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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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주와 심판 시행에 대한 계시자와 이를 통하여 유일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택자 구원하시는 것을 보이는 계시 4장-5장 이 부분은 6장-22장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세상에 남은 역사가 어떠한 것을 보이기 전에 먼저 그것의 원인자이신 하나님의 그 속성과 영광이 어떠함과 그의 하실 일에 대한 계시자(곧 전개시킬 자)가 누구심을 보입니다. 4장에는 앞에 될 일의 원인자이신 지성부신(至聖父神: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에게 대한 말씀이고 5장은 될 일에 대한 계시자 곧 그리스도에게 대하여 보여줍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2장-3장까지의 회개의 계시를 보고 난 후에 란 말이니 회개 후에 볼 수 있는 순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에 중요한 원리중의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는 먼저 객관의 은혜 역사가 우리 주관이 이해 못하게 주입되고 그 주입된 은혜가 주관이 이해하며 소유하며 완성의 결과를 맺기까지에는 반드시 주관 행사인 신망과 회개의 순서를 통과하여서만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불가피의 순서와 같습니다.
주님과 자기와 가리어진 담도 영안과 지안(智眼)과 천국의 가리어진 담도 부패성과 본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영안과 지안을 여는 양약이며 천문도 열고 하나님도 볼 수 있는 권세입니다. 회개한 것만큼 신관도 자인식도 천국과 세상관 만물관이 올발라집니다. 성령의 훼방죄는 죽는 시간까지 회개를 거부하는 죄입니다.
회개는 유일로 권위있는 기도가 되고 성신과 하나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천부의 아들의 권세를 실력으로 가지는 방편입니다. 극기 혹은 자기를 부인도, 세상을 이김도, 주님과 천국을 보고 아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앎에는 보는데 있고 보는 것은 눈이 열려야 되나니 영안이 열리는데는 회개의 안약을 발라야 합니다. 죽은 것이 사는 것도, 얻는 것도 이김도 영광도 다 회개의 관문으로만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회개의 순서후인 '이 일 후에' 천국이 보여졌습니다.
'내가 보니'
특히 여기에 본 자를 복수로 하지 아니하고 단수로 말함에 있어 사도 요한이 계시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평범히 지내 볼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주의하여 볼 점은 천계가 열리고 보여지는 것은 누구의 의속(依屬)이나 의뢰 협동(協同)으로 볼 수 있음이 아니고 개인적의 독립 신앙으로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남의 회개가 자신에게 회개케 하는 권면은 될지언정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는 자에게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회개도, 영안이 열리는 것도 개인적인 주를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동행과 친족 중에 있는 주를 방심하였다가 주님 없이 걸은 걸음은 다 허사로 도로 돌아갔습니다. (눅 2:44-45) 아무리 한 식구일지라도 신령한 은혜는 개인 회개에만 보상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이것은 종교적 이상이나 심령적 상태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영화로운 하늘 장소를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곳에 올라가셨고 (행1:9, 엡4:10, 고후12:1-4) 그곳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고 (창28:17, 시80:14, 사66:1, 마5:12-16, 45, 48, 23:9) 그곳에 천사들이 있고 (마14:36, 28:2, 막13:32, 눅22:43) 그곳에 구원 받은 성도들이 거하며 (마5:12, 6:20, 18:10, 엡3:14, 벧전1:4, 계19:1-4) 그곳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요3:13) 그가 그곳에 성도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다시 성도를 데리러 오시고 (요14:1-3, 마24:30, 살전4:16, 빌3:20-21) 우리들은 영원히 살 본향이 그곳입니다. (빌3:20, 히11:16) 우리가 하늘나라에 관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현세에서는 기독신자가 성령님의 감화로 말미암아 심령으로 그곳을 알며 믿음으로 그곳을 덧입어 그곳의 모든 은총인 행복을 심령으로 현재 누릴 수 있는 것이며 (고후5:2-4)
2) 기독 신자가 별세하는 때에는 그 영혼이 완전히 그곳에 들어가며 (눅16:21-22)
3)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신자의 몸까지 부활하여 영혼과 몸이 겸하여 천년왕국 후에는 그곳에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삽니다. (계21:4)
4) 그 영광의 나라에서는 그리스도 없는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지옥의 고통을 볼 수 있는듯 합니다. (눅16:23, 25)
'열린 문이 있는데'
하늘나라를 한 성같이 보고 그 세계를 땅에서 볼 수 있게 되는 특별 섭리를 말함이니 이는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하늘 문이 열리었는데 이민 부패(以民:이스라엘백성, 腐敗)에 동참치 않고 회개를 외치는 에스겔에게 천문이 열렸고 (겔10:1) 예수님께서 회개의 근본인 구속의 희생의 특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또 천문이 열렸으며 (마3:17, 눅9:35, 요12:28)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열렸고 (행7:56) 요한이 복음으로 인한 정배 생활중 밧모 섬에서 하늘이 열렸다. (계4:1) 이를 보면 천문이 열린 특수한 때는 회개 운동의 특수 희생의 때입니다. 이를 보면서도 천국에서는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얼마나 크고 기쁜 일이 되는 것과 회개를 멸시하는 자의 용납지 못할 곳인 것도 더욱 보여집니다.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가로되' (계1:10 해석 참조)
계 1:10에는 동일한 나팔소리가 정반대인 뒤에서 들리고 돌이킬 때에 그리스도와 교회가 보여졌다. 그러나 계 4:1, 골 2장 ~ 3장까지의 회개 순서를 통과한 후에는 반대의 반대인 바로 보이고 바로 들렸습니다. 이는 특히 회개로만 하나님과 동지 되고 하나님과 천국을 바로 향하는 일이 되는 것을 보입니다. 계 1장 10절에는 몸을 돌이킬 때에 음성을 바로 향하며 바로 보여진 것과 계 4:1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여도 바로 들리고 바로 보여졌으니 이 점을 예사로이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거는 '이 일 후에'라는 그 머리말이 있는 데에 중대한 순서 후이기 때문인 것을 보입니다.
