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나 신약에 와 가지고 또,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예약하시고, 미리 약속, 예약하시고 선포하신 그 하나님 그 분이 또, 이 신약 시대에 와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알기에는 옛날 말한 말과 현재에 이루어지는 그 사이에는 많은 세월이 들어 있으니까 그와 이와. 그 행하는 자 말하는 자가 다른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기 쉽고, 또, 인간은 이 범죄로 인해서 시간의 자유를 얻었던 그 범위 내의 시간도 다 빼앗겨서 제한적인 시간을 가지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전에는 예수님의 대속을 알기 전에는 우리가 언제든지 직견적이고 또, 현감적이고 바로 고 시간 보고 고것만 보고 또, 고것만 느끼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계산을 대 가지고 행동하고 삽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하자면 시간적으로 많이 우리는 좁아져서 갇혔습니다. 시간적으로 감옥에 갇혔고, 완전히 갇혀 있는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된 요것을 악령이 이용해서 우리의 모든 평가나 비판이나 계획이나 희로애락 전부를 다 요 감옥에 가둬 가지고 아주 자유하지 못하는 어두움의 그 비판과 평가를 가지게 해 가지고서 모든 우리의 생활에 대해서 우리가 그렇게 비판하고 평가하고 계획하도록 고렇게 악령이 만듭니다. 이거는 사형을 받는 것이며 이것은 완전히 사망에게 붙들려 매여서 참 불행 중에 그런 불행이 없는데 그런 행복 중에 행복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이 마귀들에게 눈이 감겨져서 이 마귀의 이 미혹의 감옥 속에 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저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빌3:19) 그 좀 영광이라는 거는 전부 부끄러움 그것만 총총 가지게 해서 영광이라고 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무슨 옳은 생활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너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이 시간 그 제한이라는 아주 제한, 부자유, 자유가 없는 제한 뽈끈 묶인 속박, 속박을 당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나 비판하는 것이나 욕망하는 것이나 그런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벧후3:12에는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라' 그 말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네가 눈을 똑 뜨고서 재림 때까지 이렇게 멀리 봐라. 또, 네 죽음까지 멀리 봐라. 보고서 그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거기다가 네가 소망을 둬라. 계산을 거기까지 다 포함을 해 가지고서 계산을 대라.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너 죽음 그때까지 계산 대 가지고 그때까지의 전 총 계산에 유익이 된 그 점을 네가 찾아야 되자 암만 이 시간 계산에 유익이 돼도, 그 다음 시간에 다 결손이 돼서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을 하지 말아라. 그래서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거기 것을 네가 항상 마음에 두고, 거기에다까지 계산을 대 가지고 거기에 소망 둔 그것을 현실에서 네가 모두 다 성취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이런 축소되어 있는, 속박되어 있는 아직까지 해방 받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 되었은즉' '기록되었은즉' 요거는 과거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사 과거에 선지자들이 말한 것입니다. '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내게로 오느니라' 하는 요거는 현재사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는 주님은 이렇게 인성을 가지고 계실 때에 신인 양성 일위 인성을 가지고 계실 때에 하나님이 옛날 선지자들 통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 하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또, 현재 모든 이루시는 그 일을 다 그분이 이루신다. 그러니까, 옛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그 선포해 놓은 그 선포가 오늘 이루어지는 개별 섭리나 사람 죽고 사는 모든 개별 섭리의 현재 우리들이 그런 것이나 그분 한 분이 하고 있다 하는 것을 여기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그러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 창세전에 당신이 영감하신 것이나 창조하실 때에 그 창세기 1 장에 그때에 역사하신 그 하나님이나 예언하신 그 하나님이나 오늘에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이나 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없고 변치 않다.
이래서 베드로도 말하기를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 (벧후3:8) 그렇게 발표한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안한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그 사랑의 본성의 고통이 여기 다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들 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은즉' '기록되어 있은즉' 그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였은즉' 그분이 기록하신 분이 그 분이시요 기록한 고대로 틀림없이 이루시는 분이 그분이라 이렇게 주님은 믿었습니다. 주님이 그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보았으며 또, 아버지 하나님의 선포해 놓으신 그 약속에 대해서 '어떻게 보았으며 그 약속하신 대로 오늘에 이루시는 그 이루심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그렇게 본 것을 여기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원 전 예정하신 그분이, 또, 오늘에 지금 그 주권의 능력을 가지고 성취하십니다. 그래서 예정하신 그분이나 오늘날 성취하시는 그분이나 내나 그분이 한 분이기 때문에 거기에 딴것이 들어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 빌3:19 :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 벧후3:12 :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벧후3:8 :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듣고 배우려고 하면 그 선생님을 만나야 듣고 배우지, 안 만나고 듣고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듣고 배우려면 선생님을 만나야 듣고 배운다 그 말입니다.
이런 절수는 다 껍데기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요거 진리를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런 절수는 난해절입니다. 아주 깨닫기가 어려운 절이기 때문에 그만 그 냥 껍데기로 슬 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듣지 안하면, 듣고 배우지 안한 자, 듣고 배운 자는 뭐이냐? 44절에 '이끌지 안하면' 은 예정 구원을 말하고. '듣고 배우지 안한 자는 모른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창조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벌써 내가 창조됐기 때문에, 내라는 것이 있는데, 내가 창조 될 때 벌써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도록 그 은택을 우리가 입고 있다는 말입니다. 듣고 배우는 그 은택을 우리가 입고 벌써 창조됐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44절에 '그런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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