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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 성경:60베드로전서0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세례는 죽고 다시 사는 것이 세례식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사는 것이 그것이 세례식이요 또 세례식은 성경에 다른 데 말하기를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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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는 것을 여기 말하고 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활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말입니다.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너희를 구원하는 것을 지금 표시하고 있다 말입니다. 구원하는 것을 지금 표시하고 있습니다.


'곧 세례라'
세례라, 세례가 무엇인가? 세례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다는 것을 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죽으심에 동참하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이것이 세례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다 하는 것을 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 세례 생활은, 우리의 평생 신앙 생활이 세례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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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례라'
그러기에, 이 세례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많이 해 놨는데 세례는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세례라, 또 세례는 모든 예수님의 대속을 다 입는 것이 세례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여기는 세례는 어떤 게 세례냐?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세례다. 그 말은 양심으로라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자기가 다 받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또 양심이라야 옛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새사람을 살려 기를 수도 있지 양심 빼놓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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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물로 세례 받으니까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는 그런 식인가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그런 식은 아닙니다. 물로 우리에게 몸에 무슨 더러운 걸 씻어버리는 그런 뜻으로 세례를 물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선한 양심이'
선한 양심이라고 하면 하나님 중심하는 양심을 말하는데 이것은 곧 신앙 양심입니다. 신앙 양심은 외부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이 도리,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 곧 하나님의 뜻에 피동되는 양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이 성경 말씀에 피동되는 양심이요, 거기 순종하는 양심이 신앙양심입니다. 하나님의 이 진리 성경 말씀에 순종해서 성경 말씀대로 자기 양심을 쓰는 순종 양심 곧 신앙 양심이요, 깊이 말하면 성령의 감화 감동에게 피동되는 양심입니다. 자기 주관이 능동으로 움직이는 양심이 아니고 은밀히 말하면 영감에게 피동되어서 움직이는 그 양심입니다. 우리 중생된 자에게는 선한 양심이 있어 선한 양심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찾아가니까 과거사도 현재사도 아니요 지금 미래와 현재사입니다. 미래와 현재에 속한 것으로서 미래를 향하여 현재에서 자꾸 찾아가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곧 내가 현실에서 앞을 향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그 행동이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이 행동으로 자기 현실에서 미래를 한 자욱 밟아서 그것이 현실이 되어질 때에 이것이 곧 세례 생활이요,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 생활이요, 예수님의 이 구속을, 사활의 구속을 입은 생활입니다.

그런데 여기 찾아가는 하나님은 누구를 가리켜 말했는가? 그 다음에 22절에 '저는' 했습니다. '저는' 하는 것은 곧 우리를 대속하신 사활의 공로를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함이니 제2위이신 하나님 곧 성자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우리의 대속주 구속주를 말합니다.

* 벧전2:22 : 저는 하늘에 오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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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선한 양심이'
그러면, 알고 실행하고 알고 실행하고 하는 데에 고 아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하나씩 알아 나가는 것이니까 그거는 뭐 쉽고 그거는 아무든지 다 바로 하고 있고, 그런데 고 다음에 둘째 문제 때문에 끊어져 가지고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는 대로 실행하는 그게 뭐인가 아는 대로 실행하는 고게 양심입니다.

아는 대로 실행하는 고게 딴게 아니고 양심입니다. 그 양심이라 하면 별스러운 딴것 생각하지만 아는 대로 실행 할라 하는 고게 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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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마태복음 산상 보훈에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5:8)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으면 무릇 하나님에게 구하는 바를 다 얻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요일3:21-22). 여게도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은 그 의식을 행할 때에는 물속에 잠겼다 나오는 그런 침례식도 있고 물을 뿌려서 세례 받는 그런 식도 있습니다. 그것은 물을 뿌리는 것은 양의 피를 뿌려서 속죄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들이 속량함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그 표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고, 또 침례로 세례 주는 것은 세례 받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또 예수님과 함께 다시 새사람 되어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표를 가리켜서 하신 것입니다.

