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신사참배 거부로 백사헌, 백영익 집사가 두뚤겨 맞았으나 아프지 않았던 간증
왜정 말년에도 이 흰옷을 거석하니까 모두 그라니까 조금만 그만 매 몇 번 때리니까 그만 항복 했어. 백사헌 씨하고 영익 목사하고 둘이, 그때 집사인데 저 경찰서에 잡혀 갔다 말이오. 잡혀 가 가지고서 신사 참배 안하니 두드려 팼어.
두드려 패니까 사헌 씨도 신사 참배 못 한다 하고 두드려 맞고 나오고 영익 집사도 두드려 맞고 나오고 둘 다 두드려 맞고 나왔는데 그 두드려 맞고 나와서 내가 둘을 불러 가지고 물었어요. 너거가 두드려 맞으니까 어떻더노? 이라니까 둘이 다 있다가 '그 이상해요. 주님이 대신 맞아 주는지 그렇츰 때리는 데도 아프지를 안 해요.' 나도 맞는데 안 아픈 꼴 봤어. 나도 그거 경험했어. 토벌대가 내가 공산주의 반대한다고 와 가지고서 몽둥이를 이런 거 이런 몽둥이를 가지고서 하 서너 개 뿔라지도록 뚜드리니까 옆에 사람이 있다가 아이구 저 사람 벌써 생명 끊어졌다고 다 보기에 그랬는데 나는 그때 맞는데 아프지를 안 해 그래 가지고 그날 실컨 매를 때려 놓으니까 원츰 그래 뭐 누가 옆에 말하지도 못 해요. 그때 공산주의 토벌대가 이 골에 와 가지고서 지금 뭐 사람을 금방 몇이나 죽이면 그만인 때인데, 작대기 다 부러지고 때리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떡 물러서. 그래 나는 벌떡 일어나 가지고 지서로 쫓아갔어. 가서 '자 너희들이 죄 없는 사람을 이렇게 하도록 토벌대를 이래 소리해 가지고 이런 토벌대가 어디 있노? 이거 전부 다 뺄갱이들이지 이런 토벌대가 어디 있노?' 빨리 가 지금 저 거창으로, 전화가 없어 그때는. 전화가 없어서 그래 하라고서 이라니까, 그런데 아프지를 안 해요. 그래, 그래 가지고 또 인제 그래 맞고도 덜렁덜렁 집에 와 오니까 뭐 죽었다 하는데 뭐 죽기는 뭐 죽어. 올라오며 찬송하면서 와 가지고서 오니까 '아이구 뭐 얼마나 피곤하냐?' 피곤하기는 뭐 피곤해? 그 오후에 또 일도. 하고 뭐 이런 거 다 했지요.
둘이 맞았는데, 그 뒤에 며칠 있으니까 그 백사헌 씨가 찾아 왔어. 아마 또 며칠 후에 잡아 가 가지고 때릴 판이 돼 놓으니까 그때 그만 좀 아마, 이 흰옷을 사는데 다 주기가 좀 안 됐던 모양이라. 와 가지고서 나 저 OOO목사님 한테 좀 가보면 싶으다고 이래. OOO목사님한테 가 보면 해. OOO목사님 그 설교집을 그 사람이 많이 봤어요. 나도 그거 봤어. 아주 은혜롭게 했어. OOO목사님에게 찾아 가서 그 어른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찾아 보겠다 그래요. 내가 있다가서 '가지 말라. 가면 너 죽는다. OOO목사님이 그분이 설교집을 보면 그속에 생명의 능력은 없다. 그러니 가면 벌써 거의 아마 신사 참배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 가지 말아라.' 이라니까 가지 말라고 기어코 말려서 저거 집으로 쫓아 내 보냈더만 엉뚱하게 저리 둘러 가지고 산으로 둘러 가지고 서울로 갔어요. 갔다 오디만 가 보니까 그 신사 참배는 국가 의식으로 이렇게 해 가지고서 다 하고 있는데 이 공연히 박해당했다고. 제가 가 가지고서 '나는 신사 참배 하겠습니다.' 그 뒤에 찾아가서 그래 가지고 흰옷 홀딱 벗어 내버렸어. 흰옷을 홀딱 벗어 주고 왔더라 그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그라니까 그렇게 올라 갔던 사람이 어린 사람들은 신사 참배 하고서 뒤에 회개하면 되는데 장성 했던 사람들은 안 됩니다. 그 뒤에 보니까 타락해 가지고 어디로 갔다고. 언제 내가 테레비를 보니까 그 노랫가락에 나오는데 내가 아이들이 틀어서 소리를 늘으니까 그 사람 목소리 같애. 내 쫓아 나가 보니까 사헌 집사라 하는 그이가 지금 방송국에서 노래가락 하고 있어 보니까. 그런데 지금 아직도 죽지는 안했답니다.
