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4:00
(홍해바다)
1.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인간이 볼 때는 그 길로 가면 안 될 것 같고, 쫓아가면 죽일 것 같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안될 것 같았는데 되게 하시고 죽일 것 같았는데 죽이지 못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었다'고 모든 사람이 공인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합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게 하기 위하여 고난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군병들이 등을 대고 돌고 있으니 심히 위급하고 다급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을 했으나 심히 다급하니 하나님에게 더 달라붙고 의지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오는 고난과 역경은 주님을 더 의지하고 달라붙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솜씨를 보자고 기뻐했으나 신앙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과 원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대로 의지하고, 바라볼 대로 바라보고 순종의 도수가 차야 모세와 같은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위 환경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인본주의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아를 발견하여 고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여 그 도수가 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인도를 배반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얼마든지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권능이 없어서 어려움이 심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자만이 이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갔고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전부 몰사했습니다(히11:29).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인 사실을 의지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전부 죽었다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했으니 무시한 그것이 시험한 것입니다. 물이 합해지려면 합해져 보아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보자고 하는 시험입니다.
* 히11:29 :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주해공과 - 강해자료)
출14:00
하나님이 나에게 대면할 때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시간, 이 장소, 이 당한 현실, 이 형편에서, 주님이 명령을 가지고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명령을 가지고 찾아오셨는데, 이 명령을 자기가 잊어버리면, 주님은 찾아왔으나 자기에게는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 명령을 잘못 찾으면, 찾아오신 주님을 자기가 잘못 상대하게 되고, 잘못 대면하게 됩니다. 그때, 명령을 바로 찾았으면 주님을 바로 만난 것입니다. 그 명령을 찾아서 바로 행했으면 그것이 주님을 영접한 것이고, 주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지켜 행하면 너 와 같이 하겠다고 계약 맺은 계약의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28: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요, 창조주 하나님이요, 모든 만물을 홀로 주권하시는 주님이시요, 만왕의 왕 이시요, 만주의 주이시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전능자입니다.
홍해 바다에서 애굽 병정들은 뒤에서 추격해 오고 있는 그때, 백성들은 모두 놀라서 죽겠다고 야단인데, 모세는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이 시간 내가 당신의 명령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묻습니다. '내가 그전에 말했는데 그 명령 잊었느냐? 나한테 뭐 물을 게 아니라 내가 너희한테 그전에 말하던 대로 그 명령을 지켜라.'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 바다를 이렇게 가리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리 건너가라 해라.' 주님이 그렇게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 바다를 가리키면서 '이리 건너가라.' 고 말합니다. 그 때, 바다 물이 짝 갈라져서 바다가 육지같이 되고, 그 모든 물은 산같이 양쪽으로 쌓여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하나님이 하니까, 그들은 육지 속으로 건너갑니다.
건너가면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있고, 참 고통으로 죽을 지경으로 건너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 '요 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이 시간 우리를 건너가라고 하시니, 요것이 주의 명령이라 말입니다. '바다로 건너가라' 하는 그게 명령입니다. 또 모세에게는 '지팡이로 가리키라' 하는 그게 명령입니다. 가리키라 명령할 때 가리키니 바다가 갈라졌고, 또 건너가라 할 때에 건너가니, 그 명령 그대로 지키니까 육지같이 바다를 건넜던 것입니다.
요 믿음 가진 사람들은, '아, 주님이 이렇게 요 현재에 우리와 같이 하시고, 계약하신 대로 이 바다도 갈라지게 하셔서 양쪽에 큰 벽이 되어 가지고 육지로 건너게 하시는 구나' 감사해서 기뻐서 더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즐거워서, '참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니 문제가 뭐냐? 애굽 사람들이 암만 추격해 온다 해도 무슨 문제가 있느냐?' 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들은 '아이고, 물이 이래 가지고 쌓여 있을 리가 없는데, 가다가 이 물이 탁 엎어지면 우리는 죽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고통으로 건너갑니다. 그들이 다 건너가자, 하나님은 다시 합하여 애굽 사람들을 홍해 속에 매장시켜 버립니다.
(85012700) 9
출14:00
<표적 - 실상>
성경에 기록된 어떤 표적이든지 그 표적은 사람들이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이며 또 표적에 실상이 되는 그것을 잘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하는 그 외부의 것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표시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모든 어떤 그 표적이든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것을 겉에 나타난 그 표적 그것만을 그것만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에게는 그런 능력 있다 하는 것을 그 사람이 아는데 끝날 것이고. 또 표적으로 이루어진 일을 보고 기뻐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 일이 반드시 보이는 것은 앞으로 보이지 않도록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나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 일이 없어질 것이니까 그의 받은 은혜나 구원이 다 그것이 헛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표적에 대해서는 이루어진 그 일 보다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것이 중요하고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크다고 생각하는 거 보다도 그 표적이 인간이 알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 진짜 알맹이 보배로운 것이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해 주신 그 알맹이를 그 속에 있는 실상을 자기가 보고 깨달아 얻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표적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를 건너 간 것은 표적입니다. 그 표적에 대해서 '아 하나님이 홍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도록 하셨다 그런 큰 능력에 일이 나타났다'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을 보고 그것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완전한 외식자입니다. 그에게는 홍해 바다를 갈라트린 그 표적을 표적이 나타내고 있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실상은 그 사람이 갖지를 못하고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 그보다는 좀 나은 '하나님은 홍해 바다도 갈라트릴 수가 있다'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것으로 끝난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도 하나의 중간 외식으로서 그 실상의 구원은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실상은 무엇을 가르치시는고 하니 우리가 신앙 걸음을 걸어갈 때에 앞뒤에 그 어려움이 우리에게 봉착 되서 어떤 상대로 인해서 어려워지는 일들도 있겠고 또 자신에 무슨 무능으로나 또 고장으로 어려워지는 그런 일들도 있겠고 또 그 사건 자체가 어려워서 어려운 그런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애굽에서 추격하고 그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는 그 어려움 그 어려움 같은 어떤 어려움이라도 주를 바라고 의지하고 그에게 따라서 가는 걸음에는 앞뒤 좌우에 어떤 그 어려움이 있고 자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고 또 그 사건 자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고 그에게 따라서 가는 그 신앙 걸음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만 되지 하나도 방해할 것이 없다 하는 이 사실이 그 표적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가진 자는 그가 세상을 평안히 이길 수 있을 것이고 사망이나 악령이나 땅위에 어떤 것이라도 그는 다 낙관하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다 이기고 통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모든 표적 그것을 전에는 기적이라고 번역을 했었는데 그 뒤에 믿음의 사람들이 새로 번역하는 데에 표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대단히 잘된 그 번역입니다. 이적은 그 상태를 말한 것이요 표적으로 번역한 것은 그것에 그 계시 목적이 무엇이며 그 계시의 내용이 우리가 받을 것들이 그 실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서 번역된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믿음의 사람이 고것은 번역을 한 것인 줄 압니다.
(8505190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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