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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성경:60베드로전서01:21
 

벧전1: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우리 택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또 죽은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하신 이 사활의 대속, 사활의 대속의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러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었는데 그 영광 주신 것은 뭐 때문에 영광 주셨느냐? 택자들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것 때문에 영광을 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제2위 성자가 도성인신 하셔서 십자가 못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또 3 일 만에 대속의 부활을 하심으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님의 신성이 없는 가운데서 천지를 만드셨다고, 영계를 만드셨다고 영광을 주신 것 아닙니다. 또 전지 전능자라고 해서 영광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제2위이신 그리스도에게,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성부 성령이 성자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사활을 설정하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삼위일체께서 죽고 사신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님이 권세 있고 능력 있고 지혜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영광 주신 것 아닙니다. 이거는 성부의 영광도 아니요 성령의 영광도 아니요 성자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영광스럽다' 이렇게 존귀한 영광을 주었습니다.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나 꼭 같이 전지 전능입니다. 또 창조하실 때에 꼭 같이 창조했습니다. 그러면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나 꼭 같은 영광을 가질 것인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만 영광을 주었습니다. 그 영광 준 이유가 뭐인가? 죽고 사신 것 때문에 영광을 줬습니다. 죽고 사신 것 때문에 영광을 줬습니다. 예수님이 삼위일체에게 영광 받으신 것은 택자를 대속하시는 사활의 대속 공로를 설정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 주시는 것은 어떤 자에게 영광 주신다 하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천국뿐 아니고 세상에서도 그러합니다.

만일 그 가정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고 하면 그 부모지마는 영광이 다릅니다. 자녀들이 영광을 돌릴 때에 어머니에게 영광을 많이 돌릴 수도 있고 아버지에게 영광을 많이 돌릴 수도 있고, 또 그 집안에 사람들이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다릅니다. 다른 것은 분명히 그 자녀들과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영광을 많이 돌린다고 하면 어머니가 그 가족과 자녀를 위해서 많은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많은 사랑과 은혜의 희생을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일반은 다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또 아버지에게 영광을 많이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대해서 자녀를 위하여 사랑함으로 희생의 그 공로가 많으면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 영광 돌린 것은 뭣 때문에 영광을 주었느냐? 죽고 사신 것 때문에 영광을 주셨습니다.

