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재빠른 베드로는 경험이 있습니다. 주님인지 주님 아닌지 어쨌든지 받은 증거는 있습니다. 그 음성 들으니까 속에 무엇이 일어납니다. 일어나지만 아직도 똑똑히 모르겠으니까 '만일 주시어든!' '물위로 나를 걸어오라고 한번 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요구가 쉬운 요구입니까? 물위로 걸어 오라 하는 것은 역사에 죽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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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가 주님을 만났을 때에 '나를 바다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주님을 만나면, 그 사람은 땅위에서 주의 명령이 순종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든지 걸어가지 못할 것 없고, 어떤 명령이든지 주의 명령에게 순종 못 할 명령 없고 '주여 뭐이든지 명하십시오. 내가 능히 복종할 수 있습니다.'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을 여기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조금 전에는 놀래 죽겠다 하는 사람이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주의 음성을 듣고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이 자기와 같이 계시는 그 주님을 발견하고 보니까, 베드로 생각에는 주님 한 분뿐입니다. 또, 베드로 눈에도 주님 한 분뿐입니다. 또 베드로 소원은 뭐입니까? 명령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뿐입니다. 주님이 공중으로 날라고 했으면 베드로는 날 것입니다.
주님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 복종하는 것으로만 주님에게 가까이 가지 다른 것으로는 갈수 없습니다. 기독자들이 주님 한 분에게 욕망해서, 주 앞으로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그 욕망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복종하는 데에는 세상을 발 아래에 밟고 갈 수 있습니다. 초인간적인 걸음을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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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내니 두려워 말라" 이라시니까, 28절에, 요 베드로 하는 일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만일 주시어든' 하는 것은 아직까지 요 주님에게 대해서 음성을 듣고 요렇지만 주님에게 대한 아주 밀접한, 연결을 가지지 안하고 조금 거게 의문이 있는 건데 의문을 가리켜서,뭘로 해결 지을라고 하느냐 하면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당신이 내게 계속 섭리하는 것을 봐서 당신을 확고하게 확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거는 이거 필연성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주님을 발견했다 할지라도 주님이 내기에 계속적으로 연속적인 그 섭리, 연속적인 그 섭리에서 자기의 신앙은 자꾸 이렇게 자라 가는 것이지, 연속적인 그 역사로 따라서 자라 가는 것이지 대번에 몽땅 한목 오는 것은 아니라 그말이오.
'만일 주시어든' 했는데 그다음에 '나를 명하여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하는 것은 이것은 이제 거의 자기를 다 부인한 온전한 신앙으로 벌써 서 가지고 이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그러면 이것이, 벌써 요게서 세 가지를 갖추었습니다. 세 가지 뭘 갖추었는고 하니 이제는 뭐 저거들이 이런 저런 소망을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 다 소망을 가지고 이것도 바라보고 저것도 바라보고 이것도 저것도 다 이랬지만 여기서 주님을 딱 향하면서 주님에게만 소망이 집중됐습니다.그 때는 다른 걸 바라봄이 없었다 말이오. 주님만 바라보는 바라봄의 요 주님만 바라보는 것. 주님이 해 주시는 것을 바라는 것, 주님만 해 줄 수 있다는 것 주님만 소원하는 것. 요 주님이 자기에게 해 주실 것을. 그것만,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라는 요 바람이 정선이 돼 가지고 온전한 바람이 됐 고 또 주님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해 주실 수 있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해 주실 수 없고,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랐고 주님만이 해 주실수 있다 하는 요 소망이 차차 차차 발라졌습니다. 소망이 발라졌습니다.
주님만이 해 주실 수 있다 하는 것을 그것을 그다음에 연속적으로 보면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이것 보면 아주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랐다 그말이오.
