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6:1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가 싸우는 방편도 혈육적으로 그렇게 무슨 무기를 가진다든지, 또 어떤 육박전을 한다든지, 또 세상 무슨 물질이나, 물질계에 있는 그런 것을 힘으로 삼아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또 '마귀를 대적하라'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라' 하는 이것은 전부 이 우주 안에 있는 피조물적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것인 그런 힘을 가지고 무장해서 강건하여져라 하는 그러한 것을 위에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잘못하면 이 세상살이는 우리가 안 믿을 때와 같이 이 물질계의 것, 이런 것을 우리가 우리의 소망으로, 소득으로, 수입으로 이렇게 보고 살기 쉽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악령 편에 서서 악령의 작용에 벌써 감화를 받아 악령에 속한 악령적인 그런 편이 돼 가지고 생애를 하는 것이지 올바르고 정상적인 성도의 생애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입는 그것은 하나님이 완전자시며 주권자이시고 주권 개별 섭리자이신 이 전지 전능하신 이 완전의 능력이요 가치적으로도 도덕적으로 완전한 능력인데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니까 그 능력은 뭐인가? 그 능력을 만들어 가지고 완성을, 완제품을 우리에게 줬으니 곧 그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신갑주라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부를 완전히 보호하고 지켜서 아무런 해할 것이 없이 영원한 평강과 영생을 가질 수 있는 그 보호 그 은혜의 이름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라, 우리 전신에 어느 세포 하나도 상함 없이 완전하게 참 우리를 보호해서 우리 호신이 되어지는 것이 갑주이니, 전신갑주입니다. 그런데 이 갑주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니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다른 게 아니라 사활의 대속이라. 이 사활의 대속만 잊어버리지 안하고 자꾸 입고 있고 사모하고 이 사활의 대속을 자꾸 이렇게 생각할 때에 그 속에 무한하신 능력이 있어 가지고 우리를 지키십니다. 요거는 체험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두 찬송가 지은 사람들, ‘피에 능력 있도다. 능력 있도다.’ 피를 자꾸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은 체험에서 지금 말하고 있다 말이오.
* 약4:7 :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9052653)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나님 전신갑주가 내나 예수님의 대속이라.
'마귀의 궤계'
마귀의 궤계라 말은 마귀란 놈이 우리를 꾀우는 계획이라 말입니다. 계획이란 말은 단번에 꾀우는 게 아니라 일순서 이순서 오순서에 넘어뜨릴 것도 있고, 십순서에 넘어뜨릴 것도 있고, 이십순서에 넘어뜨릴 게 있고 그렇게 계획적으로 장기간 계 획을 해 가지고 삼킨다 그말입니다. 그걸 가리켜서 궤계라.
(89040421)
'마귀의 궤계'
궤계라 말은 꾀우는 계획이라 말이오. '계'라 말은 계획(計劃)이라는 셀 계(計) 자입니다, 꾀 계 자가 아니고. 궤계(詭計)라 말은 마귀란 놈이 우리를 꾀워서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일단 이단 삼단 사단 여러가지로 합니다. 긍정 긍정 나가다가 마지막에 착 잡아 버립니다. 이러니까 그게 뭐 단편 방편이 아니고 여러 수 년 수십 년 걸쳐서 이렇게 계획적으로 해 가지고 삼키는 마귀의 궤계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궤계라 말은 마귀가 꾀우는 계획이라 말이요.
궤계라 말은. 꾀우는 것 하나뿐이 아니라, 안 꾀우는 것 같고 또 위하는 것 같고 또 유익하게 하는 것 같고 또 옳은 것 같아서, 이렇게 살살살 데리고 제일 무죄 무악에서 시작해서 지극히 작은 소죄 소악으로, 소죄 소악에서 중죄 중악으로, 중죄 중악에서 대죄 대악으로 사람을 삼켜 나가는 이런 계획이라 하는 것을 전연히 생각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전신갑주'
전신갑주가 내나 10절의 '주안에'라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도 4가지입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 진리를 입으라 말입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 진리를 입으라.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네가 살아라. 감동을 입으라.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대형으로 다 사죄했기 때문에 너는 죄 없는 자라는 것을 항상 믿어라. 의로운 자라는 것을 믿어라.