어떤 학교에서 교육가에 대해서도 모든 학생들이나 동창생들이 교장이라고 높이고 또 이사장이라고 높이고 그렇지만도 아닐 것입니다. 이사장도 아니요 교장도 아니요 교감도 아닌데 어떤 그 말단 선생님에게 온 학생들이, 온 동창회 학생들이 다 머리를 숙여서 영광을 돌린다면 분명코 그 선생님이 그 학생들을 위한 많은 희생과 노고가, 공로가 있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 본성이 어떠하며 대우나 영광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 하필 성부도 성령도 영광을 주지 않으시고 성자에게 영광을 주셨는가? 성자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죽고 사신 그것 때문에 영광을 주셨다' 여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서 살 하늘나라, 모든 택자들을 다 만날 것이고, 또 천군 천사들을 만날 것이고, 모든 피조물들을 만날 것이고, 또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가까이 못 하나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있는데, 그 나라에는 그 영광이 어떠할까? 비록 지옥에 있는 사람이 하늘나라 오지는 못했어도 하늘나라에 있는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하늘나라 가지는 못했지마는 이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도 무궁세계 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지옥에 있으면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영광 돌림을 받는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또 천국에서도, 천국에서도 우리 같은 시대에 산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천 년 전에, 2천년 전에, 3천년 전에, 혹은 몇백 년 전에 살고 간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와 동시대에 산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우리들이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동시대 사람이나, 아주 다른 시대의 사람이나, 나는 동양 사람인데 저 서양 사람이나 그 사람의 모든 세상살이가 옷 입듯이 입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일생의 생애가 옷과 같이 밖에 환하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참 듣지 못한 사람들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비로소 그를 보고 영광을 돌리고 머리를 숙이고 환영을 하고 할 것이요, 또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지마는 만났을 때에 아주 냉정하고 본듯 만듯 아무 상관없이 그렇게 아주 냉정스러움을, 냉대를 당하는 그런 사람들도 하늘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은 당신 위해서 사시지를 않았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했습니다. 인자라 말은 아주 인간 중에 제일 천한 인간이 인자라 말인데,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 중에 제일 가난하고 천한 자 된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인류에게는 없습니다. 아무리 없어도 예수님보다는 부자입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순전히 당신 위해서 하지 않으셨고 첫째는 우리 택한 자들을 위해서 있는 걸 다 기울이셨고, 또 다음에는 지옥에 가 있는 그 사람들 위해서도 다 기울이셨고, 다음에는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서 다 기울이셨기 때문에 그 기울임의 효력이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었지마는 그래도 그들도 정평 정가로서 대우는 합니다. 이래서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자들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렇게 빌립보 2장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영원한 세계가, 이러한 영원한 세계, 참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할 그 평가로 되는 알지도 못한  한 이상스러운 그 세계가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도 그러합니다. 가정에 부모면 자녀들이 다 죽으면 울겠지마는 울음은 다를 것입니다. 다른 것은 각각 다 자기 속에서 울려 나오는 그 눈물은 그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그의 일생 동안 자기와의 관계된 거기에 예수님의 사활하신 거와 같은 그런 성질의 그 사랑의 희생의 노고에서만 그 자손들의 속 눈물은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믿는 자라,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 사람들이 별별 걸 믿고 안 삽니까? 돈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기술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젊음을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건강 믿고 사는 사람도 있고, 또 남편 믿고 사는 사람, 자녀 믿고 사는 사람, 부모 믿고 사는 사람, 부처 믿고 사는 사람, 마호멧트 믿고 사는 사람 별별 걸 믿지마는 그 모든 믿음의 대상이 믿는 대로 효력을 줄 수 있느냐 하면  효력을 주지 못하고 그 자체들이 다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믿는다 하지마는 어느 종교든지 종교에서 믿는 그 교주가 죽어 버리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믿는 자에게 대해서 대응을, 보응을 해 줄 수가 있습니까?  아무 보응을 해 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래서, 참 이 세상에 헛된 것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예수님께서 당신이 사람되어 오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시고 하신 이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이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사활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는 것이 천도 만도 넘은데, 모든 사람들이 다 천도 만도 넘은 그 모든 거 믿다가 다 낭패당했는데, 낭패를 당하지마는 낭파당하고 난 다음에 알지 낭패당하기 전에는 다 태산같이 믿고 가는데, 가는 그것이 전부 다 헛일 아닙니까? 이런데, 우리가 영원히 불변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게 된 것이.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셨느니라'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했다, 우리 믿는 것이 하나님 믿게 했고 우리가 땅위에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고 하나님 소망하게 한 이것이 뭐이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것과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있도록,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이렇게 된 것이 이것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됐습니까? 우리 믿는 것이 하나도 헛일이 되지 않고 '믿은 대로 되리라' 성경은 다 전부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됐을까?' 하는 여기 대해서, 천하를 다 주는 것보다 이게 크다는 것을 자기 속에 깊이 느껴질 수 있는 그것은 사람이 되어감에 따라서 느껴집니다. 또 내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둔다는 것, 사지에서도 하나님에게 소망 두고, 공산주의 첩첩 포위 중에서도 하나님께 소망 두고, 어디서든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소망 둔다는 이것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그분만을 믿도록 됐나 그것을 여기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우리가 이렇게 수많은 믿음의 대상, 소망의 대상이 많은데 하나님 한 분을 소망하고 믿게 되는 이 길이 어떻게 트였느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사람되어서 우리를 이 길을 틔우기 위해서 죽으셨고, 또 영원히 사람으로 살아나신 이 사활의 대속의 사랑으로 인해서 이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마귀와 사망에게 갇혀 있는 데에서 이 죄의 형을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받음으로 우리를 삼킨 죄가 박살났고, 또 사망이 박살났고, 마귀가 박살났고 우리는 해방과 자유를 받았습니다. 우리를 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영원한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또 우리를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완전 통과시키기 위해서 죄 없는 자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자로, 하나님과 완전 화친한 자로 공심판에서 완전 통과시키기 위해서 당신이 우리를 대신해서 사셨는데, 우리 위해서 대신해서 사시면 그 사심이 억만 년 가도 그대로 미결될 터인데 마귀란 놈이 이 사시는 걸 살지 못하도록 하려고, 항복 받으려고 고형을 하다 그만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이래서 마귀는 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공심판을 면케 했습니다. 또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셔서 영감과 진리로 영원히 하나님을 향한 사는 것을 우리 대신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중생으로서 영생하는 이 생명을 얻게 됐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것만 생각해도 평생 생각해도 모자랍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의 대상이 천도 만도 넘은데 참된 하나만 되는 하나님을 믿게 됐고, 헛된 소망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그 소망이, 미혹의 소망이 천도 만도 넘은데 우리는 영원히 후회 없는 참된 하나만이 소망되는 하나님을 소망하게 된 것이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 눅9:58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1)
* 빌2:10 :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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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런 중보자로 인해 믿는 자니, 이미 연결되었고 또 되고 있는 자니 존귀한 자입니다. 없어질 소망이 아닙니다. 연결의 대상이 클수록 큽니다. 우리는 만유주 여호와로 연결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할 자입니다. 배짱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말렉을 추억해서 벌하신 분이시니다.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너희 믿음이 하나님에게 연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과 같이 너희는 만물 위에 있고 하나님 한 분 밑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고 이외에 딴 것을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이요, 그 외에는 내가 다 깔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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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1절 “너희는” 하는 말은 택함을 입고 중생받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모든 사람들을 총칭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저는 구주 예수님을 가리키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예수님은 두 가지를 인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세 가지 죄를 범한 죄값으로 인해서 형벌받아 죽어 버렸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무와 책임의 본분이 있는데 이것을 하지 못한 것을 주님이 대신 하시느라고, 이것을 대신함으로 소유와 몸과 생명이 다 끝나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가난해지심과 죽으심은 이 두 가지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을 어긴 죄, 순종에 미달된 모든 죄, 하나님의 법으로 위반된 죄, 또 하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 만물의 영장된 사람이 자기 뜻 자기 주장 자기 욕심 자기로 인하여 산 이 죄, 하나님과 결합해서 살아야 할 인생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산 하나님을 배반한 이 죄, 이 세 가지 죄값으로 영원한 사망 가운데에 있는 우리를 이 세 가지 죄로 인한 형을 대신 받으심으로 죽으셨습니다. 세 가지 형을 대신 받아, 죽기까지 이 형을 받으심으로 이 세 가지 죄로 인해서 영원한 사망에 매여 있는 우리들이 거기서 해방됐습니다.

