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2:15
'너희는 돌아보아'
혼자만 살 것이 아니라 신불신자, 택불택자 모든 전 인류를 돌아보라는 말입니다. 인류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만물을 전부 다 돌아보라는 말입니다. 거기 대해서 상관없는 것이 아니고, 책임 없는 것이 아니고 그 전체, 인류 전체, 피조물 전체 그것들의 흥망 성쇠를 책임져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돌아보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것을 망치고 자기는 잘되려 하는 것이 타락한 마귀가 준 방법입니다. 그 모든 것의 행복을 위해서 나를 거기에 제물로 녹이는 것이 주님이 우리 위해서 걸어가시고 시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 직위를 주셨습니다. 모든 만물의 행복을 책임졌을 때에 나는 만물의 영장이라,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에 '모든 지음 받은 것들을 다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는 근본 지위의 이 책임을 자기가 가질 때에 조부라움이 없어지고, 이런 저런 모든 구렁텅이 골짜기가 없이 평평하게 주름잡아서 모든 것에 다 평강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를 인하여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수천 수만 면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사람들이 은혜에 밀접하게 도달하는 데에 내가 방해된 것이 없나 해서 두려워합니다. 자기의 하는 일이 부족함을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밀착되지 못하는 점이 있지 않나 해서 두려워합니다. 내가 하지 못한 것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지 못해서 주님이 피 흘려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밀착되는 이 일이 혹 완성되지 못하는 이런 일이 없나 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광대하고 큰 것을 품었을 때에 우리는 피조물이지마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넓어지고 커집니다. 뭐 사소한 것, 네 것이다 내 것이다, 이거다 저거다 하는 그런 것이 없어집니다.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쓴 뿌리는 악을 가리킨 것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을 가리킵니다. 악성이 무엇입니까? 원죄입니다. 악습이 무엇입니까? 본죄입니다. 자기가 평생 지은 죄를 가리켜서 악습이라, 악의 연습한 것이라, 악을 익혀 숙달한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이것은 본인 괴로운 걸 말합니다. 본인 괴롭다 말이 어디 있는가? 그 밑에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 대조로써 본인이라는 것을 여기 나타내고 있습니다. '쓴 뿌리가 나서 본인을 괴롭게 하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들의 고통은 전체가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주는 고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하신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고 자기를 중심하면 평안은 없습니다. 김일성씨가 이북에서는 자기의 소원 성취가 이루어지니까 거기서는 평안을 누릴지라도 이남을 바라보면 평안이 누려지지 않습니다. 자기 중심의 사람은 소원이 이루어질 리도 없고 대적이 없을 리도 없고 평강과 생명이 있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쓴 뿌리가 나서 자기를 괴롭게 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그놈을 죽여야 되는데 그게 나타나서 그것으로 인해서 본인이 괴로워진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 두고 자기를 더듬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는 두말 할 것 없이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어떤 은혜 역사로 옛사람 그놈만 떠나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가지는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에는 돌변적으로 우리는 악독이 가득히 찼다가 웃음이 나오고, 웃음이 나왔다가 오히려 그에 대해서 책임감을 못 한 데 대해서 눈물로 끝을 마치는 것이 우리의 신앙 경험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자기 중심의 옛사람으로 사는 목사가 한 사람 있으면 그 진영은 다 더러워집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장로가 한 사람 있으면 그 교회는 다 더러워집니다. 차차 감염되어서 더러워집니다. 그 구역에 쓴 뿌리 난 사람이 하나 있으면 다 더러워집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고통입니다.
얼굴을 보면 압니다. 그런 사람은 얼굴이 지옥입니다. 암만 웃어도 껍데기 웃는 것과 속에서 기쁨이 피어 나오는 것은 다릅니다. 그 피부에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쓴 뿌리 난 사람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러워질까 해서 두려워하는 이것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건설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서 이것을 봐야 되겠습니다. 자기만 잘 살면 좋다는 그게 벌써 지옥입니다. 우리 가정만 구원 잘 이루고 잘 믿으면 좋다 하면 벌써 지옥을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아직 넓은 범위를 못 보고 있어 그렇지 넓은 범위에서는 자기는 지옥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무형의 감옥 속에 갇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88050650)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쓴뿌리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에 반대되는 것이요 곧 안 믿는 사람들에게 있는 행위입니다. 쓴뿌리라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구속주의로서 구속 위해서 살아야 되는데 세상주의로 사는 그것이 쓴뿌리요, 세상에 있는 유물주의로 사는 것이 쓴뿌리요, 세상 위주 물질 위주로 사는 그것이 쓴뿌리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어디서 괴로움을 당하느냐? 세상 염려와 재리의 염려, 세상주의 물질주의 이것 때문에 전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쓴뿌리로 즉, 세상 때문에 괴로움당하고 유물주의기 때문에 물질 때문에 괴로움 당하는 거기 대해서 안타까워서 애터지는 그것이 거룩한 사람이요 화평을 이룬 사람입니다.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사람이 이 세상주의 물질주의 물질 세상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는 그것에 대해서 안타까워 두려운 마음으로 거기서 그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그 뜨거움이 있으면 그것이 거룩이 있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거룩의 소산입니다. 거룩이라는 나무 위에 이제 이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그 두려움과 또 쓴뿌리가 나서 사람들이 괴로움당하고 있는 거기 대해서 안타까워 두려움과 또 한 사람뿐 아니라 한 사람이 그리 되면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서 감염되어 세상주의 물질주의 때문에 더러워지고 고통당하는 이런 일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결실이 되고 열매가 맺어졌으면 거룩이라는 그 나무가 되어 있다 하는 것입니다.
