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1: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 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이 말씀은 영적으로 해석하면 '예수님께 붙들리기를 원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주님을 붙들고 가면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고 위험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안심이 되지 않고 위험한가? 자기에게 힘이 있을 때에, 자기의 역량으로 감당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자기가 주님을 붙들 수가 있는데 자기에게 힘이 없을 때에, 자기의 역량으로 감당 할 수가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되면, 주님을 붙들지 못하고 놓게 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무한히 강하신 주님의 손에 붙들려 놓으면, 자기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고 안심이 됩니다. 그래서 '너는 나를 인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에게 이끌려 침궁으로 들어갈 때에 이 여인에게 관련된 시녀들과 궁녀들이 왕의 사랑을 함께 받고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처녀들이 술람미 여인이 침궁으로 이끌려 들어감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붙들려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관련된 모든 성도들이 일어서게 되고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원해야 하고, 이 주님을 소망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드리실 때에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스더 서(書)에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이끌어 드릴 때에 그 나라를 진동시키는 큰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침궁'
자기의 기도의 골방을 말합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처녀요. 아직도 혼인을 하지 않고 약혼만 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침궁에 들어가서 보니까 그 궁 안에 있는 모든 소유나 권세나 영광이 그것이 그의 것이 되었고 그는 왕에게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성도들이 주님과 밀접한 교제를 맺는 은혜의 세계, 기도의 골방.
여기에 들어가서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교제 해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은혜의 세계를 갈급하여 찾아갑니다. 땅 위에 있는 것을 분토와 같이 초개와 같이 다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잡고 주님만 의지하고 믿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성도가 땅위에서 사랑의 세계를 발견치 못하고 세상 것에게 갈급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의 죄값인 것입니다.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주님 외에는 원하고 바라보고 사랑 할 것이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전부를 다 바꿔 놓고 보면 자기에게 영원히 필요한 것이 거기에 다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천지 만물을 지었기 때문에 헛된 것을 찾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는 자는 주님의 침궁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히 여깁니다. 술람미 여인이 왕의 침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모든 시녀들과 궁녀들이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하고 또 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시녀나 궁녀는 왕후가 될 수 있으나 왕후는 시녀나 궁녀가 될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간접적으로 받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외부적, 내부적으로 자기의 전부를 희생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침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그로 말미암아 많은 생명이 구원을 얻게 되고 그 영광이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의 모든 소유는 자기 것이 되고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주님보다 나은 줄 알기 때문에 자기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니 공연히 자기가 자기를 염려하게 되고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해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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