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6:15-27:21
(널판, 휘장, 제단, 등불)
1. 장막의 널판, 휘장, 제단, 등불을 만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시하신 법칙대로 한 것입니다. 이 설계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세밀하고, 온전하고, 구별되고 구비한 것입니다. 아주 든든하고 편리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순전히 하나님의 설계하시고 명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널판에는 받침을 은으로 하고, 은받침 위에 널판을 세웠습니다. 이 널판은 우리의 신앙행위라고 할 수가 있고, 신앙 인격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는 지성소를 만드는 것인데 이 지성소 속에 법궤를 모시게 했으니, 이 지성소는 은받침 위에 전부 놓았고 고리는 언제나 금이 아니면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성막을 만들 때에 제일 요긴한 부분을 금으로 하고, 또 요동이 제일 요긴한 곳을 금으로 했으니 우리는 변치 아니해야 합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실로 만드는데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마음과 몸이 성화되어지는 모든 것의 기초는 결백입니다. 결백 위에 건설되어야지 결백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귀한 성질을 가지고 행동을 하지마는 그것의 바탕이 성결이 아니면 하나님께 관계한 것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은은 성결이니 성결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2. 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설계대로 해야 합니다. 곧 오늘은 하나님의 예정이요,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요, 성령이 신앙양심을 통하여 가르쳐 주심입니다. 말씀은 진리이니 이는 원리 원칙만 기록한 것이요, 이 원칙을 알아 진리 지식을 써서 신앙양심을 통하여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이것이 지성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할 때에 하나님이 축복했습니다. '시내산에서 보여준 그대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시내산은 우리로 말하면 신앙양심이요, 여기서 성령의 감화를 받은 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요 곧 우리의 갈 길입니다.
자기의 깊은 신앙양심의 시내산에 가지 아니하면 자기에게 대한 구원도리는 없습니다. 자기에게 기쁨이 된다고, 안심이 되다고, 마음이 쓰여진다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이리 저리 생각하여 참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착한 양심(시내산 꼭대기) 이것을 냉정히 쓰는 여기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또 자기의 신앙양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도 그대로 안 하면 헛일이니 시키신 그대로 해야 하고, 자기의 조작이 들면 헛일입니다. 이 길이 자기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자기 예정의 길입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지 않는 것이 헛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에 나의 앞길에 우리가 구할 것은 평안만 구하는 것도 아니요, 환난만 구하는 것도 아니요, 평안도 환난도 아닌 수수하게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설계해 놓은 길이 있으니 이 길을 찾도록 힘쓰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고난의 종교라고 해서 죽음의 길이면 다 좋은 것이라고 하겠으나 그렇지 아니합니다. 고난도 죽음도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이 아닌 고난이나 주음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평안이요 이불 위에 누워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이 길을 택해야 합니다. 자기 갈 길이 아닌데 공연히 그 길을 갔다면 이것은 죄입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고난도 평안도 전부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사고락간에 무엇이든지 내 행복의 길을 찾는 것은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요,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지 어려움을 당하고 고행을 하면 좋은 줄 아는데 이것도 내게 대한 주의 뜻이 아니면 죄입니다.
오직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찾아갈 길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은 성결 위에 놓여야 하니, 성결은 하나님의 뜻이 물론 선하나 내게 와서 선해지는 것은 내가 실행하는 실행이라야 선해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이것이 선이요, 사람 보기에 선이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라야 하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한 실천 행위(은받침) 위에 지성소, 성소가 되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성전 지성소가 되는 것은 내 실행으로 되어지지 그렇지 못하면 될 수가 없습니다. 은받침은 성결이니,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행동이니 이 행동의 실천 위에 모든 것이 얹혀집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행함의 종교입니다.
· 금으로 싸고, 테를 두르고, 고리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가 불변적이라야 함을 말씀합니다.
· 놋으로 하라. 여러 번 연단 받는 것으로 하라, 아무리 연단을 받아도 타질 것이나 감소될 것이 없는 참 연단 받은 생활이라야 합니다.
· 청색이라야 합니다. 청색은 생명을 말합니다. 생명은 진리와 영감에게 피동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영감의 능력이 움직여지니 이 힘에 피동되는 이것이 생명이요, 이것이 곧 산 행동이요, 따라서 모든 것이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 자색이라야 합니다. 자색은 능력을 말합니다. 능력은 진리와 영감으로 움직이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능력권위로 해야 합니다.
· 홍색으로 했습니다. 홍색은 희생을 말합니다. 희생은 충성이요, 사랑이요, 곧 하나님과 진리로 해야 하니 천국은 전부 남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일은 전부 섬기는 것이니 섬김의 권위가 제일 큰 자가 천국에서 제일 큰 자니 자기가 자기를 위할 수가 없고 전부 남을 위하여 자기가 있는 것입니다. (마20:26∼28)
· 제단 뿔은 속죄하는 것인데 무슨 죄이든지 뿔을 잡으면 속죄요. 죄인이 제단 뿔을 잡으면 자기 죄를 사함 받습니다.
· 제단 앞에 등불을 언제나 켜두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는 것은 전부 죄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믿음은 자기의 마음과 몸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의 움직임이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 순종을 일시적으로 할 것이 아니고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만들어진 인물은 세밀하고 구비하고, 아릅답고, 튼튼하고, 편리해야 합니다. 세상은 전부 기형적입니다. 변동 없는 꾸준한 사람에게는 교만과 고집투성이요, 강하고 굳센 사람에게는 세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격은 세밀하고 구비하고, 편리하고, 튼튼하고, 강인하여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것이라야 하니 그리스도교의 인물은 이런 인물입니다. 지배도 잘하고 지배받기도 잘하고, 주기도 잘하고 빼앗기도 잘하는 이런 인물입니다. 교만하면 꺾이기 쉽고, 비굴하면 품위가 없습니다.
따라서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아니해야 하고, 사람을 대할 때는 진실성이 있어야 하고, 모가 나지 아니하고 원만해야 할 것이요, 그러면서도 용기도 있어야 하고, 과단성도 있어야 합니다. 덕성과 원만한 인품을 갖추어야 하고 용기와 과단성이 있어야 사람을 거느릴 수가 있습니다.
천리준마를 구하기 위해서는 죽은 말뼈도 천금을 주고 사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원대한 야망,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용기, 만조백관을 쥐고 흔드는 위엄,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신념이 있어도 덕과 인의 성품이 없을 때에 민심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그것을 거꾸로 흐르도록 몰아치거나 억지를 부리면 그 치자는 물결을 잃게 되고 익사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는 당장에 민심을 잃는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이면 당장 고쳐야 옳고, 마땅히 민심의 물결에 옷을 벗고 함께 헤엄을 쳐야 합니다.
(주해공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