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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성경:60베드로전서01:03
 

'찬송하리로다'
그래서, 이 찬송에 대해서 우리가 많이 이런데, 찬송과 노래 두가지로 구별을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그 찬양이란 말보다도 찬송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좋습니다. 찬양보다 찬송은 그것은 상대방인 하나님을 더 높이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찬송이요,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지마는 그보다도 낮춰서 자기와 동등에서 조금 높이는 것이고, 찬송은 우러러보면서 찬송하는 것입니다.

(89020721)


'찬송하리로다'
여기 찬송하리로다 하는 이 말씀은 찬송하라 찬송해야 된다 하는 그런 권고의 말씀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찬송하게 된다 뭐 찬송하라 해서 찬송하는 것이 아니고 권해 그런 것도 아니고 제가 찬송을 안 할라 해도 안 할 수 없는 필연적 찬송이 나오게 된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찬송해야 된다 찬송하라 그런 말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을 자기가 깨닫게 되면 깨달은 것만큼 필연적인 찬송이 나오게 된다 하는 그런 뜻을 여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그러면, 영생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여게기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한없는 그 긍휼을 가지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하는 거듭났다 말은 영생을 준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거듭나게 하사' 그러면 중생된 사람들은 영생을 가졌습니까 안 가졌습니까? 중생된 사람들은 영생을 가졌습니까 앞으로 이제 얻어 가질 것입니까? 영생을 가졌습니다. 실상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말씀은 문서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실상으로 영생을 가진 것은 그것은 실상입니다.

(88101010/1230)


'찬송하리로다'
이 말씀은 찬송해라 하는 말 아닙니다. 또 찬송할지어다 하는 말도 아닙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는 것은 이에 필연적으로, 필연적으로 찬송하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여기 찬송한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일에 대해서 감탄함이 자기 속에 일어나서 이 감탄함에 자기 마음이 다 끌리고 이 감탄하여 이 구원을 찬양하는 거기에 마음이 다 기울어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감탄할 것이로다 또 그 구원에 대해서 찬양하는 그 찬양함에 마음이 다 쏠려지리로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긍휼이라 하는 것은 사랑보다 좀 다릅니다. 자비와도 좀 다릅니다. 긍휼이라 하는 것은 자기와 꼭 같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끼는 것을 가리켜서 긍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대자대비라는 말은 있지만 이 긍휼이라는 말은 거기는 쓰지를 안했습니다. 이래서 이 긍휼은 자신과 꼭 같이 생각해서 동정하고 돕고 위하고 협조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긍휼이라 합니다. 그 많으신 긍휼이라 말은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 그 자신을 위하심과 꼭 같이 우리를 위하시는 그 위하심을 말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를 중생시켰다 말입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세상에는 전부 죽을 소망입니다. 세상에 있는 소망은 죽는 소망 아닌 소망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이 소망은 죽는 소망이 아닙니다. 죽는 소망이 아니요 우리가 거듭난 것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산 소망을 가졌습니다. 산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산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산 소망은 땅위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88100901)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중생의 은혜를 말합니다.

(561127)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과거에 우리도 죽음만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지금도 죽음의 종국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쾌락, 부요, 미, 지위, 권세, 명예 이런 것들은 다 죽은 소망입니다. 이런 우리로 산 소망이 있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산 소망'은 ① 썩지 않고 ② 쇠하지 않고 ③ 더럽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에서 얻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안 썩을 것이요, 생명적이요, 산 것입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는 산 것을 우리가 가졌으니 잘 기억하자! 이것은 다 하늘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있습니다. 산 것은 어디서나 다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도 역사합니다. 이 산 것은 모든 피조물을 다 초월한 능력에 속한 것이니 산 것은 물질이 방해하지 못하고 드러냅니다. 물질을 탁월한 실력이요 본질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산 것은 썩지도 더럽지도 쇠하지도 않습니다.