전신갑주가 뭐인데? 네가 성경 말씀대로 이렇게 할려고 하면, 공산주의가 지금 와 가지고 남한을 막 점령하고 어떻게 한다 해도 성경 말씀대로 너는 살려고 해야 된다, 말씀에 위반되면 생명을 내놔도 그들의 명령을 거역해라, 하나님의 말씀에 틀린 말은 듣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일은 듣고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는 것은 뭐 위협을 줘도, 돈을 줘도, 명예를 줘도, 직장을 줘도, 뭘 줘도 하나님 말씀에 어긴 것은 탁 차내버려라. 그게 전신갑주 입는 것이다.
(8904020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는 천하에 있는 인류를 다 제 군대로 삼았습니다. 에덴 동산 인류 시조도 마귀의 것이 돼 버렸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것이 됐다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영은 완전히 해방 받았지만 법적으로는 우리 심신이 해방받았으나 실상은 우리 심신이 해방받지 못하고 마귀에게 지금 붙들려 있습니다.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데 우리 해방은 언제 해방당하느냐? 자기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에게 내가 속해서 그대로 움직이느냐 진리와 성령과 주님의 대속을 버리고 자기 주관대로 움직이느냐 세상 주관대로 움직이느냐? 움직이면 그는 법적 구원 얻은 것이 완전히 죽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법적으로 구원 얻은 것이 그 현실에서 진리로 움직였고 영감으로 움직였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움직였으면 그 움직인 요소는 영생이 됐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죽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의 이 마귀는 이렇게 모든 인류를 다 꼬와 가지고서 제 부하와 제 종을 삼았는데 우리를 거기서 해방시켜서 이제 마귀의 부하가 되느냐 하나님 부하가 되느냐, 마귀의 종이 되느냐 하나님의 종이 되느냐 하는 것을 우리 현실에서 판가름하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능력 있는 마귀는 단수로 꾀우지 안하고 수많은 그 순서를 통해서 꾀웁니다.
궤계라 말은 꾀울 궤(詭), 계획 계(計)입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꾀울 때에 단수로 꾀우지 않습니다. 그놈 시키는 대로 하면 일차는 좋은데 이차부터 나쁜 것, 일차 좋고 이차 좋고 삼차 좋고 사차부터 나쁜 것, 그 계획이라 하는 것은 단수가 아니요 이단도 아니요 삼단만도 아니요 사단만도 아니요 오단만도 아니요 신앙이 높아 갈수록이 그 단수를 높이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재 보면 좋지만 그다음은 요게 위험하다, 그다음도 좋지만 그다음이 나쁘다, 이것을 마귀가 사람을 꾀워서 멸망시키는 마귀의 궤계를 누가 계산을 대 가지고 이 궤계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없습니다.
요새 뭐 컴퓨터라고 말하지만 컴퓨터 만든 사람도 역연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지금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머리를 써서 좋은 거 만들어 내니까 고 좋지만 그 전체가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지 그것이 컴퓨터가 사망 선을 뛰어 오른 것은 아닙니다. 사망을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이러기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가 그런 꾀우는 계획을 가지고 그 계획은 하루 계획인지, 일 년 계획인지, 십 년 계획인지, 몇십 년 계획인지 그 사람을 지금 시작해 가지고서 한 몇십 년 후에 그를 박살내기 위해서 몇십 년을 시간으로 두고 계획한 그 계획인지, 혹은 그 사람 죽을 때까지의 계획을 가지고 계획한 것인지, 우리는 내일도 모르는 인간이 우리가 그 계획을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꾀우는 그 단수가 몇 단이나 되는지 그걸 알 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 그 길이와 높이와 넓이가 크기 때문에 아무도 측량 못 합니다. ‘요거는 마귀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요 내가 안 빠져야 되겠다’ 그러는 사람은 다 빠져 죽습니다. 이 마귀의 궤계는 온 천하를 다 점령해서 제것으로 통치해서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궤계입니다. 이래서 이 수를 가리켜서 육백 육십 육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온 천하를 제것으로 삼아서 통치할 수 있는 이런 넓고 깊고 높으고 길게 광대한 계획인데 이 계획을 이긴 자는, 이 계획을 이긴 자는 우주와 영계를 통치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는 것습니다.
