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9-13
주기도문에는 ‘나’라는 개인적인 그 표시가 없고, 언제든지 ‘우리’라고 그렇게 단체적인 대아(大我)를 가리켜서 주님이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함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향해 나아갈 때에,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자기 하나만 생각하는 그런 것을 허락지 아니한 것을 거기에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 하실 때에는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상대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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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9-13
개체를 말할 때는 책임면에서만 개체를 생각해야 되고 또 구원이나 그런 것을 생각할 때에는 전체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했고,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또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할라고 이렇게 언제든지 우리라고 말했지 내라는 개체를 가지고 말하지를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생각할 때에는 전체 구원을 생각을 해야 되고 책임을 가질 때에는 개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새 거꾸로 돼 가지고 구원을 말할 때는 개체 구원을 말해서 내 교파 구원이 좋다, 다른 교파의 구원은 어째 됐든지 남의 교회야 어째 됐든지 내 교회 잘되면 잘된다. 다른 가정이 어째 됐든지 내 가정 잘되면 잘된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내나 구원 잘 이루면 된다. 그렇게 구원에 대해서 개체를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착각이요 잘못인 것입니다. 개체를 생각하는 것은 책임 면에서 개체를 생각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됐다 할지라도 나 하나가 잘못되면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어쨌든지 나 하나 내 의무를 해서 내가 모든 전체 교회에게 속한 분자와 세포가 되어 있는 내 의무와 책임을 다 바로 해서 내가 바로 한 이 혜택이 전체 교회에게 미쳐 갈 수 있도록 또 내가 하나 잘못됨이 전체 교회에 해독을, 영향을 끼치지 안할 수 있도록 고렇게 평가해서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교파니 네 교파니 하는 그 말을 할 때에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말하고 책임을 생각할 때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교파가 이게 바로 돼야, 바로 돼서 우리 교파가 전 우주 교파 역사 교파에 피해 끼치지 안하고 우리 할 의무와 책임을 바로 해서 그들에게 혜택을 입혀야 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은 내 개인으로는 생각지 말고 내 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교회의 전체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의 전체다, 하나님의 교회의 전체는 곧 내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라. 몸을 이루라. 또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지체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다니신 그 것이 뭐이냐? 이 전체에 대한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가 없어도 아혼 아홉이지, 암만 좋아도 아흔 아홉이지 백이라 하는 것은 벌써 깨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들어와야 백이 된다 그 말이오.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 마18:12 :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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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9-13
주기도문은 얼마나 이것이 참 큰 뜻인데 주기도문을 해석한 것이, 해석이 얼마나 바로 깨닫기 어려운 줄 아십니까? 주기도문의 주석은 내가 몇 가지 봤는데 봐도 다 그저 그렇고. 손양원 목사님이 주기도문 강해를 했는데 거기에 조금 더러 좋은 게 있습니다. 주기도문 이거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니까 자꾸 이래 기도 많이 해 가지고 하고 해서.....
