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36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이 살아납니다. 현실 생활에서 안팎이 죽으면 삽니다. 현실 생활에서 껍데기 우리 사람의 기능 또 사람의 그 행위 그 모든 기능 그것이 희생을 하면 이다음에 살아납니다. 희생하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희생을 하니까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없어지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행동할 때에 그 행동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없어지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이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현실 생활에서 자기가 죽고 예수님으로 살면 영생합니다.
죽는 것은 생명 없는 거는 죽고 생명으로 살면 살아나는데 그 현실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죽을 수 있는가? 현실을 통해서 죽은 사람이 죽습니다. 현실을 통해서 옛사람이 죽어야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현실을 통해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현실 행동에서 죽어야 삽니다. 자기가 죽어야 자기가 삽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자기가 죽으면 새사람 자기로 살아나게 됩니다.
옛사람은 현실 생활에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를 악이라고 합니다. 악령의 감화로, 자기 속에 자기 중심인 원죄인 악성으로, 또 악령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한 번 두 번 했으면 연습이 되었기 때문에 악습이라 말합니다. 사람이 이런 옛사람으로 현실에서 행동하면 그 행동한 것은 완전히 죽어 버립니다. 다시는 살아나서 행동 못 합니다. 완전히 죽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했습니다. 날마다 죽노라. 단언코 말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다 그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은 무슨 말이지요? 여게 남반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무슨 말이야? 나는 날마다 살아난다 그말이오. 나는 날마다 살아난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자기 죽이는 일을 당할 때에는 슬픈듯하고 잠깐 근심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죽여 놓고 난 다음에는 기쁩니다. 새사람으로 살고 난 다음에는 기쁩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처음에 맞이할 때는 고통이고 그 현실을 새사람으로 살아서 죽일 자를 죽이고 살릴 자를 살리면은 한없이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생활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 생활은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 고전15:31 : 나는 날마다 죽노라
(88053120)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우리가 과거에는 예수님의 공로를 입기 전에는 완전히 죽었던 자입니다. 안 믿을 때의 모든 생활은 그게 사는 생활이 아니고 죽는 생활입니다. 하루 산 것은 고만큼 하루 죽은 것이요 또 십 년 산 것은 십 년 죽은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단번에 죽으나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은 단일체나 단일성이 아니고 그것은 종합체요 종합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는 것도 단번에 죽지 아니하고 많은 회수를 걸쳐서 이거 죽고 저거 죽고 차차 차차 죽어서 다 죽어지는 것입니다.
또, 그와 같이 살아날 때도 영은 단번에 살지만 이 마음이나 몸이라는 이것은 단번에 살아나지 안하고 이것이 살아나고 저것이 살아나고 또 이 기회에 살아나고 저 기회에 살아나서 그 살아나는 것도 수없이 중복적입니다. 죽는 것도 수없는 중복적입니다. 안 믿을 때 우리의 생활은 자기는 사는 것인 줄 알지만 실은 죽는 것입니다. 열 살 이내의 그런 아이와 열 살 이상의 한 이십 세 대의 사람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늙었다 그렇게 말합니다. 늙었다 말은 쇠해졌다는 말이요 낡아졌다는 말이요 그는 허물어졌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생활하는 그것은 시간 시간마다 죽을 것이 죽는 생활입니다. 그 사람은 혹은 영이 죽은 그 사람은, 우리가 다 영이 죽었던 것인데. 죽은 사람은 그 사람의 육이 어떤 사람은 오십 년 걸려서 다 죽고 또 팔십 년 걸려 다 죽고 또 어떤 사람은 한 백 년 이상 걸려서, 지금도 백 한 이삼십 년까지는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백 이삼십 년 걸려서 다 죽고 그렇게 지금 죽는 그것이요 죽이는 그 순서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그 죽음의 기간이 있고 죽음의 기간이 있는 그것은 그 사람이 장기간을 걸쳐서 죽는 사람도 있고 단기간에 죽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을 조정하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장기간을 걸쳐서 죽는 자로 그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은 그 죽을 심신을 관리를 잘 합니다. 