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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성경:19시편001:0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여기 시냇가라 말은 관수의 언덕이라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랑둑이라 말입니다. 거기다가 심은 나무라. 관수하는 언덕에 나무를 심어 놓으니까 이 나무는 때를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러면 앞에서 말한 3가지 순종하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말한 겁니다.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제가 제 힘으로 심겨집니까 주인이 심습니까? 주인이 심습니다. 제가 심은 게 아니라 주인이 심었습니다. 이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시냇가에 심는다 했는데 시냇가에 심어 놓으니까 이거는 가물어도 좋고 장마들어도 좋고 이제 그 시냇가에다 딱 심어 놓으니까, 이거는 전쟁이 나도 좋고, 평안해도 좋고, 흉년이 들어도 좋고, 또 병이 들어도 좋고, 이래도 저래도 뭐입니까? 뭐합니까? 과실 맺어. 이래도 저래도 과실 맺어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시절이란 말은 때라는 말입니다. 과실을 맺으며 라는 말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입니다. 여기 과실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되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되는 성화를 과실이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에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이를 깨끗게 하시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 과실도 자체가 그리스도화되는 걸 말합니다. 여기 '과실을 맺었다' 하는 것을 선한 행위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선한 행위는 과실이 아닙니다. 선한 행위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되는 거 성화되는 그것을 과실이라고 합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도다'
요것은 비유인데 그 잎사귀는 뭣을 가리켜 한 것인고 하니 그 사람의 그 생활이 항상 청청하다, 그 사람의 생활이 항상 산 생활 한다는 말입니다. 산 생활이 뭐입니까? 영감과 진리와 피의 은혜대로 사는 것이 산 생활 아닙니까?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산 생활 한다. '마르지 아니함 같도다'

* 요15:2 :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2>

(89031053)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 말은 이 믿음 생활 의인의 생활을 하는 그것이 의인의 생활 할라 하니까 그 일이 척척 잘돼 나가고 죄지을라 하니까 죄를 짓지 못하도록 딱딱 막히고 방해가 돼 가지고 죄를 못 짓게 된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 사람의 행사가 형통하게 된다. 이해가 됩니까?

시냇가에 심으니까 자꾸 열매가 맺지 잎사귀는 청청하지 이러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해집니다. 어디다가 심어 놓으면 그렇습니까? 시냇가입니다. 시냇가는 환난이 와도 결실, 평안이 와도 결실, 병이 와도 결실, 전부가 이래도 성화 저래도 성화 자꾸 성화만 됩니다. 그 시냇가가 뭐인가? 시냇가 그것이 곧 주님이십니다. 주님이시라. 시냇가에 심었다 말은 그렇게 세 가지 함으로 주님하고 자기하고 딱 들어붙었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제 뿌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이랬어.

시냇가에 심은 것은 가물든지 비오든지 그 나무를 가장 잘 해주어서 열매 잘 맺게 하는 것 마찬가지로 하나님게서 세상에 이런 저런 형편 사정 뭐 천 가지 만 가지 별별 형편이 있었는데 무슨 형편이든지 다 좋게 하십니다. 무슨 형편이든지 그 형편을 통해서 자신이 성화됩니다.

세 가지 순종하니까 넷째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 줍니다.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니까 '때를 따라 열매맺는다' '때를 따라서 열매를 맺는다' '시절을 따라서' 그말은 시절이라 말은 때라 말이나 한가지라. '시절 따라서 열매 맺는다' 이러나 저러나 무슨 일이든지 자꾸 성화입니다. 이래도 성화 저래도 성화 이래도 성화 저래도 성화 성화입니다. 하나님하고 연결이 딱 돼 놨으니까. 또 성화만 됩니까?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도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하는 그말은 그러면 그 모든 생활이 청청한 생활을 한다. 청청하다? 산 생활이라 말이오. 전부 산 생활 해.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전부 산 생활 해요.

