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반드시'라 말은 하나도 빠짐 없이 틀림없이 하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다라 말도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 말이오. '다' 반드시' 하는 이것도 필연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도 빠지는 자가 없다 말입니다. 아주 강조하는 말입니다.
(89042302)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자기 몸을 자기가 찾아 가지고 부활하고 나면 이 심판이 처음 있습니다. 첫째 심판입니다. 죽은 후의 심판으로서는 첫 심판인데 이것을 가리켜서 고후5:10에 보면은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거는 믿는 사람들만이 받는 심판입니다.
* 계20:11 :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8806260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심판을 두 번 받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불심판, 우리가 그때 살아 있으면 불심판을 받아야 하겠고, 또 죽어 부활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을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고후5:10 이하에 보면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각각 다 드러나 선악간에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떤 심판을 받는고 하니, 한번 읽어봅니다.
* 계20:11 :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88060833)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부활 후에 택자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데 이 심판에서는 지옥 가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에 가서 살 그 영생에 속한 것, 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것만 심판하는 심판입니다. 그러면, 택한 자들이 이 심판에서는 상을 받고 이 심판에 참여하지 못하는 그 요소들은 앞으로 천 년 차기를 기다려 가지고서 그때에 백보좌 심판에서 심판받아 가지고 멸망을 받게 됩니다.
이래서, 그리스도 심판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심판을 받고 그다음 심판은 천 년 후에 멸망받을 자들이 심판받아 가지고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됩니다.
* 계20:12 :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8806190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나와 함께 다닌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5장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음을 보지 안하고 승천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영생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계시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세상을 정죄 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됐습니다. 홍수 심판을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의 여덟 식구만 이 심판을 면했습니다. 우리는 토막 토막의 중간 심판도 있지만 마지막 종말 심판은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데 교회에 하나님과 함께 다니는 사람 외에는 생명록에서 제거되지 이니할 사람은 없습니다. 생명록에서 그 이름을 흐리지 아니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흐리지 아니하는 것은 주님과 같이 동행한 자들이다 고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영생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심판을 면하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생명록에 제명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 계3:4: 나와 함께 다니리니
* 창5:24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창6:9 :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계3:5 :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88041001)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됐습니다. 홍수 심판을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의 여덟 식구만 이 심판을 면했습니다.
우리는 토막 토막의 중간 심판도 있지만 마지막 종말 심판은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 창6:9 :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88041001)
'이는'
그러면 기쁘시게 해서 뭐 하려고? '이는' 기쁘시게 하는 그 이유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우리 대속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공심판은 예수님이 다 대속으로 다 통과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다 통과된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심판은 사심판인데 지옥 가고 천국 가는 것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을 줬으니까 그 대속을 얼마나 평가했으며 얼마나 입고 있었으며 얼마나 배척을 했으며, 대속을 입었는데 입은 것을 버렸으면 제것이 아니니까 버리고 입은 그것을 심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얼마나 입었으며 어디서 입었으며 하는, 양이나 질이나 그걸 가지고 얼마나 입었느냐 그것을 심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심판입니다.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각각 선악간에, 선악인데 선악은 뭐입니까? 선은 뭐입니까? 선은 하나님 중심, 악은 피조물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 기쁘시게 하느냐 하면 하나님 중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되고 피조물 중심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땅위에 뭐 하려고 있느냐? 땅위에 있는 것은 이 지저분한 것이 가득히 섞여 있는 여기서 하나님 중심 마련이 되어집니다. 하늘나라 가서는 하나님 중심을 누리기나 하고 있지 거기서는 마련은 안됩니다. 땅위에서 자기 중심돼 있는 것을 다 청산해서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바꿔야 됩니다. 사망에 속한 것을 생명으로 바꾸는 것이 땅에서만 바꾸지 하늘나라서는 바꾸지 못합니다. 바꾼 것만 가지고 갑니다.
