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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성경:45로마서01:16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중풍병에 들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믿든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네가 어떻게 믿었든지 믿은 그 표가 곧 믿은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그 즉시로 백부장이 믿을 때에 그 중풍병자가 즉시 나았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니까 '죽은 지가 나흘이라 벌써 썩어서 내음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놔 봤자 뭐 소용이 있습니까?' 할 때 '내 말이 네가 믿어라 하지 않느냐?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을 네가 볼 수 있으리라.' 할 때에 마르다가 믿으니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막9:23에서도 '어떻게 주님이 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습니까?' 할 때에 '네가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8장 8절 이하에는 보면 이렇게 하나님은 신실한 약속을 하셨지마는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면서 탄식을 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이하에는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누구든지 믿으면 그대로 다 구원되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계약은 누구든지 믿으면 믿은 그대로 됩니다. 암만 자기가 알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 믿음에 하나가 빠지면 헛일입니다. 이 기록된 대로 자기가 알고 요대로 하면 된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할 때에 온전한 믿음이 되어서 모든 계약대로 하나님은 이루어 주실 수가 있고 우리는 계약대로 이루어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교는 참 능치 못함이 없는 지극히 크신 능력이 내재해 있고 또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 이렇게 계약을 해 놓은 것인데 악령의 유혹으로 인해서 말로는 아는 척하고 지식하고 또 그리 된다고 인정은 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나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아주 희귀합니다.

* 마8:13 :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 요11:40 :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 막9:23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눅18:8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87111133)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뜻은, 천상 천하에 많은 피조물들이 있습니다. 영계도 수없는 피조물이 있고 이 물질계에도 수없는 피조물들이 있습니다. 피조물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아 생겨진 것들이라 그말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영광이 탁월한 복음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영광이 무한히 탁월하고 모든 피조물보다 가치가 지극히 탁월하고 피조물의 모든 능력보다 능력이 지극히 탁월하고 모든 피조물이 내게 효력을 주는 것보다 효력이 지극히 탁월한 것을 가리켜서 모든 것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자랑한다 그말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보다 복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그 둘째로는 땅위에 모든 운동들이 많지마는 그 모든 운동보다 지극히 탁월한 운동이 복음입니다. 또 땅위에 수많은 건설들이 있습니다. 민족 건설, 국가 건설, 사회 건설, 문화 건설, 과학 건설 수많은 건설들이 있지마는 그런 건설보다 무한히 탁월한 건설을 가진 것이 복음입니다. 모든 파괴, 땅위에는 수없는 파괴들이 있지마는 그 모든 파괴보다 이 복음이 파괴하는 파괴는 무한히 탁월하고 권위 있습니다. 이 복음이 파괴한 것은 다시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또 살리는 것이 많지마는 이 복음만큼 살리는 능력 가진 것이 없습니다. 죽이는 것이 많지마는 이 복음보다 죽이는 능력이 큰 것이 없습니다. 이 복음은 살리는 능력도 지극히 크고 죽이는 능력도 모든 죽음보다 능력이 지극히 큽니다.

셋째는 땅위에 모든 지식이 있으나 모든 지식보다 이 복음의 지식은 무한히 탁월합니다. 땅위에 사상이 많으나 이 복음 사상은 땅위에 있는 모든 사상보다 지극히 탁월한 사상입니다. 또 이런 저런 주의들이 있지마는, 뭐 민주주의 공산주의 유물주의 자본주의 도덕주의 별별 것들이 있지마는 통 쓸어서 모든 주의보다 이 복음은 지극히 크고 탁월한 주의입니다. 또 온갖 종교들이 있고 도덕들이 있고 정치들이 있고 과학들이 있고 철학이 있고 윤리가 있고 행복이 있고 쾌락이 있는 오만 것들이 있지마는 이 복음은 그런 것들과 비교 못할 지극히 탁월한 것입니다. 이것을 자꾸 파고 들어가서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나는 땅위에 어떤 것 하늘의 어떤 것, 어떤 종류라도 나는 거기 비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그런 모든 것에 비해서 복음은 자랑스럽게 심히 영광스럽게 권위 있게 자기는 깨닫고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옳습니다. 이 복음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땅위에 인간들이 눈이 어두워서 이런 것 저런 것 크다 하지마는 종결은 이 복음대로 우주는 다 불타 버리고 이 복음으로 건설한 것만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이 복음은 뭐인가? 이 복음은, 복음이라고 나타낸 이 복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게 하는 도리를 가르친 신구약 성경 말씀과 성령의 감화 감동을 가리켜서 복음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기 복음은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구원을 얻는 그 도리를 가르치는 신구약 성경 말씀과 성령의 감화를 가리켜서 복음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모든 믿는 자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든지 믿기만 하면 다 이 구원을 얻게 돼 있습니다. 이 구원은 순전히 공짜배기로 은혜로 주시는 구원입니다. 은혜로 주시는 구원인데 이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천하의 과학이 다 달려들어도 이 구원은 그것들이 근방에 오지도 못합니다. 이 구원으로 말미암아 모든 과학은 다 불타지고 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똑똑히 말해 놨습니다.