* 골2:7 : 그 안에 뿌리를박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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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이것은 비유인데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가물어도 장마가 져도 언제든지 그 나무와는 상관이 없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그렇게 청청하다는 말입니다. 여기 시냇가라 하는 것은 일반 냇가를 말한 게 아닙니다. 냇가는 비가 많이 와서 장마 질 때 홍수 내려오면 전부 나무 다 떠내려가 버리고 맙니다. 여기 시냇가라 하는 것은 사람이 물을 대려고 보를 막아 관수를 한 봇도랑을 말합니다. 봇도랑은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논임자들이 와 가지고 물을 에워 버려서 비 올 때는 깊은 도랑에 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암만 비가 많이 와도 물손에 받치지 안합니다. 또 가물 때는 진뜩 물을 실으니까 또 문제가 없습니다. 그걸 가리켜 말합니다. 이제 이렇게 하는 사람은 모든 게 형통해진다 말이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어떤 형편을 당할 때마다 성공한다 말이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하는 것은 뭐 어떤 때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매사에 다 성공되는 것을 가리켜서 '시절을 좇아 과실 맺는다' 과실 맺는다는 말은 좋은 결과를 맺는 거 아닙니까? 좋은 결과 맺는 것이니까 성공하는 것입니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잎사귀가' 그 모든 행동이 언제든지 피곤치 안하고 언제든지 청청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피곤하고 모두 되는 것은 그 속에 그만 죄가 들어서 근심이 되고 걱정이 되고 그리되면 용기 낼 인간이 없습니다. 속에 평안하고 기쁘고 아무 염려되는 일이 없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형통해지면 그 생활이 아주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잎사귀 모양으로 항상 청청하고 또 이들이들하게 자랍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러니까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전부 다 형통해집니다.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88081953)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 모든 일이 형통하다 하는 것은 도적질해도 형통하고, 사기 협잡도 형통하고 또 뭐 그런 모든 죄 짓는 것도 형통하다 그 말이 아니고, 그가 어떤 칼날 앞에서라도, '사자 구덩이 집어넣는다. 너 함부로 기도 하지 말라' 하는 거기에 형통이라.  '아. 나는 기도하는 것은 변동할 수 없습니다.' 죽 통과하니까 '사자 구덩이에 집어넣었는데, 그 권능이 사자 구덩이를 툭 치고 나와 버리니까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놀랬습니다. 불구덩이에 집어넣었지만 이제 '나는 우상에 절 안 할 줄 아십시오. 나는 다른 신에게 절을 하지 안할 줄 왕은 아십시오.' 요렇게 딱 말했을 때에 고만 관통을 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 가운데 한 번 들어갔다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만 '이 사람들 섬기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누구든지 해하는 말 했으면 그는 사형을 한다.' 이렇게까지 다 확 변해졌습니다.

(85022030) 9


'시냇가에 심은 나무'
그러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됩니다. 요 네째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이제 그러니까 그만 자신이 깨끗해져서, 자신이 뭐 때문에 깨끗해져? 하나님으로 깨끗해졌고 하나님과 연결돼 깨끗해졌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든든하다 그말이오. 자신이 깨끗해져 자신이 용기가 있어야 되고 용감이 있어야 됩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다 이래 이깁니다. 나라서 말하는데 그 나라를 어찌 개인이 항거하겠습니까? 온 교파가 말하는데 고 그 교파를 항거해서 싸우겠습니까? 그 속에 자꾸 불이 나온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 연결 돼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더 참을 잡았고 더 옳고 바른 걸 잡았으니까 그 삐뚤어진 것이 아무리 커 봤자 벌써 깔본다 그말이오. 아무리 말해 봤자 깔 보고 말하고 보니까 자꾸 그것이 양식 밖에 안 돼. 그 삐뚤어진 걸 말하니까 나는 더 새로와져서 더 옳게 바른 것이 더 발라져야 되고 더 주장해야 되고, 무신론을 주장하니까 나는 하나님 계시는 걸 유신론을 더 강하게 주장이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네째가 자기가 깨끗해지는 것 자기가 깨끗해지고 새로와집니다.