하늘나라 갈 때 바꾼 것만 가지고 가기 때문에, 거기서는 바꾼 것만 가지고 많이 바꿨으면 많이 누리고 적게 바꿨으면 적게 누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의 존비귀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있는 것이지 바꾸는 거는 하지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땅위에 있는 것입니다. 이걸 하려면 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어쨌든지 심판에서 좋은 보응을 받도록 하자, '선악간에 행함을 따라서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좋은 갚음을, 좋은 대우를 받도록 하자 하는 것입니다.
(8702043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하나도 빠짐 없습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우리가 다 드러난다 말입니다. 하나도 빠지지 못합니다.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에 사는 생활이요 누리고 있는 것이요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순서가 돼야 되지 항상 땅에 소망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8702043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반드시라 말은 하나도 빠짐이 없습니다.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우리의 생각 하나도 빠짐이 없이 반드시, 우리의 마음 한번 먹은 것도, 뜻 한번 가졌던 것도, 저 혼자 앉아서 군담했던 것도, 저는 십십봉지로 덮어 가리워서 거짓을 덮어 가리워 인간은 모르지마는 하나도 빠짐없이 심판대 앞에 드러납니다.
사람은 자기의 지혜로 비는 가리고 자기의 지혜로 없는 의도 있는 척해서 드러내는 그것이 대단히 처세술에 지혜 있는 것 같지마는 마귀 편에는 지혜 있지마는 하나님 편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 자기의 비가 드러나면 억지로 제가 교만하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멸시하기 때문에 억지로 겸손해집니다. 자기의 장점이 드러나 위험성뿐이지 유익 될 그런 점은 없고 자기의 단점이나 그런 것이 드러나 손해 갈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힘으로 가리고, 지혜로 가리고, 어떤 사람은 악독으로 가리니까 그것을 세간에 사람들이 드러내기를 겁을 냅니다. 별별 보호색을 가지고 덮고 가리지마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행함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유다서에는 보면 “경건치 아니한 행동 경건치 아니한 말” 그러면 그 사람은 절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사람의 요소. 경건은, 선행을 하되 선행이 경건 아닙니다. 진리와 영감대로 됐다고 해서 경건 아닙니다. 경건은 구속자시며 창조주이신 주를 위해서 의롭게 거룩하게 영감과 진리대로 행동된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 방편과 그 사건이 옳다고 해서 되는 것 아닙니다. 동기가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이냐? 네가 의로운 행위를 한 동기가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이냐? 동기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동기는 몇 번이든지 거짓부리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동기를 볼 자격이 인간은 없습니다. 목적도 볼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나타난 결과 그것만 중하게 여겨서 나타난 결과 그 위주로 판단하지마는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그 동기와 목적을 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인간이 모른다고 덮었다고 가리웠다고 그것이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드러납니다.
드러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호할 수 있는 길을 가지고 적어도 나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호해 주지 않을 그런 일은 아예 땅위에서 해결 짓고 가야 되지 뿍뿍 밀고 갔다가는 그때는 다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후서 3장에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는 그 말씀은, 드러난다 그말은 다시는 변동할 수 없는 고정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말입니다. 개인이 죽으면 다시는 불변입니다. 아직까지 생명이 붙어 있을 동안에는 자기의 수치스러운 것을 변개할 수 있습니다.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눈과 같이 희게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찬송 부를 때에 ‘주의 피에 씻는다’ 말은, 주님의 피는 대속했기 때문에 그 피에 고하여 그 죄를 사함 받으려면 자기가 그 피 값에 팔린 자인 걸 알아 이 사실을 믿으면서 자기가 주의 것 되면 됐습니다. 주의 것 되면 됐어. 자기의 전부가 주의 것 됐으면 주님의 모든 것은 자기 것 다 됐습니다. 이것이 댓가입니다.
* 유1:15 :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
* 벧후3: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82022102)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선악의 정의가 무엇인가? 선악의 정의는 세계에 학자들의 정의는 백도 천도 넘습니다. 그러나 이 선악의 정의는 세상이 말하는 것 아닙니다. 세상은 이 선악의 정의를 하나도 모릅니다.
