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이 믿음으로 방해하는 사람을 우리가 발견을 해야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방해하는 사람을 알아야 돼. 믿음의 귀로 방해하는 사람을 알아야 돼. 신앙 양심으로 보니까 이 사람이 내가 주님 지금 만날라고 호소하는 데에 여게 대해서 방해하고 있다. 믿음의 귀로 들으니까 방해하고 있고, 믿음의 눈으로 보니까 방해하고 있다, 믿음으로 보니까 방해하고 있다.
마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며칠 후면은 내가 이제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정죄받아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누가 예수님을 제일 많이 생각하고 위했읍니까? 누가 했어? 베드로가 했다 말이오.
베드로가 “아이구 선생님, 이런 일을 멀리 하십시오. 이런 일을 당하지 안하도록 선생님이 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죽을 것입니까? 십자가에 죽을 게 뭐 있읍니까? 그들이 해를 주면은 주님의 능력으로 한번 말하면 그거 다 절단나 버릴 것인데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라는 거 그거 예수님을 생각해 했읍니까, 예수님을 미워서 그랬읍니까 예수님을 사랑해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그랬읍니까 예수님을 해치기 위해서 그랬읍니까? 자, 그 베드로가 예수님을 해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어. 예수님을 위하느라고 그랬지.
예수님을 위했는데 믿음으로 보면 성경 지식으로 보는 건데 성경 지식으로 보면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했읍니까 해쳤읍니까? 해쳤어. 예수님이 보고 뭐라 했읍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야단쳤다 말이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이 보시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해치는 것을 봤지 믿음으로 보지 안하고 육적으로 보면은 그 모든 제자 중에 베드로가 제일 예수님을 위하는 사람 됐지, 안 그렇습니까? 위하는 사람인데 믿음으로 보니까 지금 하나님의, 성공할라 하는데 성공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탄이라 그말이오. 오늘 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말이오. 요 믿음으로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을 발견을 할 줄 알아야 되지 그것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87022310) 4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럴 때에 거기 따라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소경을 아주 꾸짖고, 잠잠하라고 꾸짖었다 이랬습니다. 아마 별별 뭐 책망을 하고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이놈 고약한 놈 선생님이 지나가시는데 그란다고 뭐 별별 꾸짖었다고 하고 또 잠잠하라 했다고 보면은 그런 그 분위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소경은 그랄수록 그는 심히 부르짖고 더 크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예수님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라니까 옆의 사람들은 또 더 잠잠하라는 소리도 아마 많이 떠들었을 것입니다. 이놈 잠잠하라 하고서 뭐 꾸짖고 야단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디매오는 환경에서 그렇게 야단치는 데에 눌려지지 안하고 꺾어지지 안하고 그는 더욱 큰 소리와 심히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그거는? 자기가 예수님 만나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시면 자기 문제는 그만 다 해결이 되고 금생도 해결이요, 내세도 해결이요, 모든 것이 다 불행이 다 해결되고 예수님 만나면 다 되는데 거게 지금 생사화복이 지금, 죽고 사는 것이 모든 화복이 거게 달렸는데 거게 달려 있는 걸, 예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데 옆의 사람들이 자꾸 방해를 하고 고함을 지르니까, 어실므실하게 알면은 옆에 말하면 ‘이 말 안 해야 되는가보다’ 그만 중단했을 건데 확실히 자기에게는 이분 만난 이게 아니면 지금 자기는 영원히 참 가련한 신세가 되는데 옆에 사람들은 방해하지마는 만나서 주님에게 해결 못 받으면 죽고 뭐 받으면 살고 하니까 생명을 내놓고 결사적으로 부르짖었던 그것을 여게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참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자기의 어떤 문제든지 그 비참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자기의 어떤 비참이라든지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예수님께 부르짖는 소리를 옆에 사람들이 방해한다고 때린다고 뭐 끌어낸다고 발길로 찬다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 해결 못 받으면 저는 일생 참 멸망이고 그 해결 받으면 지금 주님에게 눈 띄워 주심을 받으면 자기도 온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지금 생사화복이 거기 매달린 그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이 소경이 옆에서 고함질러도 거기 제재받지 안하고 그럴수록이 ‘요 기회만 놓치면 나는 절단난다’ 그 자꾸 방해를 할수록이 ‘이 기회 놓쳐진다’ 하니까 더 부르짖고 고함을 질렀던 것입니다. 요게 신앙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진다고 해도 그 소망가진 것이 자기에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안하면 자기는 비참해지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면 자기는 만사 해결이 되는 요 사실을 믿는 믿음만치, 믿는 믿음이 있는 것만치 방해에 방해받지 안하고 방해할 수록 더 부르짖게 됩니다. 왜? 방해하니 못 받게 하니까 못 받으면 절단나니까 못 받게 되니 사생결단으로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8702183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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