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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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순교 당한 자 곧 그 영육을 가진 주격 곧 지정의와 희로애락을 아는 그의 참 사람을 가르쳐 영혼이라고 합니다.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이니 인간에게만 특수하게 주신 것입니다. 이는 물질의 요소로 구성된 것도 아니며 신체 그것들의 배합으로 그 작용이 발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성작용과 심리작용과 성경으로 보아 영혼은 그 신체를 가진 주격이요 물질과는 분리되어 있어 물질을 이용하여 그 작용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질적으로 판이하고 위적으로 판이하니 존재와 분리에 대하여 피차에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분리된다고 없어지거나 합한다고 없는 것이 더 존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로 돕는 것은 긴밀합니다..
이가 아니면 저가 못 자라고 저가 아니며 이가 못 자란다. 여기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함은 죽임을 당한 것은 순 육이요 영은 아닌 것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과 물질로 조직된 그 신체를 존속케 하는 그 힘 곧 육의 생명 그것들만 죽었지 희로애락을 아는 참 자아 곧 자기라는 존재에 소유된 모든 것을 가진 주인인 자아는 죽음에 동참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순교자 아닌 자라도 구속받은 성도는 다 이러합니다.. 결코 영육이 나누인다하여 내가 죽거나 없어지거나 혹 희미하여 지거나 빈약하거나 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육을 통하여 하던 일만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은 제단아래 살아 서서 말하고 있고 제단 위에는 물질과 생명만 받쳤던 것입니다. 제단은 구약시대에 피를 세사로 드리는 것이니 피는 곧 육의 생명입니다. 성경이 피는 생명이요 생명은 피로 상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드리는 제사는 생명을 드리는 표증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제단이라고 함은 순교자들이 생명을 받쳤으니 곧 피를 드려 제사한 것이라 함입니다.
이미 없어진 피와 생명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친 것이요 참 중생되어 살아있는 자기의 생명이나 자체에게는 추호도 피해는 없고 자기가 소유하여 있는 소유물 곧 육과 생명만 주께 제물로 자기는 제단 아래에 있으면서 드리는 원리를 상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는 내가 죽는 것도 아니요 희로애략을 아는 내가 변해짐도 아니요, 엘리야가 주님의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고 그가 기쁜 것과 그로 말미암아 오는 영광과 축복의 결과가 임할 뿐입니다. 손해 됨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드리기까지 애로의 두려움이 있었고 그 드리는 용기는 믿음으로 말미암음과 같이 오늘 우리의 순교도 그와 같다. 드리기까지는 고민이니 신앙이 아니면 할 수 없고 드리기만 하면 후에는 누구보다 자체가 기쁘고 그 결과로 오는 영광과 축복이 큽니다.
(5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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