여기는 '세례라'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으로 물로 세례 받는 것이 아니고 그 세례 받는 중심은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식을 베푸는 것이 세례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이제는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나아가는 그 시작이 되었다는 것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세례 받은 행위가 어떤게 세례 받은 행위인고 하니 착한 양심을 써서 하나님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는 그것이 세례 받은 자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후부터 우리에게는 신앙 양심이 움돋기 시작했습니다. 신앙 양심이 움돋기 시작했다 말은 과거에는 하나님의 이 말씀 진리를 알지 못할 때에는 세상 이런 저런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대로 가장 좋고 옳고 바르고 복된 것 참된 길을 찾아 갈려고 했던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땅에 속한 양심을 가졌고 악령에게 속한 양심을 가지고 세상 지식에게 속한 양심으로서 우리는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만이 정확하고 무오하니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것을 우리가 작정하고 가다가는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이 서로 대립이 될 때에는 이제까지 내가 따랐던 그 세상 지식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서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첫째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성도들이 성경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 이 지식을 힘입어서 이 지식이 가르치는 그대로의 올바른 길을 걸어 성령의 그 감화를 만날라고 영감을 찾아가는 것이 신앙 양심이요, 영감을 만나 가지고 영감의 도움을 입어서 하나님을 만날라고 찾아가는 것이 신앙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사람의 양심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서 영감을 찾고 이제는 진리와 영감을 힘입어서 하나님을 찾아 만날려고 노력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 신앙 양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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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여기에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러면 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사람은 여덟 명이고 물로 말미암아 멸망받은 사람은 그 외에 전부입니다.
이 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하신 이 대속과 3일 만에 부활하신 이 부활을 예표해서 하나님이 두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대속의 부활하심은 노아 시대의 물과 같습니다. 물의 그때 그 이치는 예수님의 사활의 이 대속의 효력의 이치를 예표해서 하나 표시해서 보이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 홍수가 멸망을 시켰습니다. 홍수가 멸망을 시켰소.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세상은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하여 세상이 정죄받고 심판받아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홍수로 인해서 멸망받은 사람들도 있지마는 홍수 때문에 구원 얻은 사람 있습니다. 홍수 때문에 구원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홍수의 도움을 입은 사람들 있습니다.
만일 노아는 이 홍수의 도움이 없었으면 노아의 구원은 헛일입니다. 노아는 인간 중에 가장 세상적으로는 천한 인간이 됐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 홍수에 빠져 죽는데, 다른 사람은 이 홍수에 빠져서 멸망을 하는데 노아의 여덟 식구는 이 홍수가 이렇게 들고 모시고 다녔습니다. 이 홍수가 들고 모시고 다녔어. 노아는 이 홍수의 도움을 받았고 혜택을 입어서 이 홍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 홍수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산 자의 머리가 되고 첫열매가 되어 모든 자에게 산 소망을, 산 생명과 산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베푸신 이 공로는, 이 공로를 마치 노아 때에 홍수의 도움의 혜택을 입은 자는 구원을 받았고 홍수의 도움과 혜택을 입지 못한 자들은 다 멸망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의 사활의 이 대속의 공로를 자기 건설구원에 도움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고 이 사활의 공로의 도움을 받지 못한 자는 영원히 멸망입니다. 이것을 여기에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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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노아 홍수의 물로 깨끗한 것은 아주 깨끗한 것으로 딱 갈라 세우고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으로 딱 갈라 세워서 완전히 둘을 갈라 트려서 하나는 살렸고 하나는 죽였습니다.
“곧 세례라” 그말은, 세례는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갈라 가지고 더러운 것은 멸망을 시키고 깨끗한 것은 구원해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착한 양심이”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다 버려 죽여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서 깨끗한 것으로 살아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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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여기에 있는 세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중생되었으니 신앙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찾아가는, 하나님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는 이것으로 내 생활을 삼는 그 증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세례에 대해서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 마28:19 : 여기서 말하는 세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였다는 증거와 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와 영원히 함께 하시게 되었다는 이 증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2) 막16:16 : 여기에 있는 세례는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건 다 우리가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이 표로 세례를 받습니다.

