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주께서 친히 버가모 교회에 입장을 아신다는 것과 또 그들의 당하는 역경의 고난을 세밀히 체휼하신다는 위로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살피시니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신 사랑이요. 후에는 우리의 단점을 세밀히 살피시나니 이는 시은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교양함에는 단점보다 장점을 찾기에 먼저 주력하여야 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우상 본부적의 박해 많은 입장을 아신다는 위로입니다.
'거기는 사탄의 위가 있는 데라'
대도서관이 있었으니 각 지식욕의 과분의 우상이 있었고
황제예배 전각이 있었으니 강압적인 우상이 있었습니다. 1,2,3의 우상의 종류는 각이하나 그 이면의 우상은 하나이니 곧 자아이요. 우상숭배의 원인도 하나이니 곧 불신에서 난 것입니다. 진실한 신앙을 가지지 아니하고는 자위(自爲)생활인 우상을 버릴 수 없고 자아 우상을 버리기 전에는 우상 시험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의 행사보다 그 원인인 자아 우상을 살피시고 그보다 그 원인인 불신 그것으로서 정죄 하십니다. 사람들은 우상 범죄의 행사에만 치중하고 범하지 아니한 우상숭배자는 정죄 할 줄 모릅니다. 이는 다 보이는 것으로만 표준 삼는 것이니 외식이요. 금송아지 만든 죄와 같은 죄 중에 있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는 말이요.
주의 과거의 사역과 미래의 약속과 섭리를 굳게 신앙하면서 의지하고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단순히 예수님이라 함이 아니고 주님의 각 성호와 그 속성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를 다 믿는 것이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신자 중에 단순히 예수님 이름이나 부르고 부인 안 하는 것으로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허락한 구원을 받을 줄로 아는 허위적인 신앙이 많습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안디바는 제 3세기 버가모 교회에서 우상의 박해로 순교당한 사람이라고 터툴리안은 말했습니다.
순교는 심히 드문 것이며 귀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최상의 영광의 축복입니다. 특히 충성된 증인 안디바라고 함같이 고래로 순교는 충성된 자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할 만큼 역사가 그러합니다.
순교는
1. 주께 제일 귀한 생명을 바쳐 정사(情死)하지 않고는 만족이 없는 성도와
2. 그리스도와 맺은 정절이 생명보다 귀하게 보관된 신부적 성도와
3. 어서 떠나 주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자에게 맺히는 열매이며
4. 성결을 세상 모든 전부보다 귀중히 가지는 거룩한 자와
이상 이 조건들이 구비한 자을 정한 생명대로 다 마치고 마지막 별세 시 잠재한 사랑을 최종으로 전부 폭발시키는 것이니 평소에 발휘할 수 없는 주애(主愛)를 다 발휘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사랑하기 어려운 입장을 주시는 것이요. 또 주를 사랑하는 그 모양대로 하늘나라에 영원히 옮기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사랑함이 강하고 뜨거울수록 순교의 잔인과 박해가 심하고 긴 것입니다.
사탄에 거하는 곳에서 순교를 당했으니 버가모에 설비된 각 우상과 활약한 사탄은 안디바를 위하여 하나님의 허락으로 예비된 것이 분명하다. 생명은 분명히 폐물이면서 주께만 바친다면 제일 귀한 보배와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믿음은'
주를 믿는 믿음이니 이들은 안디바의 순교시에 배반치 아니한 수신자(受信者)들이니 다 순교의 각오를 가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배신치 아니할 수 없는 어려운 입장을 만나는 것이 우리들의 경험입니다.
여기에 몇가지 생각할 것은
1. 순교의 각오를 하여도 하나님이 아니 받으시니 하지 못하였고
2. 마 10:41에 기록한 선지자의 상급의 동참하는 귀한 축복은 순교 당시나 후에 선지자로 대접하는 한 법도 기억해야 합니다.
3. 안디바 순교시 원수의 앞잡이도 있었을 것이요 또 참 신앙으로 또 변절자로 또 남의 등불로 담대한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5701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