이 구원은 모든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만 받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든지 믿기만 하면 이 구원을 얻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안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택함을 줘서 택함을 받은 자로 창조돼 나온 자라야 되지 택함을 받지 못한 자는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으니 택함을 받아 창조된 사람이 있고, 택함 받아 창조된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될 사람이 있어 사람은 두 종류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택한 자들이 이 구원을 얻게 되는데 택한 자들도 구원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영이 구원 얻는 기본구원이요 하나는 마음의 능력과 몸의 능력이 구원 얻는 육체의 구원입니다.

이 두 가지 구원이 있는데 영의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을 하나님이 입혀서 단번에 다 구원이 됐으니 이거는 순전히 구원 얻는 방편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건설구원 곧 성화구원,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이가 있는 이 구원의 영광은 하나님의 기본구원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 또 진리와 영감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본인이 깨닫고 회개하고 행동함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가리켜서 행위구원이라 건설구원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을 지을 때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사람도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사람도 있어 나중에 공력을 불로 시험할 때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그대로 남아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은 다 불탄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주님의 피와 영감과 진리로 자기 건설하고, 행위 건설을 하고, 자기 영원한 행복을 건설한 자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과 같고 자기 생각, 자기 꾀, 자기 주장, 자기 수단 이런 모든 인본의 거짓 것 가지고 자기의 일생을 건설하고 자기를 건설하고 자기의 이력을 건설하고 자기의 행복을 건설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다 불타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영의 구원을 얻은 사람 가운데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비유한 피와 성령과 진리로 모든 것을 건설한 자는 영원한 영광으로 해와 같이 빛나게 되고, 자기 주관, 세상 법칙, 자기 꾀, 인간의 그 모든 거짓된 거 이런 것 가지고 건설한 자기 건설, 자기 행복 건설, 자기 이력 건설, 영광 건설, 쾌락 건설 모든 건설한 것은 다 불타 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택한 사람이라도 하늘나라 가기는 갑니다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땅위에서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조심해서 이 사실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으니 이 사실을 믿고 요대로 행한 자는 영원한 영광의 자기를 건설했고, 영원한 행복을 건설했고, 영원한 쾌락을 건설했고, 영원한 존귀를 환영을 건설했지마는 이 세 가지로 건설하지 아니한 자들은  다 자멸 자망을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되고 마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과 성령의 가르침은 구원의 도를 믿고 실행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이 믿음을 줘야 되지 안 주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택자 외에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이 택자들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택자들을 택해 놓으시고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오늘까지 섭리하셔서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구원 얻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택자인지 불택자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합니다. 택한 사람이면 복음을 듣고 불택자이면 복음을 듣지 않습니다. 택한 자라도 하나님이 복되게 예정했으면 그 사람이 잘 믿어서 영광의 구원을 마련하고, 하나님이 '너는 기본구원만 얻고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영원히 불 가운데서 부끄러운 구원 그런 구원을 얻으라' 정한 자는 그 구원밖에 못 얻는 것입니다.

* 고전13:8 :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고전3:12 :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86122101)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하는 그 말씀은 육체의 이스라엘, 하나님이 처음에는 육체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방인들은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그후 사도 시대에 와 가지고 이방인 구원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복음이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첫째는 육체의 이스라엘 유대인에게요, 헬라인이라 하는 것은 이방인을 대표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택한 자들에게는 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86042002)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는 이 말씀은 복음이 어떤 때나 어떤 때나 어떤 것에나 어떤 곳에서나 복음 가지고 못할 것이 없다. 복음 가지고 부족할 것이 없다 하는 그말입니다. 어떤 곳에서라도 복음으로는 다 할 수 있다. 어떤 때라도 복음만 하면 다 된다. 어떤 일이든지 물건이든지 어떤 것에 대해서라도 복음 가지고 못할 것 없다. 복음이면 다 된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자람을 느끼지 않는다 하는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820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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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도, 그때 당시에 세계에서 제일 강대국이 어떤 국인고 하니 로마 나라입니다.

