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귀신이 들어가 놓으면 사람이 이렇게 마음이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이지 못하고 마지막에 삼십 일장에 가서 보면 다윗을 사울 왕이 그라니까 다윗이 할수 없어 좀 피해서 같이 가들 못하고 이라니까 전쟁이 일어났지마는서도 그 전쟁에 다윗이 도울 수가 없고 사울 왕 혼자 전쟁한다고 하다가 죽자껏 하루 종일 싸워서 막아내다가
마지막에 해질 무렵에 그만 원수에게 이제 사로 잡혀서 죽을 판이 되니까 아무래도, 말하기를 이 할례받지 안한 이방인에게 죽음당하는 것보다는 내가 자살하는 것이 낫다 그러니까 네가-부하에게 말하기를-칼을 빼가지고 나를 찔러서 내 목을 베도록 해라, 그 사람이 그리 못 하니까 자기 칼로 가지고 자기가 자살을 했습니다.
그래도, 할례받지 아니한 그 이방인에게 할례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모욕스럽다 하나님이 세워 놓은 왕이 죽임당하는 것이 모욕스럽다 요걸 생각하고 자살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사울 왕에게도 고 장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하나님 없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모욕당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하는 그런 속에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지마는서도 고거 하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마귀가 들어오는 그 모든 구멍을 막아야 되는데 마귀 오는 구멍을 막지 못해 가지고 결국은 다윗을 죽이지 못하고 자기가 자살하고 그때 패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게서 생각할 것은 우리가, 왜 사울이 그와같이 되었느냐? 된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하는 데에 순종하는 것만 보고서 승리의 비를 세웠지 순종하지 못한 부분은 보지 못하는 그것으로서 이제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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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울 왕이 그렇게 죽을 지경에서, 마지막까지 자기 생명을 구원할라 하는 것이 인생인데, 그러면 항복을 하고 잡아 죽이든지 이럴 건데 자기가, 전쟁에 패전해서 원수에게 아무래도 죽임을 받을까 하는 이런 염려가 있을 때에 말하기를-자기 부하에게 말하기를- 아나 네가 나를 죽이라 내가 할례받지 않는 그런 자들에게 죽어 가지고 하나님에게 욕을 돌릴까 싶어 두려우니 차라리 내가 네 손에 죽는 것이 낫지 할례 받지 않는 그런 이방인에게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모욕이 된다 나를 죽이라 이러니까
그 부하가 있다가서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내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다급하니까 이제 자기 손으로 자기를 죽여서 자살을 했다 말이요. 자살은 한 그것은 하나님에게 욕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런 면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따라 있는 부하도 있다가, 아이구 사울 왕이 할례받지 않는 자에게 죽는 것은 하나님께 모욕되는 것인 줄 알고 이렇게 하는 것이니까 나도 이제 자살하겠다, 그도 따라 자살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사울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열심이 있었지마는서도, 열심이 있었지마는서도 자기 중심이라는 그놈을 뽑지를 못했다 그 말이요. 자기가 아말렉 족속으로 더불어 전쟁했을 때에 그때에 자기가 아주 잘해서 승리를 하고 그런 것이 나타났을 때에 그만 자기를 위한 그 기념비를, 승리의 기념비를 세우고, 그때에 '아 주님이 이렇게 해주셨으니' 하고서 주님을 위해서 그 사은의 기념비를 세우든지 했으면 다를 터인데 자기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뭐이든지 자기가 잘했을 때에 그만 자기가 나타나고 그게 뭐이냐?
무엇이든지 잘했을 때에는 자기가 한 것처럼 자기가 나타나고 또 자기가 못했을 때에는. 못했을 때에는 사람에게나 무슨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시켜서 원망하고 그러니까 그럴 때에 자기가 중심이라는 그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견하면 그것을 살려둘 것이 아니라 그럴 때에 놓지 아니하고 붙들고 죽이도록 애를 써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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