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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 성경:66요한계시록01:17
 

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건설구원은 대속과 영감과 진리의 이 세 능력이 자기에게 와서 자기를 붙들고 역사 해서 이 세 능력이 자기 마음도 이 세 능력이 감화시켜 인도시키고 뜻도 생각도 하도록 자기를 돕고 결실을 맺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능력이 역사하실 때 그 역사가 둔하게 나타나면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세가지 능력이 도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겠지만 전지의 능력으로 너무 민첩하게 움직이시기 때문에 건설구원을 이룬 사람마다 전부 자기가 했다고 여길 만큼 그렇게 은은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양심을 쓰고 심령이 밝은 사람은 모든 건설구원을 이루어 놓고 난 다음에 건설구원 이룬 그것을 다 주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서 면류관을 주님 앞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던진다 말은 천해서 던지는 게 아니고 이제 그 면류관은 보니까 승리한 것은 전부 주님이 은혜로 승리하도록 했는데 이 땅에 있을 때에는 그 주님 앞에 만만스러웠으나 차차차차 눈이 뜨여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보니까 그분 근방에 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 가서 손으로 바치지도 못하고 멀리서 던진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감히 갈 수 없다는 그것을 깨닫게 된 그 행동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 품에 기대기도 하고 아주 만만스럽게 상대했으나 밧모 섬에 가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그 눈이 뜨이고 보니까 예수님이 두려워서 볼 때에 그 앞에 거꾸러져 그만 기절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수하시며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만만스럽게 내 몸에 기대고 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변치 않는 하나님인데 네 눈이 그때는 어두워서 그렇고 지금은 밝아서 그런 것이라, 그때에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긴 그 내가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긍휼
히 여기니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면서 위로로써 깨우쳤습니다.

점점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수록 눈이 밝아지고 눈이 밝아질수록 주님은 크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인간과 비교 못 할 무한히 탁월하신 하나님이시며 이제 눈이 어두울수록 주님은 만만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이렇게 말한 것은 사도 바울이 죄가 많아 그런 게 아니고 사도 바울이 눈이 밝아지니까 자기에게 단점을 다 보게 됐고 주님에게 장점을 다 보게 됐고 인간들에게 대해서 바로 보게 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서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를 안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안했고 그저 자기가 죄인 중에 제일 죄가 많은 사람이라 하는 것을 간증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눈이 밝아져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 잘난 재미로 날뛰고 있는 그것은 눈이 어두운 탓입니다. 자기 잘난 재미로 날뛰고 무슨 주장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또 자기를 위주로 하려는 것은 그 사람의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입니다. 눈이 밝아지면 그렇지 않습니다. 눈이 밝아지면 누구보다도 자기에게 있는 그 모든 잘못된 점이 찾아지기 때문에 그 일 고치는 데 급급하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말할 시간이 없고 또 모든 사람을 볼 때에 눈이 밝으면 다른 사람은 껍데기만 보지만, 자기가 자신에게 대해서는 알맹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죄인 중에 자기가 제일 죄인이다 하는 것으로 마지막에 결론 난 것은 그것은 눈이 밝은 연고입니다.

* 계4:10 :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 딤전1:15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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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에'
그리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 하는 것을 또 자기가 처음으로 보게 됐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의 사도요 또 예수님과 제일 친근해서 예수님에게 항상 의지하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 이랬습니다.

* 요21:20 :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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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에 그 발 아래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만 너무 예수님을 영감받아서 발견하고 보니까, 이제까지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과 제일 가까운 줄 알고 예수님의 품 안에 기대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이렇게 제일 만만하게 지냈는데 밧모섬에 가 가지고 주일날 다시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보니까 기가 막혀서 놀랐습니다. 기가 막혀서 놀라고 그만 기절해서 그 앞에 엎드러져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네가 지금 나를 지금 보고 놀라서 기절하지마는 과거에 네가 나한테 품에 안기고 기대고 이렇게 만만하게 지낸 그때 내가 내나 지금 나다. 그때는 네 눈이 어두워서 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만만했고, 지금은 네가 보니까 별스러운 주님으로 너와 거리 먼 줄로 알고 이렇게 두려워하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때 내가 지금 나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은 주님과 가까운 것을 알고 이렇지마는 하늘나라 갈수록 주님과 거리 먼 것을 깨닫게 되고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인 것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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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매'
요한은 종전 영감보다 일층 충만히 영감되었을 때에 새로운 신행(信行)으로 출발할 때에 영감 안(眼)이 열여 과거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주님으로 다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주께 대한 새 지식과 자기에게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어 요한의 일생 최고적인 회개를 하였던 것입니다. 종전에도 여러 성도는 이런 성질의 회개를 가졌습니다.

