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도(道)라 말은 곧 하나님이 인간과 접선하는 그 모든 접선 그 관계를 가리켜서 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도라 말은 길 도(道)자인데 피조물이 어떻게 살아가고 존재해 가야 되느냐 하는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명령하신 그 법칙을 가리켜서 도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도성인신이라,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에게 대한 하나님의 그 뜻이, 그 진리가, 그 영감이 사람되어 오셨다. 그러면 하나님 본체가 사람되어 온 게 아니고 그 본체의 역사가 사람되어 왔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사람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영원 불변의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그 관계점을 책임맡은 분이 제이위인데 이분의 이름을 가리켜서 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도성인신은 제이위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되어 오신 것인데 하나님의 뜻, 진리, 영감, 곧 우리의 살아나가는 법칙 그 전부이신 성자가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까지는 '죄 없는 의인은 없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으로서 죄에서 구원받아야 된다' 했는데 죄 없는 의인이 됩니다. 죄 없는 의인이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너희들이 네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된다' 말은 죄가 하나도 없이 완전 성결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 성결이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된다 했는데 우리가 공연히 불가능이라 하는 그것은 믿음 없는 연고입니다.
왜? 성경에 요한일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미쁘고 의롭다 말은 우리와 계약 선포한 것이 변치 않는다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 죄를 고하면 사함 받아라고 했습니다. 그저 고하면 됩니다. 고하면 사함 받소.
* 도성인신
* 사1:18 :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 요일1:9 :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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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은 예수님 되기 전에는 무엇입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말씀'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그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제 말씀이 육신 되어 왔습니다. 말씀이 육신 되어 왔다 말은 사람이 사람 되어 왔다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요 육신은 그때 왔으니까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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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신 것이 그것이오.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했느냐 하면 말이라 하는 것은 볼 수 없는 속에 있는 것을 발표하는 것이 말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자존하신 하나님을 예수님이 인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 직책을 가졌기 때문에 이름을 말씀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고, 그러면 말씀이라고 말한 그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나타냈느냐?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으로 나타냈습니다. 모든 걸 창조한 것으로, 하나님이 이런 것을 다 창조해 가지고 창조된 것에게 하나님 알려 주고 창조된 것에게 하나님 알려 줘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린 것을 알리기 위해서. 계시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창조한 게 목적을 위한 것이요, 계시를 위한 것이요, 그 목적을 위한 것인데, 목적을 위하는 데에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게 다 목적을 이루는 한 조건 중에 한 조건들이라 그 말이오.
*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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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절에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분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데 이것을 인정하고 대우하고 상대하는 거기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을 입고 오신 하나님인데 이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고 대우하고 상대할때에 자기는 커집니다. 이 하나님을 인정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크게 보여지고 자기는 작아집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딱들어 붙고 하나님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딱들어 붙고 보니 자기에게 있는 무지무능이 다 달아납니다. 그러니 전지전능자가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더러움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깨끗해집니다. 그러니까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자에게는 물리침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신데 신성이 변한 것이 아니고 신성이 인성을 입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외부에 보기에는 사람인데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상대할 때에 이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세계의 100분의 1도 안되는 김일성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이 주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미군을 의지하면서도 이 주님을 의지하지 아니합니다. 믿으면 됩니다. 따라서 시91:14절에 보면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이분이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지었다고 말씀했습니다.
(7801205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 육신이 돼 가지고 우리 가운데 계신다. 우리 가운데 계신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오셨는데 어떤 일 하러 오셨는고 하니 당신이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은 지극히, 그 목적이 만들어진 것을 볼 때에, 목적이 이것이 완성이 됩니다. 목적이 이것이 완성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목적이 완성됐을 때에 이 목적을 봄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모든 피조물들이 알게 됩니다.
이래서 이 목적 완성된 이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목적 완성된 그것 보니까 바로 목적 완성된 그것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절대자이시다. 불변이시다. 그분은 시작하면은 완성이지 미완성이나 변동이 없으신 분이시다. 알파와 오메가시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거룩이시다. 그분은 참된 이시다. 그분은 화평이시다, 그분은 자비시다. 그분은 진실이시요 거룩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대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거는 비유가 잘 안 되는 것이지마는 답답해서, 어떤 단스를 하나 만들어 놨습니다. 아주 단스 만들어 놓으니까, 농짝 하나 만들어 놨는데 그 농짝이 도무지 지금 이 기술자 가지고는 동양 기술자 서양 기술자 다 달라들어서 만들어도 도무지 그 단스 그런 단스를 만들 수 없는 그런 단스가 하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단스 만든 사람은 죽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안하지마는 그 단스를 인해서, 그 단스, 그 농짝 만든 사람이 ‘그분의 기술은 어떤 분이고 그분은 어떤 능한 분이다. 이십세기 과학보다도 뛰어난 분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미루어 알 수가 있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되어 있는 그 완성된 그것을 볼 때에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의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나님은 이렇게 긍휼의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나님은 이렇게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나님의 모든 것에 모든 존재가 그분으로 인해서만 살 수 있구나. 모든 존재보다 그분은 내게 필요하구나,’ 모든 존재들이 다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되어지기 때문에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돌리고, ‘그분보다 더 필요한 것이 내게는 없다’ 하는 것이 되어지는 걸 가리켜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엡1:6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8207110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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