(3) 행16:15 : 여기에 있는 세례는 성령님이 우리를 감동시켜서 하나님의 그 지극히 높으신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들을 수 있고 들어 깨닫게 됐다 하는 그 증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4) 행1:5 : 여기에 있는 세례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그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5) 행9:17-18 : 여기에 있는 세례는 사울이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아 세례 받았을 때에 눈도 다 열려졌고, 또 몸에 그 약해진 것도 치료가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부터 같이 하신다는 그런 증표로 아나니아 제사장에게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6) 롬6:3-5 : 여기에 있는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함께 새사람으로 살아나서 영원히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자가 되었으니,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새사람으로 사는 이 생활을 출발한 그 출발식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7) 갈3:26-27 : 여기에 있는 세례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님의 모든 그 은혜를 옷 입듯이 입고 예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게 된 그것을 증표 하는 것으로 세례를 받고, 이제는 이 사람으로 사는 것을 발족하는 그런 표시로 세례 받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8) 막10:38-39 : 이것은 예수님이 마지막에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아버지의 소원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전부를 다 바치는 완전히 바쳐진 그 식으로 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 마28:19 :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막16:16 :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행16:15 :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 행1:5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행9:17-18 :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 롬6:3-5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 갈3:26-27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 막10:38-39 :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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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래서, 말씀 지키는 사람은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그것이 말씀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내게 있는 양심을 찾고 양심을 자꾸 길러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이거는 틀렸다 하니까 양심은 거게서 세력을 얻고 못 쓸 모든 죄악의 욕심은 다 정죄 받아서 다 깨집니다. 이렇게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려는 것이 요것이 목적이요, 자기가 말씀을 지켜서 이 말씀대로 지켜 행했다 하는 행함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요것이 행함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행하는 요 행함이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 행함에 목적이 있는 그것은 다 율법자요 다 헛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행함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 이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 다음에는 자기에게는 뭣이 제일 선하냐? 욕심이 선하냐 감정이 선하냐 총명이 선하냐 이성이 선하냐 명철이 선하냐 지식이 선하냐? 그 모든 것보다 우리 주관에는 양심이 제일 깨끗합니다. 양심이 제일 깨끗하고 제일 맑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지키니까 이 양심을 선봉장으로 세우지 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양심을 찾지 않는다는 거는 거짓부리 돼요. 하나님은 양심 보다 무한히 탁월해 계시는 분이십 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먼저 양심도 반대하고 양심도 싫고 양심도 맞지 안하고 양심도 자기에게 거리끼거든 어떻게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이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법칙대로 내가 행함으로 행하는 것이 말씀대로 지켜서 행동하는데 목적이 있지 안하고. 말씀을 지켜 요대로 행함으로 내 속에 모든 양심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차차 차차 꺾어지고 양심이 차차 세력을 얻고. 이 말씀대로 지킴으로서 이제는 양심을 억누르던 그 몹쓸 것들이 다 차차차 꺾어져서 쫓겨나고 물러가고 이제는 양심이 내 마음에 제법 어른 노릇을 하고,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모든 아시아에 있는 교인들이 목을 안고 울면서 가지 말라고 이라니까 '놓아라 너희들이 와 울어서 내 마음을 괴롭히느냐? 나는 예루살렘에서 내가 박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죽어도 마땅하다. 나는 내 마음에 붙들여서 나는 예루살렘에 죽을 줄 알고 안 갈 수는 없다. 마음에 붙들여 나는 안 갈 수 없다.' 고 마음이 무슨 마음이냐? 그 양심은, 사도 바울이 양심을 길러 놓은 그 양심은 자기의 몸과 생명이 감옥에 갇히든지 죽든지 할 것 없이 이 양심이 명령할 때에 이 양심을 거슬리지 못했습니다. 이 양심은 그 생명을 자유했고 자기의 몸을 자유했고 자기 욕심들을 자유해서 이렇게 장성한 그 양심이 비로소 하나님을 가깝게 만났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하게 친밀하게 지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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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우리는 '물은' 하는 것은 이거 홍해 바다 물을 말합니다. 홍해 바다 물을 말하는데 물에서 사람들이 물로 인해 죽을 터인데 물에서 원수가 멸해지고 물에서 저희들이 구원이 됐다 하는 그 물은 뭘 가리켜? 