또 세계의 제일 문화국이 어떤 나라냐 하면 로마 나라입니다. 뭐 헬라 그런 나라들은 말만 잴잴 말하고 그렇게 말쟁이만 되어있고 쓸 데 없는 별스러운 철학이나 그런 것들이나 말했지, 외나 권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그때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도 로마에서 입법을 제일 잘했습니다. 세계에 법을 세우기를 아주 제일 잘 세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좋은 법을 세웠기 때문에 그 법으로 다스리니까 그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강대국이 되고, 그 나라는 법을 잘 세웠기 때문에 어떤 나라의 사람이라도 가 가지고 그나라에 가서 맘대로 살 수가 있고, 그 나라의 혜택을 입을 수 있고. 그 나라를 섬길 수 있고 이라기 때문에 뭐로마 나라가 굉장히 강대했습니다. 강대국이 됐습니다. 강대국이 됐는데, 그리고 종교도 로마 나라에는 세계 종교가 다 집합해 있었습니다. 세계 종교라 하는 것이고 나라에 없는 종교가 없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종교라도 마음대로 가 가지고 전도는 할 수는 있는 나라지만 그 나라에 있는 종교를 다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거는 참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요 그거는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모든 종교들이 다 뿌리 박아가지고 이래 있는데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전도야 자유로 하기는 하지만 암만 해 봤자 먹혀 안 들어갑니다. 다 그 사람들은 그때에 세계에 제일 문화인들이요 또 법적 인물이요, 다 법적으로 돼 가지고 법적 인물들이요, 또 모든 세계 종교가 다 합했기 때문에 이 종교 저 종교에서 별스러운 말을 다 들었고, 별 주장이 다 있고, 별 뭐 소망과 도덕이 다 있기 때문에 어떤 종교를 전해 봤자 '아, 예, 수고하십니다.' 하고 그러지 그것이 그 속에 뚫고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못 했는데, 바울이 거기서 들어갈 때에. 로마에 들어가 가지고 전도를 할 때에 다른 걸 생각지 안했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는 이 하나를 굳게 잡고 그저 그 나라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권유했습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다.' 아무리 반대해도 이 말씀만 전했으면 그 속에 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찔러 뚫고 들어가 가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은 다 몰살을 시켜 죽여 버립니다.

이러니까, 로마 나라에 사도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이 주후 사백 년경. 그 때부터로마 나라에 벌써 기독교가 완전히 전성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주후 그때에한 오백 년 동안, 오백 년 될 그때 벌써 교황이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로마 나라의 국법이 기독교를 이기지 못하고 로마 나라의 황제가, 황제가 교회 황제에게 안수를 받아야 황제가 되지 그리 안 하면, 안수 못 받으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로마 나라에 세상 나라가 있었지만 그 세상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것이 교회 안에, 교회 안에 왕을 떡 세우고 '교회 안의 왕이 더 커야 되지' 해 가지고 교회 왕을 세운 것이 교황입니다. 그래 가지고로마 나라는 완전히 기독교국이 돼 가지고 모두 다 교회에서 온 통치를 다 주권하고 모든 나라를 다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권세가 있어 가지고 나가다 보니까, 너무 권세가 있다 보니까 그만 월권을 해 가지고 탈선된 점이 있었습니다.
....
그런고로 이 말씀을 능력으로 삼아 가지고 전하는 전도는 결과를 좋은 결과를 맺고, 이 말씀을 능력으로 삼아서 전하는 사람은 큰 성과를 얻게 되고 이 말씀을 능력으로 삼아서 전하지 안하고 그 외에 과학이니 뭐이니 이라는 것. 이 처음에 감리교가 와 가지고 제일 먼저 '이 전도하는 데는 병원을 차려야 되겠다.' 병원을 차리고 또 학교를 만들고 이래서 모두 다른 교파에서, 연세대학이니 지금 뭐 있지만, 처음에는 서울대학보다 연세대학이 더 세력이 있었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또 이화여대니 또 이런 무슨, 무슨, 무슨 병원, 세브란스병원이니 뭐 동산병원 이니, 이런 것 가지고, 이렇게 이런 걸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겠다 하고 그렇게 주력하는 교파는 잘못하면 복음운동은 뒤로 두고 이런운동이 해서게 되면 역효과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능치 못함이 없는 말씀이라. 이 말씀은 좌우에 이한 날선 검이라. '말씀은 죽이는 자를 살리는 생명이라' 이것을 생각하고 말씀만 가지고 주장하는 교회들은 일어났습니다.

(84051300) 3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또, 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그 말은 ' 하나님의 의를 근거로 삼고 하나님의 의를 뿌럭지로 삼은 이 복음은' 그 말입니다. 근거라. 말이나 뿌럭지라 말이나 마찬가지 말입니다. 나무는 그 뿌리에서 양분받아 가지고 자라가는 거 아닙니까? 그거 모양으로 이 복음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보다 더 좋은 게 없고 어데서 무엇을 당하든지 '이거는 복음보다 낫다' 만일 복음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은 고새는 복음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이고 낫게 여기는 그것을 자기는 자랑하고 소중히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복음보다 더 좋은 게 없다. 경험해 보니까 복음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복음이 뭐이 좋으노? 이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배경으로 근거로 뿌럭지로 삼고 있는 이 복음은 어떤 사람이든지, 천 명이든지 만 명이든지 억만 명이든지 그 수는 상관없고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능력이 됨이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믿는 사람은 몇 사람이 믿든지 믿는 그 사람은 다 구원의 큰 능력을 받게 된다. 자기가 영적 구원이나 육적 구원이나 이 세상 지위적 구원이나 권세적 구원이나 사업적 구원이나 경제적 구원이나 신체적 구원이나 뭐 말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아무거라도 믿기만 하면 그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사람에게 사람이 상상도 못 할 그런 큰 능력의 폭발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을 믿어 본 사람은 딴거 하지 안하고 이 복음만 믿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 복음을 어데서든지 복음 외에 딴게 없다. 나는 복음 외에 딴것을 취하지도 안하고 딴것을 가치로 여기지도 안하고 어데 서든지 여게는 복음보다 이게 낫다 그렇게 해 본 일이 없다. 어데서든지 이거보다 복음이 낫다, 온 천하보다 복음이 낫다, 내 생명보다도 복음이 낫다 이래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86041853 /86041960 /86042002) 5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복음이 첫째는 유대인이요 또 헬라인에게로다 하는 그 말씀은 이 복음은 첫째는 유대인들이 이 복음의 효력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이 복음의 효력을 입을 수 있다 하는 그 말씀을 한 것입니다.

