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0:9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 목자가 양의 문으로 출입할 때는 본인도 구원 얻고 또 양떼에게 줄 양식을 얻는다 꼴을 얻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이 권찰회로 모였는데 이 권찰들은 다 목자입니다. 목자니까 선한 목자가 되든지 그리 안 하면 절도 강도 이리 삯군 이 사람이 되든지, 선한 목자가 되든지, 선한 목자가 되면은 자기도 구원 얻고 또 양떼에게 먹일 양식도 많이 얻고 또 양도 복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이 목자로서는 문으로 들어왔나 딴 데로 넘어 들어왔나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은 7절 하반절에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양의 문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문으로 들어온다 말은 예수님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온다. 예수님이 양의 우리의 문이면 어떻게 그 예수님을 뭐 배를 뚫고 나옵니까 어떻게 들어옵니까? 이것은 하나의 이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오지 안한 자는 절도요 강도요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오는 자만 선한 목자라 이랬는데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 예수님이 나를 대속해 주신 이 대속에 감격해서 이 대속하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주님의 대속에 감격된 그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의 하시는 일을 돕기 위해서 이 복음 생활 또 이 구원 역사는 해야 되지 그게 아니면 다 절도요 강도라, 거기에 감격한 감격과 주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의 대속의 사랑에 감격해서 주를 위하고 싶은 고 간절한 마음에서 하지 안하게 되면 절도요 강도된다 그랬습니다.
절도요 강도된다 그말은 주의 구속에 감격해서 하지 안하면 결국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자기 위해서 하는 것 된다. 자기 위해서 자기 뭐 별별 것 다 있겠습니다. 자기 기분을 위해서, 자기 또 권위를 위해서, 자기 명예를 위해서, 자기의 또 기분을 위해서, 자기 취미를 위해서 어쨌든지 자기 위해서 하는 것은 그것은 양을 자기 위해서 하면은 그 양은 자기 위하기 때문에 자기 것이 됐지 주님의 것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주님의 대속하신 이 사랑에 심히 감격한 고 감동으로 복음 운동을 하지 안하면 결국은 사욕으로 한다 그말입니다. 결국은 사욕으로 한다. 사욕으로 하면은 그것은 그 양을 자기 양을 삼았고 사욕으로 하니까 제 중심의 양으로 길렀기 때문에 주님에게는 적이요 주의 양을 뺏든 것이요 도적질 한 것이요 그 양은 멸망받습니다. 구원 얻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사가 벌써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로 자기 사욕을 가지고서 목회를 한다든지 권찰직을 한다든지 이렇게 복음 운동을 하면 사욕을 가지고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 복음 운동 하는 그것은 그 결과가 전부 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것이 되기 때문에 주님의 것을 빼앗은 것이지 주님의 것을 구원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 생활이 우리가 얼마나 참 세밀하고 까다로운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한 것이어야 되지, 주를 위해서 주를 어떻게 위해 할 수 있는가? 주님의 대속에 감격해서 주를 사랑함으로 주를 생각하고 일하는 그 일이라야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맺지 딴 무슨 야심이나 야욕이나 가지고 하는 것은 다 헛일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양의 문으로 들어오지 안하고 다른 데로 들어오는 자 넘어 들어오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는 요것을 기억합시다. 내가 주님 대속의 이 사랑과 주님이 큰 힘 들여서 구원해 놓은 이 양떼라는 것과 주님이 소원하는 이 양떼,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연결, 주님이 그 양을 사랑하는 사랑의 연결 이 사랑의 연결에서 자기가, 다른 욕심이 아니라 그 연결에서 감격돼 가지고 하는 고것이 아니면 결국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게 된다 그 말입니다. 그라면 절도요 강도라 말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게 된다 그 말입니다.
(8806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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