생명이 산 것이란 하나님에게 연결된 것만 살고 진리와 연결에서만 삽니다. 진리와 연결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대로 살 때 연결인데 하나님과 직접 연결을 가리켜 영감이라 말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연결되므로 생겨나온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것에서 산 것은 달라집니다. 피조물의 산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요, 그것은 우리 인간을 탁월하며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을 은혜하고 말하고 우리에게 건너오면 우리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다시 살렸다는 말은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말이요, 진리와 연결이라는 말입니다. 진리와 연결이 하나님과 연결이요 하나님과 연결은 진리와 연결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진리보다 높은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순종이라 함은 피조물이 영원한 연결에서 그대로 정확히 동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요 완전 창조된 것으로서 진동될 것을 진동 안될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차창조의 기간은 6,000년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영생하는 죽지 않는 생명을 원합니다. 우리는 행복도 변하는 것이 아니고 불변의 행복을 원해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산 것입니다. 우리가 가질 소유입니다. 산 것은 없어지지 않고 자라갑니다. 우리의 생명은 살았다고 했으나 육은 늙어지는 생명입니다. 시체가 되기 전에 영원한 것으로 변화 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늙고 쇠하고 더러워질 것은 원치 않습니다. 산 것을 원합니다.

우리는 부모를 잘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불효하면 가는 곳마다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김을 받는 것보다는 섬기는 재미가 훨씬 더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물질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야 무엇이든지 충만하여 넉넉해집니다. 5계명을 지켜야 다른 계명도 지킬 수 있습니다. '고르반'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복을 멸하는, 복을 제일 감 하는 행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산 것은 없어지지 않고 쇠하거나 더럽거나 낡거나 변함이 없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기쁨이나 명예나 영광등이 다 산 것이라야 합니다. 산 대우, 산 칭찬이라야 합니다. 산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옵니다. 이것을 내 것으로 삼는 데는 어떻게 해야 내 것이 되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에게 내가 받으면 내 것이 됩니다. 받기만 하면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로서 기쁨, 평강, 지혜 이 셋이 나오는데 나올 때 능력이 나옵니다. 능력이 나올 때 하나가 나오는데 그것이 여럿이 됩니다. 능력도 지혜도 명예, 영광, 소유, 쾌락 전부가 됩니다. 하나가 나오는데 그렇게 나옵니다. 하나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하나를 내어놓았으니 말씀으로 내셨습니다. 이것이 곧 진리로 나왔습니다. 진리 하나가 이것을 다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산 것을 받는 데는 하나만 잡으면 됩니다. 말씀이요 진리이니 하나만 잡으면 능력, 지혜, 권영이 다 나옵니다.

그 대목에 올라가 보면 이 진리는 영감에서 나옵니다. 영감이 나오는데 진리더라. 영감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고 그리스도의 영이 영감이 되고 진리가 되고 진리가 나오니 세상 전부의 산 것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산 것이 심히 많은 종류가 거기서 나옵니다. 진리 하나만 취하면 다 됩니다. 이 진리는 우리가 어떻게 잡을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하나만 잡으면 산 것 전부를 가질 수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 이 진리에 순종함으로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 이 순종은 자기 전부를 내어놓고서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붙드는 데는 자기의 무엇이라도 가지고는 못 얻습니다. 나아만의 교만을 꺾고 마는 진리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약1:9-10)'

산 것이 하나님에게로서 나옵니다. 이것이 나올 때는 진리 하나로 나옵니다. 이것이 겸손이 될 때 그 장소 그 형편 그 사건 모든 것이 요긴한대로 변화가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 진리가 오기를 밤낮 고대하고 기다리다가 맞이한 것이라야 합니다. 진리로 주신 것을 감사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진리가 어떤 때는 가난으로, 손해로, 고생으로 오나, 환난으로 오나 영접하고 겸손히 순종하면 그것에서 산 것이 나옵니다. 이때 우리는 얼마든지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진리가 내게 오는 길은 방편은 손해, 고생, 환난, 희생 등으로 오나니 내가 겸손하면 영접하게 되고, 교만하면 못 받게 됩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한번만 걸리면 거기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손해 안 보려다가 크게 다치고 맙니다. 진리를 내가 영접함에는 순종 하나뿐입니다. 순종은 믿음이라는 명사로 바뀌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 데나 순종함이 아닙니다. 믿음은 지위, 권세, 평화, 사랑, 구원 모든 것의 좋은 것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영접해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물질(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일본 광도(히로시마, 나가사끼)의 많은 사람들을 물질이 죽였습니다. 이 물질을 사람이 잘 쓰면 보배고 잘못 쓰면 해가 큽니다. 또 물질을 잘 쓰면 구원할 수도 있고 잘못 쓰면 사망을 주게 됩니다. 즉 잘 사용하면 복을 주고 잘못 사용하면 해를 주게 됩니다.