깨끗해지고 새로와지니까, 그 다음에 다섯째는 뭐이냐? 다섯째는 이제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인데 복이 와 가지고 그의 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히 보여진다 그말이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하는. 그것은 자기 그 인격이 말이요 인격이 그리 됩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라고 난 다음에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 사람 하는 일을 오데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술술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는 것이 그게 보 여잔다 그말이오. 자기가 겨울에 온상을 해 놓고 이걸 따시게 하는 그거 와 봄이 돌아오면 온상한 것도 아닌데 모두 다 이게 봄이 돌아오니까, 하나님의 역사로서 따뜻한 봄이 돌아오니까 모든 것이 속잎이 나오고 그 모든 것이 다 살아나서 생기를 얻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고 우리가 볼 때에 '아, 저 사람의 하는 일은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다. 저 사람은 되기는 잘됐지만 하나님이 복을 줘서 잘된 게 아니라 지금 제힘과 인간의 힘 가지고 빠당빠당해서 저거와같이 하고 있다. 그렇지만 뿌리가 없기 때문에 그까짓 것 마릅니다. 저거는 얼마 안 가서 마른다. 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에 저 일은 아무래도 망칠라 하면 더 강성되고 더 흥왕되지 상해되지를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그만 복 받은 사람이다. 복 받은 물건이다, 복 받은 일이다, 복 받은 농사다, 복 받은 토지다, 복 받은 나라다. 뭐 이것이 복으로 가지고 모든 것을 한번 심사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84051520)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3절에, 시편 1편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위에 '악인의 꾀를 좋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형통하다 그래 말했습니다. 그러면 요 시냇가에 심었다는 것은 이것은 비유인데.
시냇가에 심으니까 가물든지 뭐 장마가 지든지 문제가 없습니다. 가물면 물 대 주고 또 장마 지면 물 빼서 배수해 주고 이라니까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만 모든 게 다 형통하다.

우리가 형통해지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형통해지는가? 첫째는 창조주요 대주재시요 조물주이신 이 하나님과의 대립이 안 돼야 됩니다. 대립이 되면 멸망받습니다. 창조주. 자존주, 대주재,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지극히 작은 것까지 하나 하나를 다 주권으로 섭리하시는 이분이 뭐 전부 다 하고 있는데. 이분의 손이 떨어지면 풀 한 포기도 그 시간부터 시들어 죽게 되는 것이지, 뭐 버러지 한 마리도 죽게 되는 것이지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권하고 계시는 이분과 첫째는 대립이 되지 안하고 이 분의 그 은택을 입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해지는 데에는 세 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사이가 벌어지지 안하고 하나님이 만족하고 좋아해서 하나님이 저에게 모든 것을 도와 주고자 하시고 도와 주실 수 있는 그 사람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고게 제일 중요하요. 고게 제일 중요하고,
둘째로 중요한 것은 뭐이겠습니까? 둘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받아 가지고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실 때에 그 모든 걸 받아 가지고 악용하지 안하고 남용하지 안하고 받은 거 가지고 저에게도 첫째는 복이 돼야 되겠고, 제게 복이 돼야 되겠고, 다음에는 모든 사람에게도 복이 돼야 되겠고 또 하나님도 기쁨이 돼야 되겠고, 달라고 해서 주기는 줬는데 줘 놓으면 이게 오히려, 아이들에게 불 가에 화약 주면 화약 가지고 저 타죽는 것 마찬가지로 이렇게 되면 안 될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둘째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아서 잘 감당할 수 있는, 자체가 성화돼야 되겠다 그 말이오. 자체가 변화돼서 성화가 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체가 변화가 돼야 되겠고.

또 하나는 뭐이겠습니까? 하나는 모든 피조물들이 다 좋아할 수 있고 모 피조물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교회라고 하는 것은 만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해 주는 것이 교회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85062630) 9


'저는'
“저는” 하는 것은 1절로부터 2절에 기록된 대로 이대로 사는 사람은 하는 말입니다. 1절로부터 2절에 기록한 그대로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가물든지 장마가 지든지 상관없이 열매 맺을 때에 열매 맺고, 잎이 필 때에 잎이 펴고, 자랄 때에 자라고, 잎 펼 때에 잎이 안 펴도 사고, 또 열매 맺을 때 열매가 안 맺어도 사고, 또 자랄 때에 자라지 안해도 사고, 열매가 익을 때에 익지 안하고 기한 전에 떨어져도 사고 이런데 그런 사고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87092110) 4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
이것은 순전히 객관 은혜라 하는 것을 여게 기록을 했습니다. 나무가 뭐 시냇가에 심어지고 싶다고 제가 시냇가에 심어지며 또 제가 시냇가를 찾아가서 그런 것 아닙니다. 시냇가에 심어진 것도 주인이 시냇가에 심으니까 심어졌지 그것을 돌 위에 심으면 돌 위에 심겨집니다. 제까짓 게 아무 권리가 없습니다.

과실나무는 우리 성도를 비유한 것인데 성도 저는 이런 것 저런 것 아무 ‘내가 복있는 입장에, 복있는 처지에, 복있는 사업을, 복있는 직장을, 복있는 환경을, 복있는 결혼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지마는 그거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요거 알아야 됩니다.

