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4:1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비둘기는 삼진에 저 비둘기 예절 있다고 비둘기를 다 말하지 않아요? '너울 속 비둘기 같다' 말은 너울을 폭 쓰면 딴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꼭 주님만 바라보는 걸 주님은 그렇게 원하십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그저 어려운 일 있어도 당신 좋으니까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의뢰하고 의지하고 당신에게만 간구해서 당신이 주는 것만 좋아하고, 요렇게 당신이 주는 것만 좋아하고 딴것 좋아하지 않는 그게 정절이오.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좋아하고 믿고 의뢰하고 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저거 남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오.
(89050813)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성도의 일곱 가지 미덕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인 성도,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가 무엇으로 단장을 해야 예수님께서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성도의 단장, 성도의 미덕은 1절 처음에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다'고 하신 이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말씀하신 '너울'은 신부가 입는 예복을 말하는데, 마태복음 22장 1절 이하에 보면 '예복을 입고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쫓겨나지 아니했는데,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쫓겨났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입을 예복은 예수님의 대속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대형으로 설정하신 사죄와 대행으로 설정하신 칭의와 대신 결합으로 설정하신 새 생명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예복인 예수님의 대속을 법적으로는 완전히 입어서 변동이 없지만 행위적으로는 입었다가 벗었다가 언제든지 중복적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말씀하신 '눈'은 마음을 말합니다. 생각이나 관념이나 사상이나 주의나 정신을 말합니다. 또 '비둘기 같다'고 하신 말씀은 '지조가 있다. 정절이 있다. 절개가 있다. 깨끗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다'고 하신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부인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받았으니 어떤 유혹과 환난이 몰아 부쳐도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받은 자로서의 그 사상이나 주의나 정신이나 관념이 조금도 요동되지 아니하고 변동되지 아니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는 것으로 정조로 삼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를 벗기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게 의를 입혀 주셨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화목의 제물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나를 하나님과 화목 되게 했으니,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죄를 지을 수가 없고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의를 양보 할 수가 없고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과 불목 될 수가 없고 하나님과 하나 된 것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 사상이나 정신이나 관념이나 주의가 어떤 유혹과 핍박이 와도 요동이 없고 변동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떤 달콤한 유혹이 오니까 그것에게 미혹을 받아서 이 사상이나 정신이나 관념이나 주의가 변동이 된다면 이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배신하고 간부와 간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주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과 의를 입혀 주신 것을 알고 죄를 대할 때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알고 의를 해치는 것을 당할 때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의를 입혀 주신 것을 생각하는 이것이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이 예복을 입고 주님께 가야 주님이 영접해 주시지 이 예복을 벗고 가면 쫓아내어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정결을, 마음의 정절을 빼앗기지 아니해야 합니다. 마음의 정절을 버렸다고 하면 몸의 정절을 가졌다고 해도 몇 푼어치도 안됩니다. 사람도 보면 수양이 높은 사람은 마음을 귀하게 봅니다. 하나님은 더욱더 마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우리는 인격의 지조를 가져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 4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인 그 면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인데, 이런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과 더불어 음행 하는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음행은 세상으로 더불어 인격 생활을 양보하고 신앙 정조를 파는 것인데, 세상의 어떤 유혹이 와도 신앙 인격이 더러워지지 아니하고 신앙 절개를 팔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서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씀하신 '눈'은 비유인데 마음을 말합니다. 사상이나 관념이나 주의를 말한다. 그런데 '그 눈은 비둘기 같다'고 하신 이 말씀은 그 눈이 깨끗하다는 말인데, 예수님의 피공로로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받은 거기에 대한 사상, 정신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 인하여 변동이 없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사죄를 받은 자가 죄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 칭의를 받은 자가 의를 빼앗기지 않고 자기를 구속하신 주님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다'고 하신 말씀은 자기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받았으니 이것을 깊이 명심하고 자기가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죄를 지을 수가 없고 입혀 주신 의를 벗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의를 양보할 수 없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없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양보할 수가 없다고 하는 이 사상과 정신을 말합니다.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둘째로 예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성도의 미덕은 1절 중간에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다'고 말씀하신 이것입니다. 