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1:7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이 말씀은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바라보기에 넉넉한 자야. 마음을 털어놓고 온갖 정성을 쏟아 바칠 자야'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믿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의 모든 정성을 다른 것에게 쏟아 놓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외식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5장 7절 이하에 보면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들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너의 양떼를 먹이는 곳이라'는 말은 '주님의 먹이시는 양떼, 주님의 일하시는 데'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동무 양떼 곁에 있다'고 하는 말은 어떤 말인가? 주님 없이 혼자 있는 것. 주님이 동행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서 일하는 것. 주님이 함께 해 주지 아니하시는데 혼자서 기도하는 것, 이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동행하여 주지 아니하시는 일은 실패입니다. 기독교 사업주의, 자기 혼자서 하는 일, 이것은 결과에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얼굴을 가리운 자처럼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자기에게 실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권세가 없어도 배경이 없어도 염려 없이 시작해야 합니다. 반드시 성사가 되고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공연히 동무 양떼 곁에서 수치만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하지만 자신이 능히 할 수가 있는 일이라도 주님이 같이 하지 아니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성도의 처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을 거울로 삼아서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과 항상 의논하고 주님과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새 믿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의 이해 타산으로 해 가지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주의 일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유익이 있으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없고 손해가 되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름만 믿는 사람이요. 실상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자기 혼자서 믿는 사람이지 주님이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주님은 자기의 전부를 기울이는 것을 원하십니다. 자기의 정성을 다 쏟아 기울이는 것을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그래서 누가복음 21장 1절 이하에 보면 '부자의 많은 돈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가난한 과부의 엽전 두개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런 분이시니 우리가 우리 혼자서 동하고 정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주님이 무엇을 구경시켜 주시면 구경하고 주님을 받들고 모시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것을 궁구하여 찾아서 주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주님의 손에 겸손하게 붙들려서 주님의 인도대로 따라갈 것 뿐이요. 주님께 무조건 순종할 것뿐입니다.
그러면 죄는 어떤 것인가?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도 순종함에 부족한 것도 죄인데 죄값은 사망인 것입니다. 인류 시조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아담 이후 근 육천여년 동안 인류에게 따라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어긴, 곧 선악과 열매, 한 조각을 먹고 이런 큰 형벌을 당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눈이 어두워서 속고 있습니다. 인류 시조 아담이 선악과 열매를 따서 먹은 죄값이니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한 성구를 어긴 죄값이나 같습니다.
'오정에 양떼를 쉬게 하는 것이라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인고 하니, 오정 곧 한낮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양이 상하기 때문에 양으로 하여금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숲 속에 몰아 넣어 가지고 쉬게 하는데, 이 '오정'은 세상이 강한 세력을 가지고 박해하는 그런 때를 말합니다. 이때에 사랑하는 자는 세상 권세에게 아부하지 않고 숲 속으로 몰아 넣어서 상하지 않게 하신다. 감옥이나 병상이나 토굴 속으로 몰아 넣으신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쉬면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오정에 양떼를 숲 속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환난 때에 주님은 사랑하는 성도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면, 감옥이라도 겟세마네 동산이라도, 골고다 언덕이라도, 사형장이라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곳이 주님과 보다 더 깊은 교제를 하는 곳입니다.
(주해공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은 환난은 성도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환난이 삼킬 것이니 지상에 있는 것을 좋은 것인 줄 알고 사귀었다가 더러워진 것밖에 없는 것을 깨달은 자와 주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할 것을 믿는 자, 예루살렘 여자여 내가 일광에 쬐였으나 업신여기지 말라. 내게 의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이는 내 전부를 맡길 만 하고 의지 할만 하고 바라볼 만한 인격자이며 나는 행동으로 사랑하지 않고 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
'양떼 먹이는 곳'
주가 일하시는 일에는 내가 가지 않고 당신이 일할 때 같이 해야 할 터인데 동무 양떼는 주가 일하지 않는 곳이니 주님이 동행하지 않는 일에 참가한 것. 주는 하든지 말든지 내가 일하면서 열심 있는 자는 합당치 않습니다. 주의 뜻이 어디 있는가 살피는 자가 성도입니다. 주가 하시는 곳에 따라가서 구경하고 보는 것이니 주님이 동행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지 살펴라. 실패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오정'
오정은 양떼 먹일 때 태양에 상치 않게 쉬나니 그때는 사랑하는 자와 같이 사귈 수 있고 정오는 죄악이 극도로 올라갈 때이니 환난의 때입니다. '숲 속에' 옥중에 들어갈 때 주와 사귀나니 양을 먹일 때는 따라가서 구경만 하고 환난 때에 주의 사랑을 받습니다.
(5311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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