그러면, 이 마귀의 이 광대하고 길고 높고 한 이 깊고 한 이 마귀의 궤계를 우리가 대적하는 데는 어떻게 대적할 수가 있느냐?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갑주라 하는 것은 갑옷과 투구를 가리켜서 갑주라 합니다. 갑옷은 원수의 화살이 내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요 투구는 원수가 내 머리를 어떻게 뚜드리고 해할지라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말은 너를 보호하는 데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마귀란 놈이 수많은 궤계를 가지고서 너를 꾀우는데 달콤한 것 산뜻한 것 도덕, 자선 봉사 정의 공의 사랑의 궤휼로 꾀웁니다. 심지어‘아! 이거야 민족 운동 아니냐? 이거는 교회 부흥 운동이 아니냐? 이거는 복음 운동이 아니냐? 이것은 지금 중공에 선교 운동이 아니냐? 이것은 교회 운동이 아니냐? 이것은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게 아니냐?’ 그런 거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따라갔다가는 멸망 받습니다.
전신갑주라는 것은 세 가지가 전신갑주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과 성신의 감화와 진리 요 세 가지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수들이 화살로 찌르는데 죽지 안하고 상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니 곧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을 가지고 대형으로 주신 사죄와 칭이 화친과 비교하여 여기에 일치되는지 대립되는지를 보면 압니다. 진리와 일치되느냐 또 영감에 일치가 되느냐 대립이 되느냐를 보아서 여기에 일치되면 좋지만 여기에 틀리면 그만 반대해야 합니다.
* 계20:6 :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88061201)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골3:12)
하나님의 택하심이라 말은, 택했다고 하니까 많은 것이 있는 가운데서 가려낸 것으로 보기 쉽습니다. 택함이라 하는 것은 모든 존재가 있은 지 후에 그 가운데서 가려낸 것이 아니고, 존재 이전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예택입니다. 없는데 미리 택한 것을 가리켜서 예택이라 합니다.
예택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선택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택이라는 말은 존재 후에 택했다는 것이고,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이 목적 정하시는 그때에 택해졌다는 것을 가리켜서 예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택이라는 단어와 선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하나님이 미리부터 정하신 유일하신 당신의 목적으로 정함을 받은 그 속에서 우리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난 다음에 택함 받은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골3:12)
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으니 곧 하나님이 목적 정한 그것을 가리켜서 택하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하는 말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하는 말입니다.
'거룩하고' (골3:12)
거룩하다는 것은 더러운 것들이 많이 있는 가운데에서 구별된 것, 깨끗하게 된 것을 가리켜서 거룩하다 합니다. 하나님 혼자 존재할 때에는 거룩이라는 말을 안 씁니다. 모든 피조물을 상대했을 때에 그분만이 거룩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택하신'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데 '거룩하고' 모든 것보다도 뛰어나서 흠과 점이 없는, 여기서 말씀하신 거룩이라 말은 모든 존재를 뛰어나서 흠과 점이 없는 완전자라는 말입니다.
'사랑하신 자' (골3:12)
택했기 때문에 거룩하고, 거룩하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랑하신 자처럼' (골3:12)
'사랑하신 자와 같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의 구주는 하나님이 존재하신 후에 목적으로 정하신 그 목적 책임자인데, 모든 존재보다 탁월한 거룩한 자로서 '하나님의 사랑하신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상속해 주시는 이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신 자처럼' 하는 말은 우리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모든 이종교들은 다 창조 이후에 있으나 창조 전, 모든 피조물이 생기기 전, 모든 존재가 있기 전에 존재한 것이 우리 구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 모든 종교나 사상이나 저들이 아무리 신화나 무엇을 어떻게 말한다 해도 모두가 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 이후에 그 많은 존재들 중에 하나로서 된 것이지마는 우리 구원의 근거는 존재 이전입니다.