곧 우리의 구주 예수님을 하나 상징한 것이요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그 어려움을 닥쳐도 그때에 그 어려움에 예수님을 믿는, 그 신앙이면 그 어려움이 변해서 자기에게 더 유익이 없던 것보다 더 나은 유익이 되고 또 자기의 구원이 된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이와같이 애굽에서 나온 것처럼 그 세상에서 나온 우리들이 그들이 가나안에 가는 것처럼 우리는 하늘 나라 향하여 가는데 우리가 하늘나라 향하여 갈 때에 온갖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온갖 어려움들이 있는 것을 그 표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어려움이 있을 때에 그때에 그 어려움을 어떻게 면할 것인가? 그 어려움은 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 "물은"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그 어려움 당한 것은 우리가 신앙 걸음을 걸어서 하늘나라 갈려고 할 때에 닥쳐지는 그 모든 어려움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어려움 당했을 때에 하나님의 이런 저런 모든 능력으로 그 어려움을 다 면하고 도리어 어려움이 없던 것보다도 크게 유익이 되는 그런 결과를 맺게 됐는데 그 어려움을, 이런 것을 통해서 저런 것을 통해서, 나무가지를 통해서, 홍해 바다가 또 작지로 가리켜서 갈라져서,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이렇게 모두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려움을 면하게 된 그 어려움 면하게 된 그것이 흥해 바다 물 갈라진 것, 예수님을 나타내는 그 표적이고, 또 마라에서 물이 써서 그 가지 던지니까 물이 단물된 그것도 예수님을 나타내는 예수님의 표적이고 또 물 없어 반석 쳐서 물 나온 그것도 예수님의 표적이고 그 반석에서 무슨 물이 나올까 했지만 치니까 물 나왔습니다. 그게 다 예수님 가지고 뭐이 되겠느냐 이러나 예수님 한 분 가지고 다 되는 것입니다. 또 양식이 없을 때에 그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늘에서 양식 내려온 그것도 다 예수님의 표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 걸음을 걸을 때에 우리 앞에 있는 온갖 그 어려움을 닥칠 때에 이 어려움이 이거는 뭐 이렇게 저래도 할 수 없고 나는 절단난다 하는 그런 어려움들을 하나님께서 역부러 자꾸 닥치게 합니다. 처음에는 조그만 어려움 닥치다가 차차 차차 큰 어려움을 닥치게 합니다. 그 큰 어려움을 닥치는 그 모든 어려움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믿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는 이것이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이것 하나 가지고 다 해결됩니다.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이스라엘이 모두 생각하기를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면 좋겠다고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했는데 이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 갔다가서 이렇게 낭파 당했다 그렇게 모두 다 원망들을 하고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서 어려움 당한 그 어려움은 그 어려움이 아니면 자기네들이 구출 받을 수 없는 그 어려움이었고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원수는 망해지고 그 어려움을 인해서 자기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던 것입니다. 홍해 바다가 닥친 것도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다가 낭파 당했으니까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불평을 했고 원망을 했지만 흥해 바다가 아니면 애굽의 그 추격하는 그 세력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 홍해 바다로 인해서 애굽의 그 추격하는 세력은 다 홍해 속에 몰살을 해 버려서 그런 것이 다 완전히 방어됐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은. 그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에 나아갔지 그렇지 않으면 가나안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우리가 무슨 인도인가? 오늘은 그 영감 인도 진리 인도인데, 여기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우리가 세례 받는 것은 물로 세례를 받으니까 무슨 그 물로 가지고 몸의 뭐 더러운 것을 씻어 버리는 그런 표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아니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그러면 이와 같이 우리가 세례 받는 것은 이스라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가는 그것은 영감의 인도를 받아가야 실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서 보이는 것인데. 영감 인도는 무엇이 영감 인도인가? 영감 인도는 양심 인도라 그 말입니다. 영감 인도는 양심 인도라. 그러면 양심이 영감인가? 영감 받은 마음을 가리켜서 양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양심이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데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데는 양심이 없으면 하나님의 인도를 딿지 못합니다. 양심 없이는 하나님의 인도를 딿지 못합니다. 양심이 아니면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따를 수가 없고 자기 현실에서 이래야 되느냐 저래야 되느냐 하는 그 하나님이 이래라 할 때 이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딿은 것이고 저래라 할 때 저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인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우리 구원이 이루어 지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딿은 데에는 착한 양심이 우리를 인도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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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
