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세째로 가르치는 것은 평강입니다. 여기에 보니까 이렇게 하니 그 목자가 기뻤습니다. 목자가 기뻤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게 뭐인가? 하나님을 뭘로 기쁘시게 할 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뿐입니다. 회개를 하나님이 제일 기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을 찾아 양이 목자에게로 돌아오니까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뭐 이런 거 저런 거 하는 것도 있지만 모든 것보다 주님 앞에 거리끼는 걸 내가 회개하는 것 주님에 대해서 무식한 거, 주님을 내가 몰랐던 거, 주님을 바라지 못했던 거 의지하지 못했던 거, 당신의 법도를 지키지 못했던 거, 이런 것을 회개하는 것이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요, 하늘의 천군 천사가 제일 기뻐하는 일이요 만물들이 기뻐하는 일이요, 자기 속에 기쁨이 넘치는 일이요 회개로 기쁜 이 기쁨을 맛본 사람은 뭐 돈이나 이 세상 이런 뭐 행락이나 이런 무슨 기악이나 오락이나 그런 기쁨은 텁텁해서 못 먹습니다. 텁텁해서 텁텁해서 자기는 암만 거석해도 텁텁해서 감상이 안 돼.
그런 거는 감상이 안 돼. 그런 거는 너무 회상적이라서, 왜? 아 감상을 해서 기쁠라고 해 봐도 그 뒤가 전부 사망인데. 그 뒤가 사망인데. 금방 귀를 즐겁게 했지만 그 뒤가 사망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회개는 무한한 기쁨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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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양이 목자를 떠날 때에는 제대로 떠나서 오만 고난을 당했지마는 목자에게로 돌아오는 데에는 목자가 어깨에 메고 돌아온다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걸음에는 애로가 있는 것 같지마는 애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데에는 애로가 없습니다. 애로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애로같이 보이나 실은 담대히 신앙으로 나아가면 애로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애로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거리낌이 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회개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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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회개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양을 잃어버렸는데 목자가 양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돌아온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회개는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을 취급하지만 회개하는 이 일에는 하나님이 전심 전력을 거기에 다 기울여 줍니다. 열 명이 회개하면 열 명에게 개인 개인에게 하나님의 전심 전력을 기울여 준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한 마리 양 잃어버렸는데 그 양을 찾아서 그 목자가 그 양만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그 양을 만나면 어깨에 척 메고 이렇게 돌아간다.
그러면 회개하는 자에게는 자기 혼자 회개하든지 말든지 내비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말 회개를 네가 하고자 하며 하려고 하느냐?” 하는 그것을 잠깐 동안 기다리는 것뿐이지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전심 전력을 그에게 기울여서 그 사람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할 때에 주님은 이렇게, 목자되신 주님은 전력을 기울여서 어떤 사람이든지 그 회개하는 자를 도우시는데, 회개하는 자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회개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양을 어깨에다 메고 이렇게 돌아가니까 양이 어깨 위에 메여서, 이제는 뭐 목자가 탁 어깨에 메고 이렇게 아듬고 가니까 문제가 없는데 공연히 이 양이 뭐 뻐득거립니다.
그 뻐득거릴 때는 과거에 저 혼자 달릴 때에 시냇물 구렁텅이를 만났기 때문에, 과거에 제가 그 구렁텅이에서 욕본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구렁텅이를 닥치니까 양이 발동을 하면서 야단을 칩니다. 그렇지만 공연히 놀라는 것이지 이제는 목자의 어깨에 메여 가지고 가기 때문에, 저 혼자 달릴 때는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했고 또 거게서 아주 위험한 일이 많이 있었지만 목자의 어깨에 메고 가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은 과거에 경험이 있기 때문에 놀랍니다.
또 덤불이 앞에 큰 덤불이 있으니까 과거에 제가 그 덤불에 걸려 가지고 털 다 찢기고 살 다 찢기고 거기에 걸려 가지고 죽을 뻔 했는데 그런 덤불에 걸리니까 또 양은 뻐득거리면서 야단을 지깁니다. 지기지만 목자가 이제 아듬고 가기 때문에 덤불에 걸리지 않고 잘 피해서 잘 가고 하는데 그 양은 과거에 제 경험과 체험을 따라서 놀라기는 하는 것입니다.
또 이리도 그럽니다. 제가 이리떼를 만나 가지고 저거 동무 몇이 붙들려 죽고 저는 어떻게 그래 피해 나왔기 때문에 이리를 만나니까 그 양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놀라는 것은 과거에 이리 만나 가지고 크게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에 놀랍니다. 그러나 목자의 어깨에 메고 가니까 이리 그까짓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막대기 가지고 오는 것 달려들면 탁 때려 주면 죽는데. 이렇게 든든한 목자에게 안겨 가지만 양은 과거에 경험 가지고 놀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가 아듬고 있기 때문에 양은 상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회개에 대해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인데, 사람이 회개하려 하면 자기 과거사에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이래 하면 큰일나는데, 이래 나면 대번 절단 나는데, 낭패가 되는데.’ 이렇게, 회개하려고 할 때에 아주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사랑의 도움이 아니면 참 절단납니다. 낭패납니다. 이렇지만 회개에는 주님이 동행해 주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것을 또 알고 가야 됩니다.
그러기에 회개를 할 때는, 하려고 달려들 때는 사람들이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고 고민하지 아니할 수 없지만 그만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눈 지끈 감고 회개하면 그러고 난 다음에는 아주 참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가 체험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모든 것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82071802)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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