'처럼' (골3:12)
여기 '처럼' 하는 것은 곧 우리 구원의 근원이신 그분처럼 하는 말입니다. 자존에서부터 시작돼서 모든 존재 이전에 존재하신 완전하고 무결하신 그자처럼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빌립보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완전 승리하시고, 모든 존재 위에 뛰어난 인정을 받고, 모든 피조물들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한 것처럼, 그런 온전한 구원을 우리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리켜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와 같은 동등된 이런 완전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소망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하는 말은 이제 이분과 꼭 같은 자가 될 수 있다는 이 소망을 우리에게 주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분과 같이 되어지는데 누구로 말미암아 되어지느냐? 이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집니다. 이분이 우리 속에 와 계셔서, 이분이 혼자 역사하시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이요 그리스도의 능력이요 그리스도의 지혜입니다.
한 예를 들면,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가 그리스도인 된 나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전지한 지혜가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으니 나는 전지한 지혜를 가진 자이지만 그 지혜는 내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전지한 지혜가, 당신이 역사하신 그 지혜의 빛이 내 안에까지 와서 비추어서 빛으로 역사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능력과 지혜, 모든 속성들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비추어서 역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 그 본체가 우리 속에 와 가지고 나타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긍휼과' (골3:12)
긍휼은 자기보다 더 사랑하고 위해서 모든 역사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나보다 더 귀하게 사랑하고 위해서, 내 전부가 그를 위해서 있게 되는 그 단계의 것을 긍휼이라고 말합니다.
'자비와' (골3:12)
자비라는 것은 내 밖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내게 있는 것만큼 있게 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있고 그에게 없는 것이 있으면 내게 있는 것을 그에게 줘서 나와 꼭 같이 있도록 하려는 고 사랑을 가리켜서 자비성이라 말하고, 긍휼성은 그보다 탁월한 것입니다. 이웃 사랑을 제 몸같이 하라 하는 그것은 곧 자비성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골3:12)
여기 겸손은 위에 말씀하신 긍휼과 자비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후에 그 긍휼과 자비를 어떻게 계속 잘 보존할 수가 있느냐 하는 그 보존성을 말합니다. 겸손이 없으면 그게 보존되지 않습니다.
'온유와' (골3:12)
온유라는 것은 위에 말씀하신 긍휼과 자비와 겸손 이런 것이 될 때에 내게 이루어지는 그 본능이 온유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온유라는 것은 어떤 큰 능력을 배경으로 삼아서 자체에게 아무런 부족감이나 그런 감이 하나도 없는 만족스러운 것을 말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으면 그만 만족이고 다인 것과 같습니다. 어머니보다 더 강한 이가 없고 어머니를 해할 이가 없으니까 그 아이로서는 그 이상 없는 만족한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난다 해도 그에게는 놀람이나 부족이나 염려되는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안에 안겨 있는 그 아이의 마음의 평안한 그 자세를 표현해서 여기 온유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온유가 생겨질 만큼 긍휼과 자비와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온유하지 못하는 것은 조급성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맡겨 놓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것이 염려성이 있었고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온유라 하는 것은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6:11에는‘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했습니다. 그것은 전투 면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는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지 않았고 ‘옷입으라’했습니다. 이 옷은 전쟁할 때에 입는 옷이 아니고 평소에 자기 몸을 보호해서 따뜻하기 위해서 입는 옷을 가리켜 말합니다. 유순하고 부드러운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런 것을 네가 입어 이 속에 네 자체라는 것은 있고 이것을 벗어나지 말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위에 말씀하신 긍휼이나 자비나 겸손은 자체가 되는 것이고, 온유도 자체에게 이루어진 그 영향이, 그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긍휼과 자비는 자기가 힘을 써 가지고 가지게 된 것인데, 그러면 이 긍휼과 자비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긍휼이 와 있고 자비가 와 있으면 그것이 곧 주님의 형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입니다. 그래서 그 위에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가 만유시요, 그가 곧 그리스도시요, 그가 곧 하나님이시요, 그가 주님이시요, 그가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자체십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내가 긍휼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진 그 긍휼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긍휼의 주님이, 긍휼이 내 안에 계셔 가지고 그 긍휼이 나를 통해서 나타낸다 하는 말입니다.
등 속에 불을 켜 놓으면 그 등이 커다란 불덩어리가 되지마만 속에 불은 따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긍휼은 주님이시오. 긍휼이신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긍휼을 나타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를 옷입듯 해라, 네가 이 속에 살아라, 이 밖에 나오지 말고 이 속에 있도록 해라 하신 말씀입니다.
* 골3:12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 빌2:5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8805010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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