그러기에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계2:7). 귀 있는 자는 듣는 다고 말했는데 그 귀는 우리 육체의 귀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있지요. 그런데 거게 귀를 말하는 것은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인격의 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하는 말은 양심이 있는 가는 양심을 쓰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양심을 쓰면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양심은 하나님의 하시는 그 모든 형태를 볼 수가 있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러기에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고 그렇게 여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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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이 다 양심에서 시발됩니다. 양심이 자라서 양심은 어떤 게 양심인가? 양심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 지식을 자기지식으로 삼아 가지고 자기를 나름대로 이 지식을 이용해 가지고, 이 지식을 이용해 가지고 요지식이 자기 지식대로는 제일 이상의 점. 제일 바르고 옳고 깨끗한 점, 고 양심이라 하는 거는 본질과 본성이 그것이기 때문에 고게서 자기 아는 지식대로는 제일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것이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양심은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의 지식으로 삼아 가지고 이 지식을 힘입어서 이 지식보다 더 이상의 것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힘입어 가지고 이 지식보다 더 온전하고 참된 걸 찾습니다. 그러면 이 지식보다 더 온전하고 참된 게 뭐입니까? 네, 영감입니다. 이 지식보다 더 옳고 참되고 완전한 것을 찾는 그것이 뭐이냐? 양심이 찾는 것이 영감입니다. 이 지식을 가지고 양심이 영감을 찾아갑니다. 양심 이 영감을 찾아서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과 동행해 가지고 영감을 찾아가고, 이제는 양심이 하나님의 지식과 영감과 셋이 동행해 가지고. 셋이 동행해 가지고 찾는 것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 완전자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그것이 마지막에 이제 완전히 도달해서 종착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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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
(자유하는 양심을 가지려면)
그러기에 신앙의 사람들은 자기는 연약하니까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과소평가하고, 적게 과소평가하고. 또,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계산을 할 때에 더 거게서는 좀 박하게 깎아서 그렇게 계산하지 안 하면 자기로 치우칠 터이니까 도리어 자기를 희생시켜서 무엇을 계산할려고 하는데, 그것도 실은 그것이 온전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자유하는 양심을 가진 사람은 참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는 양심에 화인을 맞지 안하도록 노력을 하고 둘째로서는 양심을 죽이지 아니하도록 애를 써야 되겠습니다. 양심을 죽이지 안하는 것. 양심을 죽이는 게 어떤 게 죽이는 것인가? 양심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데 양심을 꺾어 행하는 것, 그러면 자기 양심에서는 벌써 그라면 안 된다 이라는데 양심을 생각하면 못하니까 그만 생각하지 안하고 술을 한 잔 먹든지 그렇지 안하면 자기가 '어 어 어' 그만 양심 생각하지 말고 그만 그리 해 버리자 그만. 이렇게 자기가 둥둥해 가지고 양심이 나타나지도 못 하게 양심을 그만  꺾어서 행하는 그것이 양심을 죽이는 일입니다. 양심을 죽이는 그 일은 자기가 눈을 뽑는 일이요, 귀를 빼는 일이요, 자기에게 있는 빛을 없애기 때문에 그에게는 흑암뿐이니까 마귀의 것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 양심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은 양심을 꺾어서 행하는 것이 양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다음에, 양심을 고 보담은 좀 못해도 양심을 매장하지 말아야 됩니다. 양심을 그만 파묻지 말아야 됩니다. 양심을 매장하는 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양심이 마음에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데 양심에 자꾸 가책을, 양심에 가책이 오니까 상이 찡그려지고. 양심에 가책이 오니까 어떻게든지 얼굴에 빛이 안 나오고 양심에 가책이 오니까 마음에 깨꾸름하이 불안을 가집니다. 불안을 가지는데 그때에 고 양심이 호소하는 그 호소를 그만 무시해 버립니다. 양심의 호소를 무시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을 파묻어 버리는 거라. 파묻어 버리면 그 숨 못 쉬면 죽지 않습니까? 양심을 매장시키는 것이, 양심의 호소를 무시 하는 것이 매장시키는 것이니까 양심의 매장을 하지 안하도록 우리는 주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또, 이제는 적극성으로 양심을 북돋우기를 힘써야 됩니다. 양심을 북돋우는 것은 어떤 게 양심을 북돋우는 것인가? 자기는 무슨 일 할때 '아, 내가 생각해 보자. 어짜면 옳게 하는가? 어짜면 바르게 하는 것인가? 이래야 바르냐 저래야 바르냐? 자기가 양심대로 할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양심을 북을 돋우는 것입니다. 양심을 북돋우는 것 그거 가지고 크게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양심이 자랄 수 있도록 자꾸 북돋우는 것 북을 돋우면. 식물에 북을 돋우면 이제 북을 돋우고 나면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자꾸 양심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양심을 북돋우는 것입니다. 양심이 세력을 얻도록 자꾸 양심을 등용을 합니다. 양심을 등용해 가지고 양심을 등용해서 양심대로, 우리 양심 한 번 생각해 보자.' 양심에 어떤고 양심을 자꾸 많이 말해 가지고 양심대로 하는 사람은 양심을 북돋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양심을 기르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되겠습니다. 양심을 키우는 일은 어떤 게 양심 키우는 일인가? 자기 마음에 양심에  이렇다 하는 것이 결정이 되면 자꾸 양심대로 할라고 찾는 것은 양심을 북돋우는 것이요. 양심에  이렇다 하는 것을 양심이 판정 내렸으면, 그 다음에 판정 내렸을 때에 우리에게 불리하든지 유리하든지 손해 가든지 어짜든지  양심에 판정된 것이면 그대로 그만 단행해 버립니다. 그대로 단행하면 그만 양심이 세력을 얻습니다. 그러기에, 자꾸 우리의 마음 가운데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심리 가운데에 양심에게 권리를 자꾸 줍니다.