또 일면의 죽으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켜야 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아야 하고 하나님과 결합의 이 화친을 가지고만 살아야 영생이 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이 세 가지를 하시느라고, 남김없이 있는 것을 다 바쳐 이 세 가지 하시는 것으로 소유도 몸도 생명도 다 끝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형을 대신해서 사죄를 주셨고, 또 우리 대신의 의무와 책임을 하심으로 의를 우리에게 주셨고 또 우리 대신 하나님과 화친을 해서 하나님과 화친한 이 자녀의 지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라는 말씀은 이것을 두고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두 가지로 인해서 죽으신 것. 하나는 소극적이요 하나는 적극적입니다. “죽은 가운데서 살리시고” 죽으심은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당신이 죽으셨고, 죽으신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랬는데 이 죽으심으로는 우리는 사죄받았고, 의롭다는 이름을 받았고, 하나님과 화친은 됐지마는 새생명으로 살아나지 않으면 무죄자로 살 수 없고 의로운 자로 살 수 없고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대속만은 안되기 때문에 우리를 다시 영원한 생명으로 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자본을, 이 공로의 굴림을 받은 우리들에게,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야 이 대속의 공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죽은 가운데서 영생으로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거듭난 소망을 주셨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중생 못 합니다. 우리는 성화 못 합니다. 부활도 못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들이지마는 아들 노릇을 못 합니다. 의로운 자 되어 있지마는 의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죄가 없는 자이지마는 죄없는 자로 살 수는 없습니다. 살 수 있는 이 은혜를 우리에게 입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나서 살아난 이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살리시고,