진리는 순종하는 것이라야 하고 순종하면 큰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잘못 쓰면 큰일이 납니다. 즉 진리대로 행했는데 자기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격이 바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진리를 잘못 사용하면 얼마나 해로운지 모릅니다. 양심대로 살면은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함입니다. 믿음 공부는 평생해도 모자랍니다. 믿음 만드는 것은 착한 양심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자기 속으로 찾아가면 됩니다. 우리를 중생시켜 주셨기 때문에 착한 양심으로 찾아가면 중생된 영에게 찾아가고 중생된 영이 보배로운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착한 양심이 배워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것을 (요일2:27)에서는 기름부음이 너를 가르쳐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양심이 나와서 가르치나 제일 말을 안 듣는 것이 미혹의 욕심등이 제일 거역하고 있습니다. 모든 산 것을 얻으려면 진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진리는 순종으로 차지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 진리에게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중생된 영이 '믿사옵나이다'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옳게 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나 내가 후계자가 되어 다음 세대에 계승한다고 배우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다 뽑고 믿음 실력을 양성할 것뿐입니다.

(행8: )의 빌립의 수종자 시몬을 빌립은 몰랐습니다. 베드로는 알고 네가 은과 같이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자는 저를 높이기 위해서 성령을 구했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 안 하면 멸망합니다.

믿음에서 온갖 것이 다 나옵니다. 허영을 뽑고 실력을 기를 것입니다. 물질을 잘못 쓰면 큰 사고 납니다. 자기 진리를 자기가 순종해야 합니다. 시기, 형편, 사건에 자기 진리를 행해야 합니다. 성경은 배워야 하나 자기 진리는 기름부음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착한 양심이 배워옵니다. 이것을 착한 양심이 우리 양심 등 온갖 지체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착한 양심으로 받은 것이 자기 진리입니다. 이 진리에 순종할 때 온갖 지체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착한 양심으로 받은 것이 자기 진리입니다. 이 진리에 순종할 때 온갖 진리가 나옵니다. 착한 양심을 써야 합니다. 자기부터 정복해야 합니다. 양심은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착한 양심은 거울과 같은 반사의 기관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우리의 전 기관에 반사시킬 수 있는 기관입니다. 양심이 가리어져 있지만 않으면 하나님의 빛이 나옵니다. 이 양심을 가리우는 것은 자기가 자기 주장, 왕권자가 이 양심을 가리웁니다. 무엇으로 가리느냐? 이것은 체험으로 아나니 자주장하는 그놈이 양심을 가리워 불신의 마음으로 만듭니다.

신앙양심은 하나님의 진리지식대로만 해석하고 진리지식에 지배받습니다. 일반양심은 일반 세상사람들의 지식을 찾고 그 가르침을 받으려하고 윤리성을 가지고 착한 양심의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해를 받는 자도 양심대로 행한다고 담대히 하고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없으니 그 일을 성공시키려하고 있습니다. 이 양심을 가리켜서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생각하는 양심이란 말입니다.

세상은 틀려도 표가 나지 않는 세상입니다. 다 알기가 어렵습니다. 불신자는 전체가 틀려도 드러나지 않고 표가 안 나고 잘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을 잘못 깨달아 한번 말한 것이 틀린 것으로 결정되었으면 그것을 가장 크게 생각하고 고칠 것입니다.