나무는 너는 ‘내가 어데 심기고 싶다’ 하는 권리가 없어. 너는 권리가 없고 주인이 물 속에 심으면 너는 물 속에 심어져야 되고, 너는 또 빠짝 마른 데 심어 가지고 말라 죽도록 그래 심으면 거기 심겨져야 되고, 너는 돌 위에 심겨져서 낼낼하이 하다가 나중에 그만 망하고 말도록 그라면 그리 되는 거고, 또, 시냇가에 심는다 말은 봇둥천에 심는다 그 말이요, 봇둥천. 물 막아서 논에 물 대는 보 알아요? 이 도시 사람은 모를 거라. 인제 말이 이 사투리가 돼 놓으니까 그런 모양이라.

보라는 것은 이 물을 막아 가지고서 관수를 해서 도랑을 쳐 가지고 토지 있는 데 물을 대는 그런 봇도랑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여게 시냇가라 하는데, 도랑가에 심는다는 시냇가라 하는 이 시내가 냇물가에가 아니고 이 뜻이 관수로 한 그 둥천가라 그 말입니다. 봇둥천가라 하는 그런 뜻을 여게 가지고 있습니다.

과실은 제가 맺는 거 같지마는 땅에 있는 지기가 좋아야 되고, 또 이 태양빛이 잘 쪼여야 되고, 통풍도 잘 되야 되고, 제가 아닌 모든 객관의 그 조건이 좋아야 돼지지 조건 안 좋으면 저는 아무 소용 없어. 이게 전부 객관 은혜라 말이오. 주관 은혜 아니고 객관 은혜라.

객관의 은혜인데 그러면 객관의 은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일 없으니까 가만히 있을까? 네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그거는 객관 은혜이기 때문에 네가 잘될라고, 복될라고, 뭐 부자될라고, 권세 있을라고, 영광스러울라고, 존귀할라고, 평안할라고 그런 것은 네가 할 것 아니라.

네가 할 일은 따로 있어. 네 할 일은  1절로 2절에 그거 네가 할 일이라.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고, 그거 자기 입장과 처지와 형편이 복되고 화되고 또 자기가 자꾸 모든 일에서 성과를 거두고 모든 일에 자꾸 실패가 되어지고 자기 모든 일이 형통해지고 불통해지고 하는 그것은 순전히 객관 은혜다.

네가 할 일을 네가 해야지 네가 할 일은 네가 하지 안하고 네가 못 할 일을 자꾸 네가 하니까. 제가 못 할 일은 전부 욕심을 품어 가지고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복있는 자는 악인의 꾀 좇지 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것이 저 할 일입니다.

(87092330) 4


'저는'
이 다섯 가지를 한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그만 그 주위, 환경, 형편, 사정, 처지, 현실, 분위기, 전부를 하나님께서 마구 좋도록 만든다 말이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시냇가에 심었다 요 비유는 냇가에 심었다 말이 아니고 요 시내는 냇물을 보를 막아 가지고서 토지에 댈라고 봇도랑 만들어 놓은 봇도랑 봇둥천, 봇도랑 둥천을 가리켜서 여게 시내라 요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 시내라 하는 요 시내는 관수의 언덕이라, 물을 댈라고 만들어 놓은 그 봇둥천이라 그런 뜻입니다. 봇둥천이라야 가물면 물 대니까 가물음 타지 안하지, 비가 많이 오면 또 봇둥천은 물을 에워버리기 때문에 봇도랑에 물이 빠짝 마릅니다. 물이 없어져 버립니다.

물이 없으면 물을 대 주고, 물이 많으면 또 물을 빼 버리고 요렇게 관수를 하기 때문에 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무성하게 잘 자라지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이 말은 이 봇도랑에 심겨진 과실나무와 같은 기독자는 그 기회 기회마다 결실을 맺고, 종별 종별마다 결실을 맺고, 시작하고 경영하는 일마다 결실을 맺고, 모두 다 성공한다 말입니다. 성공할 기회는 다 성공 다 하고, 또 계획한 것이든지, 또 시작한 것이든지 뭣이든지 그 사람의 하는 모든 일이 다 전부 성공되고, 성공 안 되는 시간도 성공 안 되는 종류도 없이 다 성공된다 하는 그걸 가리켜서 “때를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안하고 그 잎사귀가 항상 청청하다. 청청하니까 자라지요. 그 말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믿었다가 낙심했다가 믿었다가 낙심했다가 그렇지 않고 그 믿는 믿음이 항상 청청합니다.