이제까지 밤새도록 풍랑에서 죽는다고 지금 죽을 지경인데, 그 뭐 물만 생각만 해도 징그럽고 귀찮을 것인데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니까, 물위로 걸어오시니 그때에 주님이, 주님이 주시는것 그것 만을 받을라는 거게 집중된 것 요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주님에게만, 소망하는 것이 주님에게만 집중됐다. 그때에 '아, 내가 살아서 앞으로 좌의정 우의정을 해야 될 터인데, 내가 살아서 뭐 가족을 만나고 어째야 될 터인데, 내가 살아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될 터인데' 다른 소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없고, 주님에게만 소망이 집중됐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깨달아서 굳게 잡아야 됩니다. 주님에게만 소망이 집중됐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라는 거기에 단일이 됐다 그말이오.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랐지 그때에 둘이나 서이나 딴것을 바라저 안하고 그저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랐다.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가지고 증거할 수가 있느냐 하면 밤새도록 물로써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주님에게, 그다음에 보니까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는 것을 이것을 보면 베드로가 그때 딴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말이오. 딴 데 소망이 하나도 없고,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바랐기 때문에. 이제까지 밤새도록 원수가 되고 밤새도록 진저리나고 밤새도록 무서운 그것을 바란 것을 보면 딴 소망이 하나도 없고 주님만 소망하는 그 소망 집중이 됐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구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주님이 주시는 것만 소망하는 요 소망이 단일로 집중됐다 요걸 여러분들이 잘 구별해야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바라는,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받을라고 하는 이 소망에 집중이 됐다. 또 그다음에는 주님만이 해 줄 수 있다.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자기는 받을, 주님이 역사로써 이루어 주시는.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만 바랐다.
그러면 요 두 가지 그 두 가지가 합해서 소망의 믿음입니다.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자기는 바랐다. 천 가지만 가지 바라는 것이 있지만 다 치워 버리고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란 고 단일 소망에 집중됐다. 그다음에는 주님은 나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주님은 무엇이든지 나에게 해 주실 수 있다. 주님은 나에게 무엇이든지 해 주실 수 있다.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란다 요것을 또, 주님의 능력을 바랐고 주님이 주시기를 좋은 종류를, 주님이 주실 때에 좋은 종류로 주시니 주님이 주시는 그 종류만이 내게 필요 있지 주님이 주시는 종류 외의 거는 필요가 없다. 주님이 주시는 종류 그 단일 소망에 집중이 됐고 또 주님의 능력으로 해 주시는 그것만 바랐지 다른 무슨 힘으로 해 주는 것을 바라지 안했다 말이오.
이렇게 소망의 집중이 돼 가지고 소망의 집중이 돼 가지고 이제 단일 소망이 됐습니다.
단일 소망이 되니까 이제까지에 있던 낙망이나 절망이나 그런 것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낙망 절망이 다 없어지지 안했습니까? 그들이 낙망한 것은, 물에, 지금 심히 밤새껏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물에 빠지면 그만이오. 물에 빠지면 그만 죽어 버리고 만다 그거요. 주님이 오시는 것을 물귀신이라고 그렇게 기절한 걸 본다고 해도 그들은 '물에 빠지면 인제 다 끝이다' 이래 가지고 모두 절망 낙망 공포에 가득히 찼는데, 이 베드로에게는 이 소망으로 인해서 모든 절망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모든 절망이 없어졌다 말이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바란다 이랄 때에 주님 외에 딴 데서 오는 것을 다 부인해 버려야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바라는 것이 돼지지 딴것을 바라고 있으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바랐다, 또 주님이 해 주시변 능치 못하심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랐으니까 다른 무슨 의지하는 힘이나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바라보는 힘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요것을 가리켜서 단일 집중 됐다. 이라니까, 그거는 절망과 낙망으로 더불어 싸워서 그걸 정복했습니다.
'물위로 오라 하소서.' 이러니까, 베드로가 이렇게 주님만 소망하는 이 소망을 가지니까, 주님만 소망하고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바라고 또 주님은 내기에 모든 것을 좋을 것을 다 해 주실 수 있다.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바라고,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바라고 이라니까 밤새껏 놀랐던 베드로가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이랬습니다.
'물위로 걸어서 오라고 하소서' 이러니까, 물위로 걸어서 오라고 하는 이것은 자기가 뭐 물에 대해서 이치를 환하이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배에서 그대로 내렸으면 물에다가 푹 빠져 들어가 버리지 뭐 별게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어떻게 배에서 '나를 걸어 오라 하소서' 이렇게 했겠습니까? 그것은 자기가 무엇을 의지하고 그와 같이 했던가 말이오. 자기가 배에서 내려서 물위로 걸어오라고 이렇게 명해 달라고 이렇게 말할 때에 그때에 그 베드로가 배에서 푹 뛰 내려오는 그것은 무엇을 의지하고 그런 요청을 했던가 말이오. 무엇을 의지하고 그렇게 요청을 했던가? 그는 순전히 주님만을 의지하고 그 요청을 했습니다.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이렇게 명해 달라고 하는 그 요청이 주님 만을 의지하는, 주님 의지하는 주님의지에서 그런 요청이 나왔다 말이오. 그 주님을 바라보는 것과 주님을 의지하는 그 두 가지에서 그 요청이 나왔습니다.