복음은 어떤 것이 복음인고 하니 하나님이 사람되셔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구주가 오셔서 모든 택한 자들에 세 가지 대속을 베풀어서 아무 공로 없는 택한 자들이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공심판 대심판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로 그 대심판을 통과한, 통과케 하도록 대신해서 공로를 설정하신 그 공로를 입은 자들은 이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대로 순종하라. 그리하면 계약에 약속한 구원이 다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곧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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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

가. 복음을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기에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그 말은 복음보다 나은 것이 없다. 복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고 더 좋은 것이 없고 큰 것이 없고 복음보다 더 큰 능력 있는 것이 없고 복음과 비교해서, 복음과 비교해서 피조물 가운데에는 복음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좋지만 이것만 못하다. 아무리 그것이 좋지만 이것만 못 하다. 아무리 이것이 좋지만 저것만 못하다. 이래, 좋지만 그것보다 나은 것이 있고 또 그것보다 나은 것이 있고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게 좋지만 그거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은 나은 것이 있을 때는 그것만 못한 것은 그것은 자랑스러운 것이 되지 못하고 그것은 그 밑에 들어가는 수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이 천상천하에 하나님 외에는, 하나님은 이거 복음보다 으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비교하면 복음을 자랑스럽게 할 수 없지만, 복음이 제일 크다 이렇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 외에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 어떤 피조물 그런 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그런 것들보다 이 복음이 으뜸되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고 제일 크고 가치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그 말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잘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외에는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 중에는 복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고 복음보다 더 권세 있는 게 없고 복음보다 더 보배로운 게 없고 복음보다 사람들에게 더 필요 한 것이 없다. 복음이 제일이다. 그것을 말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사경회를 가서 참석하든지 참석하면은 그때는 아주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고 아주 복음을 제일 귀하고 보배로운 것으로 이렇게 첫째를 앉혀 놨다가 그 자리에서 어떤 세상 권세 있는 그 권세를 대하면 그만 복음은 내놓기는 부끄럽고 그 권세 있는 그것이 크고 높아서 그 권세 그것은 아주 존대를 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복음은 거게서 아주 거기에 대해서는 그 참 내놓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그렇게 수치스럽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신구약, 하나님이 사람들로 더불어 계약한 그 두 계약을 가리켜서 복음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 두 계약은 온 천하보다 귀하고 어떤 권세 있는 거보다도 귀하고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고 사람의 생명보다도 귀하고 이것은 이것과 비교할 것이, 서로 어깨 겨룸을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모든 것을 탁월한 이 가치 있는 것이며 보배로운 것이며 우리 인생과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것이며 또 능력도 아무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가진, 다시 말하면 최고라. 이렇게 최고로 나는 믿고 있다 그 말입니다. 이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그가 부끄러워하지 안하기 때문에 복음의 일군이 돼서 일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달래고 여러 가지 말을 하면서 네가 사자구덩이 들어가면 죽으니까 한 달 동안만 기도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을 할 때에 만일 그 살린다는 것이나 다리오 왕이 말하는 것이나 그 나라의 세력들이나 이런 것을 복음보다 크게 여겼더라면, 복음보다 크게 여겼더라면 사람은 큰 데에 속하는 것이 필연성입니다. 다 사대주의요. 그런데, 이 다니엘은 뭐 다리오 왕이고 온 천하가 다 날뛴다고 해도 그것보다 하나님이 계약한 이 계약은 그런 걸로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그런 능력을 가졌다, 그런 가치를 가졌다, 그 비교가 될 수 없이 아주 탁월하게 높다 이렇게 이 복음을 믿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시대를 승리했던 것입니다. 노아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복음을 어느 정도 가치 있게 보는지? 자기가 어느 정도 가치 있게 보는가 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려고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현실 줄 때에 반드시 그 현실에서 복음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때에는 그것의 가치를 복음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복음을 이것을 자기가 다른 것을 다 내 줘도,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다 내 줘도 복음을 내 주지 안한 그 사람들은 이 복음의 가치를 그런 것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자기가 신앙생활 하면서 ‘나는 이 현실에서 복음보다 이것을 크게 여겼다’ 또 ‘나는 이 시간에 이 복음과 이거와 비교할 때에 내가 어데다가 가치를 높이 두고 있느냐? 요것을 자꾸 우리가 살펴서 따져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복음보다 낮은 것은 복음 취하고 그게 손해 가도 복음을 취하지만 복음보다 더 크고 좋고 높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때는 그 사람은 복음을 버리고 그것을 붙들기 마련인 것입니다. 요 시간 자기를 생각하면서 “나는 복음을 어느 정도 가치 있게 여기나, 내가 어떨 때는 복음을 부끄러워했나, 내가 과거에 그때 이렇고 이렇고 할 때는 그게 복음을 부끄러워한 것 아닌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자꾸 고쳐 나가고 이래 하지 안하면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이 복음은’ 왜 복음을 천하에 제일로 삼느냐?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말하는 거는 뭣보다 돈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라면 돈보다 낫게 여긴다 하지만 그거 그냥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그 말은 복음은 천상천하 모든 거보다 복음은 탁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 다음으로서는 보배로운 필요를 가지고 있다. 또 능력도 그러하다.