천인 만인이 낙심할 만한 그런 형편을 만나도 그 믿음이 요동치 안하고, 항상 그 믿음이 요동치 안하고, 항상 하나님을 소망함이 요동치 안하고, 또 하나님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도 요동치 안하고, 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요동치 안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요동치 안하고, 참고 견디는 것도 요동치 안하고, 그것을 가리켜서 신앙 행위가 조금도 뭐 굴곡이나 변동이나 약화나 그런 것이 없이 언제든지 한결같이 청청하다. 모든 신앙 생활이 청청하다. 신앙 생활이 날로 날로 새로와지고 자라가고 있다 그것을 가리켜서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그것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서 과실을 맺으며” 시절이라 하는 때 시(時) 자는 때마다 아니요? 때마다 과일 맺고, 절기라 하는 절기라 하는 건 좀 커다란 때입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형통하다 말은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한다  말입니다. 형통하다 말은 이 세상 일도 형통하지마는 그 사람이 이 열여섯 가지 구원 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좀 살아볼라 하니까 요 마귀가 와 가지고 그만 죄 가운데 폭 끌어들여서 그만 죄 가운데 폭 빠집니다. 또 그 사람이 ‘내가 받은 영감대로 계속 살아 볼란다’ 영감 받았는데 그때는 배나 마귀가 오고 마귀 친구가 와 가지고 날뛰어 쌓아서 그만 영감 다 뺏겨버렸어. 영감 다 뺏겨버리고 자꾸 폭폭 촉분을 질러버리니까 영감은 떠나버리고 악령 감화의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돼 버려. 그런 건 다 형통치 못한 것입니다. 형통한 것은, 방해할 것이 없고 “열린 문을 두었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열여섯 가지 구속 생활을 할라 할 때에 하나도 거리끼지 안하고 세상이 뭐 어떻게 불어온다 할지라도 그대로 꼭 일관으로 계속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그러니까 그 사람 하는 일이야 사업도 형통하고 세상 일도 형통하고 하늘나라도 형통하고 전부가 다 형통이지 뭐 불통이 없어.

*계3:8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87092333) 4


'저는'
저는 어떤 자가 저는인가? “저는” 1절로부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저는”  이 “저는”하는, 이 사람은 시냇가에 하나님이 주인이 심어 주시고, 또 열매 맺게 하고, 잎사귀가 청청하게 하고,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게 해 주시는데 저에게만 해 줍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이 다섯 가지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잘 심어 주시고 잘 가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직접 자신을 행복되게 할라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행복되게 해 주시면 행복되는데 하나님이 나를 행복되게 해 주시도록 하는 데에는 이 다섯 가지를 해야됩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기독자들은 자신의 영육에 모든 행복된 것은 스스로 할 수 없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안하기 때문에 제가 제 일시 행복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권세도 많이 가지고 돈도 많이 가지고 모든 자기 소원의 행락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범위를 좁혀서, 우리 안에 도야지가 우리 안에서는 행복이지마는 그 앞에 지금 잡아 먹으러 온 도살쟁이가 와 가지고 있는 그걸 모르는 것처럼 땅위에 모든 불택자들의 행복은 그게 짧은 눈으로 볼 때는 행복이지마는 조금만 길게 보면은 결말은 전체가 다 멸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임시라도 구원 같은 멸망, 성공 같은 실패 그런 것이라도 되지마는 택한 자들은 하나님이 간섭하기 때문에 그것도 안 됩니다.

택한 자들의 행복은 하나님이 잘 심어 줘야 된다. 하나님에게 잘 심기워 주심을 받아야 된다. 또 다음에는 하나님이 잘 가꾸어 주셔야 된다. 그렇지 안하면 안 된다. 그것을 비유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무가 시냇가에 심으면 좋기야 좋지요. 여기 시내라 말은 관수로라는 뜻을 가졌어. 물을 보를 막아 가지고서 물을 농작물 위해서 끌어 가지고서 대는 사람이 관리하는 관수의 둥천이라 그 말입니다. 봇둥천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있기 때문에 가물음 안 탑니다. 비가 많이 와서 장마가 지면 물을 에워버리기 때문에 거기는 바짝 마르고 높은 언덕이기 때문에 물에 손해를 안 봅니다.

