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5:32-33
아각을 데려 오라이라니까 아각이 그때 오면서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고 내 생명이 이제는 완전히 보존됐다. 이렇게 일국 사사 사무엘이 또 나를 초청하는 것 보니까 내 생명이 든든하다.' 그렇게 안심을 하고 기뻐서 사무엘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 가는 걸음은 사무엘이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 앞에서 그 아각을 두 쪼가리로 쪼개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풀었습니다. 그러면, 그 마지막에 결론을 보면 그 아각 한 사람 남았었는데 그 사람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이제는 모든 사람은 다 죽이고 사울이 나만 남겨 뒀는데 이래도 나도 언젠가 죽이지 생각했는데 사무엘이 아각을 초대하니까 이제는 내 생명이 참 든든하게 됐다, 그렇게 안심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심한 것이 바로 그 걸음이 자기 몸을 하나님 앞에 쪼개서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그 걸음인데 그렇게 모르고 안심하고 기뻐했지만 하나님의 그 선민 구원 운동을 방해한 그 일에 대한 복수는 없애지 안했습니다. 오백 년으로 오백 한 오십 년이나 한 육백 년 거의 됐는데 내가 자세한 것을 따져 보지를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수는 헤아리면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 성경을 보고 대수를 이어서, 그렇게 가만히 있었지만 그 복수가 자지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 운동에 방해하는 것은 복수를 하되 대깍 대깍 그렇게 하지 안하고 세월을 거치고 또 유유하게 그렇게 하나 아주 그 복수성이 강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지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 복수를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양을 늘어트리는 그런 면이 하나 있고, 그것을 대개 복음 운동에 방해되는 것은 직접 관련된 일인데 그 일을 즉각 처리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관계점이 있어서 그것을 지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지는 않습니다.
(85030850) 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