늘 며칠 동안을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안하도록 해야 됩니다. 올바른 기도는 골방에 계시는 주님, 골방에 계시는 주님이라니? 내 양심 속에 거처하고 계시는 주님이라 말이오. 내 양심 속에 들어가지 안하면 주님 못 만나요. 내가 아는 성경 진리 속에 들어가지 안하면 못 만나요. 내게 대한 영감 속에 안 들어가면 주님을 못 만나. 거기 가서 주님 만나 가지고 기도하는데, 기도가 첫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그게 첫째 일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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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9-13
그러고 9절에, 인제 주기도문인데 이 주기도문을 그렇게 주님이 간단하게 기도를 이렇게 가르쳤는데 이 주기도문에 대해서 올바른 그 깨달음을 가진다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 주기도문의 해석을 제가 많이는 못 봐도 어북 많이 봤습니다. 했는데도 그 중에는 손양원 목사님이 해석해 놓은 것이 제일 으뜸이 가고 있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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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9-13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러기 때문에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인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를 자꾸 말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말씀하신 그것은 복수인 모든 다수가 합해 가지고 하나가 된 것이 그것이 우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돼야, 자기는 전체에 분자요 세포요 한 지체요 이런 것인 것을 알고 대아인, 대아인 이 전부,
하나님이 택한 자는 육천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자도 있고 또 지금 우리 뒤에 나올 것이 아직 나오지 안한 자도 있고 또 동양에 있고 서양에도 있고 세계에 이와 같이 흩어져 가지고 있는 이것이 다 그리스도의 택한 자는 한 몸을 이루어 가고 세워져 가는 것이라는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래야, 전부가 합해서 네라는, 택한 자는 많은 숫자이면서 이것이 하나의 단일 생명으로 살고, 단일 생명으로 산다 말은 단일 연결로 산다, 대상이 주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에 주님과 연결돼 가지고 모든 것이 살아나기 때문에 이렇게 단일 생명으로 산다는 이것을 확실히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노력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지체는 저 지체에게 교만할 수 없고 저 지체는 이 지체에게 교만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이 다 합해서 바로 되어져야 되는 요 감을 가지고 우리가 해야 되지 거게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면은 안 된다 그것을 엄하게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우리라 하는 것부터 먼저 돼져야 , 우리라 하는 것부터 먼저 돼져야 하나님이 저희 아버지 될 수 있다 말입니다.
우리라는 것은 복수인데 천하에 역사에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는 다 그것이 내라 그것입니다. 그것이 잘돼야 내가 잘되지 그러니까 그것이 내라는 깨닫고 여기에서 있어야 이제 하나님이 아버지가 돼지지 그 복수에는 예수님도 안에 들었고 또 성령님도 내나, 예수님이 들었다 하면 성부 성자 성령 다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들어 있고, 성령님도 들어 있고, 진리도 들어 있고, 또 모든 우리 믿는 신자들도 다 들어 가지고서 하나인데 이 전체가 하나인 것인 것을 제가 지식적으로 알든지 자기가 무슨 소망적으로 알든지 알아 가지고서 하나인 것을 알고 하나가 돼 가지고, 내가 하나가 돼 가지고 ‘아버지’ 이래 불러야 아버지가 대답하는 것이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할 때는 내 아버지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내 아버지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되지.
2)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또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주기도문에 하나님이 가르친 것은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과 신령한 양식을 다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한 날에, 내일 일은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내일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 날 사는 데는 신령한 양식도 육체의 양식도 있는데 육체의 양식이 신령한 양식 되고 신령한 양식이 육체의 양식 되고, 심신은 이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가 오늘 하루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내 구원에 요소가 되어지도록, 먹고 마시는 것이 내 구원의 요소가 되어져서 모든 역사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빚지지 안하고, 요것을 빚지지 안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못해서 이것이 지금 할 바를 하지 못한 바가 되지 안하고 빚을 하나씩 벗어넘기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자기가 되기를 원하는 그것이 되어져야 비로소 그 마음부터 가지고 해야 그날 하루 종일 먹는 것이 믿음의 생활을 할 수가 있고 영감의 생활을 할 수가 있지 벌써 거게서 자기 개체로 나타났으면 그것은 무엇으로 변해집니까?
우리가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하지 안하고 ‘오늘날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내게라고 내라고 돼져 버렸으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으로 돌아갔습니까? 어떠한 사람으로 돌아갔소? 예, 그 사람은 벌써 옛사람으로 돌아갔습니다.
