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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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라고 말씀한 권세는 3절에 하나님께 받은 권세이니, 주권적 의지와 주권적 능력인 권세이니 이는 하나님만 가지신 것인데 증인이 이 권세를 가지게 된 이유는 그 자신이 가짐이 아니고 그 증인의 소행이 성경적이기 때문에 그 소행의 배경이 하나님이심과 그 일의 이행을 하나님이 책임져 불변적으로 성립됨을 가리키는 권세입니다. 특히 저희라 함은 복수(複數)이니 이는 문자대로 두 사람이 아니고 누구든지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누구든지 성령대로 주장하고 계획하고 행하는 소행은 이와 같이 권세있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러므로 성경과 합일된 소행은 피조물과의 관계 여하를 볼 것없이 용진할 것이며 성경에 배치되는 일은 피조물의 어떠한 세력의 배경을 가졌을지라도 멸망이니 포기하여야 합니다.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이는 왕상17:1- 에는 문자대로 엘리야가 3년 반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한 일이 있으나 이것을 말함이 아니고 엘리야가 가졌던 영적 권위를 가지고 신약시대에 복음을 사역할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이 증인이 죽음에서 엘리야가 아님을 밝혔습니다. '하늘을 닫아' 함은 상징이니 인간의 영혼에게 만족을 주며 평안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길을 막는다 함이니 창3:24에 범죄한 아담 하와에게 화염검을 두어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함과 같습니다.
'비오지 못하게'
문자적 비가 아니고 식물이 우로(雨露)로 소생케 함과 같이 인간의 심령은 하늘로 오는 은혜로만 소생되고 자라고 강건하여 만족할 수 있는 것이 피조물의 본성인데 그 은혜를 막아 한재로 초목이 고갈함 같이 인간의 심령 불안과 불만 불평으로 허덕거리게 됨을 상징한 것입니다. 구약시대보다 신약시대는 이것이 더욱 심합니다. 그러므로 불택자에게는 하와가 벗은 것을 깨달아 무화과 잎사귀로 호신하기에 분주하던 것처럼 심령에 불안과 불만과 염려를 견디지 못해 그를 채우려 해결과 만족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는 것은 모르므로 땅의 것을 대용하려 합니다. 말세가 되어 '비가 오지 아니'할수록 물욕 정욕 세영(世榮)의 욕에 불붙어 점점 물질주의로 부패하여 가고, 택한 자에게는 이러한 불안에서 회개하여 위의 것을 갈망하게 됨으로 두 증인의 예언을 바라보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날까지 채우고 땅의 것을 찾는 자도 죽는 날까지 갈급하여 채움도 일반입니다. 다만 하나는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채워 영원히 부유하여지고 하나는 없어질 것으로 채워 영원한 가난과 갈급으로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이도 상징적이니 물은 갈증을 면하게 하는 음료인 것과 같이 사람들이 각양 보편 은혜에 갈급할 때에 보편 은혜로 그 불만과 욕망을 채워 만족케 하는 각양 세상적인 행복이라고 칭하는 것들을 가리켜서 물이라고 상징함입니다. 예를 들면 돈 없어 갈급한 자에게는 돈이 그 갈급을 시원케 하는 물과 같고, 건강이나 자녀나 지식이나 기타 지위나 권세나 모든 영광이 불만하여 갈급한 자에게는 그것들이 있으면 만족케 되나니 이것들이 물과 같이 욕심에 갈증을 면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물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 말하는 소위 복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물이 변하여 피 되게 한다' 함은 이 행복이 도리어 그에게 살해하는 성질에 속한 불행이 되게 하는 것을 상징함입니다. 예를 들면 돈 때문에 자기가 망하게 되고 부모와 자녀가 좋은 것이로되 부모와 자녀 때문에 도리어 죽게 되는 환경과 입장을 만드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한국 6.25 동란 때에는 유식 유산 유권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특수기가 아닌 평소에도 행복이 변하여 불행이 되어지는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범죄한 인생들을 통계로 보면 인생의 행복이라고 하는 그것이 있음으로 행복된 사람은 적고 도리어 불행케 된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어떠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복이 도리어 화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면 누가 보아도 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 자체가 도리어 큰 축복의 근거가 되는 것을 얼마든지 봅니다.
불택자에게는 세상이 그들의 분깃이므로 (시17:14) 행복하여 화가 되므로 그대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택자에게 있어서 이렇게 되는 것은 그 시기가 회개할 때요 또 보이는 것을 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붙이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는 저주가 아니고 하나님의 복음운동을 위하여 인생을 미혹시키고 있는 것, 곧 인생들이 사랑하고 있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쳐서 택자에게는 세상에서 해방시켜 천국으로 귀속시키고 불택자에게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밀한 의미에서는 권세 받은 두 증인은 인생들의 화복을 복음을 위하여 자유 자제하는 주권적 권위를 가리킴이니 이는 인간은 주권이 없는 것이므로 주권의 하나님이 그와 하나되어 역사하시는 권위를 말함입니다. 이도 그 증인 자체 권위가 아니고 그 증거하는 복음의 권위이니 모든 피조물은 복음만 위하여 멸망하는 진리를 말합니다.
'아무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이는 복음을 위하여 유익하도록 또 복음을 해하는 모든 권력을 인간이 볼 수 있는 재앙으로 치는 일도 있고 또 복음이 기어코 권위있게 이루어지므로 막는 그 모든 존재들이 결과적으로 재앙받아 망하여지는 것까지도 포함한 말입니다. 위에 기록한 불과 비오지 못함과 물이 피 됨과 기타 각양 권능은 증인이 죽음으로 후에 사람들에게는 없는 줄로 알기 쉽다. 그러나 이 권능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그 개인이 증거생활을 마치고 별세 시에 끝나나 기타 살아 있는 성도에게는 함께 하나니 이 권세는 주 재림 시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은 성도에게까지 함께 하는 권능입니다.
본장 7절에 죽었다 함은 증인 개체의 순교를 말함이고 여러가지 재앙의 권능이 필료(畢了)됨을 말함이 아닙니다. 또 증인이 죽었다 함도 개인의 순교를 표현한 것뿐이고 신약시대의 증거역이 끝났다 함은 아닙니다. 다음 시체의 3일 반도 복음의 박해 신약시대의 극심한 후반기를 가리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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