나무가 이렇게 제가 시냇가에 심기고 싶다고 시냇가에 심겼나 또 메마른 박토에 심기고자 해서 심겼느냐? 농부가 박토에 심든지 옥토에 심든지 농부에게 권한이 있지 그 과실나무에게는 권한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자는 제가 아무리 행복된 분위기, 행복된 입장, 행복된 처지, 행복된 시대, 행복된 지역, 행복된 그 현실, 아무리 그런 현실을 원해도 하나님이 그 좋은 데다 심어 줘야 되지 저는 그것을 만들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나무는 좋은 곳에 심어지는 것은 제게 아무 권리가 없다. 주인이 좋은 데 심어 줘야 좋은 데 심기워진다. 기독자들은 하나님이 복되게 심어 주셔야 복돼지지 제가 욕심내고, 제가 열심내고, 제가 독을 피우고, 꾀를 쓰고 한다고 절대로 네가 네 행복된 네 현실을 네 세상을 만들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행복된 그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셔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은 자신을 행복되게 하지 못한다 요걸 여기서 단정을 했습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과일 맺는 데는 나무가 맺고 싶다고 맺지 못합니다. 과실을 맺을 수 있는 그 토비도 있어야 되고, 양분도 있어야 되고, 수분도 있어야 되고, 햇빛도 있어야 되고, 또 공기도 있어야 되고 그 전부, 나무 저 혼자 열매 맺고 싶다 해도 맺지 못합니다. 자기 아닌 이 객관의 모든 은혜 역사가 아니면 이는 “잎사귀가 청청해질 수가 없다. 과실도 맺을 수 없다.” 이러기에 기독자는 하나님이 나를 좋은 현실로 좋은 세상에 살도록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좋은 입장, 좋은 현실, 좋은 처지, 좋은 환경을 해 주셔야 될 뿐만 아니라 나를 가꾸어야 된다.

물이 필요할 때에 물 주고, 거름 필요할 때에 거름 주고, 흙이 필요할 때 북돋아 주고, 또 바람이 불 때에는 붙들어 매어 주고, 공궈 주고, 전부 농부의 관리가 없으면 안 된다 요것을 여게 똑똑히 말해 놨습니다. 기독자의 행복은 순전히 하나님에게 있지 자신에게 있지 않다 하는 것을 단정을 지워서 꽉 결정을 지웠습니다. 요 어누리 하면 안 됩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멸망으로 달려가는 길이 형통하면 불행입니다. 성공으로 달려가는 길이 형통하면 행복입니다. 여기 형통하다 하는 것은 사람이 열여섯 가지 구속의 생활을 할라 하는 데에 척척 이루어지고 열여섯 가지 구속 생활을 아무리 할라 하는 데도 방해자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어데까지 그저 믿고 그 믿음이 아무런 상처 없이 굴곡 없이 계속 믿는 그것이 형통이오.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형통이오. 계속 하나님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 형통이오.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형통이오. 계속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형통이오.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고 견디는 것이 형통입니다. 이것이 가다가 뚝뚝 뿔라지고 중단되는 것은 형통이 아니라 말이오.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영감대로 사는 것을 얼마든지 영감대로 삽니다.
사자구덩이 집어넣을라 해도 영감대로 살고, 불미 속에 집어넣을라 해도 영감대로 살고, 열대 지방에 구덩이는 흙구덩이 만나면 거기는 들어가면, 사자도 들어가 버리면 죽어버리지 못 뛰어오르는데 구덩이 속에 집어넣어도 항상 그 영감은 그대로 계속되고, 상인으로 팔려가도 계속되고, 보디발의 집에 보디발 아내 미인이 청년 요셉이를 막 그렇게 꼬와도 그때도 신앙은 형통입니다. 하나님 믿고 순종하는 게 요동치 안해. 그런 것이 다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잘 심어 줘야 되고ㅡ이것 비유입니다.ㅡ잘 심어 좋은 데 심어 줘야 되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한 모든 것으로 잘 가꾸어 주셔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우리 구원은 성공하지 못하고 우리는 행복되지를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요 말을 총론적으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독자를 성화의 길을 주시고 방편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성화할 길과 방편과 능력을 주셨으니 자신이 성화된 것만치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그는 성공하게 된다 하는 것을 결론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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