이 선악의 정의는 선은 구속주, 창조주, 주재자 이분을 중심으로 한 것이 선입니다. 악은 어떤 피조물이든지 피조물을 중심으로 위주로 한 것은 다 악입니다. 전인류를 위해도 악입니다. 만물을 위해도 악입니다. 자기를 위해도 악입니다.
피조물을 중심으로 위주로 한 것은 다 악으로 규정 지우고 선은 조물주, 구속주, 주재 이분을 중심으로 위주로 한 것을 선으로 규정 지우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그 선은 모든 이종교에서 말한 선 아닙니다. 모든 철학자들이 모든 사상가들이 인간들이 말하는 선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생애를 하다가 낙심하지 마라.
“피곤치 아니하면” 이 주 중심의 선의 행위가 지극히 작은 것으로 지극히 큰 것을 얻고, 이렇게 함으로 소모되고 없어지는 것은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 영생화 되어지는 이 사실을 알 때에 그는 피곤치 아니하고,
화폐 개혁에 돈을 바꾸는데 시간이 곧 다 돼 가는데 안 바꾸면 다 헛일이 되니까 마구 자기에게 있는 돈을 받아만 달라고, 어쩌든지 바꾸려고 거기다가 저쪽에 받아만 주면 자기 것 되기 때문에 받아만 달라고 날뛰는 것처럼 이와 꼭 같은 것인데, 그까짓 거야 있어 봤자 한번은 놓을 것이지마는 이거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피곤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님 중심으로 위주로 해야 슬기로운 사람이 된 것이고 또 무엇을 하든지 그를 위해서 할 뿐만 아니라 그 하는 것에 영원한 댓가를 받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냉수 한 그릇의 수고를 조물주가,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냉수 한 그릇의 수고를 내가 결단코 그 상을 잃어버리지 않고 갚겠다” 하나님 중심으로 한 것, 하나님 위주로 한 것, 했습니다.
* 갈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마10:42 :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82022102)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그리스도가 심판할 터인데, 우리는 공심판 안 가지만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가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심판이라 말은 제사장 심판, 선지 심판, 왕의 심판을 하는 이 심판장이 그리스도입니다. 이러니까 네가 어느 정도 제사장 실력을 가졌느냐? 어느 정도 선지 실력을 가졌느냐? 어느 정도 왕의 실력을 가졌느냐?
제사장 실력은 네가 피조물의 모든 난제를 거머쥐고 하나님 앞에 해결을 지워서 피조물에게 복이 되고, 피조물이 옳게 바르게 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상고해서 하나님에게 상을 받게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줄 수 없는 것을 잘 교제를 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다가 피조물들에게 전달해 주고, 하나님도 너 없으면 안 되고 피조물도 너 없으면 안 되는 이 중간에서 중보 역할을 할 수 있는 네 인격을 어느 정도 길렀느냐? 땅위에서 이 일을 해서 어느 정도 길렀느냐?
내가 들으니까 어떤 반사가 어제 학생한테 심방을 갔다가 참 맞아 죽을 뻔했다고. 뭐 왔다 하니까 어떻게 성을 내고 하는지, 아주 도망을 쳐서 왔다고.
그것이 돈 바라고 그렇습니까? 저거 자녀들을 모르니까 안 보내려고 하는 것을 그것 하나 구원하기 위해서 오만 욕 다 얻어먹고 어떤 사람은 여선생들은 뭐 이놈의 가시나니 뭐 어떠니 오만 욕지꺼리 소리를 다 얻어먹고 그래도 가 가지고 그것 구원하려 하는 것, 거기 돈이 생기요 금이 생기요? 아무것도 안 생깁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심정으로서 그것을 구원하려는 그것이라 그말이오, 구원하려는 것.