나.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있기에

그런데,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부끄러워하지 안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 안 하는 그 이유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택한 자에게라고 이렇게 말씀하지 안하고 ‘믿는 자에게’ 했습니다. 아무리 택함을 받아도 믿지 않는 자는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자,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구원을 주신다’ 구원을 주신다 말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완성을 가지는 것이니 대속의 완성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구원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약속한 그 소망을 다 실상으로 만들어 가지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러면 우리 구원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참 오묘하게도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완성을 이뤄 놓은 건데 완성을 이루었는데, 영원히 가도 죄 없고 어데든지 언제든지 의롭고 언제든지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 되어 있고, 그러면 이보다 더 크고 보배로운 게 없습니다. 여러분들, 천상천하에 피조물 쳐 놓고 천상천하의 피조물 중에 제일 존귀한 성공과 승리와 영광과 존귀, 그러면 피조물이면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제일 일등이 되는, 제일 일등된 성공자 영광자 존귀자 권력자 부강자 모든 피조물이 다 환영하는 제일 존귀한 자 그 제일 존귀한 자가 누구입니까? 제일 존귀한 자가 누구입니까? 제일 존귀한 성공을 누가 했습니까? 예수님이 제일 존귀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떤 것이 구원인가 하면 이 제일 존귀한 그 성공을 내 것 삼는 것이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것이 성공이오. 예수님이 성공을 하셨는데 그 성공을 당신 위해 한 게 아니고 그 성공을 나를 위해 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완전 성공, 영계와 물질계의 완전 성공,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도 찬성하면서 다 만점을 찬양했고 하나님도 더 원할 것 없이 만점을 찬양했고, 또 하나님의 그 전지의 입법도 만점이라 하는 그 완전의 성공이라는 그 성공이 그것이 당신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줄라고 우리 대신 위해서 한 것인데 고것을 받아서 완전히 내 것 삼는 것이 그것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무죄 완성을 이루어 놓으신 그 무죄 완성을 내 것 만드는 것이요, 또 의의 완성,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의의 완성을 내 것 만드는 것이 구원 성공이요, 또 하나님하고 서로 내주하면서 하나님하고 영원히 떨어질 수 없이 한 덩어리가 된, 하나가 돼서 영원히 동하고 정하고 하나된 요 성공이 예수님의 대속의 성공인데 이 성공을 자기 것 만드는 것이 이것이 구원 성공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기에 늘 여러분들도 많이 들었겠지만 여기에 능력이 됨이라 하는 그 능력이라 말은 어떤 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폭발력의 힘을 가리켜서 여기에 능력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능력이라고 쓰인 이 말은 폭발 능력을 말할 때에 이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폭발력이라.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 복음은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복음의 가치가 제일 크다는 것을 자기는 인정하고 언제든지 자랑스럽게 이 복음을서 거리낌 없이 어데든지 가서 전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유대인은 유대인이요 헬라인은 바로 그 가깝게 있던 이방인을 말하는 것인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그 폭발력이 있기 때문에, 폭발력이 있기 때문에 아무데나따나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또 이 복음은 뭣이든지 어떤 입장 어떤 처지에서라도 “여게서는 복음이 이것보다 낫다. 이것보다 저게 낫다. 복음보다 권세가 있다. 복음보다 크다.” 복음보다 큰 것이 하나도 없고 복음보다 나은 게 없고 복음이 둘째로 가고 복음 위에 첫째로 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데서든지 복음이 첫째다. 그것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폭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폭발 능력이라는 것은 요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상황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이 나타나는 형편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이나마이트의 그 폭발력을 말한 것인데 여러분도 뭐 다 알기는 알겠지만, 그 남포 놓는 거, 다이나마이트 그것은 그게 폭발될 때까지는 참 보면 시원치 않습니다. 하루 종일 구멍 뚫으면 찍해야 요만큼 바위를 구멍 뚫고 다른 사람은 곡괭이로 쪼면 몇 소쿠리, 야문 돌이라도 쪼아내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요만한 구멍만 뚫습니다. 이래서 거기다가 다이나마이트를 재어놓고, 떡이라 하는 것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이래 볼끈 볼끈 다져서 구멍을 막아 놓고 여기다가 도화선이라는 그 도화선에 다가 불을 대면 픽픽픽거리면서 불이 타 들어갑니다. 픽픽픽 타 들어가는데 이 공기 없는 속이지만 댕겨 놓으면 타 들어갑니다. 픽픽 들어가다가 다이나마이트 있는데 가서 불이 닿으면 그만 꽝 합니다. 그러면 뭐 아무리 여문 바위라도 다 갈라져 버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데에는, 이렇게, 마치 깨진 그릇에 물이 새 나오듯이 질질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또 시냇물이 내려가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그저 술술 그저 설설 이렇게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이 구원 능력은 폭발과 같이 쾅! 그만 사람이 터지기 전에는, 폭발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멸시하고 천대를 하지만, 하나님의 이 구원 능력이 나타나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멸시를 하고 천대를 하고 조롱을 하지만 이 능력이 꽝! 나타나면 그만 천하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다 놀라고 다 복종을 하게 되는 그런 형태로 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1) 노아의 경우