그것을 관리를 잘 하고 잘 보존하면 그것이 백 한 이삼십 년까지 그것이 다 죽지 안하고 보존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다 죽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일찍 간단한 시간에 죽도록 만든 것은 하나님이 관리 섭리하시기를 그 몸을 잘 관리하도록 그렇게 섭리하지 아니하시고 또 그 몸이 어떤 그 돌변되는 그런 일들을 다 예정해 놔서 그런 돌변된 예정 그런 순서를 통해서 변사도 되고 물에 빠져서 익사도 되고 또 무슨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도 있고 어쨌든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지금 죽는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우리가 안 믿을 때 안 믿는 행위, 또 지금도 안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행위, 안 믿는 행위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을 따라 피동되지 않는 행위가 안 믿는 행위입니다. 믿는 행위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알고 인정하고 거게 따라서 복종하는 그 행위가 믿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택자나 불택자나 안 믿는 그 행위로서는 심신의 이것이 죽습니다. 그 심신의 죽는 것이 그게 난 지 한 한달 된 그 아이와 벌써 한 다섯달 된 아이와 그 두 아이를 놓으면은 어느 것이 많이 쇠해졌다, 낡아졌다, 더러워졌다, 죽어졌다 이거는 환하게 압니다. 그 아이보다는 한 달만 더 지내도 그만치 늙습니다. 그만치 쇠해집니다. 모든 뭐 그 과학적으로 세포적으로나 각 기관적으로 다 그렇게 늙어지고 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 하루를 살면서 믿음으로 살았으면, 믿음으로 산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순종으로 산 것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진리로 인도하는데 진리로 인도하는 그 진리 따라서 살고 또 성신의 감화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성신의 감화 따라 살고, 하루나 한 시간이나 살면서 믿음으로 살면, 믿음으로 살면 죽고 삽니다. 믿음으로 살면 죽고 삽니다. 죽다니?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 순종으로 살면 옛사람 자기가 죽습니다. 한 시간 믿음으로 살면 악령은 거게서 나를 통치하는 통치권을 뺏기게 되고 나는 악령에게서 해방 자유하게 되고 또 내 심신의 기능이나 심신은 거게서 죽고 새로와집니다. 죽고 삽니다.
그러면, 사람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는 그것이 죽으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나게 됩니다. 또 자기의 이 심신의 기능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한 시간 살았으면 그 산 심신의 기능은 영원히 죽어 버렸습니다. 영원히 죽어서 이다음에 부활해 가지고서 영원한 죽음의 세계로 옮겨져 갑니다. 또 한 시간이나 하루나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살았으면 이 죽을 것이, 죽을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범죄로 죽을 것인데 죽을 심신의 기능이나 심신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납니다. 죽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납니다. 죽지 아니할 것으로 성화됩니다. 죽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순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순생은 죽음 순자 순이요 생은 살 생 자 생인데 죽어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데에서는 없어지고 영생하는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내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이 내 음성을 듣는 자들은 살아나리라. 곧 지금이 그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나와 내 도를 위해서 생명을 버린 자는 살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 요5:25 :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
* 막8:35 :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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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이것은 비유입니다. 알아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이 씨로 가지고서 우리에게 비유한 것입니다. 씨를 심었는데 그 보이는 씨가 썩어서 죽어 버려야 됩니다. 죽어서 썩어야 거기서 생명이 나서 자라가게 됩니다. 씨가 하나도 죽지 안하고 썩지 안하고 가만히 그대로 있어야 그 속에 있는 생명이 자라납니까, 썩지 않고 산 것으로 살아 있어야 자라갈 수가 있습니까?