물질을 잘 사용해라! 그리해야 해가 없습니다. 믿음을 잘못 쓰면 죽습니다. 물질을 잘못 쓰는 것보다 믿음을 잘못 쓰면 더욱 해가 큽니다. 자기 진리를 자기가 지켜야 합니다. 자기 진리를 지킬 시간과 장소가 다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행해야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도 재를 저지르는 것이 뭐냐? 자기 할 일을 안 하는 것이 폐단이요, 제가 안 할 일을 함으로 폐단입니다. 자기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폐단입니다. 멸망입니다.

진리를 순종해야 믿음이요 이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지킬 믿음을 안 지킴을 가리켜 분수를 넘었습니다. 남의 일을 간섭합니다. 남의 일을 침노합니다. 남의 일에 참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켜야할 자기 믿음을 지키는 것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또 믿음을 지킨다고 남의 진리를 지키면 자타를 크게 망칩니다. 잘 지키려면 하나님의 명령이 누구에게 대한 명령인가? 분별하고 착한 양심을 써야합니다. 성령에게 물어보고 자책할 것이 없도록 하여 아무 일에도 두려움이 없어야 사욕을 벗고 양심에 들어간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행하는데 머물지 말고 남의 진리를 지키지 말라! 내가 지킬 것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나의 하는 일에 손해보기 때문에 형편을 피해서 순종하려고 하는 이것이 남의 진리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점하는 귀신들린 여인이 전도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같은 일꾼으로 가장하여 바울 다음으로 제게 굴복시키니 이 복음이 이용당하기 때문에 바울은 괴로웠습니다.

내가 늘어놓은 현실을 다 지나가야 합니다. 자기가 왕이 된 것을 지나가야 하고 이것을 지나서 자타를 초월해서야 신앙양심, 착한 양심에 나아가게 되니 이것을 깊이 연구해서 나의 행할 것을 바로 행해보자! 이것이 심히 알쏭달쏭하고 찾아 붙들기가 심히 어려우니 잡으면 일반양심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앎이 보편화됩니다. 욕심을 지나 자기가 왕이 된 거리를 지나고서야 착한 양심으로 서게되고 자기 진리를 찾게됩니다. 우리는 금번에 우리 없이 왕노릇한 것을 뽑아 버리자! 우리는 사욕적으로 하는 것을 많이 가졌습니다. 우리란 하나님, 성령, 성화된 성도가 하나된 것인데 우리 없이 왕노릇하고 싶은 것 이번에 다 뽑고 가자! 이것을 뽑아야 나의 지킬 나의 진리가 나옵니다. 아니면 흉내만 내고 살게됩니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참으로 물질을 사용 잘하는 것보다 탁월합니다. 물질을 사용할 줄을 많이 알면 능한 과학자라고 합니다. 이것을 잘 사용함으로 능률이 올라갑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진리를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물질의 종류보다도 억만 배도 더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이 진리를 우리에게 잘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이 많은 진리를 사용하여 많은 것을 쓸 줄을 아는 자가 되면 얼마나 능률이 커지는지 하나님에게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진리에 순종하면 자주장하는 왕이 깨어집니다. 이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 주관정리가 있어야 합니다. 죽여야할 자를 죽이고 정리하라! 이것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순종, 피 뿌림 이것이 안되고 있는 것은 세상적 자아를 깨뜨리지 않고 투자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사는 것을 위주하고 살기에 이 진리를 순종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1) 믿음을 잘못 쓰면 해가 큽니다. 믿음을 잘못 쓰면 물질을 사용 잘못함보다도 더욱 해가 큽니다. 자기 믿음 지키고 착한 양심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 왕의 거리, 욕심과 현실의 거리를 지나면 착한 양심을 만나고 이 가르침을 받으면 보배로운 믿음이 나옵니다. 믿음을 잘 사용하라!

2) 물질을 사용하되 능숙히 세밀히 많은 종류를 합해서 많은 이치를 가해서 종합해서 사용 하라! 이렇게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힘이 커집니다. 이것보다도 믿음에 나아가라! 큰 믿음, 온전한 믿음, 구비한 믿음을 가지라! 그러면 일반이 누리지 못한 효력과 상급을 누리게 되리라. 물질의 종류를 선택하고 선택의 가감 조절을 능숙히 배합하여 사용하면 대적을 방   어함에 힘이 되고 내게 좋아짐이 있을 것이나 이보다도 보배로운 믿음은 더욱 큰 것입니다.  