노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다 뭐 돈 준비하고, 돈 준비, 권세 준비, 또 호의호식 준비, 안락한 가정 준비 이런 것만 다 준비하고 있는데, 지식 준비 이런 것 준비하고 있는데 노아는 그런 거는 준비 하나도 안 하고 하나님이 너 배 만들어라, 배를 만들어라 하니까 배 만드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조롱을 합니까? 쫄쫄 곯면서 그 배 만든다고 이라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영감아 그만 그 배 뭐 하려고 만들라고 그라느냐고서. ‘그만 좀 저 아들네들 보내서 돈벌이나 해서 쌀이나 팔아서 밥이나 좀 배 부르게 해 먹지 그 배는 뭐 한다고 그거 만든다고 쫄쫄 곯며 만날 그라고 앉았느냐?’ ‘하나님이 만들라 한다' `하나님이 만들라 하기는 뭐 하나님이 만들라 해, 하나님이 뭐 하려고 굶어가며 그거 만들라 해? 뭐 소용 있노, 배 그거? 뭐하려고?’ 이 조롱을 했다 그 말입니다.

조롱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홍수를 들이 내루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물이 차차 채여 올라오니까 높은 데로 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모두 다 피난 가자고서 저 높은 산만당으로 모두 피난을 가는데 이 노아의 여덟 식구는 그 밑에 물이 철렁철렁 오는 데도, 이래서 떡 이래 있으며 있는데 있고 배만 그 놈 거머쥐고 있습니다. 그라니까 아, 오라고, 거기 있다가 빠져 죽을라고 하는가, 저 영감 저거 참 미쳤어, 저거. 가족 다 죽일라고 저란다고서 어리석게 보고 자꾸 올라오라 하는데 거기 있으면 물에 죽을 것 아닌가, 그 조그만한 배 그까짓 것 가지고 뭐 어쩔거라고 그라느냐고서 이 산으로 올라오라고.

이라는데, 노아 할아버지는 이 복음의 능력을 과거에 경험해서 알았다 그거야. 이러니까, 나는 안 간다고서, 인제 물이 차여서 올라오니까 하나님께서 ‘배 속으로 들어가거라’ 배 안에 다 들어가고 인제 문을 닫았어요. 문은 닫으니까 그 근방에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 하나도 없어요. 물이 없으면 막 그 배로 달라들지만 다 피난갔기 때문에 그 근방에는 물이 들어왔으니까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전에 내가 보니까 “노아 할아버지 배를 지었네. 노아 할아버지 배를 지었네. 아라랏 산 꼭대기에서 배를 지었네” 이랬는데 그 노래가 틀렸어, 내가 들어 보니까. 이 꼭대기에서 만일 배를 지었더라면 밑에 막 물이 채여 가지고 지금 그 산망당에 올라왔는데 거기 배 한 척이 있어 보이소. 서로 탈라고 달라들면 아마 그거 타지도 못하고 다 까물러 앉을 거라. 그러니까 평지에 만든 거는 분명하다 그 말입니다.

그랬는데, 배를 떡 타고 나서 비가 그만 올 줄 알았는데 자꾸 옵니다. 자꾸 오니까 처음에는 낮은 산에 갔던 거는 물에 빠져 다 죽고 제일 높은 산에 있던 거는 있고 높은 산까지 다 물 속에 다 들어가 버리니까 이제는 그때 돈 푼 준비한 사람, 지식 준비한 사람 박사 준비 말이오 박사 준비한 사람, 돈 준비한 사람, 권세 준비한 사람, 재미 있는 참 깨소금이 흐르는 가정 준비한 사람 이 모두다 그렇게 준비한 사람 있었는데 노아 할아버지는 이거 어리석게 하나님 시키는 대로 등신같이 방주 준비만 했다 그 말입니다.

