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5:10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5절-11절까지 이 말씀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이것이 목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불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택도 하셨고, 또 예택구원을 예정하셨고, 예정구원을 창조하셨고, 창조구원을 예수님의 대속하셔서 우리를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으로 중생시켜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여기 기록한 이 말씀도 이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목적이 어기 있는가?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기의 영원한 영광이라 말은, 자기는 하나님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영원이라 말은 끝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영원이라고 말합니다. 끝없는 영원 무궁한 그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러면 영광이라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옳고 바르고 참된 그 행위의 혜택을 본 사람들이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무신론자들도 있고 마귀도 있지마는 앞으로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진정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아니할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영광에 들어가게 했다' 그 말은, 영광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이력으로 덕 본 사람들이 감사하고 찬양하고 높이고 위하고 섬기고 할 때에 그것이 영광이라 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반대는 욕입니다. 욕 반대는 영광입니다.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한다 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다 참 감격하고, 칭찬하고, 감사하고, 높이고, 위하고 할 수 있는 이런 평가적이고 비판적인 이런 고귀한, 모든 피조물이 다 좋아하는 그런 행위나 사람이 됐을 때에 영광을 돌립니다.
권세 있다고 영광 돌리는 거 아니고, 부요하다고 영광 돌리는 거 아니고, 자체가 잘났다고 강하다고 영광 돌리는 거 아닙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닌 타들이, 자체가 아닌 모든 다른 것들이 그 자체로 인해서 크게 행복되고 참 좋은 은덕을 입었을 때에 그들이 칭찬하고 감사하고 존귀히 여길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영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이 세상이 구원하는 거와 다릅니다. 세상이 구원하는 것은 반드시 그 상대편에서는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저게 없어지고 멸해져야 내가 될까?' 해서 다 서로 원망하고 대적하고 불평하고 시비하는 것이 세상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모에서 보면 다 좋아하지마는 저 면에 보면 대적들이 있습니다. 대적 없는 세상 구원이 없고 대적 없는 세상 축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갈 하늘나라의 축복은 대적이 없는 축복입니다. 마귀가 지금은 대적하고 무신론자들이 우리를 대적하지마는 가서 보면 '우리가 그때 몰라 그랬다. 참 저럴 수가 어디 있나?' 하는, 감격해서 감사와 찬송과 있는 진정의 마음으로 영광을 돌리는 그런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본 성격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불렀다, 불러 가지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서 자기의 영원한 영광 안에 들어가게 했다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불렀다' 말은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가지시고 제사장 선지자 왕직의 사람들을 만드는 그 책임을 가지고 오신 그리스도의 이 성령 안에서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친히 온전케 하시며'
우리가 온전함을 받아야 됩니다. 온전한 사람이 돼야 됩니다. '온전케 하며' 모든 면이 온전합니다.
'굳게 하시며'
우리는 견고해야 됩니다. 온전한 사람 되어야 되고 견고한 사람 돼야 됩니다. '굳게 하시며' 하나님을 붙든 것도 견고하고, 진리 붙든 것도 견고하고, 영감도 견고하고, 죄에 대해서 죄를 대적하는 것도 견고하고, 의를 행하는 것도 견고합니다. 사죄를 견고히 잡았습니다. 칭의를 견고히 잡았습니다. 화친을 견고히 잡았습니다. 성경 한 절수 한 절수를 견고히 잡았습니다. 천인 만인이 뺏으려 해도 그 사람의 잡은 진리를 뺏지 못합니다.
'강하게 하시며'
강한 사람 돼야 됩니다. 강하다는 것은, 견고한 거는 뺏기지 않는 걸 말하는 것이고, 강한 것은 정복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사자와 같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다 달려들어도 정복을 하고, 온 세상을 정복해서 발아래 밟고, 나라가 사회가 정부가 어떻게 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정복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조금도 패전이나 후퇴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다, 하나님과 진리 외의 것은 다 승리합니다. 하나님과 진리에만 복종하지 이 모든 죄 마귀 사망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나 다 정복합니다. 이것이 강한 것입니다.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터를 견고케 하신다 말은, 터는 신인양성일위요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터라고 말합니다. 터를 견고케 한다 말은 예수님과 그 관계를 튼튼케 만든다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그 관계를 튼튼케 만듭니다. 예수님과 그 관계를 튼튼케 만듭니다. 사죄와 관계를 튼튼케 만들고, 칭의와 관계를 튼튼케 만들고, 화친과 관계를 튼튼케 만들고, 근본 원형인 그리스도 제사장과 관계를 튼튼케 만들어서 제사장이 되고, 또 선지자와 관계를 튼튼히 맺어서 선지자 되고, 왕과 관계를 튼튼히 맺어서 왕이 됩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는데 어떤 건축자든지 집을 지을 때마다 조심해서 건축하라. 그 터는 다시 다른 사람이 닦지 못하나니 그 터는' 뭐라 했습니까? '그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 고전3:10-11
(86072001)
'모든 은혜의 하나님'
우리에게 전부 공짜배기로 주시는 하나님, 모든 걸 공짜배기로 주기는 주는데 이 공째배기로 주는 것은 천해서 공짜배기로 주는 게 아니라 너무 가치가 고귀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대가 받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생명 내놓아 봤자 그 대가에 먼지만한 안 됩니다. 너무 좋아서 공짜배기로 준다 말입니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잠깐 고난이라니? 뭣 때문에 고난받습니까? 고난을 또 누가 줍니까? 고난을 누가 줍니까? 믿음 지키려 하다가 고난받습니다. 믿음 지키다니? 주님 시키시는 대로 하려고 함으로 고난받습니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믿음 지키려 하다가 고난받고, 고난 주기는 누가 줍니까? 세상, 마귀 뭉텅이, 사망 뭉텅이 그 뭉텅이 이름이 뭐입니까? 세상입니다. 그것이 고난을 줍니다.