회개는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는 것입니다. (갈5:24, 6:17) 회개는 그리스도와 동지 되는 순서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밀접한 영교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만 있는 특권입니다. 이 권세를 무엇에게나 빼앗기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낙오자입니다.
'이리로 올라 오라'
여기 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요한은 교회 대표로 계 6장 이하 환난 기록 전 승천했으니 이는 성도들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하나 여기는 특히 회개한 자가 천국을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있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올라간 것은 주 재림 시에 성도가 공중 휴거를 대표함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라도 이것으로 성도가 환난에 동참하지 아니하는 예표라 하는 해석은 잘못입니다. 계 16:15 여섯째 대접재앙 중에도 성도가 있습니다. 이 계시 성구는 사도 요한만이 계시 받기 위해 올라간 것이고 일반 성도에게는 이 후에 다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이와 같은 성질인 심령 교통과 내왕(來往)은 일반 성도에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 입신(入神)중에 경험한 것이라 하여 주장하거나 또 수락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는 불건전한 신비입니다.
오늘에는 새로운 계시가 없고 성경 충족성을 계22:18-19같이 수진하여야 합니다. 꿈 환상 음성 감동들을 의종하거나 이것들로 계시 말씀같이 여김은 대 이단입니다. 이럴 때마다 이런 일들을 성경 말씀으로 비판하여 성경이면 완패한 내 심령에 직접 계시인 성경을 못 깨달으므로 간접 계시인 이런 것을 보충으로 주신 것인줄 알고 계시 말씀을 깨달아 굳게 잡고 그를 버리고 만일 이것들이 계시 말씀과 부합지 아니할 때에는 악령의 유혹이나 주관의 관념 산물인 줄 알고 이런 일이 없도록 주님 앞에 기도하여야 합니다.
요한이 올라간 것은 어떠한 모양이었는지 미상(未詳)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사도 바울이 휴거 된 거와 같은 성질의 방법인가 합니다.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이 후에'라는 말은 2장-3장까지의 교회생활 이후에 란 말이니 곧 교회생활인 회개 생활은 그의 특색이 희생과 고난, 곧 십자가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의 회개 생활 후에 받을 소망을 보이는 것입니다. 특히 '마땅히 될 일을' 하는 언사는 이행 불변인 주의 말씀이면 다 신실한 것인데 마땅히라는 말을 한번 더 붙인 것은 소망에 대한 확신을 성도로 하여금 굳게 잡아야 할 일은 모든 고난의 회개 생활에 특히 필요함을 가르쳐 특별한 은사를 가한 것입니다.
살전 5:8에 소망을 전투자의 생명에 중요부분을 보호하는 투구라고 비유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소망은 천성 백성들의 전투적 생명을 보호하는 중요성을 가진 것이니 범사에 소망을 인한여 후회하고 소망을 인하여 의를 쌓으며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기인하지 않은 회개는 일종의 독선으로 하나님의 대 계획에 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소망은 중생한 자가 첫째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과 둘째는 자신 성화와 셋째는 천국의 모든 기업들입니다.
'내가 네게 보이리라.' 고 2인칭으로 계시하신 것은 회개 생활에는 소망을 각자의 지식과 지혜와 신앙과 체험으로 독자적 소유를 하여야 할 것과 또 인간에게나 무엇에게 소망의 견고함을 구하지 말고 직접 주님이 주신 것이니 은밀히 계시는 주님 앞에 은밀히 궁극적(窮極的)으로 가진 진리 지식과 양심으로 고요히 비판하면서 주님을 대면하여 주께 구할 때에 세상도 천국도 현재의 생활과 심판 공평된 보응도 명확히 발견되고 따라서 소망이 확실할 때에 바울같이 자기와 싸우는 자가 되고 (롬 7:24, 고전 9:27) 희생에는 감옥과 죽는 것을 날마다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빌 4:4, 고전 15: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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