흰옷 사기가 힘이 들어. 그런데 이미 벗어 놓을 건데 이미 벗어 놓고 갈 건데 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내어 주고서 이제 비싼 흰옷. 힌옷도 비싼 거 있고 헐한 거 있어요. 비싼 거 있고 헐한 거 있는데 제일 비싼 옷은 이제 하늘나라 가도 흰옷만 입은 것만 봐도 '아, 저 사람은 백 원 짜리 입고 있구나. 저 사람은 백만 원 짜리 입고 있구나. 저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옷 입고 있구나.' 그거 다 안다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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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게 제일 겁이 나. 겁이 나는 것은, 나는 아픈 걸 견디지 못해요 아픈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이거 고문과 고행을 해 가지고 이라면 그때 어떻게 견디노?' 이게 걱정이 되는데, 걱정이 되는데 그래도 믿는 것은 내가 한번 경험을 한번 해 봤어요. 경험해 본 것은 그때 공산주의자들이 제가 공산주의를 제가 반대했다고 해서 고제면에 거기에는, 거창군 내에 전부 인민 공화국 다 기성회를 다 했습니다.
면마다 안한 면이 없오. 기성회를 다 했는데 고제면만은 기성회를 못했다 그 말이오. 왜? 그때 내가 고제면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민 공화국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 반대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이 위에까지 직통돼 가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만, 그들이 쫓겨나니까 그것이 내치 돼 가지고 있다가서 6. 25때 내려와 가지고 내 이름을 찾았는데 내 이름을 찾는다 하는 것이 백영기를 찾았오. 다른 교회마다 백영기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이렇게 막 이래 쌓아면서.
치켜올리면서 이래 찾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기억력에 희자를 기자로 딱 바꿔 놓으니까 '아. 그 사람 우리 모릅니다' 이래 했다 말이오. 하나님이 그렇게 세밀하시오.
그래 6.25후에 토벌대들이 공비 토벌한다고 이름을 가지고 열 다섯 명이 와 가지고 와 가지고 저를 그때 뭐 얼마나 때리고 그렇게 제 있는 집에 전부 장작불 막 뺑 돌려 놓고 밤마다 밤에 밤새도록 지키고 이랬는데 제집 아내는 그만 거기 있다가 놀라서 낙태를 해 버렸다 말이오. 낙태 그것도 순교자라. 이 다음에 순교자 하나 만날 것이오. 뱃속에서 나온 것은 순교자가 없는데 뱃속에서 있는 것은 순교자가 하나 있어. 주를 위해 순교했습니다. 불을 환하게 쓰고 나니까 그때 토벌대들이 와 가지고, 속은 공산주의의 파숫군이면서 외부에 토벌대 가명을 쓰고 들어와 가지고 그와 같이 했더라 그 말이오. 이래 그때는 우리집에 아무도 오지를 못했어요. OOO집사도 그때 못 왔지? 우리집에 못 왔어. OOO목사님 그분 하나만이 왔어. 그때 아이는 죽었는데 뉘가 아무 초상칠 사람이 있어야지? OOO목사님이 와 가지고 널을 만들어 가지고 초상쳤대요. 다른 사람은 오지 못하고. 왜? 오면 '이놈 백 뭣이 공산주의자로구나' 이래 가지고 그 동리에 전부 돌아다니며 묻기를 '백영희가 공산주의지? 빨갱이지? 다 이라면 '예 빨갱입니다.
안 하면 죽일 터이니까 그 골짝에서 나를 빨갱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오. 다 빨갱이라고 말했다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열심히 믿는 사람들만 안 그랬지. 그런데 내가 빨갱이를 반대했기 때문에 그 면에서는 인민 공화국의 발기회를 하지 못했다 그 말이오 그랬는데도 그거 다 그렇게 알면서도 총 앞에서는. 죽음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빨갱이지? 말해라' 아니라 하면 '이놈 너하고 같은 분자로구나 이래말 할 터이니까 다 그래 대답했어요.