'잠깐 고난받은 너희를' 그러면 고난이 깁니까 짧습니까? 짧습니다. 짧다 말은,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질 걸 보면 그 고난이 백 년 고난 당해도 못 만들 건데 그것을 몇 시간, 며칠 고난에 탈칵 탈칵 만듭니다. 만들어지는 온전, 만들어지는 견고, 만들어지는 강함, 만들어지는 터가 견고해진 거 이것이 간단한 고난에 버뜩버뜩 만들어진다 그말입니다. 잠깐 고난입니다, 잠깐 고난. 잠깐 고난받아 가지고 또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또 쉬어 잠깐 고난받아 가지고 또 만들어지고 또 쉬어 가지고 잠깐 고난받아 만들어지고, 이러니까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는 '열흘 동안 충성하라' 이랬습니다. 무제한이 아닙니다. '열흘 동안 충성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친히라 말은 하나님이 직접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친히라 말은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이 직접이라는 말입니다.
* 계2:10 :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86072002)
'고난을 받은'
고난을 뭣 때문에 주는가?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이러면 고난이 온전케 하기 위해서 고난 주신다 말이오. 온전케 하기 위해서 고난 주신다.
이 어려움이 오는 것은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어려움 오는 것이니까 고난에 대해서는 우리 할 일이 뭐인가? 내가 무슨 흠점이 있는가? 온전케 하기 위해서 고난 주시니까 온전해지면 그 고난 없어질 것이고 온전 안 해지면 자꾸 고난이 계속 할 것이고 더 온전치 못하면 고난이 더 클 것이고, 이 목적이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니까, 고난이 커지는 것은 온전이 점점 작아지면 커질 것이고, 온전이 자꾸 커지면은 고난이 자꾸 적어질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사랑이 많고 희망이 크면 고난이 클 것이고 사랑과 희망이 하나도 없고 이거는 마구잡이니까 그만 될 대로 돼 버려라 하면 고난이 하나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이 고난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고난이 커지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하려 하심이 큰 것이고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려는 것이 없는 것이고, 또 고난이 점점 커지면 나에게는 고칠 거 온전치 못한 것이 더 많아져 가는 것이고 고난이 있던 고난이 차차 물러가 버리면 그 고난을 인해서 나를 고칠라 하는 그 고침이 없어지니까 이제 고난이 물러가는 것이고 이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참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정평해야 되겠습니다.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고난에 대해서는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하시는 것이니까 이미 시작된 고난이 물러가는 것은 그 안에 목적이 이루어졌으니까 차차 그 필요 없는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고 또 그것이 물러가지 안하고 있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이루어지지 안하니까 자꾸 그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그 고칠 점이 많아가면은 고난이 커질 것이고 이제 시작되어 있는 그 고난에 대해서는 평가를 이래 해야 되겠고, 또 처음으로 시작되는 고난에 대해서는 당신이 내게 기대하고 요구하시고 희망하시는 것이 크기 때문에 큰 고난이 왔으니 그 큰 고난으로서 이것은 나를 고치게 하고 온전케 하고 견고케 하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니까 ‘큰 고난 왔다.
이제 주님께서 나에게 크게 고칠 거, 크게 희망 있는 거, 크게 성공되는 이걸 지금 원하고 계시니까’ 그 고난은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큰 소망을 기대를 가지고 하시는 것이요 내게 대해서는 지금 큰 유익을 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는 것이고, 이미 있는 고난은, 이미 시작된 고난은 어서 고쳐서 없어지는 게 좋고 또 없던 고난은 생기는 것이 좋고, 고난이 생기면은, 고난이 생기면 어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거 여게 대해서는 요구가 무엇이며 여게 대해서는 내가 온전케 할 면이 어떤 것인가? 고거 찾아 가지고 고거 하면은 이게 물러가니까, 이미 있는 고난은 물러가도록 만들어 가지고 물러가는 재미를 봐야 되겠고 또 처음으로 시작되는 고난에는 이제 이 소망으로써 큰 기대에 큰 재미를 봐야 되겠고 그렇게 되지 안하면은 이 마귀에게 삼켜진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그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87012460) 4 / (8206045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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