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들과'
'세례들과' 세례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내가 연합해서 죽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내가 연합해서 다시 산 자되는 그게 세례입니다. 세례 받는 것은 우리는 세례를 물로 머리 위에 찍어 부어 가지고 세례를 줍니다. 침례교에서는 세례를 그래 주지 않고 사람을 물 속에 집어넣어 가지고, 안 보이도록 폭 집어넣어 가지고 다시 들어내서 그렇게 침례를 줍니다. 죽었다가 새로 살아나는 식을 하는 것이 침례식입니다. 세례라는 것은, 여기는 세례라고 번역을 했는데 또 침례하는 사람들은 침례라고 그렇게 번역을 합니다.
'세례들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내 대신 세 가지 의를 이루기 위해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내 대신 죽었으니까 내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기가 죽은 자인 것을 자꾸 인식하고 인식해서 나는 완전히 죽은 자라, 남아 있는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예수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해서 죄 짓던 것은 완전히 죽어 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의로운 자로 사는 이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세례받는 것입니다.
'세례들과' 세례는 수족이 세례 받고 눈이 세례 받고 귀가 세례 받고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받기 때문에 세례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눈이, 다시는 눈이 죄 안 짓는 데 대해서는 그 눈이 죽어서 송장이 돼 버렸으면 그 눈이 다시 죄 짓습니까? 눈이 죄 지을 수 있습니까? 송장 됐는데 죄 안 짓지요. 이제 송장 눈이 돼 가지고 죄 안 짓는 것처럼 죄 짓는 눈은 완전히 죽여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서 이제는 의롭게 사는 눈으로 사는 요 일을 평생 연습해 가지고 완전한 데 나아가거라 하는 것입니다.
'안수와'
안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가 안수하는 것은 무슨 식이냐?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그 안수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지금 시작해 놨습니다. 시작하는 것입니다. 안수 받는 것은 성부의 은혜 성자의 은혜 성령의 은혜를 내가 지금 영원히 계속 받기 시작된 그 식을 가리켜서 안수라 합니다. 안수하는 거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 위에 안수하는 것은 성부 성자의 성령의 은혜를 이제 받기로 연결됐으니 이 연결은 영원히 연결된다, 이 사실을 또 믿고 믿고 자꾸 믿어야 합니다. 안수 받았지마는 '하나님이 내게 축복해 주시나?' 벌써 받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그 무한한 은혜를 받고 받고 받고 받고 하면 얼마든지 받아서 충만해지는데 그 은혜를 받지 않으니 '온전한 데 나아가라' 받고 받아서 완전히 다 받는 데까지 나아가라 그말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은, 내가 살아서 오늘 하루 행동합니다. 하루 살아서 행동하는 그 행동은 죽었습니다. 내가 하루 살아서 이런 행동이든지 저런 행동이든지 행동한 것은, 행동한 것은 그게 남아 있는 줄 알아도 행동한 것은 벌써 죽어 지나가 버렸습니다. 죽어 버렸습니다. 죽었는데, 오늘 하루 행동한 그 행동이 부활할 때에 무슨 효력이 있느냐, 부활할 때에 영향이 있느냐, 부활할 때에 그때 남아 있느냐, 부활에는 상관이 없고 오늘 하루 종일 산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 버리고 부활에는 상관이 없느냐 요것을 깨달아서,
'죽은 자의 부활과' 나는 오늘 산다, 하루 산다, 하루 사는 것은 이것으로서 끝나서, 하루 살면 하루 사는 것은 이것은 끝나 버린다, 끝나 버리면 내가 어떤 왕노릇을 했든지 사장노릇을 했든지, 어떤 미인 미남 노릇을 했든지, 어떤 향락자 행동을 했든지, 유명한 사람의 행동을 했든지 오늘 하루 산 이것은 이 사는 것으로 끝나 죽고 만다,
끝나 죽고 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대속의 구원의 길이 있으니 오늘 하루 사는 이 사는 생애는 전부 죽은 가운데에서 부활하는 이 부활을 위해서, 다른 사람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사장노릇 하는 것 같고 뭐 관직노릇 하는 거 같고 행정 하는 거 같고 목회 하는 거 같고 하지마는 내가 하루 사는 이 생활이 전부 부활을 위해서 준비해서, 다른 사람 보기에는 꼭 같이 사는 것 같지마는 전부 부활을 위해서 완전히 하루 살고 보니까 하루 산 것이 껍데기는 죽어 없어져 버리고 그 다음에 알맹이를 보니까 알맹이 그것이 부활에 가서 딱 딱 다 채여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이것을 네가 생각해서 이 일이 실수되지 않고 손해가지 않도록 완전한 데 나아가라 하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심판에 관한'
'영원한 심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다 판단을 받는다, 다 검사를 받는다, 하나님 앞에 판단 검사를 받으면 그 판단 검사 그것이 백 년 지나가면 변해지는가, 십 년 지나가면 변해지는가, 이 세상 법에서는 판단해도 그것이 몇 해 시효가 지나가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공산주의의 재판에서 판단받은 것은 민주주의로 넘어와 버리면 없습니다.
