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수 애양원 교회 가 가지고 그때는 그런 말하면 안 돼서 속에 감추어 놓고 그저 이라다가 설마 여게서 문둥이 모인 데니까 여게는 뭐 다른 데 안 나가지 싶어서 그 말 한번 벗다가 야단 한번 내가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 이래 놨더니만 그만 당회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피조물이라 한다고 마구 이래 가지고 막 들썩거리면서 막 일어나 가지고 뭐 뿔뿔이 나가고 어짜고 이라는데 그래도 뭐 진리니까 어짭니까? 그래서, 그래 증거했지요? 증거 했더니만 거게 있는 목사가 또 이 말을 가지고 또 어디 내가 있던 방에 또 거게 수뇌 목사님한테 갔습니다. 가 가지고, 세상에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 한다고 이라니까 또 그래 또 이단이라고 한참 또 들썩거렸습니다.? 덜썩거리 다가서 인제 지금은 또 그거는 없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났으니까 피조물이지 뭐 창조주라 말이오. 어디? 예수님의 인성이 피조물이라는 게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저 뒤에,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저 대답을 잘 못 하는구만.
신인양성일위라. 신성은 하나님을 가리켜 말하고 인성은 사람을 가리켜 말하는데, 온전한 사람이요 온전한 하나님이신데 온전한 사람과 하나님이 어떻게 돼 가지고 한 격위와 한 직책을 맡았을까? 거게 대해서 연구하면 도성 인신이 얼마나 큰 사랑이며 얼마나 큰 회생이며 얼마나 큰 수고였던가? 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은 그것은 소분 지입니다. 그 안에. 그 안에 어떤 사랑으로 어떻게 해 가지고 어떻게 해 그래 됐는가 이것을 궁구하고, 어떤 깨달은 사람들은 다 구불기도 하고 감사해서 못 견뎌서 참 죽올똥 살똥 모르고 이제 이 주님 위해서는 자기가 천만 번 죽어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감히 주님의 이 사랑을 사모하기에도 감당 못 합니다. 어떻게 입으로 부르겠습니까? 어떻게 찬양하겠습니까? 어떻게 이 분을 위해서 수고하고 죽는다는 이런 그 영광스러운 일을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놀래기 때문에 베드로도 십자가에 못 박으니까 꺼꾸로 못 박아 달라고 간청한 그것이 전설대로 말하면 그런 아마 깨달음에서 그랬을 것입니다.
(86050621 집회/ 86080520 집회) 5
/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고 밝혀야 될 이유가 있다 말이요, 또.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은 것은, 우편에 앉은 것은 하나님 다음 자리인데 피조물이 우편에 앉았기 때문에 영광이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지 피조물 아닌 신성이라면 내나 하나님의 본체신데 뭐 거기 앉는 것이 뭐 짜다라 뭐 영광되고 뭐 그럴 게 뭐 있어야지? 이걸 증거할라 하니까 부득이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다.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다. 죄만 없지. 이러나 이렇게 동하고 정하는 것이 신성에 따라서 동하고 정하니까 이래 됐다. 이제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 중보자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의 이 결합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렇게 밀접한 결합을 할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신인 이 일위 결합은 안 돼, 일위는 안 되지마는 일행은 된다. 그 말을 지금 제가 말했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정죄를 안 줘요. 우리는 신인 일행은 됩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서 한 행동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동하고 정할 수 있습니다. 일위는 안 돼요.
(87050850) 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