순교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 있기 때문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같이 받는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내가 한번 경험해 봤어. 날 데려다 놓고 뚜드려 패는데 뭐 이런 몽둥이 가지고 몽둥이가 한 서너 개 부러지도록 뚜드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제 저거는 떡이 되었으니까 완전히 죽었다' 이랬는데 이제 그라고 나니까 모두 거기 옆에 사람이 뭐 수십 명이 둘러섰지만 뚜드려 맞는 것만 보지 말을 못해요. 왜? 나를 공산주의로 몰아 가지고 그랬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 날이면 '이놈 너도 공산주의로구나' 할 터이니까 죽기가 두려워서 말 못한다 말이오. 이랬는데, 다 뚜드리고 나니까, 몸eND이가 다 부러지고 나니까 그래 물러서는데 그때에 아픈 게 하나도 없어. 아픈게 하나도 없어. 벌떡 일어나 가지고 지서로 쫓아갔오.
쫓아가 가지고 '이런 놈들 갖다 놓고 너거 하는 이게 뭐이냐? 너거가 전부 공산주의 아니냐? 어떻게 너희 이 토벌대를 공산주의를 몰아 놓고 이 꼴 하느냐?' 그래 가지고 내가 거기서 그만 전화를 지금 토벌대 대장한테 전화를 할라고 이라니까 막 붙들고 이래 거석하면서 용서해 달라 이래 쌓아서 내가 내버려두고 그래서 걸어 올라갔오. 걸어 올라가니까 집에 가니까 이제 죽었다고 소문도 나고 뭐 뭘 해 먹여야 된다 하면서 뭘 맛있는 걸 해놨어. 해 놨는데 어떻게 맛있는지, 뭐 아픈 거 하나도 없어요. 이러니까, 그와 같은 은혜 경험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고문과 고행을 암만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서 대신 맞아주고 아프지 않게 해 주시면 안 아프고 되겠다 그게 좀 경험을 하기는 했어요.
신사참배 때문에 OOO집사하고 OOO목사. 지금 목사인데 그때 집사입니다. 둘이 경찰서 가 가지고 얼마나 죽도록 뚜드려 맞았는데. 실컨 뚜드려 놓고 그만 저거 마음대로 때리고 이래 놓으니까 이거 죽었다 싶어서 끌어 내 뜨리는데 하나도 안 아프더라도. 맞고 난 뒤에 덜렁덜렁 일어나 가지고 왔어. '어떻더노? 맞았는데 어뗬더노? 하니까, 나는 그때 맞지를 안했오. 그렇게 반대를 해도 날 때리들 안해요. 때리지 안했는데 그 사람들은 잡혀 가 서 맞았어. 맞아도 맞아도 신사 참배 안 했어요. 신사 참배 안 한다 하고 이래 버텼는데 OO씨는 그 다음에 OOO목사한테 가 가지고 '거기가서 보자. 그 어른은 했는가 안 했는가 보자' 갈라 하는 것 못 가구로 했더만 꺼덕꺼덕 올라가 가지고 OOO목사한테 가니까 '국가 의식이니까 해야 된다' 고. 벌써 패전자라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역부로 제가 내려와 가지고 나는 신사 참배하겠습니다' 해 가지고 패전했고 OO목사는 '패전 안 했어. 그 뒤에 안 한다고 그래 고문 고행을 당하고도 안 하고 그래 견뎌 나와 가지고 그랬습니다. 그래 그분들도 말했어. '그래, 맞을 때 어떻더노?' 뚜드리기는 그래 뚜드리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습디다 예수님이 매를 대신 맞아주셔 가지고 하나도 아프지, 않습디다.' 모두 고문과 고행당한 사람들 다 말하는데 다 그래요.
주남선 목사님도 고문과 고행당하다가서 이제 죽으니까 겨울에 시멘트 마당에 밖에 끌어내 버렸다 말이오. 끌어내 버리고, 하도 부애가 나니까, 이게 항복 안 한다고 부애가 나니까 끌어내 버렸는데, 끌어내 버렸는데. 내가 뒤에 물었오.
'얼마나 아픕디까' 이라니까 하나도 안 아프다고 이래. 하나도 안 아프더라' 그랬는데, 끌려 나왔는데 나와 가지고 얼마든지 거기 누워자 버렸어.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땀이 흠뻑 났더래요. 겨울에 아주 세멘트 바닥 위에서 누워잤는데.
죽어서 끌어 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땀이 흠뻑 난 것이 아픈 데도 하나도 없고 몸이 가쁜하이 그래 가지고 다시 들어가니까 '가라' 그래 쫓아내서 나왔다고. 그래 가지고 그 뒤에 들어가서 감옥살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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