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믿는 사람이 취한 처리 방편은 믿음 없는 사람이 미련타고 그렇게 평가하고 또 믿음 없는 사람이 택한 그 처리 방편은 믿는 사람이 그를 미련타 이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지식이 두 가지기 때문에 이 지식을 가진 사람과 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달라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사람의 하는 일은 이 세상 지식이 볼 때에는 미련하다, 어리석다 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둘이기 때문에 한날 한시에 한자리에 한 사건을 만났는데 그 사건에 대한 처리 방편이 그것이 이 사람이 취한 처리 방편과 저 사람이 취한 처리 방편이 다르고, 참 믿는 사람이 처리 방편을 택한 것과 믿음 없는 사람이 처리 방편을 택한 것이 정반대가 되어집니다. 미련타 말은 어리석고 스스로 제가 망할 것을 취한다 말입니다. 미련타 말은 자기 해로울 것을 취한다 말이오.
(88092130)
'그리스도의 평강이' (골3:15)
그리스도라 말은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는 말입니다. 제사장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화합시키는 직책이고, 선지자는 창조주의 축복인 예언의 말씀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서 피조물들이 거기 복종함으로써 복을 받도록 하는 직책이고, 왕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통일 통치를 모든 피조물들에게 펴서 그 행정에 배치되지 않고 일치됨으로 흥왕되게 하는 직책입니다.
예수님이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했는데, 죽기까지 이 직책을 감당했습니다. 세상 정권자는 자기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정권에서 딱 내려앉으면 아무 권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이 직은 죽어 없어져야 다 됩니다. 이 직책 을 하다가 완전히 죽어 없어져 버리도록까지 다해서 없어져야 완성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평강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직책은, 우리의 존재 목적, 생의 목적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화합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어겨서 멸망받는 피조물들, 인간들에게 알려서 그 뜻을 알고 준행함으로써 복되고 영생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직책입니다. 하나님의 단일 통치에 일치됨으로 멸망을 피하고 구원을 얻게 하는 그것이 우리 직책입니다. 이 직책이 우리 직책인 것을 깨닫고, 이 직책은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없어짐으로 완성되는 비결을 깨달아 이 평강을 너희들이 가지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해하지 못합니다.
마귀란 놈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항복 받으려고 했는데, 그만 생명이 딱 끝나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이 할 방법은 다 끝이 났고 예수님은 승리로서 끝이 났습니다. 그럴 때 마귀란 놈이 간담이 스러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죽을 줄 알았으면 안 박았습니다. 그리하면 항복이나 하고 자복할 줄 알았는데 그만 충성으로 끝나 버렸으니까 다시는 도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마귀가 도전하지 못하는 완전 승리를 한 것입니다. 이런 평강을 너희들이 가져라 하신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명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든 생애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없어지는 그것이 권능이라는 말입니다. 안 죽으려고 피해서 도망치는 거는 약자고 복음 위해서 복음으로서 죽는 그것이 권능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네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 네가 속에 내적인 강력한 원기를 돋구는 데에는 뭘로 돋구느냐?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원기를 돋궈라.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원기를 돋구니까 공산주의가 오든지 독침이 오든지 독약이 오든지 고문과 고형이 오든지 그것으로서 그만 변동 안 하고 그 직책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러면 다시는 시험할래야 시험할 수 없고 완전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도전을 못 합니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골3:15)
이 평강, 이 평강 위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여러 수억만 성도라도 교회는 단일 교회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리스도의 분자입니다. 나 혼자 있으면 그리스도의 몸 전부요, 내가 수억만 명에게 속하면 나는 그리스도 몸에 속한 한 지체요 한 분자입니다. 자기의 위치가 이렇게 돼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오해하고 교만해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5)
그리스도의 대속과 그리스도의 직책을 자꾸 새기고 새기고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속에서 감사함이 솟아나옵니다. 이것이 참사람의 내적 실력입니다. 참사람된 사람이, 새사람된 사람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속에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생각하고 생각함으로 감사가 넘쳐서 어쩔 줄 모르는 이것이 속에 없으면 허약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장사라도 허약하면 넘어져서 산 개미를 못 당합니다. 개미가 와서 입을 파먹어도 꼼짝도 못합니다. 속에 힘이 없어서 허약해지면 결국은 넘어지고, 넘어지면 생명 끊어지면 썩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내적 힘을 강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평강, 또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몸을 이루는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 우리 속에 감사가 넘치는 이것이 내적 실력이 강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무슨 일이 형통해졌다, 성공해졌다, 물질이나 땅의 그런 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마치 불난 데에 석유를 부어 버리면 텀벅 꺼지는 것 같지마는 불이 더 커 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다 화가 되어지지 강건이 안 됩니다.