요청이 나왔고, '나를 걸어오라 명하시옵소서' 하는 그것은 주님만 바라 보고 주님만 의지하는 거기에서 주님에게 무엇이든지 복종할 복종이 구비 됐다 말이오 그러니까, 고 간단한 데에서 주님 바라는 것과 의지하는 것과 복종하는 이것이 완전히 구비됐습니다. 바라보는 것의 대적이 다 없어졌고, 밤새도록 바라보는, 주님 소망하는 소망의 적이 가득 찼고, 소망의, 밤새도록 주님 만나기까지는 소망의 적이 그들을 덮어 가지고 있고 적만 가득 찼었고, 또 의지하는 것이 다 없어서. 의지하는 것이 아무 것도, 의지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의지의 반대만 가득 찼어. 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반대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잊어 버리고 다 집어 던져 버리고 반 대하는 요것만 가득 찼었는데, 밤새도록 가득 찬 것이 절망과 또 의지없기 때문에 외로움과 또 자기네들 주관에 가득 찼습니다. 이 주관으로 가득 찼었는데, 이러니까, 순전히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가득 차 가지고 있는 그들인데,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은 누구의 적인고 하니 주님의 적인데, 다시 말하면 주님을 바라보는 적이요 의지하는 적이요 복종하는 적이요 이 세 가지 적이 이 악령과 원죄와 본죄, 악성과 악습 이것들인데 이것이 완전히 정복돼 버렸습니다. 완전히 정복 돼 가지고 '물위로 오라 하소서.' 이러니까 이렇게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하는 이 말 한요청을 하는 그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 이는 주님만을 바라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에게만 복종하려는 요 세 가지가 완전히 구비됐습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느껴야 돼요. 요 세 가지만 구비돼서 요 세 가지로써 충만한 고 필연성으로 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이 된 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요렇게 요 세 가지가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니까 그 베드로는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하는 그것이 그이에게 요청했다 말이오. 주님이 물위로 걸어서, 그때 '주님이여. 날 병신 고치는 능력 주옵소서. 나에게 어디 가서 전도하게 해 주옵소서. 나로 하여금 부귀 영광을 주옵소서'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물위로 걸엇오시니까 그 주님에게 단일 소망을 가지니 그때 '물위로 나를 걸어오라 하소서' 그것밖에 없고, 또 그때 주님만을 의지 하니까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하는 그것밖에 할말이 없고, 또 주님에게 복종하고자 하니까, 이제 복종하려는 요 마음이 각오가 되고 돌아보지 안하고, 주님 복종해서 죽느냐 사느냐 낭파가 되느냐 그런 게 아무, 그런 게 다 없었어. 없어져 버리고 주님에게 복종하려 하니까 '그저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그것 외에는 필연적으로 다른 거는 말할 아무 그런 것이 새에 끼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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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주시어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고 하니 '만일 주시어든' 주님은,벌써 여러 해 동안 따라다니면서 그 교훈을 들었기 때문에 주님은 어떠하신 주님이라.