이러다가, 하나님이 그만 비를 많이 보내서 땅이 하나도 없이 전부 물속에 다 파묻히고 마니까 그때 이 준비한 사람이 다 헛일이라. 그때에 노아의 이 여덟 식구만 홍수 속에서 두렁두렁 떠다니면서 하나님의 능력의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입니다.

홍수 오기 전까지야 누가 그거 알았습니까? 홍수가 올 때도 몰랐어. 이제 높은 산만당에 사람 하나 없이 전부 다 전멸이 될 그때사 모든 인간의 준비는 다 헛일이고 방주 준비한 노아의 준비만 성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전에는 다 몰랐지만, 그때에 벌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는 그때 갑자기 나타났어. 갑자기 비가 내리고 해서 나타났어.

이번에 중간반 입학식 설교를 저를 하라 해서 제가 입학식 설교를 제가 했습니다. 제가 했는데 내가 이 다섯 가지 준비를 말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준비를 했는데 홍수가 와서 모두가 다 더부렁더부렁 떠서 다 물속에 매장해서 있으니까 이 다섯 가지 준비한 사람 중에 누가 제일 준비를 잘했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슨 준비할랍니까 하니까 전부 노아 할아버지의 자손이라. 전부 방주 준비한다 해요. 오늘도 불탈 게 그때와 꼭 같습니다.

그때 불이 척, 소돔 고모라 성에 불이 내려온 것과 마찬가지로 이 천지가 불타는 그런 불이 척 내려오면 그때 뭐 오만 것 다 요래 찌지고 요래 찌지고 요래 그리고 요래 그리고 또 박사 학위 얻을라고서 세계에 돌아다니고, 또 정권 하나 좀 더 높은 자리 올라갈라고, 요거 가정에 모든 장비에 대해서 요거 마련하고 조거 마련하고 오만 것 마련하고 짜다라 마련하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불이 턱 내려오면 다 헛일이라.

복음의 능력은 다이나마이트와 같애요. 그때 벌써 그게 꽝! 그라면 준비한 사람뿐이지 준비 안 한 사람은 그때는 소용없습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서 가운데 더부렁더부렁 가니까 그때사 산만당, 높은 산만당에 있는, 사람들이, 저 노아가 지금 저 참 구원 얻었다고서 나도 그 배속에 가면 좋겠다고서 고함을 지른다고 되겠소, 헤엄을 쳐서 되겠소? 꽝! 그라면 헛일이라. 꽝! 그라기 전에 하나님의 이 복음의 능력의 구원은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길 때 그때 준비를 해야 하지 벌써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이 보일 때는 그때는 벌써 때가 지나갔기 때문에 준비한 사람들만 얻지 다른 사람은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이나마이트 모양으로 설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설설 그래 구원하면은 모든 사람이 다 보고서 따라가서 구원 얻을 터인데 꼭 다이나마이트 모양으로 이렇게 그만 아무도 모르게, 시시하게 조롱하고 천대하고 했는데 갑자기 그만 구원이 꽝! 이래 버리고 나니까 뭐 구원 준비할 여가도 없습니다. 그 아무리 구원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할까?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 다니엘의 경우

다니엘이 “야, 한 달 동안만 너거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아라.” 다리오 왕이 자꾸 합니다. 그럴 때에 벌써 해가 기울어지기까지 그래도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도 안 나타나고 다리오 왕은 자꾸 다니엘에게 사정을 하고 다니엘은 ‘안 됩니다.’ 하고서 이렇게 신강하도록 냅두고 뭐 하나님의 도우는 힘이 조그매라도 능력이 나타나서 공중에 소리라도 ‘야, 다리오 왕아 그 다니엘에게 자꾸 조우지 말아라.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계속할라 하는데 왜 조아 쌓느냐?’ 요 말 한마디만 나와도 그거 좀 다니엘이 숨을 쉴 거라. 그런데 아무 흔적도 없습니다. 표도 없습니다. 흔적도 없고.

‘다니엘 그라면 네가 나 시키는 대로 너거 하나님께 한 달 동안만 기도하지 말라 해도 꼭 한다고 하니 할 수가 없다.’ 그래 모든 역사들을 불러서 ‘묶으라’ 묶었다 말입니다. 묶을 때 그때 능력 안 나타나. 묶어서 지금 사자구덩이 던질라고 이래 이래 하면서 던질라고 훅 던지면 그만 사자구덩이 들어가 버린다 말입니다. 이래 이래 하면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네가 그만 기도 안 한다 해라. 지금이라도 안 한다 해라.’ 그때 그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으면 좀 다니엘도 고생 덜 할 것 아니겠소? 하나님의 능력 안 나타나. 이래서 훅 던져서 사자구덩이 툭 떨어지고, 툭 떨어지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거야.