눅5:8 베드로의 엎더짐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발견한 회개요 눅22:62 베드로의 통곡으로 꺼꾸러짐은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과 자기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는 주님을 발견하여 의심과 피난한 죄를 반성함이요

행9:4 바울이 다메섹 노중에서 꺼꾸러짐은 예수님은 참 메시야요 부활 영생의 생명의 주요 참 하나님이심을 발견함이요, 요21:18-22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 마땅한 줄 알고 순교의 각오는 생명의 주를 발견한 연고입니다. 이와같이 성도는 그리스도를 연구하는 평생 학생으로 지나가야 하고 배우며 알 때에 그만큼 겸손하며 충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고로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반성과 회개의 태도이니
1. 하나님게 대하여 소극적으로 과거 신앙치 못함과 영화롭게 못함을 통회하고 적극으로 미래의 신종할 것과 영화롭게 할 절대적의 생활을 각오할 때에 무능한 것을 발견하였고

2. 자아에게 대하여 소극적으로 속인 것과 손해 보인 것과 또 속은 것을 통회하고 적극적으로 자기에게 (싹스) 속지 아니할 것과 속이지 않고 바로 지도할 것과 자기에게 참 유익하게만 하는 생활을 각오할 때에 자기의 무능한 것을 발견하여 주를 바라봄에 부족하였던 것을 깨닫고 엎드러졌던 것입니다. 크게 자복과 회개와 감사와 소망과 즐거움에서 주님을 올바른 지위에 모시고 자기도 겸손히 올바른 지위에 두어 엎드러졌던 것입니다. 이는 원수도 낙망도 의심도 아닌 소망 중에 주와 자기를 바로 안 것 뿐입니다.

모든 승리는 주님과 자기를 바로 발견하여 높이고 낮아질 때에 주십니다.
이유는 승리는 교만보다 중수가 가벼운 까닭입니다. 승리하고 교만하면, 패전하고 겸손한 것만 못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발이 되는 까닭입니다.
           1. 소극적으로 몸과 이성을 파수할 것 ---- 죄에게 주지말 것

           2. 적극적으로 몸과 이성을 열심히 사용할 것 ---- 의를 열심히 할 것
           
           3. 죄에 침입을 즉시 보혈에 고발하여 멸하고 ---- 고죄(告罪)교죄(敎罪)
             몸과 이성을 도로 찾을 것

죽은 자같이 되었으니 죽지는 아니 하였으나 참 열매 맺는 회개의 심정의 표현입니다. 요일1:9과 같이 죄는 고하면 즉시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개(改)가 없는 회(悔)는 무익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회개는 주와 자기에 대한 애착과 소망이 사선을 초월하여야 되고 또 주께 대한 원한과 자기에 대한 미움이 죽음에 맞을 보는 정도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기에 미달한 회개는 자기의 부패성을 조장하고 남의 신앙심을 흐리게 하는 역 효력을 낼 것 뿐입니다.

회개에 주의할 것
1. 과거 현재의 죄를 통회할 때에 전적 실패와 전적 불의로 치우치는 낙망을 하지 말 것. 실패한 내 안에 승리의 주가 내주 하시나니 실패와 절망된 내가 주님의 승리를 소망 중에 감사의 조건을 잃지 말 것.

2. 과거 현재 미리에 있어 승리한 것과 승리할 것을 인하여 전적 승리자로 교만치 말고 여기서 실패 부분과 패전의 부분을 찾아 승리는 오직 주님 혼자, 나 혼자는 실패와 범죄자임을 발견할 때에 주의 승리는 그로 통하여 계속하고 이를 부인하여 부인할 때에 가견적인 실수까지 허락하사 승리의 선물을 거두고 그보다 나은 겸손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통회시는 낙망의 미혹을 피할 것. 승리와 감사와 회개한 때에는 자아의 연약과 부패를 기억하여 유혹을 물리칠 것. 유강(柔强)을 동지(同持)하고 겸손 담대를 동지할 것. 범죄와 승의(勝義) 연약 권능들을 동지할 것.

엎드린 요한에게 위로와 은혜와 사명을 주심


'그가 오른 손을 내게 얹고'
요한은 최고 영감에 있었으나 주께서 오른 손을 내게 얹고 한 것을 보면 자의식이 명확하였다. 영감이라 하여 순(純) 자의식을 잃은 감동들은 악령의 미혹 혹은 부패한 감정 극열의 것 것이니 이는 주관의 것입니다.

