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6:44-46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말씀을 하셨고 또,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 오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이 뒤에 덧붙이기를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하는 것으로써 오해되기 쉬운 것을 방어해 놨습니다. 보지 안했는데, 무엇을 듣고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이것은 인간 주관이라는 것은 모르나 객관인 하나님 편에서 벌서 들을 수 있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은택을 입은 자라야 이 세상에서 배울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아버지가 이끌지 않으면 내게 아무도 올 수가 없다 또,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가 아니면 내게 올 자가 없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마지막 날에 살린다' 고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사람들을 이끌고 또, 가르쳐서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한 것이 이끎을 받고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의 주관이 이해하도록 된 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이끎을 받은 사람들도 주님이 어떤 분이지 모르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도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또, 보지도 안했고 알지도 못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 편의 객관 역사를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 우리 주관이 뭘 명철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요 도리를 깨닫는 사람은 제가 아무리 명철해도 명철한 그게 제게서 발원된 게 아니고 명철이 벌써 위에서부터 시작 되서 와 가지고, 명철이나 우둔이 다 거기에서부터 와 서 발표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 된 거 가지고서 교만할 수가 없고 또, 어떤 못난 것을 보고서 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왔기 때문에 멸시할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위에서부터 내려온다는 걸 알고, 기독교에는 자기 부인이 능력이요, 또, 기독교는 그렇기 때문에 아주 똑똑하고 잘난 자보다, 어리석고 못 난 자가 좋고, 어리석고 못난 자보다 아주 송장같이 죽은 자가 좋습니다. 이제 완전히 자기 주관이라는 거는 송장 같이 완전히 죽어 버렸고 그 자기를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이나 생각을 마음대로 잡아 부리고 써서, 마치 생명 없는 도구와 마찬가지로 불에 넣어도, 아무리 해도 자기 주관이라는, 자기의 소욕이라는, 사욕이라는, 주관이라는, 자율이라는 것이 없고 완전히 그분의 것이 돼 가지고서 그분에게 피동되고 그분에게 완전히 점령을 당한 그것이 최고의 능력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도 당신의 주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주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자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그분에게만 피동됐지 당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하고 난 다음에 '이거는 내 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일하시니까 그 일 이 내 입으로 통해서 나와서 말로 나왔다.'(요14:10) 요것이 우리의 본받을 우리의 원형입니다. 원형이기 때문에 요 원형을 우리가 입어서 이 모형을 입도록 하기 위하는 것이 우리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 자랑하고 제 잘남이나 하고 자기 위한 다는 것은, 계18:7에 보면, 인간이 멸망을 받는데 멸망 받는 그 죄가 무슨 죄냐? 그것의 정의를 나타낼 때 간단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자기를 기쁘게 자기를 사치했던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것이 내나 자기중심, 타락이라는 악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8503273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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