양심에게 권리를 줘 가지고 양심에 뭐 이 욕심이 양심을 거슬리면 욕심을 벼락을 칩니다. 욕심이 양심을 거슬리면 욕심 그놈을 꺾어 버리고, 무슨 정욕이 양심을 꺼리끼면 그 정욕을 꺾어  버리고. 무슨 세상의 윤리나 도덕이나 그것이 양심을 거리끼면 윤리 도덕을 무시해 버리고 어짜든지 그래서 양심이 옳다 판정 되면 그대로 단행하는 것이 그것이 양심을 기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이 장성해 지는데, 양심이 장성해지면 어디까지의 장성한 양심을 가져야 되겠는가? 우리의 양심이 장성해지면 장성해지는 것만치 그 양심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권하게 됩니다. 그 양심이 그 사람의 양심이 그 사람의 소유를 그 양심 제 마음대로 합니다.

(85060902/1360/1560/2300) 9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인간의 빛 된 양심)
그러면, 오늘 아침에 증거할려고 하는 것은 한 가지만 간단하게 알고 갑시다.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찾아간다 했습니다. 양심은 이것은 인간의 요소입니다. 또 하나님의 요소 그 말은 하나님께 속한 그 모든 것들이 있는데. 우리 몸에 세포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그 수가 한 없이 많은데, 많든지 적든지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에게 속한 요소가 있고 사람에게 속한 요소가 있는데 양심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요소가 아니고 또 어떤 사람이 말하는 거와 같이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속하지 안하고 중간에 있는 것이라 하는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양심이라 하는 것은 사람의 요소입니다.  사람의 요소인데, 사람의 육체 중에는 제일 현명한, 현명하고 진실한 인간의 빛이 되어 있는 마음의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양심)
요소인데, 양심생활은 신앙이 아닙니다. 양심생활은 신앙이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전부 양심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양심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양심생활  하는 그것은. 불택자들이. 중생되지 안한 사람들이 양심생활 하는 것은 그 양심생활이  무엇을 찾아가느냐 하면 사탄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세상에서 제일. 하나님 외에는 권세 있는 것이 사탄인데 사탄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양심이 죽은 양심인고로 죽음의 근본인 그 사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은 사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신앙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입니다.

