 깨달아 각오를 가지고 소원을 가지고 그렇게 들어야 됩니다. 여기서 무슨 정서적으로 들어서 테레비 본 것처럼 시원하고, 또 연속극을 들은 것처럼  재미있는 것을 이 자리에서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은 타락하는 것이요 악령이  역사해서 그와 같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재미있으면 있는 것만큼 썩었습니다. 또 그것을 얻어 가졌다면 가진 것만큼 길가밭이 됐고, 돌짝밭이 됐고, 덤불밭이 되었지 옥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니까 아예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마십시오.

백 목사도 뭐 젊을 때는 웅변도 토하고, 또 정서적으로도 했지마는 그것이 다 헛되다는 것을 이제는 나이가 많으니까 깨달아졌습니다. 그런 것 다 아무리 뭐 청산유수와 같은 그런 웅변을 시원하게 토한다 해도 아무 소용없고,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  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 불변의 법칙이 있으니까 이 법칙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터인데 심판 자리 가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이 말씀에서 심판해서 하나님이 한 말씀 한 말씀을 하실  때에 이 말씀으로 인하여 자기가  대조해 가지고 고쳐 나가고 작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고칠 것이야 웅변을 토해서 아주 음악처럼 고저청탁을 가지고 그렇게 고칠 것을 말한다고 해 가지고 그게 무슨 더 효력이 있을 것입니까? 고칠 것은 그저 반벙어리 모양으로 더듬어서 말해도 정확하게 바로 말했다면 됩니다. 고치고자 하는 자에게,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 변질된 것을 원래 본질대로 다시 복구하려는 데에야 열변이 무슨 필요 있으며, 웅변이 무슨 필요 있으며, 정서가 무슨 필요 있으며, 고등 술어가 무슨 필요 있으며, 수사학이 무슨 필요 있겠습니까? 고급 문자도 필요 없습니다.

거저 우리는 못난 사람이요, 서민들이요, 다 무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이 말을 해서 고칠 것을 바로 말해 주고 또 고치는 그 방편을 바로 말해 줘서 바로 고칠 수
가 있다고 하면은 그것이 우리에게는 제일 좋은 복음이 되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도 다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성경에 혹 시편이나 욥기 같은 거는 보면은 좀 그런  점이 있다 해도 그것도 아주 높은 뜻을 쉬운 말로 발표해 놨습니다.

이래서 이번에는 무슨 큰 소리로 고함 소리를 질러서 참 귀가 뜨끔뜨끔하게  되는 그런 것도 기다리지 말고, 또 묘하게 말하는 그런  것도 기다리지 말고 그저 잘못된 거, 바로 되는 것 그 두 가지로만 이렇게 나가면 하나님과 나와 잘못되어 있는 것은 다 바로 되게 될 터이니까 그 이상 우리는 성공이 없겠습니다. 그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89050813)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번호 분류 제목(click용)내용
76     신앙노선 총공회라는 이름을 굳이 사용하는 것은 
75     신앙노선 원수가 먼저 갔다고 못가는 못난자 
74     말씀 설교를 듣는 자세는 테레비를 보는 것과 달라야 
73     교리 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 
72     신학 신학자들이 이적을 반대하는 이유는 
71     목회 선지자의 병 
70     교리 타락을 주신 이유 
69     환란 고난을 준비하는 자세 
68     말씀 말씀의 집중성 
67     생활 기회란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