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여기에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이 말씀은 '5가지 외식을 버리고 5가지 소망을 잡은 자야'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8절에 말씀은 어떤 말씀인고 하니, '5가지 소망을 잡은 자야, 주님의 주신 양떼가 울 때에는 같이 울고, 웃을 때에는 같이 웃고, 또 양떼가 갈팡질팡하면 가서 돌보아 주는 것처럼 한 죄인이 죄악에 빠져서 헤매일 때에 찾아가서 권면해 주고 고쳐 주어라. 또 양떼가 이 곳에서 풀을 다 뜯어먹으면 저 쪽에서 풀을 다 뜯어먹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 주어라. 목자는 양떼를 따라 다니면서 장막을 칩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에게 편리 한대로 장막을 치는 것이 아니라. 양떼를 따라 다니면서 양떼를 돌보는 데에 편리한 장소에다가 장막을 칩니다. 또 성질이 사나운 염소를 던져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보살피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강퍅한 자를 정성을 다 해서 돌보아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씀에서 참된 목자와 거짓된 목자가 어떤 자인지 이것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참된 목자는 어떤 자인가?
삼대 희생이 있는 목자인데, 양떼를 따라가는 희생, 양떼를 따라서 장막을 치는 희생, 염소 새끼를 먹이는 희생, 이 삼대 희생이 있는 목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양떼를 따라가는 희생은 어떤 것인가? 주님의 주신 양떼가 울 때에는 함께 울고, 웃을 때에는 함께 웃고 양떼가 갈팡질팡할 때에는 찾아가서 돌보아 주는 희생인데, 양떼와 함께 생사 고락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떼를 따라서 장막을 치는 희생은 어떤 것인가? 양떼가 이 곳에서 풀을 다 뜯어먹으면 저쪽으로 옮기는데 자기를 위해서 자기에게 편리한 대로 장막을 치는 것이 아니고, 양떼를 따라다니면서 양떼를 돌보는데 에 편리한 장소에 장막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된 목자는 자기의 맡은 양떼를 위하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 장막을 치고 자기에게 편리 한대로 장막을 칩니다. 그리고 장막 안에서 쉬고 잠을 자는 시간이 많고 양떼의 생사 고락을 함께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면 염소 새끼를 장막 곁에서 먹이는 희생은 어떤 것인가? 염소 새끼는 나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집어던지지 아니하고 장막 곁에 매여 놓고 잘 돌보는 것처럼 강퍅해서 회개치 아니하는 교인, 하나님의 교훈을 잘 받지 아니하는 교인, 강퍅과 패역을 잘 부리는 교인, 이런 교인을 정성껏 돌보는 희생인 것입니다.
(주해공과)
'여인 중에 어여쁜 자'
여인 중에 어여쁜 자는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 여인을 보고 말한 것입니다.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에 '양떼의 발자취를 따른다'고 하신 말씀은 양떼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양떼가 환난 가운데에서 울면 같이 울고,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당하고, 괴로워하면 같이 괴로워하고, 웃으면 같이 웃고, 즐거워하면 같이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양떼가 갈팡질팡 할 때에 잘 인도 해 주고, 맹수가 오면 막아 주고 병들면 치료해 주고, 이렇게 양떼와 운명을 같이 하고, 희로애락과 생사 고락을 같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양떼를 따라서 장막을 친다'고 하는 이 말은 양떼가 이 곳에서 풀을 다 먹으면 저 곳으로 옮겨 주어야 하니까 목자가 장막을 쳐도 일정한 곳에다 장막을 치는 것이 아니고 양떼를 따라 다니면서 장막을 칩니다. 뿐만 아니라 목자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장막을 치는 것이 아니고 양떼의 유익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양떼에게 손해를 보이지 아니할 정도로 장막을 칩니다. 이런 목자가 참된 목자요. 참된 목자는 장막 밖에서 거처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거짓된 목자는 양떼를 위하지 않고 장막을 쳐도 일정한 장소에 치고 그 안에서 잠을 자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장막을 쳐도 양떼의 유익을 위해서 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칩니다. 그래서 장막 안에 거하는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이 장막을 친다'고 하는 말은, 한 말로 하면 양떼만 위하고 양떼의 생사 고락을 같이 하고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주님을 만나려고 하면 장막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자지 말고, 장막 밖에서 양떼들과 거처를 같이 해야 합니다.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장막 곁에서 염소 새끼를 먹인다'고 말씀했는데, 이 염소 새끼는 질이 나쁜 짐승입니다. 염소는 양을 시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도 보면 이런 교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자로서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염소의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잘 받지 않고, 회개치 않고, 패역을 부리고, 고집을 부리고, 자기의 주관대로 욕심대로 행하고 질투와 시기로 말썽을 부리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교인이라고 해서 집어던지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 두고서 알뜰하게 보살피고, 교훈하고, 지도하는 것을 가르쳐서 '장막 곁에서 염소 새끼를 먹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8절에는 목자의 삼대 희생을 말씀했는데, 하나는 양을 따라가는 희생이요. 또 하나는 양을 따라서 장막을 치는 희생이요. 또 하나는 장막 곁에서 염소 새끼를 먹이는 희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를 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세 번이나 말씀했다.