우리가 내적 힘, 새사람의 내적 힘을 강력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과 그리스도의 이 직책을 자꾸 생각함으로써 마음에 감사가 넘쳐나는 이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함이 없는 그런 빈약한 자는 순교를 못 합니다. 감사함이 없는 그런 자는 죄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 골3:15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2)
(88050102/0101)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도는 예수 믿는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도의 자체도 멸망할 자가 볼 때에는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받을 어떤 성신의 사람이 볼 때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보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받는 것도 도의 생활을 하는 것도 멸망할 사람이 볼 때에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구원 얻은 자가 볼 때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입니다. 그는 도 자체는 티끌같은 천한 죄인이 예수님의 그 공로 남의 공로로 의인된다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 된다는 것이 그것이 인간적으로 볼 때에 미련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또 받는 방법에 있어서 믿으면 된다는 그것이 어리석게 보일 수밖에 없고 또 그 도를 받아서 생활하는 것 곧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 생활은 사람들의 보신(保身)방법과 처세술에 의지하여 미련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성신의 지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알 때에는 티끌같은 죄인이 남의 공로로 의인되는 것을 확실히 알 때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권능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권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믿으면서 그것을 성신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는 믿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요 또 믿을 때 그 피로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믿기가 쉽겠는가? 그대로 되기가 쉽겠습니까? 믿기가 싶나, 앉은뱅이 일으키기가 쉽겠나? 얼마나 큰 차이가 있나? 그러므로 자기의 주관을 떠나서 하나님 믿게 하는 것이 권능이요 홍해 바다를 갈라져라하니 갈라지는 것보다 믿어지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이요 그러므로 죄인들이 나는 하나님 아버지 되신 것 믿습니다 하는 것보다 믿을 때 그 하나님의 아들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생활과 주님을 섬기는 그 합당한 생활 주님을 섬기는 그 분수가 적당한 분수대로 섬겨 사는 일은 인간의 그 모든 보신책과 처세술로서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또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니 그대로 살고 보니 자기를 보호 못한 것 같으나 땅위에서 유지 못할 것 같으나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니 권능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보내신 주님의 뜻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이 녹아지는 생활입니다. 녹아지는 그것이 녹아지면 없어질 것 같으나 없어지지 아니하니 권능이요 또 녹아져 없어진 것이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서 변화되어지니 더 큰 권능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도는 모든 사람과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통계와 합리를 거스려지는데까지 주님의 도를 행하는 그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거스림이 없는 순풍의 길은 십자가의 도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법도 내에서 사는 것이요 보편의 생활이요 십자가의 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빌3:15에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십자가의 원수가 누구뇨? 십자가의 원수는 주의 도로 인하여 자기와 이웃과 모든 통계와 합리를 맞추어서 사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요 이것들을 거스리지 아니하는 생활에 사는 것이 십자가 없는 생활이요 이것들을 거스려 사는 것이 십자가의 생활입니다.
(551003)
'십자가의 도'
십자가 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들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어려운 길이라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도라 말은 길 도(道)자 도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길이라 말입니다. 걸어가는 길. 살아가는 길.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을 따라서 사는 가기 어려운 길이라 그런 뜻입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첫째로, 주 하나님만 믿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만 믿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 믿는 것. 믿는다는 말은 내가 그분만 인정하고 그분만 신임한다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만 믿는데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모든 피조물은 주님만 믿는 그 믿음이 되는 것만 믿습니다. 부모를 믿는 것도 부모 믿는 것이 주님 믿는 것이 안 된다면 부모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하가 상관을 믿는 것도 상관을 믿는 그것이 곧 주님 믿는 일이 될 때만 믿는 것입니다.
또 둘째로는 주 하나님만 위하는 우리가 되어야 됩니다. 어떤 피조물도 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만 위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데 모든 이웃이나 만물이나 그런 것을 우리가 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위하는 일이 되는 만물 위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위해야 됩니다. 위하지 안하면 그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위하는 것이 되는, 주님 위하는 일이 되는, 주님 위하는 생활이 되는 그 사람이나 만물 위하는 것은 우리는 위해야 되지 위하지 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의 뜻만 따릅니다. 천인 만인의 뜻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 뜻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만 따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의 뜻은 어떻게 하는가? 사람들의 뜻은 내가 주님의 뜻만 따르는데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면 그 사람의 뜻을 따라야 될 때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되는 인간 뜻을 따르는 것이면 우리는 인간 뜻을 따라야 됩니다. 그럴 때는 인간 뜻을 따르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럴 때에 사람들의 뜻을 따르지 안하면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어기는 일이 되겠습니다.