(71050532)


'찬송하리로다'
성도에게 둔 하나님의 목적은 곧 하나님의 전지식에서 선정한 지극히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함과 피 뿌림을 얻음이니, 지극히 고귀한 것인데 어떻게 이룰 것인가?  '성령님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거룩에 이르는, 완전에 도달되도록, 완전 순종이 되도록 하여 예수님의 모형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곧 모형상입니다. 하나님과 꼭 같이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하나님과 꼭 같이 나타나셨다. 예수님의 인성과 꼭 같이 우리가 나타나고자 함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형상이 되고자 함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연구하여 기뻐하고, 어디서나 이 수입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먹고 입는 것으로 끝날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순종하여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가야 합니다.

다윗은 (시17:14)에 보면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고 말헸으니, '불신자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것 가지고 자기들 마음껏 먹고 입고 살다가 죽을 때에는 남은 재물을 철모르는 갓난아이에게 제 자식이라고 유산으로 상속시켜주고 즐거워하며 만족하고 사는데 나는 그런 자처럼 살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람은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는 자이다'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 깬다는 말은 부활할 때를 말함인데 이것이 정신차린 자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큰 목적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그네인 것을 깨달을 때 모든 것의 평가와 판단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전부는 거꾸로 된다. 새 사람의 일은 이 세상과 안 맞으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시키려고, 목적대로 우리를 만드시려고 하나님이 책임지고 착수하셨으니 이 공사를 완료하는 일을 성령님이 하십니다.

'찬송하리로다' 여기 찬송은 하나님의 목적착수의 시공역사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우리를 완전케 하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입니다. 농부가 자기 농장에서 수고하며 기뻐하는 것은 농장에 소망을 가지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견고한 소망이 피곤을 압도하기 때문에 '찬송하리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이 본질대로 되었으면 기뻐하며 감사할 것이요, 감사할 찬송거리가 없으면 이질이요 본질이 아니니, 고치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동정을 하셨고, 원수라고 비방을 안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찬송으로 걸어가셨다. 악이 나오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환난을 이기는 방법은 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②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참 간단하면서도 훌륭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1) 나그네인 것을 기억하고 2) 순종함의 완성 3) 피 뿌림의 완성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계하고 준공을 향하여 공사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인 완전자 되도록 설계한 것이 시공되었으니 우리의 소유가 다 투자되어야 합니다. 이 투자하는 모든 것은 내게 두면 다 빼앗길 것이었는데 투자하여 영원히 내 것으로 가지게 되었으니 이 비밀이 아주 큽니다. 그러므로 찬송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신앙생활에 핍박이 극심할 때에 매일 밤마다 집회로 모여 베드로가 설교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베드로전후서를 강론하면 성도들이 이 설교를 듣고 은혜받고 힘을 얻어 붙들려가서 담대히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그때의 성도의 생활이 박해로 인하여 고통 당하였지만 그들은 하늘의 소망이 뚜렷했고 기쁨이 충만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깨끗하여 참 사람으로 충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받은 후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부흥되어 교회가 크게 확장된 후 교황까지 세워 그후 1,200년 동안 계속 타락했고 종교개혁 당시는 개혁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여 순교자가 10만 여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기독교가 박해가 오면 교회가 깨끗해지고, 그러면 교회가 부흥되어 왕성해집니다. 교회는 깨끗해지면 왕성해집니다. 우리 나라도 일제말기 신사참배의 환난 후 8,15해방 당시에는 깨끗해졌고, 이어 교회가 대 부흥이 일어나서 왕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왕성해지니 또 타락하여 지금은 아주 어두워졌습니다.

