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세상'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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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k
그들이 가나안을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 받은 것은 믿지 않는 연고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가나안에 가도 죽지 않고 영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해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은 세상, 홍해는 세례의 중생, 광야는 교회 생활, 요단강은 죽음, 가나안은 천국으로 상징해서 예표로 우리들에게 구원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 온 것처럼 우리가 세례도 받았고 중생도 했지만 받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한 그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면 인정한다 할지라도 행하지 않으면, 인정 믿음은 가졌으나 행함의 믿음은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앙 행위로서는 성화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속해서 세상 생활하다가 망하고 맙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살기만 살았지 광야에서 멸망을 받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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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그들이 가나안을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멸망받은 것은 믿지 않는 연고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가나안에 가도 안 죽고 영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것은 이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의 상징으로 그렇게 표현해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은 세상, 홍해는 세례의 중생, 광야는 교회 생활, 요단강은 죽음, 가나안은 천국으로 이렇게 상징해서 예표해서 우리들에게 구원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 온 것처럼 우리가 다 세례도 받았고 중생도 했지만 받지 안하면 하나님이 계시한 그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면 인정한다 할지라도 행하지 안하면, 그러면 인정 믿음은 가졌으나 행함의 믿음은 가지지 안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앙 행위로서는 성화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속해서 세상 생활하다가 망하고 맙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살기만 살았지 광야에서 다 멸망을 받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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