‘살리시고’ 하는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죽음에서 완전히 우리를 구출해 놓으셨고 우리를 영원한 새생명으로 살게 하신 이 공로를 설정하신 것을 가리켜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러면 너희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공로와 우리와 관련되어 있는 우리들입니다. 너희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련되어 있고 또 죽은 가운데서 살리심에 관련되어 있다 그말입니다.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영광을 주신 하나님이라 말은 이렇게 우리를 대속하셔서 대사(代死)하시고, 대신 죽으시고, 대생(代生), 대신 살으신 이 주님에게 영광을 주신 하나님이라. 영광을 주셨다 말은 영계의 것과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은 다 예수님에게 소속하도록 예수님에게 붙이셨습니다. 이것도 마음이 적은 사람은 몇 억만원 빌딩은 있다면 ‘아! 가치 크다’ 말하고, ‘한 고을을 차지했다. 한 큰 도시를 차지했다. 한 나라를 차지했다.’ 하는 것은 큰 줄 알지마는 이 우주와 영계를 차지했다는 것은 벌써 자기의 지식을 초월한 큰 것이기 때문에 크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세계의 어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보기를 먼지같이 봅니다! 또 그것은 내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영원히 우리의 것입니다! 이는 틀림없습니다. 풋장담 지기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해지지 않습니다.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을,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대속하셔서, 대사로 죽음에서 건져냈고 대생으로 영원히 살게 하신 이 주님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내게 주셨다’고 주님이 부활 승천 전에 우리에게 증거하셨습니다.

또 ‘영광을 주셨다’ 말은 영계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이 피조물이 멸망한 이 멸망을 대신 멸망하시고, 멸망하셔서 멸망에서 건지시고, 멸망에서 건지신 이것이 멸망에서 건짐을 받은 자로 영원히 하나님의 것으로 누리면서 살게 하시는 이 생애, 생명으로 새 소망을 가지게 하신 이것을 영계에 있는 피조물과 물질계에 있는 피조물들이 다 깨닫고는 진정 감사하면서 무릎을 거기 꿇고 감사를 돌리고 주라고 시인하여 그만 바라보고 영광돌리게 한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은 성도가 먼저 몰라서 거역하지 깨달을 때에는 자기의 전부를 다 밑길 만하고 그에게 복종할 만하고 그를 위해서 섬겨 영원히 살아도 그 은총에 감사의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되고 다음으로는 모든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피조물들이 이렇게 느껴 모든 피조물이 감사와 영광과 존귀로 그만 위해서 살고자 할 수밖에 없는 이 가치 있고 옳아 모든 피조물들에게 가장 귀한 일을 예수님을 하게 하시고, 하게 하신 이것을 피조물들로 하여금 알게 하셔 가지고 이 은총 대속의 은총을 입도록 하신 것을 가리켜서 영광을 주셨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영광 주셨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을 다 주님에게 주신 것을 말씀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예수님이 멸망에서 영원히 구출하신 이 일을 예수님이 하시도록 맡기셔서 이 가치 있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는데, 했지마는 피조물이 모르면 소용없는데 한 이 일을 모든 피조물들이 차차 차차 알게 해 가지고 피조물들이 진정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도록 이렇게 하신 것을 가리켜서 영광을 주셨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을 주셨다.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과 모든 피조물이 무릎을 그 아래 꿇었다 했소. 이래 가지고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말은 이는 구주를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이런 말도 어려운 말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라.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이름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그 하나님의 직책, 직책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인생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왕으로, 다시 말하면 사랑의 완전자로, 지혜의 완전자로, 능력의 완전자로 만드시는 이 직책을 맡으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제사장은 어떤 게 제사장인가? 여러분들이 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 제사장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또 선지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선지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신정 국가의 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왕이라는 것을 신민 정치에 보면, 신정 국가의 정치에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이 우리를 제사장 만드실려고, 선지자 만드실려고,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는 왕을 만드실려고 하는 이 시공, 시공자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하나님을 믿는다 말은 하나님을 따른다 말이요 하나님을 좇는다 말이요 하나님을 본받는다 말이요 하나님을 배운다 말이요 하나님을 닮는다는 말인데, 믿는다는 것은 이것이 믿는다는 말인데, 믿는 것은 마치 하나님은 원형이라면 모형이 원형을 따라서 자꾸 이렇게 원형화되어져 가는 거와 같이 이래 믿는데, 하나님을 믿는데 어떻게 해서 믿느냐? 하나님을 따라가고 닮아가고 본받아가고 배워가고 그와 같이, 그를 따라가는데,