미국교회사도 보면 개 교회제도가 나와 이단을 배격하고 깨끗해져 부흥했고 다음 또 이단이 제 이차로 들어온 것을 지금까지 못 막고 신신학이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닥쳐도 울면서 순교하지 말고, 또 무거운 짐진 것같이 계명 지키지 말고, 감사와 기쁨으로 단 마음으로 지키자! 계명 지켜 손해보고 없어지는 것은 썩을 것으로 심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추수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5:42-  )

그러므로 믿음 지킬 때 두려움이 오느냐?  연구해 보자!  억지로 믿음의 길을 걷느냐? 믿음생활하기가 피곤하냐?  연구해 보자!  순종의 완성을 이루려면 십자가의 언덕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언덕에서 하나님에게 인정받음이 있고, 언덕을 넘어서 믿음의 성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순교를 잘못 알고, 순교 아닌 불쌍한 죽음이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과거 일제시대에 예수님의 사진을 놓고 그 사진을 밟고 지나가면 살리고 안 밟으려하면 죽임을 받는 그 사건에서 사진을 안 밟으려다가 죽임 받은 것은 순교가 아니고 무지의 불쌍한 죽음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롬14:23) 우리가 양심 생활하는 것은 믿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양심 생활 했으나 믿음생활이 안 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제 양심생활한 것이 오늘은 불의로 깨달아지는 것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성장에 따라 기준이 다르기도 하다. 우리는 매사에 잘 구별하여 살자!

(71050422)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 이름은 그 운동 그 역사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그 역사. 하나님의 목적. 곧 뭐인고 하나님 홀로 자존하셨고 자존하신 분이 당신의 의지 안에서 첫째로 한 일이 뭐인가? 목적을 정하셨고 그 목적을 위해서 예정했고 또 목적을 위해서 창조했고 목적을 위해서 보존하고 섭리하고 도성 인신하셔 가지고 대속을 배푸셨고, 또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이루어 놓으신 그 대속을 택자들에게 그들에게 입혀서 다시 완전케 하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완전한 그것을 자체들이 본인들이 입고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안했으면 우리에게는 대속만 됐지 대속을 입어서 사는 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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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새사람은, “산 소망이 있다”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과거에 예수님 믿기 전에 가졌던 소망은 다 죽은 소망입니다. 다 죽은 소망.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소망은 다 산 소망입니다.

죽은 소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공부를 해 가지고 어떻게 되겠다, 또 자기가 재산을 모아 가지고 어떻게 되겠다, 자기는 도덕을 닦아 가지고서 어떻게 되겠다, 자기는 이런 종교 저런 종교 수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그런 종교들을 믿어 가지고서 어떤 그 소망을 이루어 보겠다 하는 그런 것이 전부 하나도 없이 다 죽은 소망입니다. 다 원죄의 정죄 아래에 있고 영원한 사형을 받아서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입니다. 요것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종교 이종교든지, 예를 들어 불교라고 말하면 그들은 극락이라고 말하지마는 극락이라고 말하는 그것조차도 전체가 다 죽은 것입니다. 죽은 것이기 때문에 살지는 못합니다. 그저 악령이 꾀워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 죽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죽지 안하고 영원히 산 이 생명에 속한 산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서만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그 사람에게 해당된 것이지 그 밖에 사람은 하나도 산 소망 가지지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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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 피조물 되어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세 가지 대속을 베푸셨으니까 그만 해도 큰 말할 수 없는 희생인데 그것만 가지고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만 받지 이 대속을 자기가 자기 것을 삼아 영원히 이 대속으로 영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대속으로 영생을 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창조주로 피조물을 입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심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중생됐습니다. 우리 중생은 영감과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로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왔고 또 예수님의 부활로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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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으신 긍휼대로'
베드로전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사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 있게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을 죽은 가운데 다시 살리신 것이 한없는 긍휼로,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긍휼로니까 그 긍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니까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신 예수님께 대한 긍휼인지 우리에게 대한 긍휼인지 어떤 긍휼입니까? 예수에게 대한 긍휼입니까 우리에게 대한 긍휼입니까? 예수님의 인성과 우리 인성들에게 대한 긍휼이요 예수님의 신성에게는 긍휼이 아니고 신성은 말할 수 없는 이제 큰 희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의 그 사랑의 희생과 부활하심의 희생의 사랑이 중량이 같고 우리에게 필요가 꼭 같고 효력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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