(87120601)
'너희는 돌아보아'
돌아본다는 이것은 서로 돌본다는 뜻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본다는 것은 자기가 앞서 가야 된다는 그런 뜻이 깊은 속에 알맹이로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여기 하나님의 은혜라 말하는 것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는 완전한 것, 영원한 것, 불변한 것 그런 특수 은혜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밥 잘먹고 옷 잘입고 뭐 모든 것이 풍성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특수 은혜, 타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평강 영원에 속한 이 은혜를 받는 그 접선이, 그 은혜를 받는 하나님과의 관계 맺는 이 관계를 맺지 못한 그런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는 것 요 두려움을 말합니다.
(87120820)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쓴 뿌리'는 잘못된 철학이나 잘못된 과학이나 잘못된 사상인데 그것이 믿는 사람 속에 박혀 있어 그것 때문에 자기가 생명의 주를 만나나 생명의 주를 따라서 평강을 얻지 못하고 그것이 들어 항상 자기를 괴롭히는 것을 말합니다.
'더러움을 입을까'
더러워진다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구원과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88041701)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쓴 뿌리'는 악령에게 미혹을 받은 자기 중심의 성격, 또 자기 중심으로 행동한 버릇을 말하는데 그것이 있는 사람 그것이 자기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땅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괴로운 것은 '욕심에 끌려 미혹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악령 악성 악습 이 셋이 합하여 옛사람인데 옛사람 그놈이 자기를 주관하고 있으면 괴롭습니다. 옛사람이 속에 들어 있으면 먼저 자신이 괴롭고 그 다음에는 옆에 있는 사람이 괴롭습니다. 이래서, 가정에 옛사람이 강한 자 하나가 있으면 온 가족은 지옥입니다. 그러나 옛사람 그놈이 죽으면 본인도 평안하고 온 가족도 평안하고, 옛사람 그놈이 죽은 사람은 가는 곳마다 천국입니다. 모든 사람도 좋아하고 자기도 좋고 다 좋습니다.
* 약1:14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88041810)
'너희는 돌아보아'
'너희는 돌아보아' 하는 말은 자기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책임져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은 다 죽는데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까 항상 그런 염려로 사람을 접할 때도 '내가 이 사람을 접할 때에 내 말로 인해서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까? 내 태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까? 내 소문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까? 내 하는 모든 행동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까?' 사람을 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88041920)
'너희는 돌아보아'
‘너희는 모든 사람을 돌아보아’ 어데든지 가면은 다른 사람의 책임을 지고, 안 믿는 사람으로도 미국 사람들은 남 돕는 것을 책임진다 이래 가지고서 해방 직후에 미국 사람들이 처음 들어오고 나서는 여기 뭐 은행이든지 무엇이든지 가면은 패를 써 붙여 놨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또 저 모랭이마다 써붙이기를 ‘어서 오십시오’ 그거 다 봉사하는 말인데 그것은 고깃덩어리를 그래 하는 것입니다.
미국 나라도 속에 신령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신령한 데 되어 있지 안하지만 육적으로 되어 있어서 어디에 가든지 가면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제가 안 가다가 은행에 한번 가니까 뭐 패목을 요래 딱 써서 세워놨는데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 소리를 들으니까 어떻게 한국에서는 듣기 희귀한 소리인지? ‘야, 이런 소리가 이거 어짠 소리냐?’ 그래 내가 갔다와 가지고서 물었어. 물으니까 ‘은행에마다 모두 은행마다 모두 그래 써놓고 있지 않습니까, 다.’ 이라는데 그것이 미국서 건너온 말입니다.
또, 모랭이마다 딱 돌아서면은 패목이 먼저 ‘어서 오십시오’ 하는 그 말이 쓰여 있습니다. 사람을 상대방을 대우하는 것이고 기분 좋게 하는 것이고 그거 아주 참 그거 봉사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육덩이지만 ‘너는 모든 사람을 돌아보아’ 하는 것은 어데든지 가면은 자기와 접촉되는 모든 사람을 자기가 책임지워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돌아보아 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 척 앉으면은 생전 초면이라도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책임을 지웠다’ 또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내게 책임지웠다’ 책임 지웠으니 내가 이 사람들에게 유익을 줘야 되지 손해 줘 되겠느냐?
(880516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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