왜? 툭 떨어뜨려 놓고 난 다음에는 그만 문을 철컥 닫아 버리고 나니까 그것은 벌써 사자가 다 잡아먹었을 것이다 하고 문 털컥 닫고 저거는 뭐 잔치하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사자들 모두 입을 막고 발톱을 봉하고 해 놓으니까 다니엘을 삼키지 못하고 그 이튿날 아침에 다니엘이 살아 나오지 안했습니까? 나와서, 나오니까 그만 다니엘의 원수들은 다 기진해 버렸고 다니엘의 원수들은 다 잡아다 지금 묶어 놓고, 왕도 굴복했고 모든 전국 백성이 다니엘 앞에 딱 굴복을 다 하고 온 전국에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이 가득 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기 전에 그랬으면 좋을 것인데 왜 사자구덩이 들어가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다이나마이트의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베풀지 안하시고 그랬습니까? 왜 꼭 사자구덩이 잡아 들어가고 난 다음에사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고 그전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지요?

그래, 아직 묶어서 던진다 할 때도 다니엘이 나는 기도합니다. 했지만 아직 다니엘이 ‘예, 그라면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할라면 할 수 있는 그 여유 시간이 있을 때까지는 미결이라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그라면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그 여유 시간이 있을 때까지는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변동하지 안하고 하나님께 완전 순종을 한다 그렇게 판정지울 수는 없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자구덩이 던지기 전에는 그 사람이 나는 기도하겠다고 믿음 지켰지만 나중에 던질라 할 때 이래 막상 던질라 할 때 그때라도 “아이구, 그라면 내가 그만 항복하고 내가 그만 기도 안 하겠습니다.” 이랄란지도 모른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믿음 지키는 일이 변동될 수 없는, 이제는 완전히 믿음을 지킨 것이 다 믿음 지킨 것이 완전히 다 돼 버리고 변동할래야 변동할 수 없는 여유의 시간이 없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 버렸으니까, 던져 들어갔으니까 그다음에 문 닫아 놨으니까 변동해 봤자 바깥에 사람들은 뭐 변동하는 게 보이지 안한다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다니엘이 그 안에 사자구덩이에 들어가 버렸으니까, 사자구덩이에 들어갔으니 그다음에 다니엘이 ‘기도를 안 할 것을 기도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기도 한다는 것이 변동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그러면 다니엘이 기도하겠다는 그 믿음이 끝장나는 때가 언제가 완료가 됐고 언제 끝장났습니까 언제가 완료입니까? 언제 완료가 됐겠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 생활이 언제 완성이 됐겠습니까? 묶을 때에? 끌고 갈 때에? 사자구덩이 던질라고 얼럭얼럭해서 지금 던질라 할 때에? 언제 다시는 변동 없는 그 믿음에 완성이 됐겠습니까? 이제는 다시 변동할래야 변동할 수 없는, 여유가 없는 그때가 언제입니까? 사자구덩이 던져졌을 때라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 능력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데 그 믿는 믿음이 이제 반 믿음인지 참 믿음인지 지금 믿다가 언제 변동될란지 모른다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능력이기 때문에 그 믿음이 불완전했을 때, 믿음이 반 됐을 때에 하나님이 구원할라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반 구원할 수 있겠소 온 구원할 수 있겠소? 예? 어떻겠소? 우리 ○○ 목사님 제매. 예? 못 하겠어? 반 구원도 안 돼? 반 지금 중간쯤 믿었는데 그라면 중간쯤 좀 그렇게 믿었으니까 중간쯤 주면 좋지 안 해? 그것은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판정이 안 났기 때문에 안 믿는다 할 수도 있고 믿는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결이라. 그렇지 안해요? 미결이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 그거야. 이래서 다이나마이트의 이 구원 능력이 이것은 필연적으로 안 이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말입니다.

그러면, 이 다이나마이트가 폭발되는 거와같은 그런 형태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는가? 믿을 때에 그 능력이 구원하기 때문에 그 믿음이, 믿느냐 안 믿느냐 믿느냐 안 믿느냐 이러다가 이제 이는 확실히 믿는 것으로 결정되고 다시는 안 믿는다는 그 변동이 있을 수 없는 최종말 그때까지에 이르러서 그때까지 믿을 때에는 이제 그다음에는 믿는 것이 변동될 수 없는 때이기 때문에 믿음에 완성된 때라 그 말입니다. 고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어요?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폭발 능력이라. 왜 그렇게, 해동되듯이 그렇게 실실 구원하지 안하시고 그렇게 토막토막의 믿음을, 믿음의 대가로 믿음을 인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토막토막이 다 갑자기 폭발 모양으로 쾅! 터지고 쾅! 터지고 이렇게 구원되는가?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하시기 때문에 그 믿음에 완료되기를 기다립니다. 믿음에 완료되는 그 때가 하나님의 폭발의 구원 능력이 나타나는 때이기 때문에 그 과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완성이 되고 다시는 그 믿음이 변동될 수 없는 그때에 딱 도달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폭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안에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맛을 보지를 못해요. 그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능력이 됩니다.

(82022853)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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