또, 십자가의 어려움, 첫째는 십자가는 주님을 믿고 위하고 따르는 것이요 또 거기에 반쪽은 믿고 위하고 따를라고 하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쁘든지 수월하든지 언제나 요 세 가지 일을 지켜 나가는 것이 그것이 십자가의 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언제든지 계속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또 거기 둘째로는 아무리 지루해도 계속해야 되고, 피곤해도 계속해야 되고. 어떻게 분주해도 계속해야 되고, 어떻게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해야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계속을 해야 됩니다. 뭘 계속해야 돼? 주님만 믿는 일 주님만 위하는 일, 주님의 뜻만 따르는 일 요 세 가지를 언제나 계속해야 됩니다.
거기에 셋째로는 계속을 하다가 보면 망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계속하면 잘되는 일만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라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를 계속하면 망하는 일이 있습니다. 망해도 계속해야 됩니다. 병이 들어도 계속해야 합니다. 공산주의에게 납치를 당해도 납치당해 가면서도 계속해야 합니다. 죽어도 계속을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활을 계속하는 계속으로 끝나야 됩니다. 계속하는 이 계속이 끊어지고 한 시간이라도 살면 그거는 망령이요 사망인 것입니다. 계속하다가 끝이 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거기에 말씀하시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된다' 말씀했습니다. 실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된다 말은, 멸망하는 자는 어떤 자가 멸망하는 자인고? 하나님 앞에 택함을 입지 아니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 인간 가운데는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이 멸망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멸망하는 자들에게' 라는 것은. 불택한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첫째는 저희의 가진 지혜와 지식으로는 다 십자가의 생활하는 것이 어리석게 보이고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전연히 모르고 뱀의 지식, 거짓말하는 뱀의 지식, 모두 다 반대로 말하는 것. 사는 것은 죽는다 죽는 것은 산다, 옳은 것은 틀렸다 틀린 것은 옳다, 참 인간이 가치 있는 생활은 가치 없는 생활이라 멸망하는 가치 없는 생활은 가치 있는 생활이라 이렇게 사람들을 완전히 거꾸로 이렇게 인식을 시키는 그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십자가의 길, 하나님만을 믿고 그분만을 위하고 그분만을 따라서 움직이는 이 생활 법칙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멸망하는 그들에게는,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고 어리석게 판단되고 어리석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또 불택자에게는 그러면, 그렇게 여겨질 뿐 아니라 불택자들에게는 실제로 아무 효력 없는 생활입니다.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암만 지켜 봤자 소용없습니다. 지켜도 그들에게는 효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어떻게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할지라도 불택자에게는 아무 효력 없는 생활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미련한 것으로 보여지고 또 미련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결과적으로도, 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만일 불택자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요렇게 산다 할지라도 그 사는 것이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이해 못하는 생활이요, 또 실지로 효력이 없는 생활이요. 그 생활 하나 죄를 지으나 지옥 가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무 구원이 없고 멸망은 꼭 같은 멸망입니다.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은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는 말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생활이라, 그것이 십자가의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 택한 자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큰 능력 받아 가지고 능력 있는 생활이 된다.
왜 능력 있는 생활이냐? 능력 있는 생활이 되는 것은, 첫째로, 영원 자존자요 대주재자요 창조주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세상은 그분을 모르지만 우리는 아는데 그분과 자기와의 결합이 되는 생활이기 때문에 아주 능력 있는 생활이요 지혜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온갖 은혜와 축복을 받는 방편이 되기 때문에 능력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또 셋째로 능력의 생활이 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배기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금생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고 점점 그 사람이 성장되어서 자신과 대대손손이 금생과 내세 영육까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뭐 인간 것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금생도 성공하고 내세도 성공하고 영육이 다 성공하고 영원히 성공하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도의 걸음이 구원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85052601/02/2820) 9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면, 그때만 기적으로, 지금도 기적으로 살아.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고 이래 나가니까 그것이 뭐이냐 하면 십자가의 도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인데 십자가의 도가 보면 자꾸 멸망할 길이라. 이러니까 저라면 멸망한다, 저 미련하게 멸망한다, 멸망한다 했는데 인간 보기에는 꼭 인간 타산에는 꼭 멸망인데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푹 솟게 해 가지고 되는 것이 기독자들이라 말이오.
그러면 기독교는 기적으로 사는 것이오. 아예, 과학으로 과학에 맞춰서 그 뭐 자기 인간의 근검 절약, 사람의 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뭐 하고 있느냐 하면 사람의 힘을 제 힘을 제힘을 콩쪼가리만치 믿으면 콩쪼가리만치 실패하게 합니다. 제 힘을 주먹덩이만치 믿으면 주먹덩이만치 실패하게 합니다. 제 힘을 전부로 믿으면 전부가 실패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전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뭐 좋은 거나 뭐이나 다 부인하고 주님만을 전적 믿고 당신의 말씀을 따라가는 그 사람만 올라간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잘난 사람이 저 밑에 꺼꾸러져 버렸고 못난 사람이 이렇게 들려 올라가는 것이 기독교라 그 말이오. 기적으로 살고.