3)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러기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도 우리가 돼야 아버지가 된다.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영적 양식이나 육적 양식이나 그것이 하루에 참으로 내 양식이 되는 것, 육이 먹은 그 양식이 우리가, 저는 밥기도를 할 때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좋은 식탁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구미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미도 있게 해 주시고, 또 소화도 잘되게 하시고, 또 영양도 또 잘되게 하시고, 또 건강한 몸도 되게 하시고, 이래 가지고 이것이 의의 병기로 주님에게 드려서 주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 결과를 맺게 해 주시고, 결과를 맺고도 주님의 구속이 크기 때문에 이 큰 구속을 내가 깨닫는 자 되어서 어떤 자리에서라도 무익한 종이라 하는 것을 알고 무식한 자로 알고 주님의 구속을 깨달아서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알고 사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식기도 할 때는 대개는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밥을 먹은 그것이 참으로 육체에 건강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건강이 돼서 힘센 사람 아무리 있어봤자 무슨 소용 있습니까?
제가 어떤 약수탕이라 하는, 이름이 약수탕이요, 좋은 물이 아니고. 목욕탕 값도 꼭 같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약수탕인데 한번 거기 가니까 어떤 사람이 젊은 사람인데 자기가 서서 다리를 쭉 뽑아보고, 다리가 생기기를 잘생겼어요. 아주 쪽 곧은 것이 참 아주 매꿈하게 잘생겨. 그래 그것을 한번 쭉 펴보고 또 팔을 한번 쭉 내보고 그거 아주 자랑스런가 그렇게 많이 해요.
그렇지만 그것도 좋기는 좋지만 그것이 하나님에게 드려서 의의 병기로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 육체가 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참 하나님 앞에 벌받을 것뿐이지 하나의 빚진 것뿐이고. 하나님의 것을 먹고 그 나쁜 짓 했으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이러니까, ‘잘 생기기는 생겼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병기가 돼야지 죄에 병기가 되는 날이면 그거 좋지 못하다’ 그런 말 나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육체의 양식을 먹는 그것이 ‘오늘 내 육체의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것이 오늘 육체의 양식 먹는 그것이 참으로 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게 있는 것이면, 내 구원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는 양식이라면 그렇지만,
밥을 굶으면, 내가 어떤 사람들 보면은 소화가 안 되면 좋겠고, 그 사람에게는 소화가 안 되면 좋겠고 몸이 좀 약하면 좋겠는데 이게 몸이 튼튼하고 건강해 놓으니까 그 건강한 것 가지고서 자꾸 죄만 짓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뭐 하나님이 주신 양식입니까?
그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그 말은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이것이 구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구원은 뭐인데? 구원은 주를 위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주를 위하는 것이 돼 버렸으면 구원이 됐다 그 말입니다. 주님을 위하는 것이, 피조물이 조물주를 위하는 것이, 조물주를 위하는 것만 됐으면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조물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조물주를 위하고 조물주로 말미암아 살고, 그분으로 피동 되고 그분으로 또 모든 것을 얻어서 가지고 또 그분을 위해서 살고 그분을 이리 이 연결이 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천국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그래야 참 그 양식이 가치 있고 또 그날 심령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의 역사를 주셔 가지고서 진리와 영감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함께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고, 우리 마음을 주관하고, 우리 마음과 진리와 영감과 중생된 영은 합해 가지고서 우리의 몸을 주관하고,
그러면 성령과 우리 영과 또 진리와 영감에 붙들린 마음과 육과 이 넷이 합해 가지고서 내가 살고 있는 모든 접촉하는 만물을 그것도 진리화 영감화, 또 영화, 또 내 육체화, 내 마음화돼져야 그것이 내가 산 것이 이긴 것이라 말입니다.
이런 은혜는 우리가 돼야 되지 우리가 안 되고는 기도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랬다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가 원수돼 가지고서 자기 개적으로 돌아가는 것,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 ‘나 나, 내 것 내 것.’ 그리 되면은 그것이 무엇이냐? 옛사람으로 돌아갔다 그 말입니다.
옛사람으로 돌아갔으니까 그것은 악령 악성 악습,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행동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 해서 모으니까 그것이 악습이 됩니다. 또 자기 중심의 그 성품, 자기 중심의 사상, 자기 중심의 성품, 하나님 중심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음을 주신 우리들인데 우리가 타락해서 변질이 돼 가지고서 이제는 우리의 모든 속성이 자기 중심의 속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변질된 것이요 그것이 타락이요 그게 사망한 것입니다. 그러면 악성. 또 악령.
