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말씀은 영혼이 행동함으로 구원을 받음이 아닙니다. 사람이 완전한 행위를 해야 중생한다고 하는 말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란 자기가 믿음을 지켜 행하니 차차 좋은 것이 나옵니다. 그러기에 크게 기뻐합니다. 믿음을 지켜보아야 알게 됩니다. 영혼이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받음이 아닙니다. 구원받는다면 그 행위가 영혼보다도 훨씬 귀하다는 해석이 된다. 그러므로 영혼이 주는 구원을 받음이라는 뜻입니다.
영혼이 주는 구원은 그의 마음, 지능, 몸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나오면 우리가 천해지지 않습니다. 제가 보아도 밉던 자기가 참 사람이 되어가니 얼마나 아름다우며 기쁜가! 우리는 중생해야 믿게됩니다. 중생하는 것은 바람이 어디서 불며 어디로 가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나 중생 후에 나타나는 작용을 보아서 알 수 있게 됩니다. 중생은 사람의 힘이 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독단의 힘으로 하십니다. 주격을 하나님이 살리시니 소유격인 제 육은 영이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은 하나님이 영에게 맡겼습니다. 중생은 본인이 모릅니다. 그러나 중생되면 새 생명이 왔고 하나님이 임재하시기에 육이 반대해도 속에서 증거되어 나오니 제가 결국 핍박을 받아도 믿게됩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자는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믿는 자가 더 되어지고 맙니다. 육체 구원은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옛 사람을 벗고 이성을 종합하여 움직이는 행위가 나오나니 행한대로 성화됩니다. 기본구원은 하나님이 능동이요, 건설구원은 하나님이 피동되어 보상으로 주십니다. 피동된 영이 능동으로 행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이런 영의 구원의 교리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많은 이단이 나와 미혹합니다.
(7105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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