그러면 어떻게 따라가느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이렇게 조성하고 육성하고 연성시키시는 이 지극히 큰 영화로운 이 역사로 인해서 하나님을 지금 닮아간다. 네가 직접으로는 하나님을 닮아갈 수가 없고 하나님을 배워갈 수가 없고 본받아 갈 수가 없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져 갈 수가 없는데 그 중보자 그리스도가 이렇게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조성하는 이 조성 공사 속에 네가 들었다. 이 조성 속에 네가 들어서 지금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지금 닮아가고 따라가고 있다, 쫓아가고 있다.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였느니라”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였느니라’ 영원 자존자, 완전자, 영원 불변자, 이 완전자 이자에게 너희 믿음과 소망이 있게 하였느니라. 너희 믿음이, 너희 믿음이 어떤 잘난, 잘난 정치가에게 네 믿음이 있지 않았고, 어떤 학자에게 있지 않았고, 어떤 도덕가에게 있지 않았고, 네가 지금 닮아가는 것이 어떤 학자를 닮아가고 어떤 정치가를 닮아가고 어떤 영웅을 닮아가고 어떤 도덕가를 닮아가고 어떤 예술가를 닮아가고 어떤 아름다운 미남 미녀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고, ‘너희 믿음이 하나님에게 있게 했다.’ 너는 하나님을 향하여서 지금 하나님을 닮아가고 따라가고 쫓아가고 배워가고 본받아가고 하는, 네가 하나님에게 네 믿음이 있게 했다. 또 소망도 하나님에게 있게 했다. 너는 피조물 그것에게 네가 얻어 가지는 것이 아니고 자존자로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 창조하신 그분에게 그분의 창조 그분의 모든 것 그것을 네가 소망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피조물에게 소망 가진 그런 못난 자가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려 놓으면 그의 소망은 어떤 사람에게 있을 것이요 어떤 물건에게 있을 것이요 어떤 모든 조성들에게 있는 그것은 비참하고 가련한 자입니다. 그 소망은 썩었습니다. 죽었습니다. 보이느냐? 곧 보이지 않습니다. 있느냐? 곧 없어집니다. 크냐? 곧 작아집니다. 영광되느냐? 곧 수치스러워집니다. 기쁘냐? 곧 슬퍼집니다. 살았느냐? 곧 죽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어떻게 큰 말씀이고 어떻게, 이는 뭐 어떻게 측량할 수 없는 말씀!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을 믿되, 믿는다는 것은 그에게 순종이라 말이요 그를 따른다 말이오. 그를 쫓아간다 말이오. 그를 근본으로 삼아 내가 그에게 화해져간다 말이오. 그를 배워져 간다 말이오. 그를 닮아져 간다 말이오. 그와 같이 되어져 간다 말이오. 그를 따라간다 말이오.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어떻게 따라가느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같이 만들려고 하는 이 책임을 지고 오신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됐다 그말이오.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너는 어떤 피조물에게, 피조물을 향하여 믿는 자가 되지 않고, 네가 피조물 믿는 자 되지 않고, 피조물을 따라가고 피조물을 배워가고 피조물을 부러워하고 피조물을 본받아가고 피조물을 쫓아가고, 어떤 역사에 제일 잘난 그런 인물같이 될려고 그 인물을 네 표본으로 삼아서 원형으로 삼아서 그와 같은 자 되어져 가는 네가 아니다.

네 믿음은 하나님을 네 상대로 삼아서 하나님을 믿는 네가 되었으니 네 믿음이 하나님께 있고, 또 네가 소망하는 것도 어떤 피조물에게 소망하지 않고 하나님 그 자신에게 소망하는, 하나님 자신에게 소망하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그 사랑의 소망,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능력의 소망, 하나님 그 자신에게 네가 소망을 가지도록 했다. 하나님이 엿새동안에 만든 그, 하나님이 엿새동안에 만든 그 중의 한 부스러기, 한 모퉁이, 그것이 깨져 가지고 썩어져 있는, 썩어져 있는 거기 소망 가지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에게 소망을 가지도록 했다!

이런 말씀은 대인이 아니면 소화가 안될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조그만한 지방을, 한 나라를, 어떤 한 물건을, 한 사람을 크게 여기고 그것만 크게 여기는 그 눈을 가진 자는 이런 말씀은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오. 과학자들의 말대로 하면 이 우주에는 지구 땅덩어리 같은 수많은 것이 마구 돌아가니까 그 소리가 굉장하지마는 우리 속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큰 말씀은 자기 자율을 떠나고 주관을 떠나고 성령의 감화 감동이 아니면 들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소원도 가질 수도 없고 욕망을 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82051601)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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