씨도 여러 종류인데 밀씨는 속에 생명은 보이지 안하고 눈이라고 있습니다. 눈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눈 속에 생명이 들었습니다. 생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왜 생명이 안 보여?’ 이러지만 생명을 죽인 밀과 생명이 있는 밀을 억만 배 돋보기로 본다해도 생명을 볼 수 없습니다. 전자 현미경이라는 그런 것으로 몇백 배 몇천 배 크게 봐도 생명은 안 보입니다. 이렇게 생명 그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은 볼 수 없는데 생명이 없는 것을 심으면 썩어 버립니다. 삶아 놓은 씨는 생명이 없는데 생명 없는 씨도 땅 속에 심으면 죽고 썩고, 또 생명 있는 씨도 땅 속에 심으면 썩고 죽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있는 씨는 뒤에 나는 것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썩을 것을 다 생명이 삼키게 됩니다. 심은 밀씨가 처음에는 썩으면서 단맛이 납니다. 엿질금입니다. 그 단 것을 생명이 자꾸 먹어요. 나중에 한 길이나 자랍니다. 그런데 그 밀을 쏙 뽑아 보면 밑에 그 씨가 달렸어요. 쪼글쪼글하게 쪽 달렸어. 알맹이는 쪽 빨아먹고 그 껍데기만 달려서 남아 있습니다. 고것이 빨아먹고 살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현실서 이 죽을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생명을 가진 중생된 사람은 현실이라는 밭에 행동이라는 씨를 심고 통과하면서 커지게 됩니다. 새사람이 옛사람을 삼키고 이 심신의 기능 모든 육체를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생명이 완전히 삼켜서 자라고 나면 우주와 영계에 가 가지고서 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새생명이 자기를 완전히 삼킨 사람은 세상도 삼킵니다. 자기를 완전히 삼킨 자는 세상도 삼켜요. 밀이 자체 안에 있는 분을 완전히 삼키고 나면 이제 그 밖에 있는 땅들의 많은 지기도 다 삼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체를 먹고 자란다음 세상도 먹고 자랍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 세상에 모든 이런 권세 저런 마찰 저런 환난 이런 거 모든 거 다 온 세상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은 뭐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밥이라.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 민14:9 : 그들은 우리 밥이라
(88060130)
'씨'
여기 '씨'는 그 사람의 행위를 씨로 비유했습니다. 그 사람의 행위 그 사람의 생활 행동하는 것을 씨로 비유했습니다. 또 그 씨를 심는 것은 어떤 것을 비유했는가? 그 사람이 행동한 것을 가리켜서 심는 것으로 심은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그 행동은 어디다가 심는가? 그 행동은, 씨는 땅에 심지만 우리 사람들의 행동은 자기가 이 현실에다가 대고 심습니다. 현실에서 행동하게 됩니다.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요것을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 비유에는 그 어떤 사람이든지 행동하는 그 행동을 씨종자로 비유했고 그 씨종자를 땅에 심는 그 땅은 그 사람의 당하는 그 현실을 가리켜 비유했고 씨종자를 또 땅에 심는다는 것은 그 현실에서 자기의 그 행동한 것을 가리켜서 심었다 그렇게 비유합니다.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행동할 때에, 그 씨가 뒤에 나서 자라는 그것은 부활을 비유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그말은 우리 행동에서 죽으면 영생으로 다시 부활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죽으면 살아나고 안 죽으면 죽어 버립니다. 그러면 죽으면 살아난다는 이 말씀은 무엇이 죽으면 살아난다는 말씀인가? 자기가 죽으면 예수님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88060133)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계20:6에‘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이 복이 있지 첫째 부활에 참여 못 한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부활이라 하는 것은 죽어야 부활이 되지 죽지 않으면 부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죽고 부활하는 기독교라는 이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죽기 싫은 사람들이 '안 죽고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는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우니까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말고 확정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지금은 이렇지마는 앞으로 환난이 자꾸 심해 오면, 지금 환난은 전부 죽이려는 환난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 구원 얻을 수 있는 그런 길을 모든 사람이 택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 마구 기울어질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죽인다 하면 종노릇합니다. 무슨 죄라도 죽인다 하면 그만 범죄합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져야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영생도 안 믿는 사람이요 부활도 안 믿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 계20:6 :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 히2:15 :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8805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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