주님은 말씀하시면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죽은 자도 살리고 또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말씀이라는 것을 자기가 들었고 따라다니면서 졍험했고 체험했고 했기 때문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하는, 주님을 향해서 요 소원을 했습니다. '나를 명하사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하는 요 소원하는 요 믿음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에게 이런 소원을 했을까? 그는 바다에 대한 상식이 넉넉한 사람인데, 사람이 물위로 걸어갈 수가 없는 거라. 물 위에 내려서면 빠져 들어가 죽지 뭐 별 수가 있습니까? 또 물위에 들어가면 그저 빠져 들어가는 것이요 빠져 들어가면 죽는 것이지 뭐 다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요 베드로가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주님이 하라 하시면. '주님은 능히 할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는 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견고했습니다. 또 내려서면 물에 들어가면 빠져 버리는데 별 수 있느냐? 주님을 의지하는 의지가 거게 섞인 게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섞인 게 없고 주님을 의지함에 섞인 것이 없었고 주님이 말쏭하시면 무엇이든지 당신이 시행한다는 것. 말씀하신 것은 우리만 복종하면 그대로 된다는. 요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믿는 요 믿음과, 그러면 자기가 주님을 볼 때에 저희 소망은 주님이 해 주시는 것을 소망하는, 소망도 뭐 형편이 좋으니까 될 것이다, 사람이 날 도우니까 될 것이다, 조건이 좋으니까 될 것이다, 내 기술이 좋으니까 될 것이다, 내가 열심 이 있으니 내 지능이 있으니 될 것이다 그런 거짓부리 그런 신앙을 가지지 안하고, 다만 '주님이 나에게 해 주시면 된다.' 주님을 바라보는 그 바라봄에 순진했습니다. 순진하고, 주님을 의지함이 아주 순진했습니다. 그거는 물에 들어가면 빠져 죽는 그런 어떠한 위험이라도 주님의 그 안보 주님을 의지하는 의지가 순진했기 때문에, 주님의 안보는 그런 게 문제가 없다, 이라면 내가 뭐 죽고 망하고 어떻게 되겠다, 이라면 절단 나겠다, 이라면 직장에서 쫓겨 나겠다 이라면 가정이 꽈괴되겠다 그까짓 것 하나도 생각 안 했습니다. 주님은,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명령대로만 하면 다 주님이 그대로 이루어주신다 하는. 주님을 의지하는 의지에서 두려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바라봄에서, 그거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역사에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소. 물위에 걸어간 일이 역사에 있었습니까? 물위로 걸어가는 일이 역사에 한 번도 없었지만 있었든지 없었든지 어떤 일이라도 주님은 할 수 있는 걸 믿습니다. 또 아무리 위혐해도 주님은 거기서 넉넉히 자기를 안보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주님이 말씀하시면,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 당신이 나에게 나만 할라 하면.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것은 나만 할라고 달라들면 주님의 도우심으로써 못할 것이 없는 그걸 또 믿습니다. 또 이렇게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 실 때에 자기는 소망이 일편단심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같이 되는 것을 그는 소원합니다. 뭐 다른 어부 질을 해 가지고 뭐 부자되는 그까짓 것도 다 포기해 버렸고 이제는 주님같이 되는 것을 저의 소원으로 했고 또 주님도 또 당신의 형상을 입어라고 당신과 같이 되라고 하는 것이 당신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신과 같이 되어지는 것만을 원하는 요 믿음을 가진 요거주님이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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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네가 지금 이걸 주장을 하는데 이 주장하는 것이 안 이루어지면 네 생명이 끊어진다, 그러면 생명이 끊어져도 그 순종할 수 있는, 마치 다시 말하면 생명이 끊어져도 주장을 할 수 있는, 생명이 끊쳐져도 그 생명이 끊쳐져서 끊쳐지는 생명으로 담보가 되는 생명의 이 담보가 되는 그런 그 믿음을 가지고서 구해야 되지 않느냐?
그러면, 엘리야가 바알 선지로 더불어 같이 그 나무를 밑에다 놓고 서로 분신 약속을 한 그 기도가 그것이 어떤 기도냐? 그것이 만일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듣지 안하면 자기는 거게서 나무에 태워 죽임을 받을 것이고 죽임을 받을 것이고 그 바알 선지들의 기도를 그 신이 듣지 안하면 바알 선지들이 죽는 것이니까 생명을 담보한 그 기도가 아닌가? 생명을 담보하고서 그들이 한 일이 아닌가?
또, 베드로가 물 위에서 이렇게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걸 어오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말할 때 주님이 걸어오라 했으니 그가 배에서 그렇게 밤새껏 풍랑으로 놀래서 주님이 오시는 것도 유령이라 할 만치 그렇게 자기네들이 참 대단히 마음에 참 아주 공포에 있는 그 사람들로서 주님이 오라하실 때에 물 위에 의심 없이 물 위에 척 내려선 그 내려 설 수 있는 그것이 생명을 담보한 그런 순종이 아니겠느냐? 또 그것이 생명을 생명보다 중량이 높은 그 간구를 했던 것이 아니냐? 그 간구 속에는 생명보다 더 무거운 중량의 그 간구가 있지 안했느냐? 또 그가 순종할 때 에는 그 순종에는 그 생명의 담보가 되는 그 순종이 아닌가? 그러면 순종 하다가 퍽 내려서 가지고서 그만 물에 빠지면 죽어 버리는 건데 죽어 버리는데 죽는 그 일을 하는 걸 봐서 생명을 담보하는 그만한 그저 신앙이 아니었느냐?
