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어떤 물건을 볼 때에 백 배 보는 현미경도 있겠고, 천 배, 만 배 보는 현미경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상대할 때에 이 말씀이 그라면 어떤 것을 말해 줬는가? 어떤 참 요긴한 것을 말했는가? 그러면 이 말씀의 그 실상을 놔서, 어떤 그 물건을 볼 때에 백 배 보는 현미경도 있겠고 천 배 보는 현미경도 있겠고, 만 배 보는 현미경도 있으니까,
없는 걸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내 눈이 어두워 그러니까 그것을 그 많은 양을 볼 수 있는 그런 그 현미경과 같이 우리의 그 심령이 밝아지면 그 모든 것을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있는 것을 자꾸 늘여트려서 필요 없는 걸 자꾸 하나를 둘로 늘어트리는 게 아니고 그 속에 있는 그것을 우리가 너무 세밀해서 어려워서 모르는 것을 우리가 그 심령이 밝아짐에 따라서 그것을 보이는 거 이 배가 되는구나 또 백 배가 되는구나, 그 사실을 우리 눈이 밝음에 따라서 점점 확대되어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그저 이 성경 말씀을 얼마든지 자꾸 이렇게 쪼개는 게 이것이 우리 할 일이다. 쪼개는 것만 우리 할 일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그거는 다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뭐 쪼개는 것도 우리 할 일. 왜 그걸 쪼개겠습니까, 어떻게.
성경이 한 절수를 말했는데 그 절수가 우리에게 보여지는 그 절수의 그 내부를 우리가 봐야겠습니다. 그 절수의 내부가 얼마나 넓고 양이 많은가 하는 것을 봐야 되는데, 그 내부를 누가 가르치고 있는가? 그 내부를 담당하고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내재적 영감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성령이 그 안을 담당하고 있으니 내나 기록할 때에도 영감으로 기록했고, 또 그 기록된 것을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알려 주는 것도 영감으로 알려 주니까 그것의 그 내용의 그 많은 양을 보는 데에 십 배 보는 사람, 백 배 보는 사람 천 배 보는 사람 예를 들면 그렇게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명문되어 있는 그것만 보고하는 사람은 명문대로의 행위가 될 것이고 명문을 그것을 내용이 이 배가 되어 있는 그 이 배를 보는 사람은 이 배를 상대해 가지고 자기의 법전으로 삼아서 그대로 살라고 애를 쓸 것이고 그 십 배가 내부돼 있는 그 십 배의 내용을 보는 사람은 자기가보 고 깨달은 그 십배나 되는 그 내용을 자기 법전을 삼아 가지고 거게 맞추려고 애를 쓸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뭐 괴수 죄인이라 점점 살아갈수록 자꾸 죄가 많아지고 자꾸 커지는 것을 사도 바울이 타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심령이 밝아져서 이 성경 말씀을 탈선해서 그런 게 아니고 성경 말씀 안에 자꾸 깨달아지니까 다른 사람보다 성경 안에 있는 고 내용을 더 넓게 보고 세밀히 보고 그렇게 보니까 그의 보고 말한 것이 더 다른 사람보다 양이 많아진 것이지 그분이 무슨 타락해 가지고 양이 많아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을 왜 하는고 하니 우리가 성경을 아무나따나, 성경은 자꾸 해석해야 되니까 성경은 해석해야 되니 성경을 이리저리 자꾸 주 쪼개 가지고 자꾸 해석을 해야 이게 되어진다 이래 가지고 성경을 쪼갤라고 하는 그것도 참 천지를 모르는 그 기막힌 행위입니다.
(85070920) 9
|
|