그런데 이 술람미 여인은 5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 중에 어여쁜 자가 된 것입니다.
1. 받은 구속을 소망으로
이 술람미 여인은 자기는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비록 죄인이었지만 구속의 도를 발견하여 이 구속을 소망으로 가졌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말했는데, 이 여인은 육신을 상대하여 살지 아니했고 자기의 이성 비판대로 살지 아니했고 자기의 인격을 다 기울여서 살았다. 자기의 이성 비판대로 사는 것은 외식인데, 이 여인은 이 외식을 버리고 겸손과 소망을 가지고 자기의 인격을 다 기울이는 진실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2. 하늘의 생활을 소망으로
5절 중간에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았다'고 말씀했는데, 이것은 자기의 처지를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장 1절 이하에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우리의 영원한 처소인 하늘에서 오는 것을 덧입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땅 위에 있는 자기의 처지는 게달의 장막, 곧 참되지 못하고 죄악의 생활인 줄로 알고, 솔로몬의 휘장. 곧 하늘의 생활을 소망으로 가졌습니다.
그런데 땅 위에 있는 자기의 처지를 자기의 영원히 누릴 참된 처소로 알면 외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술람미 여인은 땅 위에 있는 처지, 곧 가정이나 지위나 소유나 권세나 사업이나 이런 것은 게달의 장막, 곧 참되지 못하고 죄악적인 것으로 알았고 솔로몬의 휘장 곧 자기의 참된 처소는 하늘에 있는 줄로 알고 이것을 소망으로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처지로 만족하고 사는 것은 외식이요. 교만입니다. 이것이 죄악적이요.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처지로 만족하고 사는 이것이 외식이요. 죄악적이요. 심판 받을 것임을 발견하여 아는 이것이 겸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은 게달의 장막에 소망을 두지 않고 솔로몬의 휘장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3. 사랑과 긍휼을 소망으로
6절에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하지만 흘겨보지 말라'고 말한 대로 솔로몬 왕의 아내 곧 왕후가 될 여인이 일광에 쬐어서 얼굴을 검게 만들어 못 쓰게 되었지만 왕의 사랑과 긍휼을 소망으로 의지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가 복인 줄 알고 이것을 위해서 사는 것은 외식이요. 불행이요. 이것이 있는 것만큼 손해를 보고 이것을 주님보다 더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이것을 깨닫고 낙심치 아니하고 주님의 의를 힘입어서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세상 것을 위주로 해서 살면, 하나님의 도로 말미암아 어려움이 올 때에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가시가 있는 밭에, 가시덤불에 뿌린 씨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25 때에도 보니까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4. 자기 포도원을 소망으로
남의 포도원을 자기의 포도원인 줄 알고, 그것을 지키다가 나중에 이 사실을 발견하고 통회하면서 자기 포도원을 지키는 것을 소망으로 가졌다. 어미의 아들들이 술람미 여인을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유혹에 빠진 술람미 여인은 처음에는 그들이 자기를 사랑해서 포도원지기를 삼은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들이 노하여 사랑하는 왕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방해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지켜야 할 자기 포도원이 따로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것을 원통히 여기면서 이제는 자기의 포도원을 지키는 것을 소망으로 가졌습니다.
그런데 6절 중간에 말씀하신 '어미의 아들들'은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불택자들이요. 우리 안에 있는 부패성입니다. 옛사람입니다. '어미'는 세상이요. '아들들'은 이 세상이 낳은 부패성입니다. 그런데 이 부패성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포도원을 버리고 세상을 소망하여 세상으로 살도록 유혹합니다. 이 유혹에 빠져서 그렇게 살면 외식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새 소망을 가지고 우리의 포도원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포도원은 어떤 것인고 하니 주님의 가신 길, 주님의 생애 이것입니다.
5. 심령으로 섬김을 소망으로
이 술람미 여인은 주님을 섬기되 형식적으로 외식적으로 주님을 섬겨도 되는 줄 알고 그렇게 섬겼는데 주님을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섬기는 것은 외식이요. 심령으로 섬겨야 참된 섬김인 줄 알고서는 주님을 심령으로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벌써 양떼를 몰고 그래서 주님을 찾아서 심령으로 섬기는 이것을 소망으로 가졌습니다. 우리도 술람미 여인처럼 5가지 외식을 버리고 5가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해공과)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요렇게 고만 에덴 동산에 들어와 가지고서 하나님 한 분에게 속해서 그 분을 따라서, 그분을 따라서. 이래 그분에게 졸졸 따라서. 자. 제일 앞에 사람이 앞에 사람이 주님을 향하여 따라가면은 고 뒤에 사람은, 고 뒤의 사람만 보고 뒷꼭지만 보고 따라가면 되고, 자꾸 이래 따라가서 자꾸 이래 따라서 졸졸 가면은, 그러기 때문에 아가서에 보면은 그 양떼들의 그 발자취를 보며 따라간다 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성도들의 성도들의 걸어가는 그 걸음을 나도 계대해서 따라간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그 질서 조직 이 계통 이것이 정연한 것입니다. 이것을 탈선하면 안 돼요.
(8505083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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