그 생명을 생명보다 생명보다 가벼운 그런 신앙이 아니라 자기 생명보다 중량이 무거운 그런 순종이 아니었느냐 하는 그것이 보여지고 또 그렇게 순종을 했다 할지라도 그 순종한 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와 가지고 물 위로 걸어가는 그 결과가 나타났어야 되는 것이니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안했으면 그는 다 소용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이래서 그렇게 주님께 물 위로 걸어오라 하옵소서 그런 말도 말도 할 수 있겠고 그런데 그 말하는 그 말에 물 위에 내려설 수 있는 그런 속에 알맹이가 있는 그런 말이야 되겠고, 또 그 물 위에 내려서는 그 순종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권능이 뒷받침이 되는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런 그 순종이라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면 이것을 볼 때에 다 그도 그러고, 또, 모세가 바로 앞에 가 가지고서 그 열 가지 재앙을 말할 때도 그때에 간구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 기도에는 다 이런 그 요소들이 구비돼 가지고 있었다.
'만일 너희들이. 그러면 내가 무슨 재앙을 내려가지고서 어떻게 하겠다.' 할 때에 만일 그렇게 했는데 재앙이 내리지 안했으면 그 모세는 죽는 것입니다. 어디라고 그걸 그 말한 대로 턱 돼 버리니까 모세의 생명이 유지됐지 그때에 말한 대로 이루어지지 안했으면 모세는 뭐 바로의 손에서 그거는 뭐 죽이는 것은 우리가 개미 한 마리 죽이는 것보다도 더 쉽게 그는 죽어졌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도 그게 다 생명의 중량보담은 무거운 중량을 가지고서 간구를 했고. 또 그렇게 하나님이 '그라면 네가 명해라, 이 우박이 내리도록 명해라 온역이 내리도록 명해라, 이렇게 그 재앙이 내리도록 명해라' 그들 앞에서 그 재앙이 내리도록 명할 때 그 재앙이 안 내려오면 그는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건데 그것도 생명을 담보할 만침 확신을 가지고 생명을 내놓을 반한 생명을 내놓아도 의심 없이 내놓을 수 있는 그 생명으로 담보할 만한 그런 확신을 가지고서 그들이 순종한 것 아닌가? 그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안했는가?
모든 것이 이래 좀 생각을 해 볼 때에 우리가 너무도 말은 말대로 저 혼자 얼마든지 돌아다니고, 또 마음은 마음대로, 또 얼마든지 돌아다니고, 이 행동은 행동대로 얼마든지 돌아다니고, 마음은 마음대로 또 이렇게 돌아다니고 또 지식은 지식대로 이 지식은 저런 무슨 일반된 그런 것도 아니고 결국은 하나님의 지식에 일치되도록 하려는 그런것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만 그렇게 만일 일치가 된다 할지라도 지식에 자기 지식과 일치가 되어지니까 결국은 고 옛사람이 나타나서 그 사람은 옛날 사람으로서는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적으로는 가장 슬기 있고 지혜 있고 용단 있고 결심 있고 의지 있고 단결심 있는 그런 세상에서 누구 보다도 그 원죄가 중심의 원죄가 강한 사람이 되어지겠고 또 그 악령의 뒷받침이 돼 가지고서 그 세상 그 망할 일을 가장 성공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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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이것은 참 어려운 소망인데, 물 위에 내려서면 빠져 죽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이 오라 하시면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을 자기가 믿고 그렇게 구할 때 주님이 ‘오라’ 하시니까 자기 마음에 `주님이 오라 하시니 물 위에 걸어서 주님 앞에 가는 것이 문제 없다’ 하는 것을 느껴서 물 위로 걸어서 주님에게 갔습니다. 갈 때에는 ‘주님이 나를 오라 했으니 내가 갈 수 있고, 또 주님이 오라고 하셨으니 나를 걸어가게 하실 수 있다.’ 하는 그것을 믿고서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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