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믿음의 사람은 영감의 눈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실상을 맞습니다.
제일 처음에 우리가 뭐로 봅니까? 뭐로 보고 지금 합니까? 눈으로 보고, 눈으로 보는 것을 사람들이 소망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을 소망하는데, 눈으로 보는 것은 현재 있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눈으로 보는 것보다 어떤. 어떤 눈으로, 육안으로 보고 소망 가지는 것보다 이성의 눈으로 가지고 소망 가지는 것이 더 큽니다. 이성의 눈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미래에 있는 것을 이성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성의 눈이 밝아서 이성의 눈으로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 사는 사람은, 육안으로만 보고 사는 사람은 그것은 바로 도적질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오. 은행에 가 가지고 돈을 거머쥐면 훅 훔쳐 가지고 나가다가 걸리는 그런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도적은 다 보면 육안으로 사는 사람들이라. 육안으로 사는 사람이라. 이 세상에서 뭐 공부를 하고 나타나지 안한 그 미래에 있는 그 모든 좋은 것을 보고 사는 사람도 이성의 눈으로 사는 사람이라. 이성의 눈으로 사는 사람. 그것은 이성의 눈으로 사는 사람이지만 그 이상은 없어요. 그 이상은 불택자들에게, 중생되지 안한 사람들에게는 양심의 눈으로 소망한다는데 양심의 눈은 멀어서 없습니다. 양심의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인은 불교 양심,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양심, 또 유교인은 유교인의 앙심. 자기 종교 사상마다 그 양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양심은 다 죽은 양심이기 때문에, 양심이 화인 맞았으니까, 벌써 하나가 됐기 때문에, 어디 귀속했기 때문에, 양심이 자유하지 못하는 양심이기 때문에 다 양심은 썩었다 그 말이오.
그런데 믿는 사람은 처음엔 육안으로 살다가 육안보다 더 밝은 뭐입니까? 이성의 눈으로 살다가, 이성의 눈으로 보고 살다가 또 그 다음에는? 양심의 눈으로 보고 살다가, 양심의 눈으로 보고 살다가 그보다 밝은 눈은 뭐입니까? 성경의 믿음의 눈, 성경 말씀을 보고 성경 말씀대로 인정하고 보는 그것이 믿음의 눈이라. 믿음의 눈보다 더 밝은 눈은 뭡니까? 영감의 눈 영감의 눈으로 봤으면 다 봤습니다. 영감의 눈으로 보기를 얼마나 보느냐? 사람이 살아서 청년으로 있을 때에, 죽을 때에 자기가 모든 사리 판단을 보고 평가하는 그 평가를 젊을 때 하는 그 사람이 영감의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또 자기가 뭐 환난이 올 때에 환난이 오니까 그때 당황하는, 환난이 오기 전에 환난 왔을 때에 어떻게 되겠느냐, 환난 왔을 때에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 하는 것을 지금 보고 떨고 당황하면서 준비하는 그 사람이 영감의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천하가 다 불타 녹아지고 할 때에 사람들은 경거망동 안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영감의 눈이 밝은 사람들은 벌써 그런 것을 수천 번 당했기 때문에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온 세계가 불로 타서 다 원소가 다 사뤄지고 녹아진다 모든 것이 녹아진다.
모든 인간들의 비밀이 다 드러난다 이럴 때에 뜻밖에 비밀이 드러나니까 기가 막힐 것 아닙니까? 비밀이 드러나니 기가 막히지만 아예 드러날 줄 알고 단속 단속 단속 단속 단속 단속해서 깊이 깊이 묻을 것 묻어 버리고 다 씻을 것 씻어 버리고 다 해결지었기 때문에 그거 와 봤자 자기가 미리 영감으로 알고 놀라면서 준비한 그 준비와 실상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닥치고 보니까 오히려 수월하고 무르다 그 말이오. 수월하고 무르니까 뭐 더 겁낼 게 뭐 있어야지? 더 뭐이 올란가 했는데 그것으로서 끝마친다 말이오. 그러니까 웃음으로 즐거움으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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