영원한 심판이라 말은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은 것은 억만 년 가도 변함이 없고, 판단받아 가지고 그때 이렇다 저렇다 판결을 받은 그 판결은 영원 계속한다, 영원 계속한다, 그 판결은 영원히 계속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영원한 심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여기 대한 교훈을, 이 중대한 교훈을 내가 시작했다가 또 버리고 또 새로 시작하고 새로 시작하고 그래 하지 말고, 이제 다시 터를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도록까지 힘써라, 그러면, 주일을 지켜라, 연보를 해라, 또 기도를 해라 하는 그런 교훈들이 수백도 수천도 넘습니다. 넘지마는, 그물이 천고라도 벼릿줄은 하나인 것처럼 그런 교훈이 천도 넘지마는 그 교훈은 이 여섯 버릿줄 위에 속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뭐인가? 죽은 행실을 회개하려고 기도하는 것이고 안 죽으려고 회개하는 것이고 산 행실 하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 열심히 보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주일을 열심히 지키고 기도하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고 부활에 연합하는 '세례들과' 세례들에 대해서, 또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것은 주님이 내게 축복의 안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 안수로 말미암아 계속되는 이 축복을 받고 받고 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주일을 지키고 전도를 하고 하는 것은 좋은 부활을 받기 위해서, '죽은 자의 부활과' 또 하나님의 심판에 너는 옳다 칭찬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터 여섯 가지를 다시 닦지 말고 이 터 여섯 가지 위에 네가 건설해라, 건설하는 것은 성경 읽어야 건설이 되고, 기도해야 건설되고, 전도해야 건설되고, 주일 지켜야 건설되고, 연보해야 건설되고 이렇게 건설되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이 여섯 가지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새로 시작하지 말고 이 시작한 것을 네가 계속하도록 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86060101/0102)
'터를 다시 닦지 말고'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말은, 기본 명령은 언제든지 그 명령을 지키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자꾸 흔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건설 명령은 기본 명령 위에 하나님께서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자꾸 바꾸어 주시는 그것이 우리에게, 건설 명령에 대해서는 요것도 순종해야 되고 또 조것 순종할 때 있고 또 새로 되돌아와서 그것을 또 순종해야 될 때 있고 평생 자기가 생각지 않던 그런 순종을 해야 될 그런 것도 있고 그렇게 바꾸어 갑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에 기초는 한 번 닦아 놓으면 그 기초는 언제든지 요동치 않고, 그 기초 위에 건축할 때에는 이런 재료 저런 재료를 가지고 그렇게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다 구비 시켜서 건축해야 건축이 되는 거와 같습니다.
(85012220) 9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이제 구원을 실제로 이루어야 되는데 고 다음에 보면 `터를 다시 닦지 말아라, 새로 터를 닦지 말아라' 한번 터를 닦았으면 그 터 위에다가 죽는 날까지 자꾸 건축을 해야 되지 또 터를 닦아 가지고 건축 시작했다가 또 집어치우고 또 새고 터 닦고 또 얼마동안 그렇게 신앙 건설을 해 나가다가 다시 또 중단하고 또 새로 터를 닦고, 이런 집 짓는 사람들은 터를 닦아 놓고 집을 짓다가 일 년 뒤에도 또 지을 수가 있고 몇 달 뒤에도 지을 수가 있고 이렇지만 신앙 걸음이라는 것은 어제도 비유하기를 자전차 걸음이라고 말한 거와같이 신앙은 계속하면 계속이 되는 것이고 신앙을 중지했다가 그렇게 또 그대로 계속은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새로 터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자기는 새벽 기도를 이제부터는 시작하겠다 했으면 새벽 기도를 시작했으면 새벽 기도를 계속해야 되지 이 새벽 기도를 시작하다가 또 새벽 기도를 치워 버리고 또 나오고 싶으면 얼마 나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새벽 기도의 그 터를 자꾸 또 새로 닦고 새로 닦고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86052610) 5 / (86062050) 5
'터를 다시 닦지 말고'
터를 닦지 말아라 하는 그것은 기본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을 다시 말하지 말고, 기본구원은 이미 얻었기 때문에 거기서 건설구원을 이루라 하는 그것입니다.
(85010713) 2
'터를 다시 닦지 말고'
그런고로 히브리서 6장에 보면 다시 터를 닦지 말고 다시 이 구원에 대해서 다시 터를 닦지 말고 이제는 그 위에 건설이나 부지런히 해라 하는 그 말은 터를 닦지 말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기본구원을 얻었다 안 얻었나 이것만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기본구원을 잊어버릴 때는 사람이 변해버립니다. 기본구원을 잊어버리면 순전히 안 믿는 사람과 꼭같은 사람이 돼버리고 맙니다. 이 기본구원을 자기가 생각하고 연구해서 기본구원을 자기가 받은 자, 기본구원을 얻은 자기인 것을 인정하고 이 기본구원 얻은 자로 살라고 할 때에 자기 속에서는 빛이 나오게 됩니다.
(8006290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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