여기에 말씀하신 '길르앗 산'은 땅이 비옥해서 그 곳에 있는 염소는 검고 살이 찌고 윤기가 있고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정답게 누워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에는 독단주의였고, 사욕 주의였고, 가는 곳마다 불목의 원인자였는데 이제는 가는 곳마다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서 진리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기에서 기쁨이 나오고 평안이 나옵니다. 그런데 자기가 희생치 아니하면 화목은 없습니다. 주님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불목 되고 원수된 것을 소멸하고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화목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애는 화평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화목케 하는 직책과 화목케 하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고린도후서5장 18절∼19절 참조)
그러면 화평은 어떤 것인가? '화'는 하나가 되는 것이요. '평'은 동등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올바른 위치를 가지게 하는 것이 '평'이요. 단합하는 것이 '화'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류마다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금은 금만큼 대우하고 흙은 흙만큼 대우하는 것이 '평'입니다. 그런데 금을 흙만큼 대우하고 흙을 금만큼 대우하는 것은 '평'이 아닙니다. 각자의 위치가 있으니, 그것만큼 대우하는 것이 평입니다. 그런데 이 위치의 대우를 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비극인 것입니다. 단합하면 살고 강하고 쪼개면 약하여지고 죽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올바른 위치를 가지고 상호 협조하고 관계를 가지는 것이 곧 생명입니다.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서로 협조하지 아니하고 흩어지는 여기에 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게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 성도의 미덕입니다. 화평은 모든 것을 살리고 불목은 모든 것을 죽인다. 전부가 하나 같이 되어야 이것이 완전한 것이요. 여기에서 생명이 온전해 지고 권위가 온전해 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성격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저것에 먹혀짐으로 존재하고 저것은 이것에게 먹혀짐으로 존재하고 자체가 남을 위하여 희생되는 이것으로 완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물건의 가치는 쓰여지는 데에 있습니다. 가치가 많은 것은 쓰여지는 곳이 많은 것입니다. 먹혀지는 곳이 많으면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남에게 종이 된 자요. 많은 사람을 섬기는 자가 큰 자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실력은 자기가 종이 되어 섬김으로 많은 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요긴하게 필요하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이것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크고, 많은 사람을 이용해야 크고, 많은 사람을 먹어야 크다. 이것은 사욕의 수건을 벗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미덕은 화평입니다. 자기가 봉사 할 곳을 찾아야 하고 자기가 쓰여질 곳을 찾아야 합니다. 이 자리가 평강을 누리는 자리요. 이 자리가 낙원이요. 피난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들에게 주시는 일만 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생애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커집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주시는 일만 하신다. 우리 성도도 이 생애를 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주는 것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생애요. 본분이요. 참사람의 본성인 것입니다. 자기가 가는 곳곳마다 '내가 어떤 면으로 쓰여지고 없어질까'하는 이것을 찾아서 생활을 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필요한 인물이 됩니다. 여기에 평강이 있고 여기가 낙원이요. 피난처요. 이것이 자기 천국이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설 자기를 단장하는 것입니다.
(주해공과)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우리는 예전에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 저주로 멸망을 받게 된 자들이 였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소멸되고, 하나님과 화평을 가지게 되고, 죄 문제가 해결되어 의로 옳겨지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옳겨지고, 하나님의 저주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옮겨지고,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소망이 없던 자였지마는 이제는 소망이 있고, 하나님과 끊어졌던 자였지마는 이제는 하나님과 결합이 되었고, 진리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게 되었고, 과거에는 우리가 멸망 중에 있었지마는 이제는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속을 깨닫기 전에는,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를 소망하고 그것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가가 되는 것 어떤 사람은 학자가 되는 것, 어떤 사람은 사업가가 되는 것 어떤 사람은 과학자가 되는 것, 어떤 사람은 예술가가 되는 것 어떤 사람은 기술자가 되는 것, 이렇게 세상 것을 소망하고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경을 읽고 듣고, 진리를 깨달아서 안 후에는, 이런 것이 우리의 참된 소망이 아니고, 참된 소망을 이루는 하나의 방편이요, 참된 소망을 이루는 하나의 처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참된 소망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창조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환영하시고, 모든 만물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인격과 행위와 생애, 이것을 이루어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망을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는데서, 어떤 사람은 정치를 하는데서, 어떤 사람은 노동을 하는데서, 어떤 사람은 공업을 하는데서,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는데서, 어떤 사람은 장사를 하는데서, 어떤 사람은 사원으로 근무하는데서, 이렇게 천태 만상의 인생살이에서 참된 소망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아름답게 보시는 인격과 행위, 진리가 정죄하지 아니하는 깨끗하고 흠 없는 인격과 행위, 모든 만물이 환영하고 존경하는 인격과 행위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몇 가지로 말씀했는데,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소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소망으로 주셨고, 이것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사람에게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이런 세상살이 저런 세상살이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야 합니다. 