또 하나는 뭐입니까? 축복으로 살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성공하고 사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기적도 피조물들이 방해하지 못하요. 하나님의 축복도 피조물들이 방해하지 못합니다. 아, 마귀란 놈이 우리 적인데 세상 임금이 마귀인데 세상 전체가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이 역사인 기적과 축복으로 살아야 세상 마귀가 해하지 못하지 그 과학이나 그 모든 근검 절약 그거는 타락함 마귀가 주장하고 있는 것들인데, 그거야 그거 하면 마귀란 놈이 그 쏴악 제것 삼아 있다가서 만일 그걸 잘 될 라고 바로 갈라고 하면 탁 꺾어 버리고, 이라니까 오히려 그거 있는 것이 자기의 구원 '이루는 것에 방해가 됐지 유익되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85062520) 9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래서, 사람이 에덴 동산에서 뱀으로 인해 가지고 그만 이 세 가지 하나님이 주신 생의 법칙을 그만 어겼습니다. 생의 법칙을, 하나님이 주신 그 법칙을 어겨 버리고 나니까 그 댓가는 뭐이냐 하면 영영히 사망하는 댓가가 돼 버렸습니다. 사망하는 댓가가 됐는데.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과 택함을 입지 안한 사람과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택함을 입지 안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법칙을 어겨서 어긴 값으로 영원한 사망을 당하게 됐을 때에 하나님의 법칙 어긴 것은 그대로 둬 뒀습니다. 그대로 둬 뒀기 때문에 불택자들은 그 에덴 동산에서 인류 시조가 어긴 고대로 출생했습니다. 어긴 그대로 출생하고 거기에서 다시 복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택한 자들은 여게서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 여게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뭘로 구출해 주셨느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만 믿을 것이 수많은 것을 믿게 된 거기에서 다시 하나님만 믿도록 복구시키고, 하나님만 위하도록 복구시키고, 하나님만 딿도록 복구를 시켰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은 십자가의 도인데. 그러면, 십자가의 도라 하면 이거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십자가의 도는 어떤 게 십자가의 도냐? 십자가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딿은 그게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인데. 이 길을 가다 보니까 세상에서 저 믿지 않는다고 저 위하지 않는다고 저 딿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마귀란 놈이 박해를 주는 것인데 주는 것은 예수님에게 패전했기 때문에 저는 우리를 박해줄 수 없습니다. 박해줄 수가 없지만, 이거는 예수님께서 이제 승리했지만 승리했으니까 마귀들이 성도를 승리 못하도록은 못하지만 성도들을 연단시키도록 해 가지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이 훈련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영광이 있고 이 훈련에서 패전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입고 있지만 아무 영광이 없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딿은 이 일을 할라고 하니까 이 세상 마귀들이 우리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는데 그 어려움을 조그만한 어려움에서도 견디는 사람 있고. 생명이 끊어지는 어려움에도 견디는 사람 있으니 생명이 끊어지는 그 어려움에서 견디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완전히 다 입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또 거기에서 소유가 없어지기까지 없어지기까지 끊어지지 안한 사람은 그 모든 소유에 대해서는 그 만침 권위가 있습니다. 또 자기의 모든 몸이나 그런 것이 다 절단나도 다 양보하지 안하고 나가는 사람은 자기의 몸에 대한 영광이 있고 소유의 영광 또 몸에 대한 영광 자기의 영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영광 이런 영광이 다 복구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딿은 이것이 복구된 이것이 영원한 멸망에서 생명으로 복구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존영한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만 믿는 이 생활이 제일 존귀합니다. 어떤 피조물도 믿지 않고 하나님만 믿는 이 생활이 제일 존귀한 것이요, 또 하나님만 위하는 그것이 또 제일 존귀한 생활이고. 하나님만 딿는 그 생활이 제일 존귀한 생활입니다. 이 제일 존귀한 생활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제일 존귀한 생활을 할라고 하니까 세상이 우리를 이 제일 존귀한 생활을 하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만 거 흔드나 우리가 제일 존귀한 생활을 우리만 양보하지 안하면 됩니다. 그들이 뺏들라 해도 우리만 양보하지 안 하면 제일 존귀한 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천상 천하의 피조물로서 제일 존귀한, 예수님께서 일차적으로 아버지 보좌에 앉았고 우리가 이차적으로 예수님의 보좌에 앉을 제일 천상 천하의 피조물 중에 제일 존귀한 자가 될 수 있는 이 길을 우리가 걷게 되는 것인데, 이 길이 뭐 예수 믿는 길이 이 게 천한 길이 아니오. 제일 존귀한 길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존귀한 길을 걸어 갈라 하니까 예수님도 이걸 복구 할라 하니까 그렇게 모든 걸 다, 마지막에 죽음으로 승리했는데 우리도 죽음이 아니고는 승리할 수가 없다 그거요.
(8506090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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