그러면 악령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제 악성을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하는 믿음으로, 또 악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의의 행위 이것으로써 이제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옛사람 새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새사람으로 되는 첫 입문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입문이라 그 말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입문이 우리가 입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는 그것이 우리가 돼야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아버지가 대답할 수 있고 그에게 아버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되는 것이 입문이요, 우리가 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은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화되는 것, 우리가 되는 그것이, 우리인 줄 알면 그것이 그만 사랑입니다. 이 사랑도 제일 악하고 독한 것이 사랑이요 제일 좋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한 분의 중심화시키려는, 중심화시키려는 그것이 무엇이냐? 사죄 운동이요 칭의 운동이요 하나님과 화친 운동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화시키는 그것이 돼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4)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 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돼야 죄가 사해지지 그것을 밑에 해석을 하기를 “네가 남의 죄를 죄를 사해 줬으면” 이것 봐, 우리 ○○○목사님, 순전히 잠마귀한테 붙들려서, 이 앞에 ○○○목사님도 앞에 앉았기는 앉았는데 이거 내가 보니까 눈이 빨가이 해 가지고서 벌써 잠마귀한테 사로잡혀서 꼼짝을 못 하고 있구만. 그거 내가 덤비는 것 보니까 그렇겠어, 보니까. 속았다 그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죄사함을 받는 그것은 죄에서 해방받는 겁니다. 죄에서 해방받는 것은 첫째는 어데서 해방받아야 되느냐 하면 악령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악성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악습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니까 악령 그놈은 내가 아니고 딴데 따로 있는 악령이지만 악령 악성 악습은 내가 아닌데 나를 죽인 그자가 둔갑을 해 가지고서 내인 척해 가지고 나타나니까 이 심신은 어리석어. 눈도 없고, 심신은 눈이 없습니다. 심신은 겨우 눈이 있다 하는 것이 겨우 조그매 당달봉사 모양으로 아삼하게 짐작하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으나 그것은 밝지를 못하다 그 말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이제 총합해서 악령 악성 악습을 합해서 그것이 무엇이 됐습니까? 그것이 무엇이 됐지요? 저 한번 뒤에 대답해 봐. 그게 무엇이 됐습니까? 옛사람이 그게 뭣 됐습니까? 우리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나, 나, 나.
따라 합시다. 나! 나! 나를 죽여야 된다! 나를 죽여야 된다!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나 그것이 벌써 변해서 나를 죽이고 우리가 돼야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우리가 돼야 아버지도 영접할 수 있고,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도 있고, 또 죄사함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시험 드는 것,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시험은 모든 닥치는 현실을 이기게 해 달라 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드는 것은 현실에게 사로잡혀서 현실에 피동 되고 현실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그 말은 현실을 어떤 현실을 당하든지 그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고 그 현실을 정복하고 현실에 대해서 나는 위에 지상 명령인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그 현실에게 탁 펴쳐서 이렇게 놓으면 그 현실이야 내게 대해서 저거 할 일 저거 하니까 나를 죽이든지 말든지 나는 하나님에게 받은 바의 그 피동으로 현실에게 딱 선포하는 이것이 이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돼야 시험에 들지 안하게 해 달라는 기도하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 말입니다.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현실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하는데 이기게 해 달라 하는 그자가 내가 돼 가지고서 이기게 해 달라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현실 지고 안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는 누가 원수입니까? 하나님 원수는 누가 원수요? 나 그놈이 원수입니다.
나 그놈이 원수기 때문에 그놈이 들어서 하나님에게 간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들을 수가 있소? 하나님이 듣지를 못하고 애가 터져서 ‘저 아이가 저렇츰 지금 저놈한테 삼켜 가지고 있으니까 저거 어떻게 구출해야 되겠느냐?’ 지금 하나님은 땀을 흘리면서 분개도 하시고 노력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우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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