(지식의 지배받는 양심)
그러면, 신앙 양심은 어떤 것이 신앙 양심인가? 양심이라 하는 것은 그 본인의 지식의 지배를 받습니다. 지식 된 대로 그 양심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 자기에게 있는 그 지식을  다 활용해 가지고 고 지식대로 제일 좋고 바르고 곧고 참된 것 깨끗한 것을 취하여 가는  것이 그것이 양심이기 때문에, 불교인은 불경 중에 제일 이상점. 불경 중에 제일 좋은 점 제일 옳은 점 그 점을 향하여 가는 것이 불교인의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의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뱀에게서  나온 뱀의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인데, 산 지식은 하나만 있으니 산 지식은 뭐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 신구약 성경 지식은 산 지식인데 이 산 지식 하나님의 지식 이 성경 지식을 자기의 지식으로 삼아 가직고 이 지식을 활용해서 이 지식대로의 제일 옳고 바른 것을 찾아 나갈려고 하는 그것이 신앙 양심인 것입니다. 신앙 양심은 산 양심이요 이방인의 모든 양심은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양심이 아닌 인간의 타락한 인간의 지식대로의 양심인 것입니다.

(양심생활과 신앙생활의 차이)
그러면, 우리가 양심생활이 있고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양심생활과 신앙생활이 다른 것을 구별해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양심생활은 어떤 것이 양심생활인고 하니 양심생활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자기 양심이 쌓아 가지고 옳다 바른다 하는 고대로 하는 것이 양심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법전으로 삼아 가지고 성경 말씀을 표준을 해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 제일 옳고 바른 행동 하는 것이 그것이 신앙 양심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적 요소냐 인적 요소냐? 그것은 순전히 인적 요소입니다. 인적 요소요, 신앙의 행동이라. 신앙생활이라, 신앙 행동이라 하는 것은 인적 생활이 아니고 신적 요소의 생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요소라는 그런 말 혹 모르면, 금과 은 둘을 혼합할 수 있습니다. 혼합할 수 있는데, 이 금은 금이 얼마 섞였고 은이 얼마 섞였고 금과 은 배합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이 것은 순금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은과 금이 녹을 수가 있고, 녹을 수 있는 그 정도에다가 녹여 가지고 타 버리면 금하고 은하고 타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가 가지고 금만이 견디고 은은 탈 수 있는 높은 열도에다가 그걸 구우 면은 은은 다 타 버리고 순전히 금만 남을 때 그것을 가리켜서 순금이라 이십 사 금이라 그렇게 말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하고 은하고 한 테 뭉쳐 있지만 그래도 거기는 나중에 분석 하면은 금의 요소가 있고 은의 요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과의 이와 같이 섞여 있지만 하나님의 요소가 있고 사람의 요소가 있는 것인데, 양심 행동은 전적 그것은 인적 요소입니다. 인적 요소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애를 쓰다가 고 양심생활이 그것이 바로 됐을 때에, 착한 양심생활이 됐을 때에 그때애 성령이 인정하셔 가지고 인을 칩니다. 성신이 동행해 주십니다. 성신이 동행해 주시면 그것이 뭐이냐? 비로소 신앙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85061230/3/2300) 9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영원을 만들지 못하는 미완성의 양심생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는 것은. 요거 좀 어려운 말인데,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는 것은 인간 힘으로 해 가지고 영원불멸의 완전의 불변의 영생하는 그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인간은 영원을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은 완전을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은 불변을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은 영생을 만들지 못합니다. 못 하는데.  그러며 못 하는 이 생활을 가리켜서 기독자의 양심생활이라 합니다. 그러면 양심생활은 아직까지 그 양심생활은 영생도 만들지 못하고 영원도 만들지 못하고 불변도 만들지 못하고 완전도 만들지 못하는 아직까지 미성의 미완성의 양심생활입니다.

(양심생활이 성령님을 만나면 영감생활)
그러면 양심생활 하면 그 양심생활이 무엇을 찾아가느냐?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여기 말하지 안했습니까?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이러면 찾아가다가 만납니다. 그러면 기독자의 양심생활이  찾아가다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 만난다는 말은 성령님을 만납니다. 성령님을 만납니다. 성령님을 만나면 만나기까지는 양심생활이요 만나고 난다음에는 무슨 생활입니까? 영감 생활인데 곧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85061233/2300) 9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양심은 신앙인격의 귀)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양심이 없으면 하나님 못 만납니다. 양심 없으면 하나님 못 만납니다.' 양심은 우리의 생활과 인격의 귀와 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이라기만 하게 되면 자기가, 우리는. 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이것도 저것도 다 거기에 붙들리 지 말고 어짜든지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옳게 바르게 참되게 살겠다 하는 요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것 틀렸다 하는 것을 또 가르쳐 주고 조것 틀렸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마음은 딴 데 가 있습니다. 마음은 딴 데 가 있는데, 뜻이 없으면 말이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들리지 안해요. 우리 수위 하고 계시는 우리 O집사님, 그래 무슨 말을 내가 해 봅니다. 해 보면 그이가 그 뜻을 가지고 소원하고 있는 그거는 뭐 말하면 어떻게 잘 듣는지. 자기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그 말을 할 때는 내가 큰 소리 하지 않습니다. 듣는가 안 듣는가 보자 하고 그것을 자기 마음에 지금, 그전에 아들 장가 들일려고 지금 결혼에 대해서 그런 일 있는데, '보자. 한번 시험해 보자' 싶어서 그래 '집사님' 하니까 '예' 이래 하고 난 다음에 그래 내가 쪼그만한 소리로 '자부를 보는데 결혼식이 몇 일날이지요?' 살며시 이라니까 '아. 예 예, 감사합니다.