전력을 기울여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았다고 해도 일관되지 않으면, 또 애로와 마찰이 있다고 해서 중단하면, 또 목적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라고 하면 헛일을 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상 어떤 소원을 가져야 하는 고하니, 영원 전에 스스로 계신 자존자 하나님,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조물주 하나님, 모든 것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하신 구원 주 하나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용하시는 섭리 주 하나님, 모든 것을 십판하셔서 행한대로 영원히 보상하시고 보응하시는 심판 주 하나님, 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이런 사람, 이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는 이런 사람이 되어 보자' 고 하는 사상과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데서, 사업가는 사업을 하는데서, 상인은 상업을 하는데서, 사원은 회사에 출근하여 근무하는 데에서, 가정 주부는 가정을 돌보는 데에서, 가난하면 가난한 데에서, 부요하면 부요한데서, 건강하면 건강한데서, 병약하면 병약한데서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잘난 사람인고 하니?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이런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하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부요하게 되는 것도 가난하게 되는 것도 평안한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가리지 않고 달게 받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하 사람들이 좋아하고 소원하는 것이라고 해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데에 손해를 주고, 방해를 하는 것이라고 하면 아무런 미련없이 집어던지고, 천하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라고 해도 자기를 하나님의 인정하는 사람으로 만드는데에 필요하고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하면 달게 받아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인생의 영주처가 아닙니다. 나그네 세상입니다. 인생이 언젠가는 떠날 세상입니다.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종말 시간, 세상을 떠나는 시간을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은 자기의 생명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생명에 대하여 일초라도 줄이거나 늘이지 못합니다. 젊음이나 사업이나 건강이나 이것들이 생명에 대한 주권 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렇게 인생은 생명에 대하여 일초라도 주권을 가지지 못하는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늘은 이것 해 놓고 내일에 믿음으로 살아서 구원을 이루겠다. 금년에는 이것 해 놓고 내년에는 믿음으로 살아서 구원을 이루겠다.
젊을 때에는 이것 해놓고서 늙을 때에 믿음으로 살아서 구원을 이루겠다' 고 하는데, 이것은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이 미혹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공장에서 일을 해도, 시장에서 장사를 해도, 월급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돈벌이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눈가림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불꽃같은 눈을 가지시고 모든 것을 환하게 보시는 조물주 하나님 앞에서, 만 인간들의 눈초리 앞에서, 모든 만물 앞에서, 천군 천사들 앞에서, 미안함이나 꺼리낌이나 부끄러움이 없고, 사랑과 칭찬 환영과 인정를 받을수 있는, 인격과 행위를 가진 사람으로 만드는 것 때문에 하는 것인데, 이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이 도리를 알기 전에는, 돈을 위해서 살았고 지위와 권세를 위하여 살았지마는, 이제는 이 도리를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모든 인류와 모든 만물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이것을 소망으로 삼고서 살아야 합니다.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 어떤 형편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동등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 소망을 이루는 것은 부요한 형편에서도 가난한 형편에서도 얼마든지 이룰 수가 있고, 공업에서도 상업에서도 농업에서도 얼마든지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살 때,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불법인데, 이 불법을 밀고 이기고 나갔으면, 이 불법으로 인하여 자기는 더욱더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망을 이루어 가는 데에 가난이 왔으면 부요가 왔으면 고난이 왔으면 평안이 왔으면 이것은 존귀한 것인데, 우리가 이 소망를 위해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소망을 이루도록 모든 것을 섭리하여 주십니다.
피조물도 여기에 이용되도록 섭리하여 주시는데, 이 소망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지 아니하면 성경 말씀은 거친 반석이 되고, 이 소망을 우리 소망으로 삼으면 성경은 이 소망을 이루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사람이 될려고 하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했습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고 말씀했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어여쁘게 보신다' 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조물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좋아하시는 사람이 될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이 말씀은 하나님과 결합된 인격의 정절을 지켜서 완전자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본다' 고 하신 말씀인데,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와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염소는 털이 검기로 유명하지만, 여러 마리가 한곳에 모여서 누워있으면 얼룩얼룩 하지 않고 전체가 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인으로 더불어서 화평을 도모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72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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