승리의 능력과 보호의 능력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또 그 은혜를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시는 축복입니다.


'두려워 말라'
자과(自過)를 깨달아 엎어진 요한에게 두려워 말라 함은 벌써 그 허물을 사하시고 그 겸손을 높이 들어 올리는 말씀이며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찾아 겸손은 인간의 할 일이요 사죄 칭의와 위로와 높임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니 신속하십니다. 기독교는 일단 죄인 된 후 의인되고 낮아진 후 높아지고 두려워 떤 후 담대와 평강이 오나니 이것이라야 참되며 영원한 것입니다. 주께 두려워 함은 담대로 바꾸어지고 두렵건대 피조물을 두려워 할 때에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렘1:17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침이요 모든 속성이 영원 전후에 동일하시니 요한의 현재의 정체와 과거 불소(不召) 시의 정체와 아직도 요한의 미각(未覺)한 원죄성을 총찰하시니 과거와 현재가 동일하신 주로 오늘보다 악한 과거에도 용서와 시은과 인내를 하신 내니 낙망이나 두려워 말라. 네가 나와 너를 이제 알았고 놀래나 나는 영원 전부터 이러한 주님으로 너를 사랑하셨은즉 네게 대하여 변함이 없나니 두려워도 여려도 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는 위로입니다.

의행이나 범행에 대하여 그 단시간으로만 간주하여 교만과 낙망에 처하지 말고 시간을 초월한 신앙으로 범죄의 감이 시간경과에 따라 해이하여도 신앙이 아니고 주아(主我)친밀이 선악행위에 따라 수학적 변동도 신앙이 아닙니다. 주는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51:1 다잇은 범죄할 때에도 주의 긍휼과 많은 인자를 바라보았고 요나2:2 에도 요나는 범죄한 고기 배속에서도 자기의 부르짖는 소원을 주께서 대답하셨고 또 들으셨나이다 라고 하는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할 때에 자기는 더욱 의심하고 미워하여 회개할 것.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는 의심치 말고 더욱 확신하고 소망 중에도 가까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이요 성경입니다.

(570121)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처음에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가 위대했고 이제는 주님을 만남으로 자기는 허무한 자기가 되었습니다. 밧모섬에서 주님의 얼굴을 대했을 때,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게 되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신망한 자가 되었습니다.  

(80030160)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봤다 해도 그거는 아주 초보 초보로서 그저 한 외부의 어릴 때에 어린 아이를 가르친 거와같은 가르침의 몽학 선생이요 이제 거기서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들어가고 들어가서, 모세와 같은 그런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할 자가 누가 있느냐 그렇게 말했고, 사도 요한이가 평소에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요 가장 친근해서 언제든지 예수님의 그 품에 안기워서 기대서 눕기도 하고 마음대로 한 그 사도 요한인데, 그가 밧모섬에 가 가지고 주님의 그 높으시고 크시고 그 위대하심을 발견했을 때에 그는 그 앞에서 꺼꾸러져서 죽은 자와 같이 되어겼던 것입니다. 그만 그가 주님의 크심을 다 봤던가? 다 봤으면 죽습니다.

(84070802) 3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차차차 천국 가면은 예수님과 자기와 가깝습니까 멉니까? 천국 가면은 예수님과 자기와 가까와지겠소 멀겠소? 예? 가까와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손 놓읍시다. 천국 가면 주님과 자기와 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멀어, 멀어. 멀어요.

왜? 이제 사도 요한이가 보니까 처음에는 주님과 가까와 주님 앞에 뭐 기대고 이래 가지고 뭐 예수님을 깔고 드러눕고 이래 자꾸 이래 이래 쌓았지마는, 사도 요한이 말이지. 이래 쌓았지마는 밧모섬에 가 가지고 주님이 어떤 분인 걸 알아 놨다 말이오. 알고 보니까 어떻게 그 앞에 그만 기절해서 그만 죽을 지경이었어.

주님을 알아갈수록이 주님은 점점 크시고 무한하신 분이라 그만 갈수록이 놀래고 놀래고 자꾸 크시고, 또 주님과 자기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한 일이 너무 거리가 멀어. 자기 한 일이 환하게 보이고 주님이 한 일이 환하게 보이니까 주님에 대해서는 사모가 돼서 존경은 자꾸 되고, 갈급은 자꾸, 주님은 자꾸 좋기는 좋고 자꾸, 두렵기는 두렵고, 자꾸 존대는 더 되고, 숭배는 더 되고, 자기는 점점 더러워지고, 그러니까 바울이 그라기를 다른 사람 모르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이 죄인이라” 이렇게 깨달은 것입니다.

(8609022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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