그게 뭐이요? 그것이 이 죄인을 하나님과 연결시켜서 구원하려 하는 것이오. 그것 하나가 구원 얻으면 어쩌든지 그 가정에, 노할까 싶어서 가 가지고 그냥 안되니까, 영감이 나오면 ‘아이고,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눈이 둥그래 가지고 ‘누고?’ `저 아무것이 장 심방하는 아무것이 아닙니까?’ ‘아버지’ 하니까 정이 붙는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아무것아, 여기 너거 선생님 왔다. 선생님이 오셨다, 나오너라.’이래 가지고 오만 소리 다 하면서 그것을 구원해서 그래 가지고 그 가정을 하나님과 연결시켜 그 가정에 저주받을 것을 하나님 앞에서 다 용서함을 받게 하고 하나님 축복이 그들에게 가도록 하려는 이것이 뭐이냐? 제사장 실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비밀을 몰라서 깜깜해 가지고 이 세상뿐인 줄 알고 죽으면 그만인 줄 알고 이 세상에서 취하면 그것으로 다인 줄 아는 인간을 하나님의 영원한 비밀을 그들에게 알려 줘서 인간의 머리를 열어 줘 인간이 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지고 금생 내세 영원을 알려 주는 이래 가지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이것이 선지 역할이오.
사람들을 아무나따나 제대로의 행동하는 것을 ‘그러면 안 된다. 이래 살아야 된다. 저래 살아야 된다’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정비 정돈해서 그것을 맑게 하고 바로 되도록 하는 이것이 다스리는 왕의 권위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권세요.
이것이 제사장권 선지권 왕의 권 이것이 네게 얼마나 연달됐으며, 얼마나 성장됐으며, 네가 세상에서 얼마나 연습했으며, 얼마나 또 이 일을 실천을 해 가지고 만들었느냐 하는 이것을 심판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선악간에’ 선은 하나님 중심으로 한 것을 말하고 악은 자기 중심으로, ‘나, 내 가정, 내 자녀, 나, 나.’ 자기 중심으로 하는 그게 악인데, 하나님 중심 절대자 완전 중심이든지 자기 개인 사욕의 중심이든지 간에,
'그의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받으려 함이라” 거게서 그때 받을 그때를 생각하면서 땅위에 모든 생활을 절제하고 존절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설 때에 그때에 후회할 것이 없도록 살게 하려고 하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82021402)
'그리스도의 심판대'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합이라"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가지 안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갑니다. 예수님은 대형. 대행, 대화친의 그 대속을 이루신 그 주를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하고, 그 대속을 이룬 것이 뭐이냐?그리 스도인 만들기 위해서 대속을 이루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 하고 난 닥음에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 가지고 우리가 심판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심판을 받다니?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무슨 심판을 받는다 말인가? 네가 보자. 이 제사장 직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입혔는데 제사장 직을 네가 과연 어느 정도 네가 보존하고 있느냐? 어느 정도 감당하고 있느냐? 어느 정도 제사장, 선지. 왕 직을 네가 감당했으며 또 감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을 조사합니다. 다른 것을 조사하지 안해요.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간다고 그떻게 말했습니다.'
(84052702) 3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이 심판대를 거칩니다. 그 이 심판대 이름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네가 제사장 노릇을 얼마나 했으며 선지자 노릇을 얼마나 했으며 왕 노릇 얼마나 했느냐 선지자 노릇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제사장 노릇 왕 노릇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사장 선지자 왕노릇은 이것은 방편입니다. 이건 역사입니다. 역사 네가 제사장 선지자 왕노릇 할 만한 네기에 그 사랑이 얼마나 강했으며 얼마나 뜨거웠으며 얼마나 컸느냐 너에게 사랑의 분량이 있는 것만큼 너는 반드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욕망이 있고 네 사랑의 분량 만큼 욕망이 있고 사랑과 욕망이 있는 그 사이에 너는 필연적으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하여 그 욕망이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네가 희생 되어지는 양이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 거기 따라서 무궁세계에 갚음을 받기 위해서 기독자들을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80041302)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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