몇일날입니다. 그렇게 쪼그만하게 해도 그런다 말이 그 자기 마음이 거기다 딱 그래 가지고 고 마음이 일단 고래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 마음에 고래 가지고 있는 고걸 딱 말하니까 쏙 들린다 그말이 그 뭣이든지 그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은 그 들려지고 그 사람 마음이 거기 기울여 있으면 고 말이 아니라 딴 말 해도, 다른 소리를 해도 그 말로 들려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래서 귀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옳게 바르게 살라고. 하나님 따라서 살라고. '요게 영감 생활이 돼야 될 터인데, 믿음이 돼야 될 터인데. 안 되면 안 되겠다. 이렇게 바르게 살아야 될 터인데 문제다. 어떻게 하면 옳고 바를까 뭐 틀린 게 없는가' 틀린 게 없는가 자꾸 이래 찾아 쌓는데 그때는 주님이 영감시켜 주면 그만 딱 듣는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사람은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고 마음이 거기에 기울어져 가지고 소원하고 있으면 아무리 가는 소리라도 들리는 것 마찬가지로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 주님이 거기에 대 한 것을 말씀할 때 들렸지만 마음이 거기 대해서 아무 관심 없고 마음은 지금 엉뚱한 데 가 있는데 주님이 암만 들려 줄라 해도 들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양심은 신앙 인격의 귀가 되고 눈이 된다 그것을 가리켜 말씀한 것입니다.

(85062040/2300) 9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중생된 영이 양심을 통해서만 마음을 지도함)
그러기에, 이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된 영 외에는 제일 현명한 것이 양심인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그 마음이 지도를 하고 있고 그 마음은 양심이 지도를 하고 있고. 또 마음의 전부와 몸의 전부는 중생된 영이 지도를 하고 있고, 중생된 영은 성령님과 진리가 지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이 그 중생된 사람의 마음을 아무리 지도 할라고 해도 그 마음을 지도하지를 못합니다.

중생된 영은 그 사람의 양심을 지도하고 양심이 이제는 그 마음을 지도하고 그 마음이 몸을 지도하고 이래 가지고 사람들의 올바른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중생된 영을 지도하고 중생된 영은 양심을 지도하고, 양심은 그 모든 마음의 각양 각종 요소를 다 지도하고, 마음은 또 그 몸을 지도하고, 또 몸은 자기의 현실인 그 모든 사물들을 지도하고 해서 이렇게 바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사물을 지도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어떤 물건이나 어떤 일이나 그런 것을 마음이 그것을 아무런 상관하지 못합니다. 만일 여기 종이 하나 있는데 이 마음 가지고는 이 종을 울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종을 울리고 싶어도 울리지 못합니다. 꼭 몸을 통해서 이거  울릴 수 있습니다. 또 일도. 어떤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을 아무리 그 마음으로는 이리 이리 하면 된다 싶어서 아무리 그 일을 잘 하는 그런  방편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은  그 일을 직접으로 못 합니다. 그 몸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몸을 통해 가지고 사물에 대한 일을 하지 몸을 빼 놓으면 안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또 중생된 영은, 중생된 영은 마음을 아무리 지도할라고 해도 지도를 못 합니다. 중생된 영은 양심을 지도하고 양심을 통해서 그 마음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85061453) 9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찾아간다 말은 사색한다 말이오. 찾아간다 말은 사색한다 말이오.

사색한다 말은 사고한다 말이오. 사고한다 말은 궁구한다는 말이오. 궁구한다 말은 연구한다는 말이오. 자기의 물론 과거도 연구하지마는 여게 찾는다는 것은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 현재를 가지고서 미래를 지금 찾아나가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미래를.

내가 그라면 이 시간에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돼, 어떤 걸 경영해야 되느냐, 무엇을 소망해야 되느냐? 이래 모든 미래에 속한 것을 자기가 연구해 가지고서 바로 알아야 되는 것이라 말이오. 바로 모르면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87070130) 4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이것은 찾아가니까 과거사도 현재사도 아니요 지금 미래와 현재사입니다. 미래와 현재에 속한 것으로서 미래를 향하여 현재에서 자꾸 찾아가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곧 내가 현실에서 앞을 향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그 행동이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이 행동으로 자기 현실에서 미래를 한 자욱 밟아서 그것이 현실이 되어질 때에 이것이 곧 세례 생활이요,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 생활이요, 예수님의 이 구속을, 사활의 구속을 입은 생활입니다.

(8707035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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