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우리 신앙 경험을 통해서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아주 힘이 없는 사람이나 주님이 주시는 이 건설 구원을 이루는 것은 꼭 같습니다. 왜 같은가 하니 능력이 많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많은 힘을 다해야 지킬 수 있는 그런 현실을 주십니다. 또, 아주 보잘 것 없는 적은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적은 힘 가지고도 다하면 지킬 수 있는 고런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가지고 하나님이 조절하시기 때문에 그의 뭐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가진 능력이 많고 적은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요는 다하는 거기에서만 결정은 되는 것입니다. 적은 힘을 받은 사람도 그 힘 다하면 주님의 말씀도 지킬 수 있고 또,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고 입고 살 수 있고, 또, 많은 힘을 가진 사람도 뭐 적은 힘 가지고 지키니까 나는 많은 그 실력을 가졌으니까 내야 그 힘 적게 써도 될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지만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많은 힘을 주님이 주신 자에게는 또, 많은 힘 그것 다해야 지키는 고런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유에 닷 냥중 가지고 열 냥중 만든 사람이나 두 냥중 가지고 넉 냥중 만든 사람이나 대우도 칭찬도 영접도 꼭 같은 영접과 대우와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마25:14-30).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뭐 무식해도 상관없고 유식해도 상관없고 신체가 건강해도 상관없고 병신이라도 상관없고 또, 모든 지능이 뛰어나도 상관없고 아주 못난 그런 저능자라도 상관없다. 왜? 그렇게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그것을 많게 적게 해 주신 분이 주님이시요. 또, 주실 때도 그렇게 주셨고, 또, 이 두 가지를 지키는 데에도 주님께서 아야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준 거 그거 다 해야 지키도록 고렇게 조절하시고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준 거 고것만 다하면 또, 지킬 수 있도록 고렇게 현실을 가지고 어렵고 쉽게 조절하시기 때문에 다하는 자는 다 이길 수 있고 아무리 능력이 많은 자라도 다하지 않는 자는 이 건설구원은 이루지 못 한다 그것을 여기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모든 면에 부한 자나 가난한 자가 그렇게 구원 이루는 데는 꼭 같은데, 위험한 것은 부한 자는 교만하기 쉽고, 또, 게으르기 쉽기 때문에 이루기가 어려우니까 오히려 가난한 자가 믿음의 부요를 받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 있다. 가난한 자가 믿음의 부요를 받았다. 부자들은 믿음의 부요함을 받은 사람들이 드물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 계3:8 :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막10:23 :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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