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장 1절을 증거하시면서, 편집자)
계속 이 말씀을 이제 사흘 아침째 우리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증거한 것이 다가 아니고 다만 여기에 대한 내용의 그 뜻을 마치, 비유컨댄 코끼리 한 마리를 가르칠 때에 코끼리의 어느 한 부분 다리를 가르치든지 또 그 발가락을 가르치든지 귀를 하나 가르치든지 한 거와 같이 그렇게 소개한 것이고 증거한 것이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코끼리의 발을 하나 소개받은 사람이 그게 다인 줄 알면 잘 못 아는 지식이 되겠습니다. 왜? 코끼리는 다리 하나만이 다가 아닙니다. 누가 묻기를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그 사람이 그게 다인 줄 알고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다 그렇게 말을 하면 그 사람은 거게 대해서 무식한 사람입니다. 배운 사람이지만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렇게 코끼리의 어느 부분을 말을 했든지 말한 그 부분을 실지로 가지고 찾아 들어가서 그 코끼리를 만난다면 그 사람은 코끼리에 대한 것을 외모는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외모를 알고 난 다음에는 좀 더 마음을 써서 연구를 하면 그 코끼리의 행동을 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좀 더 연구하면 코끼리의 성질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좀 연구하면 코끼리가 무엇을 식물 중에 잘 먹고 무엇은 안 먹는다 그런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차차 차차 코끼리에 대한 온갖 지식을 구비하게 가질 수가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의 도리를 어느 일부분을 자기가 증거받을 때에 그 증거 그것만으로 전부인 줄로 알면 헛일입니다. 이것은 그저 어느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는, 한목은 말 못하고 이러니까, 안다 할지라도, 코끼리를 잘 아는 사람이 증거한다 할지라도 그걸 한목 다는 말하지 못하니까 코끼리를 말할 때는 이 부분을 들어서 말하고 저 부분을 들어서 말하고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이 어느 한 부분 그것을 전부로 생각 하지 말고, 그 코끼리를 그저 이렇게 가르치되 저게 코끼리가 있다 하는 그 정도로 가르치는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니까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받은 그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자꾸 이렇게 마음을 들이고 소욕을 가지고 자꾸 거게 대해서 연구를 할려고 하면 그 사람은 코끼리를 만날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을 것이고, 또 만나면 인제 다 됐다 하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고 만나 가지고 '이 코끼리에 대한 지식을 좀 더 구비하게 가져야 되겠다 하면 더 구비하게 연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순서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연구할 수 있는 지능도 자기에게 있고, 또 연구의 대상이 되어 있는 코끼리도 단순히 일부분, 또 눈으로 보이는 그것만 가지고서 코끼리를 다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차차 차차 거기다 마음을 두고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고 하면 코끼리에 대한 모든 면으로 잘 알아서 코끼리를 얼마든지 기를 수도 있겠고 그를 어떤 면으로 가치 있게 이용할 줄도 알 것이고, 심지어 코끼리를 살아서 이용할 뿐만 아니라 잡아서 이용하는 것까지 거게 대해 전체의 지식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 도리를 어떤 사람이 세밀히 거게 대해서 증거를 한다고 해서 그만하면 다가 아닙니다. 마치 이 코끼리의 한다리를 손을 대면서 이 다리가 '이게 코끼리다.' 귀를 가리키면서 '이게 코끼리다.' 그러면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서, 자꾸 '이게 코끼리다' 저게 코끼리냐 이게 코끼리냐? 집이 코끼리냐 산이 코끼리냐 뭐이냐 이랬는데, 예를 들면 작지로 가지고 가리키면서, 코끼리 꼬리를 가리키든지 어디든지 가리키면서 '이게 코끼리다' 하면 그 코끼리를 제가 지적을 받았으니까 자꾸 연구한데 따라서 코끼리에 대한 구비하고 원만하고 충분한 그런 지식을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거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가르친다는 것이 그만하면 다가 아니고 온 세상에 둬도 다 두지 못할 만한 그 내용에 구비하고 온전하고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내용을 신구약 성경에 가르쳐 놨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이 그렇게 구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신구약 성경은 대충 윤곽을 가르쳐서 이래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인데, 천하에 둬도 다 두지 못할 그만한 그 실상을 이렇게 아주 축소해서 신구약 조그만한 이 성경이라는, 육십 육 권이라는 작은 양이 아주 적은 책에 여게다가 기록을 해 놨기 때문에 이게 다가 아니라 그 말이오. 또 그것을 사람이 어느 성구를 들어서 해석을 해 준다고 해서 그 해석이 다가 아니라 그거요. 마치 코끼리 가르치는 거와 같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듣고 살게 되는 고 부분을 가지고 자꾸 차차 차차 자기가 연구를 하면 세상에 둬도 둘 수 없을 만한 그만한 다량의, 양이 많은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다 알았다고. 이제는 나는 다 알았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꾸 알아 나가고 그렇게 연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구하는 데는 어떻게 해서 연구를 할 수 있는가? 그 말씀을 자기가 마음에 간직하고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고 지켜 회개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8403143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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